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는 세계 4대성인 중의 한분입니다. 그의 철학과 사상의 중심은 대체로 『논어』라는 한권의 책에 담겨 있습니다. 공자의 철학과 사상이 담긴 경전(經傳)들을 깊숙이 연구하여 성리학(性理學)의 세계를 맨 먼저 열었던 사람은 송(宋)의 주자(周子)나 정자(程子)였습니다. 정자의 학문을 이어받아 성리학의 철학을 집대성한 분이 주자(朱子)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성리학은 ‘주자학’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논어』를 정독하고 깊은 사상을 발견한 정자는 “모르는 사이에 손과 발로 덩실덩실 춤을 추게 된다(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라는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얼마나 의미가 심오하고 깊은 맛과 유쾌한 내용이 있었기에 모르는 사이에 즐겁고 기쁜 탓으로 저절로 손과 발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경지에 이르렀을까요. 이런 경지야 아무나 이르는 일이 아닙니다. 정자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어쩌다 무심코 읽어보는『논어』의 몇 구절에 저 같은 사람도 괜스레 환호작약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멋진 내용도 있단 말인가?”라고 감탄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 『논어』를 정밀하게 분석 검토하여 자기 이전까지의 모든 학설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해석을 내려 40권이라는 방대한 저서로 완성한 다산의 『논어고금주』라는 경학연구서를 읽다보면, 순간적으로 환호작약하면서 “세상에 또 이런 멋진 해석도 있단 말인가?”라고 감탄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논어』첫 장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암송하고 있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는글입니다. 다산은 배우고 때론 익힌다는 ‘학이시습’을 학은 지(知)이고 습은 행(行)으로 해석해 지행겸진(知行兼進)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완성됨을 뜻한다는 의미라고 말하고, 벗이 멀리서 찾아옴과,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음은 타인들이 완성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을 내렸습니다. 배운 것을 실천함이야 성기(成己)의 일이고, 완성된 자신을 알아주어 벗들이 찾아오고 남들이 알아줌이야 남들이 그런 수준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것은 성물(成物)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환호작약할 수 밖에 없음은 바로 ‘성물’의 해석입니다. 자기를 완성하여 남들이 알아주고 찾아옴이야 즐겁기 그지없지만, 나를 알지 못하여 나를 높이 여겨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음은 남을 완성시키는 일이야 남의 권한에 속하지 자신이 남을 완성하게 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도의 아량을 지닌 사람이 바로 군자(君子)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를 알리기에 총체적인 노력을 기우리는 요즘의 세상,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 그런 아량을 지닌 사람을 요구했던 공자의 뜻이나 다산의 해석에 어찌 기쁨을 느끼지 않으리오. 공자와 다산, 역시 대단합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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