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은 시조 321

넌 웃지만/ 김 재 황

넌 웃지만 김 재 황 봄날에 넌 웃지만 큰 슬픔을 난 듣는다, 온 숲이 떠나가게 여름 안고 우는 매미 받으면 풀어야 하는 어느 숙제 닮은 것. 봄빛에 넌 웃지만 큰 아픔을 난 느낀다, 거슬러 가을 따라 냇물 위로 오른 연어 빌리면 갚아야 하는 어느 부채 닮은 것. 봄철에 넌 웃지만 큰 눈물을 난 흘린다, 저 하늘 온통 붉게 물들이며 지는 노을 끊기면 떠나야 하는 어느 인연 닮은 것. (2019년)

뽑은 시조 2022.03.05

숯/ 김 재 황

숯 김 재 황 타다가 그만두면 그 가슴은 검게 되지 꾹 닫고 일어서는 주상절리 그와 같지 언젠가 피할 수 없게 소신공양 치른다. 뜨거움 잘 아니까 불을 다시 붙인다면 벌겋게 살아나서 화를 내며 덤빌 테지 삼겹살 그 위에 얹고 대리만족 벌인다. 아니지 참은 만큼 참모습이 쓸모 높지 간장을 담그려면 독 안에는 그거 담지 보란 듯 떡하니 둥둥 염화시중 꾀한다. (2019년)

뽑은 시조 2022.03.05

흙/ 김 재 황

흙 김 재 황 만지면 부드럽고 품을 열면 젖내 짙고 지긋이 바라볼 때 손짓하는 저 지평선 언젠가 누가 말했지 그래 바로 어머니. 거기에 길이 있고 마음 바삐 걸어가고 날마다 새삼스레 찍고 가는 내 발자국 닿는 곳 멀리 있어도 나비같이 꿈같이. 빛으로 빚었으니 두 눈 질끈 부서지고 바람이 불고 나면 수북하게 티끌 언덕 슬프긴 뭐가 슬픈가 처음대로 한 바퀴. (2019년)

뽑은 시조 2022.03.05

바다를 품다/ 김 재 황

바다를 품다 김 재 황 아침에 해가 뜰 때 갈매기를 날려 놓고 저 멀리 수평선을 더욱 길게 늘여 보면 무겁던 마음 한 자락 걷힌 듯이 가볍다. 느긋이 파도 따라 작은 돛배 띄운 한낮 떴다가 잠겼다가 셀 수 없이 노니는 섬 어디에 피어 있는지 눈을 감긴 풍란 꽃. 놀래기 노는 터에 긴 멱 춤이 감기는데 바윗등 훌쩍 타면 물개 무리 뽀얀 꿈결 까치놀 피고 지는 날 묶은 얘기 풀리라. (2019년)

뽑은 시조 2022.03.04

은어를 그리며/ 김 재 황

은어를 그리며 김 재 황 빠르게 흘러가는 제주 남쪽 작은 냇물 샘 맑은 자장가에 앞마당을 펼친 바다 눈부신 은빛 물고기 힘든 길을 열겠지. 돌짬을 돌아서면 못 오르게 막던 여울 반드시 가야 하니 힘껏 펴던 지느러미 가슴을 밀던 숨결에 수박 냄새 묻었지. 바람이 지나칠 때 간지럽게 하얀 물결 꿈인지 은어인지 온몸 가득 얇은 비늘 웃음이 절로 났어도 하루 젖게 즐겼지. (2019년)

뽑은 시조 2022.03.04

밤에 찾는 병지방리/ 김 재 황

밤에 찾는 병지방리 김 재 황 가만히 못 있으니 쫓기듯이 떠나는 길 외롭게 숨어 있을 무겁고도 깊은 산골 벗하러 맨몸 그대로 딛는 발을 재빨리. 작은 별 떨어져서 꽃자리를 이룬 언덕 시린 샘 흘러가서 소용돌이 감기는 곳 잠 쫓은 멧새 하나쯤 기다리고 있겠지. 들려줄 이야기는 닦고 나니 고운 구슬 차라리 줄에 꿰인 목걸이나 걸어 줄까 뭐든지 먼저 만나면 품을 열고 안으리. (2019년)

뽑은 시조 2022.03.03

시조 한 수/ 김 재 황

시조 한 수 김 재 황 시절에 몸을 담고 노래하는 시조 한 수 바람이 부는 대로 갈꽃 숲이 열린 대로 긴 숨결 서려 모아서 가락 위에 싣는다. 배꽃이 피는 날엔 거나하게 대포 한 잔 추석에 달이 뜨면 넉넉하게 시조 한 수 선비가 가는 그 길에 알맞은 멋 보탠다. 아픔을 지닌 만큼 내 마음은 커질 테고 눈물이 어린 만큼 네 세상은 멋질 테니, 나와 너 흘러가도록 시조 한 수 짓는다. (2019년)

뽑은 시조 2022.03.03

뱃놀이 가자/ 김 재 황

뱃놀이 가자 김 재 황 마음이 쓸쓸할 때 모든 짐을 벗어 놓고 바다로 가는 강에 작은 배를 띄워 보자, 갈댓잎 우거진 저 숲 멀리 두고 떠나자. 손발이 맞는 벗과 함께 가면 마냥 좋지 술이야 있든 없든 그저 웃고 나눈 눈길 이어서 단시조 한 수 읊는다면 참 좋지. 낮달이 둥실 뜨면 귀만 열고 벌렁 눕자, 빈 배에 뽀얀 빛이 하나 가득 고이도록 하늘 밖 시린 물소리 둥둥 떠서 엿듣자. (2019년)

뽑은 시조 2022.03.03

새 자장가/ 김 재 황

새 자장가 김 재 황 울 아기 착한 아기 살금살금 잠이 온다, 달보다 뽀얀 얼굴 둥실 마음 맑은 아기 이 밤에 뜨는 반달도 굽은 꿈길 뜀뛴다. 울 아기 예쁜 아기 꾸벅꾸벅 잠이 든다, 꽃보다 고운 얼굴 방긋 웃음 기쁜 아기 저 들에 피는 풀꽃도 얼른 따라 꿈꾼다. 울 아기 잘난 아기 쌔근쌔근 깊이 잔다, 종다리 뜨는 노래 열린 자랑 밝은 아기 달과 꽃 둥근 꿈속에 손을 잡고 춤춘다. (2019년)

뽑은 시조 2022.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