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51) 포병대로 돌아오다

시조시인 2008. 10. 15. 06:38

(51)

  나폴레옹은 포병대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군인의 고된 일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반소사’하는 가난뱅이 생활이 시작되었지요. ‘반소사’(飯疏食)는, ‘반찬 없는 거친 밥’이라는 뜻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군자의 생활’을 이르는 말입니다. ‘안빈낙도’의 설명도 듣고 싶다고요?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김’을 나타냅니다.

이번에 프랑스로 올 때에는 13살짜리 동생인 ‘루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루이를 데리고 오면, 코르시카에 있는 어머니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질 거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입 하나를 줄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포병대에서 일과를 마치고 몸이 곤죽이 되어서 하숙집으로 돌아오면, 루이가 책상 앞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곤죽’은 ‘사람이나 물건이 엉망이 되어서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태거나, 혹은 몸이 상하든지 늘어지든지 해서 까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이 말의 본 뜻은, ‘곯아서 썩은 죽처럼 상하거나 풀어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지요.

나폴레옹은 아무리 지쳐서 초주검이 되었어도, 루이에게 여러 가지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초주검이 되다.’는 ‘몹시 다치거나 맞아서, 혹은 너무 일을 심하게 해서 거의 죽게 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원래 ‘주검’은 ‘시체’를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그러므로 ‘초주검이 되다.’는 ‘초기 상태의 시체처럼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폴레옹은 아무리 힘들어도 어린 동생을 날마다 돌봐 주어야 한다는 결심을 잊은 적이 결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일은 삼수갑산을 간다고 하여도, 나폴레옹은 그날 할 일을 반드시 끝내고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가다.’는 ‘일이 매우 힘들어서 괴롭거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삼수’는 함경남도 북서쪽에 있는 고장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지대이며, 교통 또한 가장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산’은 함경남도 북동쪽에 있는 고장으로, 매우 춥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었지요. 그래서 이 두 곳은 예로부터 유배지로 유명하였답니다. 한 번 가면 살아서 돌아오기 힘든 이 두 곳, 그게 큰 ‘어려움’을 나타냅니다.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보니까, 가게의 진열장에 아주 먹음직한 빵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그 빵을 사 가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러나 호주머니 안에는 통틀어 빵 한 개를 살 돈밖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가게’라는 말에, 문득 옛날에는 물건을 어떻게 팔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아마도 요즘처럼 쉽게 물건을 살 수는 없었을 듯합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신라 때는, 경주에 ‘동시’와 ‘서시’ 및 ‘남시’ 등의 세 곳에 상설시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행상’(行商)과 ‘해상’(海商)의 수송할 물자를, 국가의 허가상인인 ‘시전 상인’이 개성에서 거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별도로 노점 상인인 ‘허시’가 있었다는군요.

‘호주머니’는 다 알지요? 그래도 한 번 설명해 보라고요? ‘옷에 단 주머니’를 말합니다. 한자말로는 ‘의낭’(衣囊)이라고 했지요. 외래어로는 ‘포켓’(pocket)입니다. 그리고 ‘통틀어’는 ‘어떤 물건이나 사물을 있는 대로 모두 합해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통’은 ‘온통’의 뜻이고, ‘틀다.’는 ‘어떤 것을 한 끈에 죽 엮어 맨다.’는 말입니다. ‘통틀어’라는 말은 있지만, ‘통털어’라는 말은 없습니다.

내가 청소년이었을 적의 생각이 납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서울의 광화문 근처에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 광화문 사거리를 조금 지나서 경기여고로 들어가는 샛길 조금 못 미친 큰길가에 ‘만두 가게’가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쯤은 갔으니, ‘단골집’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단골집’은 ‘늘 정해놓고 거래하는 집이나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는, 무속 신앙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즉, 굿을 할 때마다 늘 정해놓고 불러다가 쓰는 무당을 ‘당골’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는군요. ‘단골손님’이나 ‘단골식당’ 등의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호남지방에서는 ‘무당’을 ‘단골’이라고 일컫는답니다. 이는 ‘세습무’(世襲巫)로서 일정한 지역의 무속 의식을 전담하여 베푸는 게 특징이라고 합니다. ‘세습’은, 신분이나 작위 및 업무 따위를 ‘대를 이어 물려주거나 받는 일’을 말합니다.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그 만두라니! 지금 생각해도 침이 꿀꺽 넘어갑니다. 그러면 만두에 얽힌 고사 하나를 소개할까요? (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