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 소리/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워낭 소리 김 재 황 울린다, 산 너머에 돌밭 가는 딸랑 소리꿈결인 양 복사꽃은 피었다가 바로 지고새벽에 산자락 타면 소 울음도 들린다. 고향 녘 바라보면 그저 착한 그 눈망울흘러가는 구름 밖에 열린 마음 놓아두고슬픈 듯 안쓰러운 듯 소의 눈이 젖는다. 그립다, 멍에 하나 휜 하늘로 얹어 메고저 멀찍이 비탈길에 가시 숲이 우거져도묵묵히 수레를 끄는 황소 숨결 살린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9.28
하얀 집/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하얀 집 김 재 황 방안에는 시의 향기 알싸하게 피어나고뒤뜰에는 나물들이 여린 싹을 내미는 곳언제나 웃음꽃 이는 곤지암에 있는 집. 손님들이 찾아오면 오디술은 자리 잡고오래 묵은 장맛같이 익은 정이 가득한 곳누구나 보름달 안는 노을재가 사는 집. (2015년) 오늘의 시조 2024.09.27
겨울나무/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겨울나무 김 재 황 서둘러 뗀 잎으로 어린뿌리 덮어 놓고검은 밤이 다가오면 시린 내를 훌쩍 넘고,그대여 그리 가볍게 혀를 차지 마시게. 칼바람 불 때마다 절로 들썩 춤을 업고함박눈이 내릴 때면 긴 자장가 홀로 풀고,그대여 젖은 눈으로 바라볼 일 아니네. (2015년) 오늘의 시조 2024.09.26
시린 청첩/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시린 청첩 김 재 황 친구는 떠났지만 남아 있는 끈 한 자락꽤 멀리 나앉은 날, 잠 깨우듯 당겨 끄니‘그립다.’ 그 한마디에 구름 밟고 갔느니라. 외진 곳에 빛이 닿아 청사초롱 밝힌 자리덩굴째인 복덩일까 그 며느린 뺨 붉은데달인 양 시어머니는 젖은 미소 꽉 물었네. 넋이라도 궁금해서 오지 않고 배겼겠나?신바람을 손에 쥐고 그저 허허 앉았다가‘거베라’ 짙은 향기에 큰 재채기 했으렷다. (2015년) 오늘의 시조 2024.09.25
그 말 한마디에/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그 말 한마디에 김 재 황 “오늘은 무얼 먹지?” 만났을 때 묻게 되면“아무 데나 가면 되지.” 나는 곧잘 대답하니이 말에 이 아무개는 그런다고 야단이다. 그건 네가 모르는 말, 이런 일도 있었나니“어딜 가지?” 그 묻음에 “아무거나!” 답했더니앞서서 임 아무개는 어딘지 날 데려갔다. 이런 데가 있었다니! 생소하다 ‘태국 식당’들여오는 하나하나 빛깔 좋고 향기 좋고이렇듯 그 말 덕분에 맛 큰 호사 누렸느니.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9.24
숲길을 거닐며/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숲길을 거닐며 김 재 황 하루에 세 번씩은 다녀와야 가벼운데조금은 땀이 나게 땅을 힘껏 내디디면숲에선 직박구리가 놀란 음성 굴린다. 바람도 안 부는데 나뭇잎은 떨어지고이따금 놀란 듯이 날개 치는 곤줄박이눈감은 개암나무가 깊은 숨결 날린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9.23
등나무 그늘에 앉아서/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등나무 그늘에 앉아서 김 재 황 눈을 감고 있노라면 세거리가 나타나고그 옆길로 들어서면 우리 마을 80번지대문 앞 우물가에는 보랏빛 꿈 피었다네. 이웃들만 겨우 알던 장미꽃 댁 첫째아들덩굴줄기 오르면서 어린 꿈을 키웠는데집 마당 한가운데로 둥근 향기 고였다네. 문화주택 꽉 들어찬 동네 골목 넓게 쓸면남의 일도 내 일처럼 서로 밝게 등을 켜고은은히 귓전 적시던 은광교회 그 종소리. (2015년) 오늘의 시조 2024.09.22
비둘기를 보며/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비둘기를 보며 김 재 황 거슬러 조금 가도 저 먼 하늘 날아가서새로 핀 마음 글을 힘껏 전한 너였는데이제는 할 일을 잃고 공원 안을 도는구나. 일백 살 먹은 분도 걸을 힘만 지녔다면보란 듯 뜻과 일을 맘껏 하는 세상이라이제야 빛나는 꿈을 내 가슴에 품어 본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9.21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김 재 황 따뜻한 커피 한 잔 고즈넉이 손에 들면철없이 어린 일이 두 날개를 활짝 펴고풀린 듯 쌉싸래하게 검은 밤이 밀려든다. 흰 달빛 길게 닿고 오직 잠만 쓸리는데날리는 커피 향에 젊은 꿈도 다시 와서가슴 속 묻은 기름기 말끔하게 닦아낸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9.20
까치 소리로 배우다/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까치 소리로 배우다 김 재 황 열린 새해 그 아침에 흰 눈길을 따르는데느티나무 가지 위에 웬 까치가 자리 잡고나한테 ‘꺾어라, 꺾어!’ 타이르듯 말하네. 떠난 여름 그 까치는 마냥 마음 넉넉해서빈 전봇대 꼭대기에 바람 새는 집을 짓고나더러 ‘깎아라! 깎아!’ 나무라듯 외쳤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