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시조

현충사 견문

시조시인 2005. 12. 19. 00:54
 

               현충사 견문


 

                                       김 재 황

 

 활터 빈 자리에는 말 탄 바람 내달리고

 그 기상 더불어서 긴 그림자 끄는 비각

 안개 낀 역사 속으로 홍살문이 걸어간다.


 깊은 밤 벼려 오던 장검은 남아 빛나니

 두 주먹 불끈 쥐고 읽어야 할 난중일기

 거북선 달린 물길이 하늘 위로 열린다.


 옛집 그 방화산 기슭 맑은 마음 흐르는가

 충무정 고인 물에 임의 모습 그려 보면

 더 크게 호령소리 들린다 북소리도 들린다.


 

  (시작 노트)

 

 현충사는 무엇보다 쾌적한 산책로가 무척 마음에 드는 곳이다. 이 곳의 충무공 사당은, 노량해전에서 순국하고 나서 100년이 지난, 숙종 32년인 1706년에 그의 얼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바로, 충무공이 어릴 때부터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본전과 유물관, 그리고 고택․활터․홍살문․정려 등을 둘러보고 새로 조성된 연지(蓮池) 가를 산책하노라면, 새삼스레 충무공의 그 큰 애국심이 푸른 댓잎 소리로 다가온다. 특히 고택 앞에 있는 충무정(忠武井)을 찾아가서 들여다보면, 그 맑은 물속에 그의 맑은 심성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충무공은 이 고택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의 출생지는 서울의 진천동이고, 8살이 되었을 때에 외가가 있는 아산으로 내려왔다고 알려져 있다. 소년 시절, 충무공은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즐겼다. 그 때마다 아이들은 그를 대장으로 삼았는데, 그 당시의 죽마고우들 중 하나가 영의정 벼슬을 지낸 유성룡이다. 젊은이로 성장한 그는, 이 곳에서 결혼을 했다. 그 부인은, 보성군수 방진의 딸이다. 그녀는 지혜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집에 든 도둑을 꾸짖어서 물리칠 정도로 큰 담력을 지닌 여장부였다고 한다.

 이 곳에는 충무공의 가슴 한쪽을 헐어 냈을 아픔의 흔적도 남아 있다. 그가 특별히 사랑했던 아들 이면의 무덤이 그 곳을 찾는 이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충무공의 무덤은 이 곳에 없고,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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