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조 1347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낙성대에서 김 재 황 시인이 되려는 꿈 차마 버릴 수 없기에 십 년이나 살던 섬을 훌훌 털고 떠나자니 가슴속 차는 시름이 파도처럼 철썩거리데. 하필 이 자리인가 넓고 넓은 세상에서 천릿길이 서운해도 아내는 봇짐을 풀며 무겁게 남쪽을 누르는 관악산을 바라보았지. 멀리 친구를 두고 온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문창성 떨어진 곳, 탑을 찾아 올라가니 옛 고려 파란 하늘에 서귀포가 출렁거리데. (2002년) (시작 노트) 1986년, 나는 그곳의 농장을 팔기로 하고, 온 가족을 이끌고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관악산 밑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낙성대(落星垈)가 있다. 낙성대는 고려의 명장인 강감찬(姜邯瓚)이 출생한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3대인..

오늘의 시조 2022.09.27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서귀포 귤밭 김 재 황 자리가 좁은 나무는 바람 딛고 일어선다, 가지를 불쑥 내밀며 불거진 작은 외침 뜨거운 빛 한 자락이 잎새 끝에 떨어진다. 돌담 넘는 물보라가 서슬을 세우며 가고 구름이 내려앉으면 가슴을 뒤덮는 강물 파랗게 위엄을 일으켜 숲이 숲을 이끈다. 하늘을 밟고 올라 쿵쿵 가슴 뛰는 소리 일제히 초록 깃발 펼쳐 보인 귤밭이여 지금껏 참아 온 꿈이 꽃과 함께 타오른다. (2002년) (시작 노트) 그러나 나는 시(詩)를 포기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 중책을 맡을수록 내 시간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작더라도 내 농장에서 자유롭게 일하며 시를 쓰고 싶었다. 1973년 8월, 나는 그때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있었지만, 끝내는 사표를 내고 말았다. 그 일로, 바느질하고 계시던..

오늘의 시조 2022.09.26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신불산에서 김 재 황 외로움에 떼밀려서 산자락을 밟고 서면 개비자 순한 잎새 마주 보며 깨어 있고 명상 깬 녹차 향기가 폐부 깊이 스며든다. 반짝이며 흘러내린 석간수에 마음 씻고 먼 하늘 바라보면 출렁이는 물결 소리 적막을 깔고 앉아서 안식의 손 잡아 본다. 산 위는 숲이 없고 억새만 무성한 분지 자유를 얻은 염소 홀로 사는 세상인데 이따금 하얀 신선이 빈 몸으로 찾아온다. (2004년) (시작 노트) 3년이 흘렀다. 그때, 삼성 그룹에서는 ‘용인자연농원’의 개발사업을 계흭하고 있었다. 그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농업전문가들이 필요했다. 나는 타의에 의해서 그 공채시험을 치게 되었고, 중앙일보사의 농업직 3급 사원이 되었다. 나는 ‘용인자연농원’ 팀의 한 사람으로 과수 분야..

오늘의 시조 2022.09.25

연시조 1편

신병훈련소에서 김 재 황 힘차게 하나둘셋넷 연병장을 다져 간다, 발맞춤이 땅 구르면 입맞춤은 하늘 닿고 소매로 땀내를 흩는 무등병들 그 행렬. 몇 분씩 휴식 아껴 화랑담배 입에 물면 눌러 쓴 철모 끈에 안보 그도 대롱거려 고향 녘 환한 낮달은 눈웃음을 짓는가. 황산벌에 퍼져 가는 총검술 그 기합 소리 무르팍이 깨진 만큼 높이 서는 간성이여, 이 밤도 꿈길의 별은 이마에서 빛난다. (2002년) (시작 노트) 1965년 2월에, 나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러나 병무청의 사무 착오로 입대 통지서가 나오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한가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궁리 끝에 훈련소로 직접 가서 현지입대를 했다. 나는 마침내 제1훈련소 29연대에 소속되었고, 2달 동안의 피나는 훈련이 시작..

오늘의 시조 2022.09.24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그때 그 친구 김 재 황 빛바랜 사진첩에 어린 티로 머문 친구 머리는 박박 깎고 검은 교복 맞춰 입고 그리운 그 모습 그대로 의젓하게 앉아 있다. 지금은 손자 두고 주름도 깊었을 친구 공부는 키를 재고 싫은 청소 서로 돕고 아직도 그 이름 석 자 생생하게 외고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더욱 보고 싶은 친구 눈빛은 너무 맑고 고운 입술 굳게 닫고 잘생긴 그 얼굴 그대로 따뜻하게 웃고 있다. (2002년) (시작 노트) 전쟁이 끝나고 상경하여, 흑석동의 은로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선린중학교와 배재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농학과를 차례대로 마쳤다. 그러니까, 피난 시절의 몇 년 동안을 빼고, 나는 모든 학창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서울에서도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즉, 흑석동에..

오늘의 시조 2022.09.23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한라산에서 김 재 황 태초에 첫울음을 불덩이로 토해 내고 신비한 손을 뻗어 세상 문을 열던 자리 그 숨결 아직 머물러 물빛 저리 푸르다. 적막에 배가 부른 비자림이 팔 벌리면 흰 구름 갈 곳 몰라 산정 곁을 맴도는데 전설을 가슴에 안고 골짜기로 가는 바람. 안개가 잠이 깨어 산길을 모두 숨길 때 펼치고 선 산자락에 꿈이 쏟아지는 소리 큰 바다 멀리 밀치고 볼이 익는 열매여. (2002년) (시작 노트) 한라산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6.25 전쟁 때이다.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였던 나는, 1.4 후퇴 때에야 부모님을 찾아서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수소문 끝에, 제주도에서 부모님을 만났고, 제주시 제남초등학교 3학년에 편입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한라산을 보았다. 그 ..

오늘의 시조 2022.09.22

연시조 1편

[내 시링, 녹색 세상] 편 임진강에서 김 재 황 물바람은 울먹이며 강가에서 서성대고 머리 푼 갈대꽃이 혼이 나가 흔들려도 포성에 멍든 역사는 침묵 속에 떠간다. 서러운 빗줄기를 흩뿌려서 젓던 강물 말 잃은 얼굴들은 심연으로 잠기는데 세월은 회류의 꿈을 폭포처럼 쏟는다. 휘돌아 내린 굽이 가늘게 목이 죄어 흐르는 물길로는 풀지 못할 한이기에 나루터 빈 배 한 척만 가슴속이 썩는다. (2002년) (시작 노트) 고향 마을 바로 지척에 임진강이 흐르고 있다. 임진강은 북한지역인 강원도 법동군 용포리 두류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철원과 금화지역을 거친 다음, 남쪽으로 내달려서 경기도로 들어선다. 그리고는 한탄강과 만나서 정답게 손을 잡고 강화만을 지난 후에 바다로 돌아간다. 임진강의 총길이는 자그마치 254..

오늘의 시조 2022.09.22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추사 고택 김 재 황 간밤에 함박눈이 살금살금 내리더니 반듯한 마당에는 하얀 이불 덮이었다 임의 꿈 짐짓 일어나 하품하는 이른 아침. 세월을 따라가다 잠깐 쉬는 겨울바람 높직한 솟을대문 기왓장을 깔고 앉아 먼 하늘 뒹굴며 오는 임의 붓끝 바라본다. 반가운 손님 맞아 버선발로 달려 나온 그 마음 아른아른 격자창에 내비칠 듯 남향한 임의 사랑채에 옛 숨소리 가빠 온다. (2002년) (시작 노트) ‘추사고택’(秋史故宅)은,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다. 높지 않은 야산에 자리잡은 이 고택은, 전형적인 명문대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 추사고택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은 영조 대왕의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임금의 사위가 되었다. 그는 ..

오늘의 시조 2022.09.21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줄타기 김 재 황 안개 속을 헤엄친다, 지느러미 펄럭이며 드넓은 허공에서 바람 타고 앉았다가 높직이 몸을 솟구쳐 세상 밖을 엿본다. 가볍게 날아 봐도 날개 없는 겨드랑이 두견새 그 울음이 피를 흩듯 쏟아질 때 마지막 가난한 꿈을 불꽃 안에 던진다. 이미 길은 정했으니 걸음만 옮기면 될 뿐 긴 밤을 재우느라 이슬 먹은 외줄 위로 이제는 가락을 얹는다, 서러운 춤 보탠다. (2002년) (시작 노트) ‘줄타기’는 ‘줄광대’라고 하는 줄타기 연희자(演戱者)가 두어 길이의 높이로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삼현육각(三絃六角)의 반주에 맞추어서 재담이나 소리도 하고 춤도 추어 가며 갖가지 재주를 부리는 놀이이다. 몇 년 전, 나는 이 ‘줄타기’하는 모습을 용인의 민속촌에서 본 적이 있다. ..

오늘의 시조 2022.09.20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여창 가곡을 들으며 김 재 황 강물과 벗이 되어 한바탕을 이루는 소리 오늘은 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와서 듣네 옛 시절 감아 둔 사연 풀어내는 그 소리. 거문고와 가야금에 양금 등은 어디 있나, 오래도록 숨결 맞춘 악사들을 거느리고 나를 듯 한복 차림에 앉은소리 날리는 임. 짐짓 길을 돌아가는 그 가락 따르다 못해 홀로 내달린 어둠길 잠시 잠깐 꾸벅이면 빈 가슴 시린 물소리가 내 어깨를 톡톡 치네. (2002년) (시작 노트) 1999년 11월 9일 오후 7시, 나는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여창 가곡’을 듣는 행운을 얻었다. 그날 그곳에서 ‘김영기 여창 가곡 발표회’가 열렸다. 그 당시 김영기 여류가객은 KBS 국악관현악단 부수석으로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음악에 있어서 ‘정가’(..

오늘의 시조 202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