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노래하다/ 김 재 황 달을 노래하다 김 재 황 가까이 갈 수 없게 멀리에서 눈뜨는데 볼수록 더욱 곱게 내 마음을 잡는구나, 이 어찌 꽃잎보다도 좋은 것이 아니랴. 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손짓인데 닿아도 느낌 따라 내 마음이 젖는구나, 이 어찌 눈물보다도 더운 것이 아니랴. 희지만 때 안 끼게 밤새도록 노니는데 내리면 훨씬 크게 내 마음에 앉는구나, 이 어찌 꿈길보다도 밝은 것이 아니랴. (2021년) 뽑은 시조 2022.03.22
얼굴/ 김 재 황 얼굴 김 재 황 참됨을 알려거든 그의 눈을 먼저 봐라, 쓸어 논 후수같이 맑아야만 좋은 것을 세상에 태어났을 때 보인 대로 아니다. 잘남이 어떤지는 그의 코를 바로 봐라, 빚어 논 태산처럼 오뚝해야 멋진 것을 가슴에 간직하는 뜻 잃게 되면 아니다. 사귐을 바라거든 그의 입을 다시 봐라, 쏟아 논 말이라도 지켜야만 옳은 것을 하늘이 알아줄 믿음 지닌 때가 진짜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22
연꽃 마음/ 김 재 황 연꽃 마음 김 재 황 있는 게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인가, 가진 것 내버려서 넉넉하게 비운 마음 바람이 살며시 부니 온 매듭이 풀리네. 예쁜 게 무엇이고 미운 것은 무엇인가, 보는 것 깊어져서 안쓰럽게 붉은 마음 강물이 그저 스스로 낮은 데로 흐르네. 오는 게 무엇이고 가는 것은 무엇인가, 머문 곳 멀어져서 너그럽게 지는 마음 구름이 걷히고 나면 새 하늘이 열리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21
나무/ 김 재 황 나무 김 재 황 여럿이 모여 서서 우거진 숲 이루는데 힘차게 손과 손을 마주 잡는 나날이여 든든히 높은 하늘을 굳게 믿고 있구나. 어느새 봄이 가니 무더위가 성큼 오고 힘겨운 너와 내가 쉬고 싶은 마음이여 마땅히 짙은 그늘을 깔아 놓고 있구나. 바람이 불고 나서 긴 강물이 깊어지면 힘내듯 잎과 잎에 퍼져 가는 숨결이여 가볍게 오늘 하루도 길을 가고 있구나. (2021년) 뽑은 시조 2022.03.21
조국/ 김 재 황 조국 김 재 황 먼동이 막 트이니 흰옷 입고 오는 기척 뜰 안에 피어 있는 무궁화가 방긋 웃고, 밤새운 물레 소리만 저 큰 산을 넘느니. 갓 쓰고 살았으나 못 다 부른 애국가여 참 곱게 머리 땋고 남치마로 그네 뛰면, 멍에 맨 황소 한 마리 흐르듯이 나서지. 가볍게 짚신 신고 걸어온 길 멀고 긴데 초가집 그 한 채에 가야금도 슬피 울고, 꽤 지친 삼천리 땅이 편할 날은 언젤까. (2021년) 뽑은 시조 2022.03.21
하늘/ 김 재 황 하늘 김 재 황 우리가 믿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새파란 그 빛깔이 바른길에 뜻이 있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냥 두지 않는다. 찌푸린 날이 되니 가슴속은 더 어둡고 번개가 치고 나서 우레마저 울고 나면 대번에 얼굴을 묻고 싹싹 빌게 된단다. 몸과 맘 깨끗한들 지은 죄가 없겠는가, 안 먹고 못 사는데 어찌해야 좋겠는지 스스로 거듭 물으며 땅만 보고 걷는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20
결혼기념일/ 김 재 황 결혼기념일 김 재 황 꼽으니 사십팔 년 지난 길이 새파랗고 앞으로 가야 하는 그 일이야 안개여라, 내디딘 오늘 하루가 보석인 양 귀하다. 젊었던 옛 시절이 꽃밭인 듯 아련한데 즐겁게 나비처럼 날던 때가 그 언젠가, 잊으면 안 되는 날로 동그라미 그렸다. 세상을 살자 하니 무거운 게 인연이고 묶이면 꼼짝없이 풀 수 없는 사슬이지 즐겁게 머슴 노릇을 하는 내가 되리라. (2021년) 뽑은 시조 2022.03.20
보랏빛 장미/ 김 재 황 보랏빛 장미 김 재 황 이 꽃을 만났을 때 사랑하는 마음인데 멋지게 나타내는 빨강 파랑 그 어울림 더 높이 세련된 모습 바라보게 만든다. 둘 사이 이끄는 게 한마디로 무엇인가, 질기게 이어지는 저 남다름 밀고 당김. 뜻 모를 신비한 느낌 빠져들게 만든다. 갈 때가 되고 나면 가벼워야 마땅하고 뜨겁게 내세우는 우리 이성 찬 깨우침 좀 깊이 꼬집힌 아픔 간직하게 만든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20
한강/ 김 재 황 한강 김 재 황 흐르는 물줄기를 가슴 쓸고 다시 보면 긴 세월 지난 일이 거품으로 떠가는데 아무도 저지른 짓을 말하는 이 없구나. 가까이 다가가서 붉은 꽃을 띄워 보니 센 물살 타고 가며 굽이마다 어지럼증 잘못을 까맣게 잊는 그 버릇이 있구나. 어디로 가야 할지 닿는 곳은 또렷하고 두 팔로 껴안으면 눈물밖에 더 보일까. 우리가 흘러갈 길이 맑고 밝길 바란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19
꽃과 같은 그대/ 김 재 황 꽃과 같은 그대 김 재 황 참 고은 눈짓이니 꽃과 같지 아니한가, 언제나 밝은 웃음 나눠 주는 마음이여 첫 만남 설레게 되는 발걸음이 멎는다. 꼭 품는 아늑함이 어찌 향기 아니겠나, 깊숙이 안긴 말씀 줄곧 빚은 진주인데 오늘 또 그리움 짙게 밤하늘을 살핀다. 뺨 비빈 아낌으로 꽃과 같은 믿음이니 서둘러 눈에 띄는 벌과 나비 아니라도 나 홀로 머물러야 할 꿈자리에 닿는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