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시조 26

국궁의 노래/ 김 재 황

국궁의 노래 김 재 황 한쪽 발 조금 뒤로 과녁 향해 살짝 틀고 숨 가득 모은 후에 뜻을 모아 높이 든다. 하늘 땅 너른 자리에 오직 내가 있을 뿐. 둥근 달 겨냥한 듯 시위 힘껏 당긴 다음, 맘 맑게 다시 씻고 손가락 둘 떼어 준다, 바람 꿈 모인 곳으로 날개 펴는 하늘 새. 살 이미 길을 가고 소리 겨우 남고 나니 두 눈을 감은 채로 다만 귀를 멀리 연다, 산과 강 넘고 건너는 그 기다림 파랄 터.

대표 시조 2022.11.06

폭포 아래에서/ 김 재 황

폭포 아래에서 김 재 황 흐름을 밟고 가서 굽이 또한 거친 다음 툭 꺾인 물 마디가 쏟아지며 부서질 때 비로소 하늘 외침은 더운 피를 막 쏟네. 긴 솔이 굽게 서서 물바람을 가득 안고 입 시린 물방울에 일곱 꿈이 살짝 피면 목이 튼 우리 가락이 절로 뽑는 시조창. 마음껏 여는 귀엔 거친 맷돌 돌리는 듯 눈 뜨고 둘러보니 둥근 우레 울리는 듯 성내며 더 을러 봐도 어깨춤만 또 으쓱.

대표 시조 2022.11.03

꽃/ 김 재 황

꽃 김 재 황 우선은 그들 눈에 띄어야만 할 일이다 배고픈 마음마저 끌어야 할 빛깔과 꼴 되도록 빠른 날개를 지니게 할 일이다. 아니면 짙은 향기 넓디넓게 펴야 한다, 깊숙이 숨은 데로 코를 박고 날아들게 더듬이 멀리 늘여서 꼭 찾도록 만든다. 하기는 물과 바람 도움이야 있긴 있지 아닌 듯 그러한 듯 나서지는 못하지만 반드시 그 삶의 씨는 남들처럼 챙긴다.

대표 시조 2022.11.03

바위 중천금/ 김 재 황

바위 중천금 김 재 황 그토록 무거운 건 무엇인가 담기 때문 시원히 못 꺼냄은 감동하지 않은 까닭 참아서 무늬가 되는 이 아침을 맞는다. 실금이 보일 때는 소나무를 세워 두고 바람이 부는 날을 나이테로 둘러 가도 묶어서 굳센 침묵은 풀어 놓지 않는다. 긴 밤이 흘러가고 둥근 달도 돌아가서 산들이 꿈틀대며 더운 숨을 내뿜을 때 난 너를 사랑했다고 한마디 말 외치리.

대표 시조 2022.11.03

달맞이꽃 연서/ 김 재 황

달맞이꽃 연서 김 재 황 저무는 저 하늘엔 그리움이 담겨 있고 꿈길로 이 냇물은 어서 가자 이끄는데 더위를 식히고 나서 내 연필을 듭니다. 아직은 달도 없이 높게 뜨는 뭉게구름 어디로 가는 건지 서두르는 바람 걸음 낱낱이 보내고 싶은 내 소식을 씁니다. 까맣게 닫힌 밤이 호수처럼 문을 열면 마침내 웃음 물고 동그랗게 뜨는 얼굴 새에게 꼼꼼히 접힌 내 편지를 줍니다.

대표 시조 2022.11.03

청계산 노을/ 김 재 황

청계산 노을 김 재 황 고단한 산바람이 발을 끌며 사라진 후 한낮을 버티다가 모로 눕는 산 그림자 가려운 능선 자락에 솔잎 둥지 만든다. 골짝은 가라앉고 저 먼 땅은 잠기는데 목을 뺀 기러기는 천릿길을 가늠한 듯 하늘에 머문 구름만 얼얼한 뺨 만진다. 할 말을 남겨 두고 떠나가는 발소리들 나른한 눈동자에 호수 하나 담겨 있고 참으면 더 짙게 되는 마음끼리 만난다.

대표 시조 202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