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김 재 황 우주 김 재 황 크디큰 그 공간을 하늘 위에 펼쳤어도 우리가 벌린 품이 어찌 그걸 따르겠나, 제각기 마음 안에서 자리 잡을 뿐이지. 하기야 젖먹이는 가장 큰 게 무엇인가. 말보다 눈짓으로 그냥 믿는 엄마 가슴 짤막한 낱말 하나에 기죽으면 안 되지. 때로는 아주 작게 나설 때가 있다는데 돋아난 풀 한 포기 살펴보면 밝혀지지, 꿈길을 걷는 목숨은 모두 크게 지녔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19
별을 보며/ 김 재 황 별을 보며 김 재 황 하늘에 저 별들이 있었음을 왜 잊었나, 어둠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우리 믿음 진실은 숨어 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대낮을 밟고 가서 나중에야 나서는 것 스스로 가난하여 잃지 않는 우리 지성 불의는 겁을 내는 듯 다가오지 못한다. 강물이 또 흐르면 반짝임은 다 젖는데 못 놓는 젊음처럼 아름다운 우리 순수 밤에도 깨어 있음을 감출 수나 있을까. (2021년) 뽑은 시조 2022.03.18
낙화암/ 김 재 황 낙화암 김 재 황 미끈한 배롱나무 피고 지는 꽃을 보듯 아픔이 이어져서 일으키는 붉고 흰 잎 강물을 따라 흐르는 옛 노래가 삽디다. 단단한 바위인들 오래 가면 안 삭을까, 서러운 넋이라도 긴 세월에 안 지칠까, 바람만 그저 멋쩍게 새로 길을 냅디다. 나라든 사람이든 끝나는 날 있게 마련 오히려 숨은 절이 염불 소리 쌓노라니 하늘에 흰 구름 둥둥 서쪽으로 갑디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18
고엽/ 김 재 황 고엽 김 재 황 저 곱게 물드는 잎 안쓰럽게 길을 묻고 바람이 골을 타니 작은 산새 낮게 나네, 서럽게 냇물 소리만 헤매 도는 이 가을. 못 잊는 그 일들이 푸른 이끼 둘렀는데 잎들은 붉다 못해 안타깝게 그 맘 타네, 더 높게 달이 오르면 누구 얼굴 만날까. 외진 절 따라가니 밤 지새는 목탁 소리 소나무 빈 그늘에 쌓아 놓은 옛 숨결들 입 닫고 떨어진 잎이 온갖 꿈을 숨기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18
돌림병 시기에/ 김 재 황 돌림병 시기에 김 재 황 얼마나 애가 타게 기다려 온 만남인가, 하루도 멀다 하고 마주 보며 즐겼는데 어느덧 해가 바뀌고 아홉 달이 지났지. 이따금 전화로나 들어 보는 벗 목소리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려운 일 아니겠나, 우리는 해 뜨면 당장 만나기로 정했지. 만남은 꿈 아니게 날이 새자 이뤄졌고 느리게 두 사람은 관악산 길 올라섰지, 걷다가 한 쉼터에서 식은 점심 들었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17
묵시/ 김 재 황 묵시 김 재 황 한 그루 푸른 나무 서 있으면 든든한데 더울 때 내린 그늘 들어서면 시원한 것 믿음이 그처럼 큰 게 우연일 수 있을까. 겨울에 눈보라가 긴 칼 들고 달려들 때 겁먹고 그 한 걸음 물러선 것 보았는가, 그분이 높이 계신 줄 이미 알기 때문에. 듣는 말 없었기에 더욱 귀가 열려 오고 긴 손짓 거뒀기에 뜨는 눈이 참 밝은데 누구를 똑 닮았는지 나도 그만 입 닫네. (2022년) 뽑은 시조 2022.03.17
관악산/ 김 재 황 관악산 김 재 황 어디에 터를 잡고 사는 것이 좋겠는지 마음을 정하는 일 어디 그게 쉽겠는가, 공기가 맑은 곳으로 이 자락이 나서네. 멀찍이 귀를 열면 산바람은 제법 불고 집에서 바라보면 곧 다다를 저 연주대 깃발을 들지 않고도 내 마음은 오르네. 가까이 곁에 두고 흘러가서 삼십여 년 이제는 너와 나를 한 몸처럼 여기는데 밤마다 이는 별빛에 우리 꿈을 키우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17
빛/ 김 재 황 빛 김 재 황 어둠이 죄 걷히고 새 아침이 찾아오면 마음이 환하도록 온 세상을 밝히는 빛 우리는 가슴을 펴고 찬양 노래 부른다. 겨울이 다 지나고 이른 봄이 돌아오면 마음이 따뜻하게 온 세상을 감싸는 빛 우리는 어깨를 겯고 소망 걸음 딛는다. 하루가 또 저물고 먼 하늘이 다가서면 가난한 마음만큼 온 세상에 붉히는 빛 우리는 얼굴을 묻고 눈물 기도 올린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16
사람/ 김 재 황 사람 김 재 황 두 발로 걷는다고 그게 모두 사람인가, 어림을 보았을 때 안쓰럽게 먹는 마음 가슴에 못 담았으면 사귀지 말 일이다. 참 밝게 웃는다고 모두 그게 사람인가, 잘못을 알았을 때 부끄럽게 먹는 마음 반드시 못 지녔으면 손잡지 말 일이다. 다 듣게 말했다고 그게 모두 사람인가, 만남을 이뤘을 때 깍듯하게 먹는 마음 스스로 못 지켰으면 나서지 말 일이다. 많은 것 가졌다고 모두 그게 사람인가, 옳다고 여겼을 때 꿋꿋하게 먹는 마음 마땅히 못 잡았으면 꿈꾸지 말 일이다. (2021년) 뽑은 시조 2022.03.16
허공을 말하다/ 김 재 황 허공을 말하다 김 재 황 너무나 어이없는 일을 겪고 난 후에는 저절로 바라보게 되는 곳이 있긴 있지 모든 게 부질없음을 어찌 알지 못하나. 환하게 비었다고 다시 길을 떠날 때면 날개를 펼쳤는데 걸리는 게 전혀 없네, 마음이 가난한 이도 이와 같지 않겠나. 우리가 지닌 눈은 믿을 수가 없다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담긴 것이 없는 걸까 그리운 그분 얼굴이 허허 웃음 짓는다.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