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은 시조 321

조약돌/ 김 재 황

조약돌 김 재 황 그 이름 얻기까지 어떤 시련 겪었을까, 모나고 껄끄러운 바닥 느낌 지녔던 너 긴 세월 구르고 나니 매끈함을 부린다. 무엇이 가장 좋은 길이 될까 묻는다면 나 또한 아주 쉽게 물이라고 답하겠네, 어쨌든 물길 만나니 닮지 않고 배기랴. 이승에 깎을 것이 어찌 다만 몸뿐일까, 사납고 괴팍해서 싸울 듯이 덤비던 너 견디고 더욱 참으니 우리 모두 비빈다. (2020년)

뽑은 시조 2022.02.16

그림자/ 김 재 황

그림자 김 재 황 햇빛을 만나고서 생기는 게 무엇인가, 눈에는 보이지만 손으로는 못 잡는데 그것이 있고 없음은 따지지를 않는다. 오로지 몸짓으로 내보이는 뜻이 있고 마땅히 춤이라면 모두 함께 즐기는데 어둠이 누를 때에는 어디든지 숨는다. 우리가 사는 것도 그림자가 아니겠나, 창문에 새겼다가 지워지는 달빛 그림 그대로 그냥 놔두고 살그머니 옮긴다. (2020년)

뽑은 시조 2022.02.15

팔베개/ 김 재 황

팔베개 김 재 황 어둠이 오고 나서 외로움이 깊어질 때 기쁘게 한쪽 팔을 아낌없이 괴어 주니 초승달 빙긋이 웃고 서산 밖을 지난다. 젊음이 좋다는 건 참을성이 크다는 말 꿈꾸지 않았어도 가위눌린 그 큰 저림 잠결에 멧새 부부가 처마 밑을 찾는다. 어깨로 하늘 밖을 받치고자 하는 마음 맞닿은 내 품에서 먼 은하수 건너는데 당나귀 가쁜 숨소리 열린 길을 내찬다. (2015년)

뽑은 시조 2022.02.14

새로 쓰는 출사표/ 김 재 황

새로 쓰는 출사표 김 재 황 몸이야 늙었지만 새파랗듯 젊은 마음 휴전선 긴 철조망 짧아지게 노려보고 먼동이 밝을 때까지 지켜야만 하느니. 조국이 부른다면 어찌 아니 달려갈까, 허리를 졸라매고 높이 드는 태극기여 애국가 힘껏 부르며 전방으로 나가리. 둘러싼 적국들이 틈을 보는 시방인데 마음은 섬이어라 숨이 턱턱 막히도록 노병도 낡은 몸뚱이 바치고자 하나니. (2015년)

뽑은 시조 2022.02.13

국궁의 노래

국궁의 노래 김 재 황 살짝 몸이 쏠리도록 과녁 곧게 바라보고 숨을 가득 모으고서 뜻으로나 높이 든다. 하늘 땅 너른 자리에 오직 내가 있을 뿐. 둥근 달을 겨냥하듯 시위 힘껏 당겼다가 마음가짐 다시 씻고 손가락을 떼어 준다, 바람 꿈 모인 곳으로 날개 펴는 하늘 새. 이미 살은 떠나가고 소리 겨우 남았으니 두 눈을 감은 채로 다만 귀를 멀리 연다, 산과 강 넘고 건너는 그 기다림 파랄 터. (2014년)

뽑은 시조 2022.02.12

금동반가사유상/ 김 재 황

금동반가사유상 김 재 황 왜 우리는 태어나서 늙고 앓고 숨지는가, 나무 품 믿고 나서 하늘 높이 굴린 생각 그 매듭 반쯤 푼 채로 나를 불러 세운다. 은밀하게 도드라진 그 앞섶에 이는 숨결 큰 깨달음 얻었으니 작은 기쁨 내버리고 세상 끝 온갖 사연을 두 귀 열고 듣느니. 너무 깊이 빠져들면 착한 일이 힘들다고 손가락을 볼에 대고 몸짓으로 빚은 말씀 여기서 이제 만날지 그 마지막 가르침을. (2009년)

뽑은 시조 2022.02.11

소금/ 김 재 황

소금 김 재 황 쓰리게 열린 바다 순수하다 희디흰 빛 말리고 또 말리면 보석처럼 빛이 난다, 눈으로 나누는 대화 철썩철썩 닿는 것. 하는 일 힘들어서 흘린 땀의 결정첸가 혀끝을 대었을 땐 진실의 맛 짜디짜다, 모나게 다져진 내핍 풀어내면 큰 부력. 제가끔 다른 쓸모 잊지 말라 깨우치듯 외지고 어두운 곳 구석구석 썩지 않게 그분은 크신 손으로 너를 넓게 펴시네. (2009년)

뽑은 시조 2022.02.11

탈의/ 김 재 황

탈의 김 재 황 옷이 정말 날개인가 그건 정말 당치않아 겉모습을 꾸미는 건 제자리를 잊기 때문 타고난 몸뚱이보다 더 좋은 게 있겠는가. 오래 입은 옷일수록 때가 끼고 얼룩지며 몸에 맞춰 입으려면 번거롭고 힘이 든다, 차라리 가볍게 탈의 훨훨 날자 하늘나라. 말하자면 마음씨도 걸칠 것이 없는 것을 벌거벗고 나설 때가 떳떳해서 좋은 것을 어느 게 허물인지는 누구든지 보면 안다. (2009년)

뽑은 시조 2022.02.10

이슬을 보며/ 김 재 황

이슬을 보며 김 재 황 풀잎에 맺혀 있는 이슬방울 따라 하듯 즐겁게 빛나다가 떠날 수는 없는 걸까, 맑은 넋 젖은 눈빛이 앞가슴에 안긴다. 햇살이 이슬 위에 무지개를 그려 내듯 우리가 지닌 삶도 그와 같은 사랑으로 저마다 빛나는 꿈을 맨 끝까지 지닌다. 잠깐을 머문다고 슬피 울면 안 되느니 어차피 자기 몫을 살았으니 떠나는 것 조그만 이슬 마음이 내 앞길을 반긴다. (2009년)

뽑은 시조 202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