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조 1347

한탄강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한탄강에서 김 재 황 가슴을 두드리는 뉘우침이 흐르는 강 깎인 낭떠러지 아래 조약돌로 엎드리면 입술을 깨문 신음이 가슴속에 놀을 편다. 하늘이 무너지는 한숨 쏟아 내린 골에 물길보다 시린 바람 더욱 숲을 흔드는데 꽉 잡은 반도 허리띠 놓지 않는 손이여. 봄이면 도지듯이 뜨겁게 타는 진달래 가다듬은 목소리로 산 메아리 불러 놓고 이마가 밝는 꿈길을 조국애로 다스린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2.10.05

설악산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설악산에서 김 재 황 해 뜨는 동쪽으로 달려 나간 마음으로 두껍게 어룽어룽 막아서는 벽을 헐고 비선대 열리는 하늘 밝혀 드는 산문이여. 그늘이 스미는 숲 출렁이듯 무성한 꿈 대청봉 따른 골은 굽이굽이 구름인데 흰 눈을 고운 때깔로 머리에 이고 섰구나. 밤마다 가위눌려 산자락이 저려 와도 어둠 속 다시 찾은 별빛 하나 안고 울면 백담사 따라간 계곡 맑은 물길 열린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2.10.05

울주 신불산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울주 신불산에서 김 재 황 외로움에 떼밀려서 산자락을 밟고 서면 개비자 순한 잎들 마주 보며 깨어 있고 시원한 녹차 향기가 가슴 깊이 스며든다. 반짝이며 흘러내린 산골 물에 마음 씻고 기울인 남쪽 하늘 출렁이는 물결 소리 능선을 깔고 앉아서 바람 손을 잡아 본다. 꼭대기는 나무 없이 억새들만 자라는데 집 떠난 염소들이 마냥 멋대로 뛰놀고 이따금 하얀 신선이 빈 몸으로 찾아온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2.10.04

공주 동학사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공주 동학사에서 김 재 황 골짜기 가린 숲에 머문 새는 잠이 들고 꿈결에 뒤척이면 솔 냄새가 이는 바람 천수경 외는 소리가 홀로 밤을 새깁니다. 어둠을 밝혀 가는 믿음이 곧 하늘이라 구름은 문을 열어 저승까지 환한 달빛 관세음 고운 눈길이 미소 한 점 남깁니다. 그림자 끌던 탑이 물소리에 묻혀들면 버려서 얻은 뜻은 산 마음을 닮아 가고 숙모전 서러운 뜰도 넓은 품에 안깁니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2.10.04

서귀포 겨울 귤밭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서귀포 겨울 귤밭에서 김 재 황 둘러친 돌담 가에 사투리는 맴을 돌고 물결이 차고 나면 더욱 날을 세우는 잎 무섭게 긴 소매 끌며 바람 소리 달려간다. 살며시 품을 열면 흰 거품의 바다 냄새 가지 끝 아린 삭신 긴 숨결로 싹이 트고 섬 여인 둥근 마음을 켜로 두른 나이테여. 뺨 시린 빗줄기가 나무들을 쓸고 가면 웅크린 숲 그늘이 놀란 듯이 깨는 소리 동박새 앉은 자리로 이른 봄이 오고 있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2.10.03

서귀포 바다/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서귀포 바다 김 재 황 동그란 그리움을 포구 멀리 던져 보면 밀물로 차는 정이 주름살 새기는 소리- 설익어 문이 열리는 마음 닿는 꿈길 바다. 물안개 닦아 내고 마당만큼 치운 자리 몰려든 멸치 떼가 금 돗자리 펴고 놀면 가볍게 갯바람 타고 아기 섬도 떠 오는가. 파도는 빈 몸으로 달려와서 발을 씻고 갈매기 흰 깃 따라 남쪽 환히 열리는데 선잠에 하품 깨물며 안겨드는 그대 얼굴. (2011년)

오늘의 시조 2022.10.02

한라산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한라산에서 김 재 황 태초에 첫울음을 불덩이로 토해내고 신비한 손을 뻗어 세상 문을 열던 자리 그 숨결 아직 머무니 하늘 저리 시리다. 적막에 배가 부른 비자림이 팔 벌리면 흰 구름 갈 곳 몰라 산봉우릴 맴도는데 전설을 가슴에 안고 골짜기로 가는 바람. 안개가 보자기로 산길을 모두 숨길 때 가다가 선 산자락에 꿈이 쏟아지는 소리 큰 바다 멀리 밀치고 볼이 익는 열매여. (2011년)

오늘의 시조 2022.10.01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내 마음에 발을 치고 김 재 황 나서기 좋아하니 꽃을 못 피우는 걸까, 오히려 숨었기에 저리 환한 제주한란 그 모습 닮아 보려고 내 마음에 발을 친다. 햇빛도 더욱 맑게 조금씩 걸러 담으면 일어서는 송림 사이 산바람은 다시 불고 물소리 안고 잠드는 에덴의 숲이 열린다. 반그늘 딛고 사니 모든 일이 편한 것을 이리 눈감고 앉으면 찾아오는 휘파람새 먼 이름 가깝게 불러 꽃과 향기 빚어 본다. (2002년) (시작 노트) 나는 나에게 부여된 이 삶을 예쁘게 가꾸기를 희망한다. 한 포기의 한란처럼 비록 그늘 밑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갈망한다. 한란은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서 바람과 벗하여 향기를 빚으며 살아간다. 그야말로 군자의 꽃이라고 말할 수 ..

오늘의 시조 2022.09.30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아내 김 재 황 언제나 그 걸음은 흘러서 가는 춤사위 무성한 월계수를 가슴 안에 세워 두고 하늘은 너무 푸르네, 안개 가득 머금었다. 밤길이 멀었는데 벌써 달은 기우는가, 문풍지 울음 뱉는, 결 삭은 툇마루 앞에 그 숨결 부서져 내린 서릿발이 한 사발. 출렁인 서러움은, 물빛 시린 그 미소는 기러기 지친 날개 휘어져 걸린 고달픔 그래도 그대 얼굴은 내 꿈마다 밝게 뜬다. (2002년) (시작 노트) 내가 시인의 길을 가고자 하였을 때, 아내는 극구 만류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가장이라는 사람이 돈을 열심히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릴 생각은 안 하고, 돈 한 푼 생기지 않는 시를 쓰겠다고 나섰으니, 어디 그게 말이나 되는가. 그러나 나는 막무가내였다. 말리지 못한 아내는 자..

오늘의 시조 2022.09.29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백송을 바라보며 김 재 황 대세를 거슬러서 자각의 침 치켜든 채 저물어 가는 세상 탄식하며 깨운 세월 이 시대 앓는 숨소리, 그대 만나 듣습니다. 켜켜이 떨어지는 일상 조각 모두 모아 저승꽃 피워 내듯 몸 사르며 걸어온 길 그대가 남긴 발자취, 내가 지금 따릅니다. 뒤꼍의 외진 자리 이제 다시 찾아가서 남루한 입성 걸친 그림자를 밟고 서면 하늘에 오른 흰 구름, 그대 닮아 보입니다. (2002년) (시작 노트) 1987년, 나는 신춘문예만을 고집하지 않기로 하고, 월간문학 신인 작품상 모집에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그 무더운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이었다. 그때의 기분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이제는 갈 길이 정해졌으니, 그 길만 걸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곧 한국..

오늘의 시조 2022.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