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한 시조 120

녹색시인 녹색시조(8)

폭포 아래에서 김 재 황 흐름을 밟고 가서 굽이 또한 거친 다음 툭 꺾인 물 마디가 쏟아지며 부서질 때 비로소 하늘 소리는 더운 피를 막 쏟네. 긴 솔리 굽게 서서 물바람을 가득 안고 입 시린 물방울에 일곱 꿈이 살짝 피면 목이 튼 우리 가락이 절로 뽑는 시조창. 마음껏 여는 귀엔 거친 맷돌 돌리는 듯 눈 뜨고 둘러보니 둥근 우레 울리는 듯 성내며 더 을러 봐도 어깨춤만 또 으쓱. [시작 메모] 오래 전의 일이지만, 제주도 서귀포에 살 때 자주 찾던 폭포가 있다. 즉, 서귀포 항구를 끼고 서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나타나는 천지연 폭포다. 물이 떨어지는 모습도 아름다우려니와, 여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무태장어가 살고 있다. 병풍처럼 둘러친 절벽에는 온갖 풀과 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태고를 보는 것 같은 느..

가지런한 시조 2022.01.11

녹색시인 녹색시조(7)

청계산 노을 김 재 황 고단한 산바람이 옷을 끌며 사라진 후 한낮을 버티다가 모로 눕는 산 그림자 가려운 능선 자락에 솔잎 둥지 만든다. 골짝은 가라앉고 저 먼 땅은 잠기는데 목을 뺀 기러기는 천릿길을 가늠한 듯 하늘에 머문 구름만 얼얼한 뺨 만진다. 할 말을 남겨 두고 떠나가는 발소리들 나른한 눈동자에 호수 하나 담겨 있고 참으면 더 짙게 되는 마음끼리 만난다. [시작 메모] 500미터에 달하는 골짜기에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하여 청계산(淸溪山)이라는 그 이름을 얻었다. 푸른 산자락은 경치가 뛰어나고 높이는 618 미터이다. 서쪽에 솟은 관악산과 함께 서울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정상은 바위로 둘러싸인 망경대(望京臺)이다. 푸른빛을 띤 용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청룡산’(靑龍山)이라고도..

가지런한 시조 2022.01.10

녹색시인 녹색시조(6)

내 선인장 김 재 황 잎들은 숨겨 놓고 떳떳하게 푸른 몸빛 눈부신 모래밭을 꿈길 닦듯 홀로 서서 그 바다 치는 물결도 가슴으로 맞는다. 사납게 돋은 가시 어김없이 뜻을 펴고 더위와 목마름을 더욱 굳게 딛고 가면 저 하늘 넓은 들판에 발걸음이 멎는다. 하루를 사는 일이 쉬울 수만 있겠는가, 주름진 손바닥을 마음 편케 또 보는데 이 세상 외진 곳으로 불새들이 닿는다. [시작 메모] 선인장의 가시는 건조에 대한 적응으로 잎이 변하여 만들어졌다. 그런데 옛날에는 선인장도 야생으로 가시가 없는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멸종되고 말았다고 한다. 선인장은 더운 지방에 사는 식물이지만, 우리나라 제주도 협재해수욕장 부근에 자생지가 있다. 즉, 천연기념물 제429호로 지정된 ‘선인장 마을 월령’ ..

가지런한 시조 2022.01.09

녹색시인 녹색시조(5)

꽃 김 재 황 우선은 그들 눈에 띄어야만 할 일이다, 배고픈 마음마저 끌어야 할 빛깔과 꼴 되도록 빠른 날개를 지니게 할 일이다. 아니면 짙은 냄새 넓디넓게 펴야 한다, 깊숙이 숨은 데로 코를 박고 날아들게 더듬이 멀리 늘여서 꼭 찾도록 만든다. 하기는 물과 바람 도움이야 있긴 있지 아닌 듯 그러한 듯 나서지는 못하지만 반드시 그 삶의 씨는 남들처럼 챙긴다. [시작 메모] 꽃에는 ‘한 꽃봉오리 안에 수술만이거나 암술만 갖추고 있는 꽃’인 ‘단성화’(單性花)가 있는가 하면, ‘한 개의 꽃 속에 수술과 암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 꽃’인 ‘양성화’(兩性花)가 있다. 단성화에서 수술만 있는 꽃은 ‘수꽃’이고 암술만 있는 꽃은 ‘암꽃’인데, 수꽃과 암꽃이 ‘다른 그루에서 피는 것’이 있고 ‘같은 그루에서 피는 것’..

가지런한 시조 2022.01.08

녹색시인 녹색시조(4)

(녹색 시인의 녹색 시조4) 돌단풍 웃다 김 재 황 높직이 포개 놓은 이게 무슨 집이냐고 휑하니 지난 후에 그 뒷길로 들어서니 도랑 돌 쌓은 틈새에 닮은꼴이 보인다. 따라도 엉뚱하게 가을 나무 물드는 것 이왕에 가질 바엔 넓은 잎을 고른다네, 뽐낼 건 다만 하나야 손바닥을 펼친다. 집이나 또 잎이나 사는 일이 크디큰데 어떻게 서 있든지 마음 가면 그만이지 저 하늘 살짝 살피고 겸연쩍게 웃는다. [시작 메모] 냇가의 바위 곁이나 바위틈에서 자라며 단풍처럼 생긴 잎이 달린다고 하여 ‘돌단풍’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여러해살이풀인데, 뿌리줄기가 굵고, 잎은 뿌리줄기 끝이나 그 가까운 곳에 한둘씩 비늘 모양의 작은 돌기에 싸여 나온다. 긴 잎자루 끝에 갈라진 단풍잎 같은 잎이 달린다. 꽃은 흰 바탕에 약간..

가지런한 시조 2022.01.05

녹색 시인의 녹색 시조3

(녹색 시인의 녹색 시조3) 조선소나무 김 재 황 높은 곳 올라서서 하늘에다 뜻을 얹고 구름이 가는 대로 느긋함을 타는 몸짓 따갑게 속 빈 햇살만 날아와서 꽂힌다. 덥거나 춥더라도 지닌 빛깔 잃지 않고 더 멀리 발돋움을 잇고 있는 마음자리 모질게 든 잠 깨우니 바늘잎이 빛난다. 산바람 솔솔 불면 그리움은 펄펄 날고 멀찍이 나앉아서 아무 소식 없는 그대 노랗게 저 먼 가슴에 송홧가루 퍼진다. [시작 메모] 원래 ‘소나무’는 ‘솔나무’라고 불렀단다. ‘솔’이란 ‘솔솔 부는 봄바람’에서 왔다고 해도 되겠다. 아니, 어쩌면 먼지를 털거나 닦을 때에 사용하는 ‘솔’을 연상하여 그 이름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 그런가 하면, ‘수리’라는 말이 ‘나무 중에서 우두머리’라는 뜻이었는데, 그 ‘수리’가 ‘술’로 되었고 그..

가지런한 시조 2021.12.30

녹색 시인의 녹색 시조2

(녹색 시인의 녹색 시조2) 눈짓하는 제비꽃 김 재 황 봄이면 들녘에서 보랏빛 눈 뜨는 꽃아 왜 너는 그 이름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겨우내 고운 꽃 소식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살 어린 딸과 봄놀이를 나갔다가 꽃핀 너 마주하고 예쁜 반지 떠올렸지 그 꽃이 믿음 하나를 반듯하게 지녔다. 줄기는 안 보이나 뿌리에서 돋은 잎들 꽃말이 무엇인지 찾고 보니 바로 사랑 앉아서 가슴 비우고 나도 꽃을 빚었다. [시작 메모] ‘제비꽃’이라는 이름이, 봄이 되면 제비가 강남에서 다시 돌아오듯 봄마다 이 땅의 들로 돌아오기 때문에 생겼으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제비꽃은 별명이 많다. 제비꽃은 여러해살이풀로 원줄기가 없고 뿌리에서 긴 잎자루가 있는 잎이 돋는다. 그렇듯 낮게 꽃이 피어 있기에 ‘앉은뱅이꽃’이라고도 부른다. ..

가지런한 시조 2021.12.30

녹색 시인의 녹색 시조1

(녹색 시인의 녹색 시조1) 매화가 피고 지다 김 재 황 귀 시린 산바람이 먼 고개를 넘어가고 얼었던 저 냇물은 긴 숨결이 풀리는데 참 오래 기다림인 듯 꽃망울을 부린다. 드디어 만났을 때 반갑다고 고운 눈빛 볼 붉은 수줍음이 온 마음을 흔드느니 살며시 입 끝을 물고 꽃송이가 열린다. 두고 간 마음결을 동그랗게 굴려 가면 어느새 봄 자락이 줄타기에 오른 한낮 너무 큰 아쉬움 안에 꽃잎들이 내린다. [시작 메모] 봄에 피는 꽃으로는 ‘매화’가 으뜸이 아닐까 한다. 매화나무는 이른 봄에 서둘러서 꽃을 피운다. 게다가 그 꽃은 산뜻하고 은은한 향기까지 풍긴다. 일찍 꽃을 피우기 때문에 ‘조매(早梅)’라고 부르기도 하며, 추울 때에 꽃을 피운다고 하여 ‘동매(冬梅)’라고도 부른다. 그런가 하면, 눈 속에서도 꽃..

가지런한 시조 202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