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조 1347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소래포구에서 김 재 황 잊어야 할 일들이 세상엔 너무 많은데 네 활개 넓게 펴고 개펄은 누워 있다가 다시금 물길을 열며 저를 보라 반짝인다. 배가 닿던 자리마다 쓸린 아픔 남아 있고 그 바람 안고 서니 나도 또한 옛 나룻배 갈매기 서러운 울음만 갑판 위에 쏟아진다. 바삐 살았던 날들은 모진 숨결로 머물러 허물어진 제방 아래 푸른 깃발 꽂아 놓고 갈대밭 우거지는 꿈을 하늘 높이 날린다. 마음껏 뛰어노는 저 망둥이 닮고 싶어 바다에서 온 비린내 가득 맨몸에 바르면 주름진 내 육십 성상도 펄떡펄떡 벌을 친다. (2002년) (시작 노트) 내가 소래포구를 찾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이름이 정감이 가기 때문이었다. 손짓하여 나를 부르는 듯한 어감의 ‘소래포구’. 그러나 나는 소래포구에..

오늘의 시조 2022.09.14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매창묘 앞에서 김 재 황 배꽃이 지는 날은 황톳길을 헤맸을까, 날리는 흙먼지 속에 임의 걸음 살려내면 그 두 뺨 붉은 그대로 봉두메에 나와 설까. 달빛이 시린 날은 거문고를 안았으리 다 해진 파도 소리 다시 가락에 얹힐 때 가냘픈 임의 손끝도 마음 줄을 퉁겼으리. (2002년) (시작 노트) 몇 년 전, 나는 부안의 매창묘를 찾은 적이 있다. 그날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바람 속에 황토의 흙먼지가 많이 날렸기에 더욱 쓸쓸함이 감돌았다. 매창은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기록을 보면, 1573년에 출생하여 1610년에 타계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녀는 그렇게 짧은 일생을 살고, 부안읍 남쪽에 있는 봉덕리 공동묘지에 동고동락하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그 이..

오늘의 시조 2022.09.14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김 재 황 총성이 머문 기슭에 귀울음이 길을 열고 애달파 우러르면 침묵으로 검은 하늘 위령탑 그 앞에 서서 매운 향불 사릅니다. 비 오듯 포탄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도 끝까지 뿌린 피로 지킨 조국 그 한 뼘 땅 전적비 세운 뜻 새겨 충혼 길이 기립니다. 앞길을 가로막아 엎드린 휴전선 넘어 떠가는 기러기 떼 날갯짓이 가벼운데 상승각 울린 종소리가 오직 통일 부릅니다. (2002년) (시작 노트) 백마고지 전적지는 철원군 산명리 삼봉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즉, 6.25전쟁 당시에 백마고지를 지키려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90년 5월 3일, 이곳에 높이 22.5m의 대형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여기에는 위령비와 돌무덤, 그리..

오늘의 시조 2022.09.14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동학사에서 김 재 황 정토로 향한 숲에 머문 새는 잠이 들고 꿈결에 뒤척이면 솔 내음이 이는 바람 천수경 외는 소리가 홀로 밤을 새깁니다. 어둠을 밝혀 가는 믿음이 곧 하늘이라 구름은 문을 열어 저승까지 환한 달빛 관세음 고운 눈길이 미소 한 점 남깁니다. 산바람 돌던 탑이 정적 속에 묻혀들면 버려서 얻은 뜻은 산 마음을 닮아 가고 숙모전 적막한 뜰도 자비 안에 안깁니다. (2002년) (시작 노트) 계룡산에는 동서남북의 4대 사찰이 있다. 즉, 동쪽에는 ‘동학사’요, 서쪽에는 ‘갑사’요, 남쪽에는 ‘신원사’요, 그리고 북쪽에는 ‘구룡사’다. 물론, 구룡사는 지금 그 모습이 사라져 버렸고, 그 터만 남아 있다.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 23년에 회의 화상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오늘의 시조 2022.09.13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영월군 광천리에서 김 재 황 강물 감돌아 흐르는 여울 소리 밭은자리 이유 모를 물안개가 절벽을 가로막으면 청령포 작은 가슴에 긴 한숨도 짙게 낀다. 바람 너무 거세었던 역사 뒤쪽 그 회오리 오늘 다시 흔들려서 유배지는 어지럽고 관음송 얽은 기둥만 하늘과 마주 눕는다. 먹구름 피어오르는 그늘 깊은 저녁 하늘 둥지 잃은 산비둘기 날개마저 다쳤는가, 노산군 슬픈 얼굴이 서산 위에 얹혀 있다. (2002년) (시작 노트)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있는 단종의 유배지이다. 1445년,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했다. 그다음 해인 1446년, 성삼문 등의 충신들이 상왕(단종)의 복위를 꾀했는데, 사전에 그 움직임이 누설되었다. 그로써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

오늘의 시조 2022.09.13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현충사 견문 김 재 황 빈 활터 그 자리엔 말 탄 바람 내달리고 먼 기상 더불어서 긴 그림자 끄는 비각 안개 낀 역사 속으로 홍살문이 걸어간다. 깊은 밤 벼려 오던 장검은 남아 빛나니 두 주먹 불끈 쥐고 읽어야 할 난중일기 거북선 달린 물길이 하늘 위로 열린다. 옛집 그 방화산 기슭 맑은 마음 흐르는가, 충무정 고인 물에 임의 모습 그려 보면 더 크게 호령 소리 들린다, 북소리도 들린다. (2002년) (시작 노트) 현충사는 무엇보다 쾌적한 산책로가 무척 마음에 드는 곳이다. 이곳의 충무공 사당은, 노량해전에서 순국하고 나서 100년이 지난, 숙종 32년인 1706년에 그의 얼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바로, 충무공이 어릴 때부터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백암리 ..

오늘의 시조 2022.09.13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임진각에서 김 재 황 돌아서 가는 그대 그 이름 부르는 소리 산 넘고 골을 질러 바람을 몰고 떠나면 통일로 막다른 곳에 동동걸음 남는다. 고향을 바라보면 눈만 더욱 흐려 오고 쑤시는 삭신이야 빈 수수깡으로 서서 망배단 힘껏 껴안은 채, 가슴앓이 삭힌다. 아침을 여는 그대 큰절을 올리는 자리 녹 짙은 철길에 올라 마음 먼저 달리는데 무정한 자유의다리는 물거울만 집는다. (2002년) (시작 노트) 임진각은 서울 시청에서 북서쪽으로 대략 54㎞의 거리이다. 그리고 휴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7㎞ 지점에 있다. 나는 고향을 찾을 때면 임진각을 들르곤 한다. 이곳에는,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리기 전에 저 북쪽 신의주까지 연결되었던, 철교가 끊어져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쓴 팻..

오늘의 시조 2022.09.12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히말라야를 오르며 김 재 황 너무나 숨차구나, 홀로 오르는 발걸음 지나온 산길 위로 낮은 바람 깔리는데 그 높은 나의 봉우리 번쩍인다, 빙설이---. 아무도 밟지 않은 순수의 자리를 골라 말없이 삶을 새긴 어느 설인 그 발자국 아직껏 굽은 능선에 빈 고요로 남아 있다. 볼수록 아름다워라 멀리 펼친 산맥이여 곱게 새긴 주름처럼 저물어 간 하늘 아래 마음 끈 설송 한 그루 늙어서야 꽃이 핀다. (2002년) (시작 노트) 사는 게 힘이 든다. 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건만, 갈수록 인생살이는 더욱 고달프다. 나는 매일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는 기분으로 산다. 내 앞을 그 역경의 히말라야는 늘 가로막고 있다. 그러니 어찌 오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히말라야’(Himalaya)..

오늘의 시조 2022.09.12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큰 걸음을 내딛는다 김 재 황 긴 다리 넓게 편다, 미끄러운 수면 위에 어찌나 잔잔한지 맑게 비치는 하늘길 조그만 소금쟁이가 큰 걸음을 내디딘다. 둥근 잎 띄워 놓고 연꽃 웃는 한여름에 소나기 놀다 가고 바람도 지나간 다음 도저히 내가 못 따를 기적의 춤 내보인다. (2002년) (시작 노트) 소금쟁이는 크다고 해도 몸길이 3㎝를 넘지 않고, 작은 것은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몸빛이 대체로 검은 편이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중에는 늙어서 몸빛이 갈색으로 변한 개체도 있다. 보기에 추레하다. 그런데 소금쟁이는 다리가 가늘고 길다. 그 발의 끝에는 가는 털이 돋아나 있다. 그 발은 보통 발이 아니다. 바로,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기적의 발’이다. 소금쟁이는 그 ..

오늘의 시조 2022.09.11

연시조 1 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그대는 김 재 황 아무런 소리 없이 문을 여는 긴 오솔길 둥그런 솔 향기가 느린 걸음에 채이면 그대는 나를 보고 웃네, 보조개를 짓고 있네. 알뜰히 잎 사이로 햇살이 곱게 내려 상냥한 숲 바람과 서로 인사를 나눌 때 그대는 내 손을 잡네, 꿈에 안겨 눈을 감네. 시리게 강물 되어 세월은 앞장을 서고 가벼운 두 마음만 솔 그림자 타고 흘러 그대는 나에게 속삭이네, 귓바퀴가 간지럽네. (2002년) (시작 노트) 산책(散策)의 사전적 의미는 ‘한가한 마음으로 또는 가벼운 기분으로 이리 저리 거니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사색이라든가, 혹은 자유라든가 즐거움 같은 의미도 담겨 있다. 산책은 몸과 마음에 두루 유용하다. 산책하면 앉아 있을 때보다 두세 배 정도의 많은 산소가 섭..

오늘의 시조 2022.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