국궁의 노래/ 김 재 황 국궁의 노래 김 재 황 한쪽 발 조금 뒤로 과녁 향해 살짝 틀고 숨 가득 모은 후에 뜻을 모아 높이 든다. 하늘 땅 너른 자리에 오직 내가 있을 뿐. 둥근 달 겨냥한 듯 시위 힘껏 당긴 다음, 맘 맑게 다시 씻고 손가락 둘 떼어 준다, 바람 꿈 모인 곳으로 날개 펴는 하늘 새. 살 이미 길을 가고 소리 겨우 남고 나니 두 눈을 감은 채로 다만 귀를 멀리 연다, 산과 강 넘고 건너는 그 기다림 파랄 터. 대표 시조 2022.11.06
물총새가 되어/ 김 재 황 물총새가 되어 김 재 황 흐르는 물속으로 가는 눈길 쏟노라면 물길을 거스르며 꼬리 치는 목숨이여 살처럼 내리꽂아서 빛난 얼을 잡는다. 대표 시조 2022.11.05
콩제비꽃 그 숨결이/ 김 재 황 콩제비꽃 그 숨결이 김 재 황 어디서 날아왔나 작고 작은 씨앗 하나 잘 앉은 화분에서 작은 부리 내밀더니 여름내 깃을 다듬어 그 숨결이 더웠다. 가을도 기우는데 엷고 엷은 물빛 줄기 안 편한 마음이라 내 방으로 옮겼더니 겨우내 떠는 날개에 먼 꿈길만 시렸다. 대표 시조 2022.11.05
함박꽃나무/ 김 재 황 함박꽃나무 김 재 황 겨우내 눈을 감고 무슨 알을 품었는지 봄날에 가지에는 하얀 깃털 어린 새들 저마다 먹이 달라고 입을 쩍쩍 벌린다. 대표 시조 2022.11.05
폭포 아래에서/ 김 재 황 폭포 아래에서 김 재 황 흐름을 밟고 가서 굽이 또한 거친 다음 툭 꺾인 물 마디가 쏟아지며 부서질 때 비로소 하늘 외침은 더운 피를 막 쏟네. 긴 솔이 굽게 서서 물바람을 가득 안고 입 시린 물방울에 일곱 꿈이 살짝 피면 목이 튼 우리 가락이 절로 뽑는 시조창. 마음껏 여는 귀엔 거친 맷돌 돌리는 듯 눈 뜨고 둘러보니 둥근 우레 울리는 듯 성내며 더 을러 봐도 어깨춤만 또 으쓱. 대표 시조 2022.11.03
꽃/ 김 재 황 꽃 김 재 황 우선은 그들 눈에 띄어야만 할 일이다 배고픈 마음마저 끌어야 할 빛깔과 꼴 되도록 빠른 날개를 지니게 할 일이다. 아니면 짙은 향기 넓디넓게 펴야 한다, 깊숙이 숨은 데로 코를 박고 날아들게 더듬이 멀리 늘여서 꼭 찾도록 만든다. 하기는 물과 바람 도움이야 있긴 있지 아닌 듯 그러한 듯 나서지는 못하지만 반드시 그 삶의 씨는 남들처럼 챙긴다. 대표 시조 2022.11.03
바위 중천금/ 김 재 황 바위 중천금 김 재 황 그토록 무거운 건 무엇인가 담기 때문 시원히 못 꺼냄은 감동하지 않은 까닭 참아서 무늬가 되는 이 아침을 맞는다. 실금이 보일 때는 소나무를 세워 두고 바람이 부는 날을 나이테로 둘러 가도 묶어서 굳센 침묵은 풀어 놓지 않는다. 긴 밤이 흘러가고 둥근 달도 돌아가서 산들이 꿈틀대며 더운 숨을 내뿜을 때 난 너를 사랑했다고 한마디 말 외치리. 대표 시조 2022.11.03
달맞이꽃 연서/ 김 재 황 달맞이꽃 연서 김 재 황 저무는 저 하늘엔 그리움이 담겨 있고 꿈길로 이 냇물은 어서 가자 이끄는데 더위를 식히고 나서 내 연필을 듭니다. 아직은 달도 없이 높게 뜨는 뭉게구름 어디로 가는 건지 서두르는 바람 걸음 낱낱이 보내고 싶은 내 소식을 씁니다. 까맣게 닫힌 밤이 호수처럼 문을 열면 마침내 웃음 물고 동그랗게 뜨는 얼굴 새에게 꼼꼼히 접힌 내 편지를 줍니다. 대표 시조 2022.11.03
나이테/ 김 재 황 나이테 김 재 황 나에게 묻지 마라 숨 가쁘게 먹은 나이 언 날도 찌는 날도 앞으로만 달려갈 뿐 나중에 켜면 알리라 꼭꼭 감긴 그 숫자. Tree Rings Chai-hwang, Kim Do not ask or question me. This breath-taking pace of aging. On freezing days and on steamy hot days, Time just runs straight onward. Later on, only after you cut it down Can you see the number tightly wrapped. 대표 시조 2022.11.03
청계산 노을/ 김 재 황 청계산 노을 김 재 황 고단한 산바람이 발을 끌며 사라진 후 한낮을 버티다가 모로 눕는 산 그림자 가려운 능선 자락에 솔잎 둥지 만든다. 골짝은 가라앉고 저 먼 땅은 잠기는데 목을 뺀 기러기는 천릿길을 가늠한 듯 하늘에 머문 구름만 얼얼한 뺨 만진다. 할 말을 남겨 두고 떠나가는 발소리들 나른한 눈동자에 호수 하나 담겨 있고 참으면 더 짙게 되는 마음끼리 만난다. 대표 시조 202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