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헌각에서/ 김 재 황 인헌각에서 김 재 황 점심을 뚝딱 먹고 바람 쐬러 나가는데 어디를 가는 건가 묻는 이가 있겠냐만 저절로 발길 닿는 곳 그야말로 쉼터가-. 이름은 그 누구도 지을 수가 있으니까 높직이 자리 잡고 바로 내가 정했으니 딴 데가 어찌 있을까 여기밖에 없다네. 살며시 청설모가 멋진 꼬리 들고 오니 어디서 바람 타고 날아오나 이 꽃향기 때마침 어치 노래에 눈을 뜨는 시심이-.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5
다락집 이름 짓다/ 김 재 황 다락집 이름 짓다 김 재 황 이따금 답답하면 낮은 고개 넘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가지 않고 있었는지 모처럼 홀로 닿으니 다락집이 놓였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서 앉은 자리 시원히 부는 바람이 땀방울을 식히네. 흔들린 가지 새로 맑디맑은 하늘인데 이렇게 만났으니 이름이나 지어 줄까 여기가 바로 인헌각 새파랗게 새기네.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5
수달에게/ 김 재 황 수달에게 김 재 황 나 또한 고등학교 얻은 별명 물개였어 상 탄 적 없었으나 몸매만은 좋았다네, 한강을 떠서 건너긴 자주 하던 일이지. 코 또한 너를 닮아 둥그니까 주먹코야 눈 준 적 있었지만 가깝지는 않았다네, 물갈퀴 지닌 것쯤은 그냥 보고 넘겼지. 나 역시 늙은이가 되고 나니 그립다네, 잊은 적 있고 없고 따진다면 절벽이지 늪마저 흐린 세상에 네 소식을 묻는다.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5
뿔/ 김 재 황 뿔 김 재 황 머리에 이것 하나 달았으면 다 괜찮나, 눈 뜨고 앞쪽 적을 들이받아 넘기는데 지금은 쓸모가 뭔지 아직 알지 못한다. 보라고 지니는 건 달랠 수도 있다지만 마음에 돋아난 건 어쩔 수가 없다는데 너무나 미운 나머지 손을 대면 돋는다. 차라리 잘 키워서 나팔이나 척 만들까, 어둠이 풀리도록 푸른 소리 열어 볼까, 못 말릴 늦잠꾸러기 나쁜 버릇 뽑히게.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4
소태나무 솟대/ 김 재 황 소태나무 솟대 김 재 황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한 번 하겠으니 여기서 어서 빨리 코로나를 없애 줘요 횃대에 높이 앉아서 우리 뜻을 전한다. 하늘이 흐리도록 쓰디쓰게 해야 할 말 그만큼 쓸었으면 인제 그만 버려 줘요 나무가 숨결을 트고 솟대 되어 외친다. 하늘에 젖어들게 한 마리 새 간절하니 불쌍히 여기고서 새 세상을 열어 줘요 다시 온 삼족오인 양 대변자로 나선다.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4
솔숲 속으로/ 김 재 황 솔숲 속으로 김 재 황 많은 숲 있더라도 모두 같은 품 아닌데 내 몸을 기대려면 푸른 뜻을 지녀야 해 언덕에 자리를 잡고 햇빛 밝게 서는 숲. 여러 솔 모였는데 보기 좋은 쉬어 자세 나 또한 끼어들면 저리 가라 안 하려나, 바람에 옷깃 여미듯 하늘 위를 보는 솔. 지닌 것 버리고서 맨손 들고 놀아 볼까, 한 마리 흰 벌레로 기어가서 젖어 볼까, 귓결에 물소리 가득 흐름 따라 피는 꿈.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4
낙성대공원을 돌며/ 김 재 황 낙성대공원을 돌며 김 재 황 이 나쁜 바이러스 퍼지니까 온통 난리 집에만 있으라니 낮은 숨이 막힐 지경 오늘은 큰마음 먹고 공원 산책 나선다. 사람이 안 다니니 골목 장사 망가지고 그 좋던 인심마저 서로 멀리 흉흉한데 안국사 앉은 자리로 빈 바람만 날린다. 달아난 일거리에 나라 또한 크게 걱정 모두가 먹고사는 그게 가장 급한 사정 옛 고려 지킨 장군께 장계취계 묻는다.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3
연꽃 필 때/ 김 재 황 연꽃 필 때 김 재 황 참 곱게 벌어지며 무슨 말씀 주시는가, 지나며 흘깃 봐도 다소곳이 여민 가슴 너무 큰 범종 소리가 귓바퀴에 닿는다. 잔잔한 물거울엔 꿈결처럼 절이 한 채 바람이 살그머니 고운 단정 칠해 놨나, 멀리서 외는 염불이 둥근 탑을 쌓는다. 더 깊은 길이라면 따라갈 수 있겠는가, 알려고 검은 진흙 살그머니 밟은 자리 모은 손 길게 섰는데 선문답만 놓는다.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3
비는 내리고/ 김 재 황 비는 내리고 김 재 황 하늘이 흐려져서 서러운 듯 비가 오고 나쁜 일 생기니까 가위눌린 꿈을 얻지 마음이 어둡고 나니 모든 일이 싫구나. 아래로 내려가야 다시 오를 길이 있고 골짜기 깊어야만 높은 산도 서게 되지 창문을 꼭꼭 닫으니 바람 또한 없구나. 빗줄기 굵어져서 팬 자리에 물이 괴고 많은 차 다니니까 흙탕마저 자꾸 튀지 방안에 박혀 있으니 숨소리나 적실 뿐.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3
새벽에/ 김 재 황 새벽에 김 재 황 동쪽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손 모으면 멀리서 산을 넘는 피리 소리 가냘픈데 오늘도 바람 안고 갈 돛단배가 나선다. 가늘게 어둠 따라 지난 일을 되새기며 찢기는 아픔만큼 내 마음도 다시 씻고 새롭게 이 하루 안에 갈매기를 날린다. 느낌을 받아다가 바탕 고루 펼쳐 놓고 붓에다 묻힌 어짊 흘러가게 글을 쓰면 먼동이 밝아지듯이 시조 한 수 남는다. (2020년) 뽑은 시조 202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