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쿠러, 콩쯔

7. 어려운 일을 남보다 먼저 하라/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1. 20. 07:57

7
어려운 일을 남보다 먼저 하라





 공자의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요? 다름 아닌, ‘인’(仁)이었습니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먼저 펼쳐 보았지요. 거기에는 ‘타고난 어진 마음씨와 자애(慈愛)의 정을 바탕으로 하여 자기를 완성하는 덕(德)’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어느 책에서 ‘인’(仁)은, ‘윤리적(倫理的, ethical)이라기보다 감성적(感性的, feeling-oriented)이고, 감성적이라기보다 심미적(審美的, esthetical)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이를 한 마디로 줄여서 말하면, ‘심미적 감수성’(審美的 感受性, Aesthetic sensitivity)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므로 ‘인’한 사람은 어떠한 사물에서든지 아름다움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지요. 이는, 바로 ‘예술적 감성’이기도 합니다. 감히 단언하거니와, 시인의 가장 큰 덕목도 바로 이 ‘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러 제자들이 ‘인’에 대하여 ‘공 선생님’(孔子)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공자의 답변을 들어 보기로 할까요? 아마도, 여러 제자 중에 ‘번지’(樊遲)라는 사람이 가장 많이 ‘인’(仁)에 대하여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인’에 대한 물음이 ‘논어’에 세 번씩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문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번지가 ‘인’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는 대답했다. “일상생활에 공손하며, 일을 할 때에 신중하며, 사람을 사귈 때는 충성을 다해야 한다.” 이런 행실은 비록 궁벽한 나라에 간다고 하더라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번지 문인 자왈, 거처공 집사경 여인충 수지이적 불가기야.: 樊遲 問仁 子曰,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 不可棄也.)【논어 13-19】

 여기에서 ‘인’이란 ‘사람의 마음’을 뜻한다고 여겨집니다. ‘공손하고 신중하며 충성을 다함’이야말로 우리가 항상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입니다. 이 글에서 ‘거처’(居處)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때’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집사’(執事)는 ‘어떤 일을 맡아서 처리하고 있는 때’를 나타냅니다. 그 말 외에도 ‘안연편’에서는 ‘인’을 ‘애인’(愛人), 즉 ‘사람을 사랑하는 것’(논어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은  '남'을 가리킴)이라고 했으며, 또 ‘옹야편’에서는 ‘인’을 ‘선난이후획 가위인의’(先難而後獲 可謂仁矣), 즉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보답은 뒤로 미루는 것이며 그래야 인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선난’(先難)은 ‘어려운 일을 남보다 내가 먼저 나서서 하는 것’을 이릅니다. 어떤 이는 ‘선난’을 ‘먼저 힘을 쏟는다.’라고 풀이하기도 했지요. 이 모두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인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공자는 대답했지요. 
 “나를 누르고 예를 행하는 게 인이니, 단 하루라도 예에 맞게 행동하면 천하의 사람들이 너를 어질다고 하리라. 인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야지 어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겠는가?” 
 ‘나를 누르고 예를 행한다.’라는 말의 원문은 ‘극기복례’(克己復禮)입니다. 여기에서 ‘극’은 ‘승’(勝)을 말하고, ‘기’는 ‘일신의 사욕’을 이릅니다. 그리고 ‘복’은 ‘반’(反)을 가리키고 ‘예’는 ‘천부의 정도가 외형에 나타난 것’을 말하지요. 또, ‘천하의 사람들이 어질다고 한다.’는 ‘천하귀인언’(天下歸仁焉)입니다. 여기에서 ‘천하’는 ‘모든 사람들’을 뜻하고 ‘귀’는 ‘허여’(許與), 곧 ‘인한 사람이라고 칭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仁)에 대해 여러 제자들, 즉 ‘중궁’(仲弓)에게는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사마우’(司馬牛)에게는 ‘말을 참는 것’이라고 하였지요. 또, ‘자공’(子貢)에게는 ‘인자한 선비를 벗하는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중궁’은 ‘염옹’(冉雍)의 ‘자’(字)이고, ‘사마우’는 성이 ‘사마’(司馬)인데, 이름은 ‘경’(耕)이며 ‘자’는 ‘자우’(子牛)입니다. 어떤 기록에는 ‘사마우’의 이름이 ‘리’(犁)라고도 하였지요. ‘사마우’는 말이 조금 많고 경솔한 면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말을 참아야 한다.’라고, 공자는 말했습니다.
 또한, 제자인 ‘자장’(子張)이 ‘인’(仁)에 관하여 물었을 때, 공자는 ‘천하에 다섯 가지를 행할 수 있으면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섯 가지는, ‘공’(恭)과 ‘관’(寬)과 ‘신’(信)과 ‘민’(敏)과 ‘혜’(惠)입니다. 즉, ‘공손하면 모욕을 받지 않고 관대하면 여러 사람들의 옹호를 받게 되며 성실하면 다른 사람에 의해 임용되고 민첩하면 일의 효율과 공이 크게 되며 은혜로우면 사람을 부릴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어느 날, ‘원헌’(原憲)이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남을 이기기 좋아하고 공을 자랑하며 남을 원망하고 탐욕스러운, 이 네 가지를 행하지 않으면 ‘인’(仁)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질문을 받고, 공자는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게 ‘인’인지 ‘인’이 아닌지 나는 모르겠다.”
 이로써 ‘인’은 ‘마음에 있는 바른 도리가 스스로 우러나서 자연히 행하여져야만 된다.’라는 뜻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인’에 대해 확실한 모습이 아직도 잘 집히지 않습니다. 아, 역사적인 사람을 예로 들어서 구체적인 설명이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요? 마침 ‘논어’에는 그런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로가 말했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을 때, ‘소홀’은 죽었으나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어질지 못하다고 하겠습니다.”그 말에 공자가 대답하였다. “환공이 제후를 구합하는 데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공이니, 누가 그의 ‘인’과 같겠는가. 누가 그의 ‘인’과 같겠는가.”(자로왈 환공 살공자규 소홀사지 관중불사 왈미인호. 자왈 환공 구합제후 불이병거 관중지력야 여기인여기인.: 子路曰 桓公 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 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如其仁.)【논어 14-17】 

 이 이야기를 보면, ‘관중’(管仲)이라는 신하가 ‘제후들을 구합하는 데 무력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인’(仁)하다고 말합니다. 그 내막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관중’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아야 하겠지요.
‘관중’에게는 ‘포숙’(鮑叔)이라는 아주 절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포숙’은 ‘관중’의 뛰어난 재능에 반하였습니다. ‘관중’의 집안은 매우 가난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관중’은 곧잘 ‘포숙’을 속였지만, ‘포숙’은 한 마디 불평도 없이 ‘관중’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장성하여 ‘포숙’은 공자인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고, ‘관중’은 공자인 ‘규’(糾)를 보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소백’과 ‘규’는 모두 제(齊)나라의 공자(公子)들로서 형제 사이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두 사람 모두 제나라 ‘양공'(襄公)의 아들이며, ‘소백’은 동생이고 ‘규’가 형입니다. ‘양공’은 몹시 포악했답니다. 그래서 형인 ‘규’는 ‘관중’과 ‘소홀’을 데리고 노(魯)나라로 망명했고, 동생인 ‘소백’은 ‘포숙’과 함께 거(莒)로 망명했습니다.  
 그런데 ‘양공’이 죽게 되자, ‘소백’이 군주의 자리에 올랐고, 그가 ‘환공’(桓公)입니다. 그 와중에 경쟁자였던 ‘규’는 싸움에 져서 살해당하였으며, ‘관중’은 잡히어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포숙’은 환공에게 ‘관중’을 등용하도록 ‘진언’(進言)했습니다. 그의 충정 어린 말을 환공이 따름으로써 ‘관중’은 제나라의 국정을 맡게 되었고 환공은 그의 도움으로 패자(覇者)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가 생겼습니다. ‘관중’과 ‘포숙’의 우정이 아름답습니다.
 다시 말해서 환공이 제후들을 구합하여 천하를 하나로 묶을 수 있게 된 일은, 모두 ‘관중’이 훌륭한 솜씨를 발휘했기 때문이랍니다. 이를 가리켜서 공자는 ‘관중의 공’이라고 말했지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더 좀 들어 볼까요? ‘공자가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제자인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관중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어진 사람이었다.”
 자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합니다만, 그 옛날 관중은 양공을 달랬으나 양공이 이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의 언변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공자 ‘규’를 임금으로 세우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이 제나라에서 망했으나 걱정하는 빛이 없었습니다. 이는, 자애로운 마음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몸이 질곡을 당해서 함거(檻車)에 실리게 되었어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는, 악한 것을 꺼리는 마음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자기가 쏘아 죽이려던 임금을 다시 섬겼습니다. 이는, 정절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홀’은 죽었는데 ‘관중’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는, 충성스럽다고 일컬을 수 없습니다. 어진 사람이 하는 일이 어찌 이와 같습니까?”
그 말을 모두 듣고, 공자가 말했습니다.
 “관중이 양공을 달랬으나 이를 양공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가 어두운 때문이며, 공자 ‘규’를 임금으로 세우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때를 못 만났기 때문이다. 제나라에 갔을 때에 집안이 망하게 되었어도 걱정하는 빛이 없었던 것은 ‘권도’(權道)와 ‘천명’(天命)을 모두 알기 때문이고, 형틀에 오르게 되었어도 부끄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자량’(自量)하기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또, 자기가 쏘아 죽이려던 임금을 도리어 섬기게 된 것은 변통을 잘하기 때문이며, 공자 ‘규’는 죽었으나 그를 따라 죽음을 택하지 않은 것은 일의 무겁고 가벼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에 공자 ‘규’는 아직 임금이 되지 않았고 관중도 신하가 되지 않았다. 관중으로서는 의리를 헤아릴 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관중이 구속을 당해 가면서도 죽지 않고 공을 세운 일을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언제인가는, 제자 ‘자공’도 공자에게 말했습니다.
 “관중은 인한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환공이 ‘규’를 죽였는데 그는 따라서 죽지 못하고, 또 재상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습니다.
 “관중이 환공의 재상이 되어서 제후의 패자가 되도록 함으로써 천하를 바로잡았다. 백성이 오늘에 이르도록 그 혜택을 입고 있으니, 관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머리를 풀고 오랑캐 옷을 입지 않았겠느냐? 그 어찌 평범한 남녀가 작은 신의를 지키어서 스스로 개천에서 목매어 죽음으로써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일과 같겠느냐?”
 공자는 이때까지만 해도 ‘관중’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듯싶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그리 믿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기에 따라서 긍정적이었던 사람도 부정적으로 보일 때가 있나 봅니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결코 공자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때, 공자가 말했습니다.
 “관중의 그릇은 작다.”
 어떤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물었지요.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그 물음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관씨는 삼귀(三歸)를 두며 관사불섭(官事不攝)했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라 임금이어야 수색문(樹塞門)을 하는 법인데 관씨도 역시 수색문을 했고, 나라 임금이어야 다른 나라 임금과 서로 수호하기 위해 반점(反坫)을 사용하는 법인데 관중이 또한 반점을 사용하였으니,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이 대화에 있어서 ‘삼귀’(三歸)는 ‘세 채의 작은 저택’을 가리킵니다. ‘귀’(歸)는 ‘가’(家)와 통한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삼귀’를 ‘세 부인’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작은집’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관사불섭’(官事不攝)은 ‘아래 관원들에게 겸직시키지 않는 것’을 이릅니다. 또, ‘수색문’(樹塞門)은 ‘집의 문 안에 세움으로써 문을 가리는 담장’을 나타냅니다. 원래는, 대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 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심어서 가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무는 관리하기도 귀찮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지막한 담을 대문의 폭보다 조금 더 길게 쌓아서 대문을 가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수’(樹)는 ‘병’(屛)을 말하고, ‘색’(塞)은 ‘폐’(蔽)를 뜻합니다. 그리고 ‘반점’(反坫)은 ‘흙을 돋우어서 술잔을 올려놓게 만든 대’입니다. 이는, 동쪽과 서쪽의 두 기둥 사이에 있는데, 술을 마시고 주인은 동점에 잔을 놓고 손님은 서점에 잔을 놓는다고 합니다. 물론, ‘수색문’이나 ‘반점’은 임금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아무튼 이는 공자가 ‘관중’을 부정적으로 본 일면입니다. 그 말에 따르면, ‘관중’은 검소하지도 않고 예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를 ‘인’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참으로 어느 한 사람을 가리켜서 함부로 ‘인’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자도 이런 점을 절실하게 느꼈던 모양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도 ‘논어’에는 담겨 있습니다.
 하루는 ‘맹무백’(孟武佰)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자로는 인한 사람입니까?”
 공자가 맹무백에게 대답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맹무백이 재차 묻자, 공자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유(由)는 천승의 나라에서 한 ‘부’(賦)를 다스릴 수 있으나, 인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맹무백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구(求)는 어떻습니까?”
 공자는 맹무백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그는 천실지읍과 백실지가에서 재(宰)는 될 만한데, 인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맹무백이 공자에게 또 물었습니다.
 “적(赤)은 어떻습니까?”
 공자는 맹무백에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속대를 두르고 조정에 서서 빈객과 대담할 만하지만, 인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앞에서부터 다시 짚어 볼까요? ‘맹무백’은 알고 있지요? 노나라의 실권자입니다. 그 이름을 ‘설’(泄)이라고 한답니다. 이 대화는, 공자가 69세 때의 일이랍니다. 알다시피, ‘유’와 ‘구’와 ‘적’은 모두 공자 제자의 이름들입니다. ‘유’(由)는 ‘자로’(子路)의 이름이고, ‘구’(求)는 ‘염유’(冉有)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적’(赤)은 ‘공서화’(公西華)의 이름입니다. ‘공서’는 성이고 ‘자’(字)가 ‘화’입니다. ‘자화’(子華)라고 부르기도 하나, ‘자’ 자가 붙은 것은 그를 높이어 부르는 말입니다. 그 당시에 자로는 60세, 염유는 40세, 공서화는 27세 정도였다고 하지요.
 앞에서 자로에 대한 말 중에 ‘천승의 나라’(千乘之國)는 노나라를 뛰어넘는 대국을 일컫습니다. 다시 말해서, ‘승’(乘)은 ‘말 네 필이 끄는 전차’를 이릅니다. ‘부’(賦)는 ‘병사’(兵事)로, 여기에서는 군사적인 일 전체가 포함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염유에 대한 말 중에 ‘천실지읍’(千室之邑)은 ‘집의 수가 1천이나 되는 읍’을 말하고 ‘백승지가’(百乘之家)는 ‘병거 1백 승을 낼 수 있는 경대부의 집’을 말합니다. ‘재’(宰)는 ‘한 고을의 원’이나 ‘대부의 집안일을 돌보는 집사’ 등을 일컫습니다. 또, 공서화에 대한 말 중에 ‘속대’(束帶)는 ‘예복에 두르는 큰 띠’를 말하는데, 평소에는 ‘완대’(緩帶)를 두르고 의례 때는 ‘속대’를 둘렀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공자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공자는 그들 모두를 가리켜서 ‘인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인한 사람’이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왕 내친 김에, 공자의 ‘인’(仁)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 보기로 하지요. 우선, ‘학이편’에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교묘하게 꾸민 말과 아첨하는 얼굴빛에는 인(仁)이 드물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교언’(巧言)은 ‘남이 듣기 좋게 꾸민 말’이고, ‘영색’(令色)은 ‘남의 환심을 사려고 겉으로 꾸민 얼굴빛’입니다. ‘선의인’(鮮矣仁)은, ‘인선의’(仁鮮矣)의 도치법으로, ‘어세를 강하게 한 것’이지요. ‘선’(鮮)은 ‘드물다’의 뜻을 지녔는가 하면, ‘의’(矣)는 ‘개탄의 뜻’을 지닌 종조사(終助詞)입니다. 그렇고말고요. ‘사기꾼’은 모두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잘 바꾸지요.
 또, 술이편에도 공자의 ‘인’(仁)에 대한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인이 멀리 있겠느냐? 내가 인하고자 하면 곧 인이 이르게 된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마음먹기에 따라 인할 수 있다.’라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입니다.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위영공편’을 보면, 지사(志士)와 인자(仁者)는 ‘몸을 바쳐서 인을 이룩하는 경우가 있다.’라는 말이 나타나고, ‘인을 행함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몸을 바친다.’와 ‘스승에게도 양보 못한다.’가 모두 ‘결사적인 의미’를 그 안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仁)은 목숨처럼 끝까지 지켜야 할 덕목이라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이인편’은 그야말로 ‘인(仁)의 묶음’이라고 말해도 될 성싶습니다. ‘인한 마을에 사는 게 아름답다.’라는 말을 선두로 하여 ‘어진 사람(仁者)은 인에 안주하고 슬기로운 사람(知者)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라는 말이 있고, ‘인한 사람이라야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앞에서 ‘인’을 ‘애인’(愛人)이라고 했으니, 이는 아주 당연한 말들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인에 뜻을 두면 악이 싹틀 수가 없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할 나위도 없거니와,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 인을 실행함에 있어서 불인으로 하여금 그 몸에 붙지 못하게 한다.’라든가 ‘허물을 보면 그 인을 곧 알게 된다.’라는 말도 보입니다. 
 어느 날, 제자인 ‘재아’(宰我)가 공자에게 질문했습니다.
 “인한 사람은 가령 우물 속에 사람이 빠졌다면 당장에 그 우물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해야 합니까?”
 공자는 그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어찌 그래야 한단 말이냐? 군자는 가도록 할 수 있을지언정 들어가도록 할 수 없으며, 이치에 맞는 말로 속일 수는 있어도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그를 속일 수는 없다.”
 ‘자한편’에도 ‘인’(仁)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즉, ‘인한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인한 사람은 그가 처한 환경에 편안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는 말일 듯합니다. 그리고 ‘헌문편’으로 가면, ‘인한 사람은 반드시 용감하지만, 용감한 사람이라고 모두 인하지는 않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머리가 지끈지끈하겠지요?
 이제는 아무래도 결론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공자는 말했습니다. ‘강인하고(剛) 과감하고(毅) 질박하고(木) 언중하면(訥) 인에 가깝다.’(강의목눌 근인: 剛毅木訥 近仁)라고요. 여기에서 ‘강’(剛)은 ‘의지가 굳고 물욕에 굴종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의’(毅)는 ‘기질이 굳세고 과단성이 있는 것’을 뜻하며 ‘목’(木)은 ‘박’(朴)과 같이 ‘꾸밈이 없이 질박한 것’을 가리키고 ‘눌’(訥)은 ‘말이 무겁고 적은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것들도 정확히 ‘인’(仁)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인(仁)에 가깝다.’라고만 말했지요. ‘인’이 손에 잡히지는 않으나, 어렴풋이 인의 모습을 그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논어’에 나타나 있는, 한 이야기를 여기에 옮겨 보겠습니다. 

 ‘안연’과 ‘자로’가 옆에 있을 때, 공자가 말했다. “어떠냐? 각기 너희들의 뜻을 말해 보지 않겠느냐?” 자로가 말하였다. “저는 수레와 말과 가벼운 갖옷을 친구와 나누어 함께 입고 해어져도 유감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안연이 말하였다. “저는 잘한 일을 내세우지 않고 수고로운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자로가 나서서 말했다. “원컨대 선생님의 뜻을 들었으면 합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나이 많은 분들에게는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벗들에게는 믿음을 갖게 하며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는 그리움을 품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안연계로시 자왈 합각언이지. 자로왈 원거마 의경구 여붕우공 폐지이무감. 안연왈 원무벌선 무시로. 자로왈 원문자지지. 자왈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 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 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논어 5-26】

 여기에서 ‘지’(志)는 바로 그 각자가 그리는 ‘인’(仁)의 모습입니다. ‘계로’(季路)는 ‘자로’(子路)의 다른 호칭입니다. 또한, ‘시’(侍)는 ‘제자가 스승을 모시고 옆에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합’(盍)은 ‘어찌 ~하지 않는가.’라는 의미입니다. 또, ‘벌’(伐)은 ‘과’(誇)와 같이 ‘자랑함’을 가리킵니다. ‘시’(施)는 ‘이’(移)와 같은 뜻으로 ‘남에게 미루어 시키는 것’을 이르고, ‘회’(懷)는 ‘그리워하며 따르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자로’와 ‘안연’의 말은 어쩐지 앞에서 많이 들었던 듯합니다. 즉, ‘자로’의 말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생각나고, ‘안연’의 말은 ‘내가 싫어하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공자의 말은 정말 멋지군요. 가슴에 와서 닿습니다. 이러하니, 내가 공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노인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벗들은 믿음을 가지며 젊은이들이 그리움을 품게’ 만들 수가 있다면, 그게 바로 ‘인’을 이루는 일입니다.
 문득,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한 말이 생각납니다. 공자는 ‘자공’에게 말했지요.
 “사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여기느냐?”
 ‘자공’이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자, 공자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오직 하나로써 꿰뚫어 보고 있다.”
 이 말 중에서 ‘오직 하나로써 꿰뚫어 보고 있다.’를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인’(仁)입니다. 공자는 다만 ‘인’(仁)을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이지요.
 공자가 마음으로 아끼는 제자, 특히 ‘자공’에게 들려준 ‘인’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인한 사람은 자신이 나서려고 하는 곳에 남을 내세우고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데에 남을 이루게 한다. 가까운 자신을 가지고 남의 처지를 미루어 보는 것이 인을 행하는 방법이다.”
 사실, ‘인’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가까운 ‘인’을 실천하는 게 참으로 중요한 일이지요. ‘인’을 머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가슴으로 받아들여서 손과 발로 실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공자가어’를 보면, ‘인’(仁)에 대한 공자의 말이 다음과 같이 담겨 있습니다.
 “대체로 따뜻하고 참된 것은 어진 것의 근본이며, 삼가고 공경하는 것은 어진 것의 바탕이며, 너그럽고 넉넉한 것은 어진 것의 행동이며, 겸손한 대우는 어진 것의 재능이며, 예에 대한 절차는 어진 것의 형용이며, 말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진 것의 문채(文彩)이며, 노래와 음악은 어진 것의 화락(和樂)이며, 재물을 나누어 주고 흩어 주는 것은 어진 마음의 베풀음입니다.”
 이는, 공자가 ‘애공’(哀公)에게 한 말이지요. ‘애공’은 공자 말년의 노나라 군주입니다. ‘애공’이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어진 사람이라고 합니까?”
 공자가 ‘애공’에게 말했습니다.
 “어진 사람은 그 덕이 법을 넘어서지 않게 하고 행동을 척도에 맞게 하며 말을 천하의 법이 되게 하기 때문에 몸에 손상을 입지 않으며, 그 도가 백성들에게 덕화(德化)를 끼치기 때문에 역시 자기 근본에 손상을 입히지 않습니다. 부(富)에 대해서는 천하에 재물을 쌓아놓는 일이 없고 남에게 재물을 줌에 이르러서는 천하에 가난함을 걱정하는 일이 없으니 이러한 사람을 어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모름지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인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릴 사람을 뽑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인한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만 늘어놓았으니, 이제는 나의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한 대접의 맑은 물을 
약모밀에게로 가지고 가서

밤새 달빛에 얼룩진
그의 얼굴을 닦아 준다.

먼동이 다가올수록
환하게 피어나는 꽃들의 미소

그릇 속에 달이 갇힌다.
펄떡펄떡 먹붕어 뛴다.
-졸시 ‘먹붕어 뛴다’ 전문

 ‘약모밀’은 삼백초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6월이 되면 꽃덮이가 없는 꽃을 피우지요. 그 꽃이 줄기 끝의 짧은 꽃줄기에 달립니다. 이 풀은 습한 곳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풀을 만나면, 무슨 까닭인지 이 풀이 ‘인’(仁)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 문득 ‘인한 마을에 사는 게 아름답다.’라는 공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약모밀’이야말로 ‘인한 마을’에 살고 있는 풀입니다. 질척한 그 마을에는 따뜻한 정이 가득합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걸음을 나란히 옮깁니다. 그리고는 달빛을 벗 삼아서 춤을 춥니다. 그러니 이 풀들에게는 ‘걱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공자의 ‘인자한 사람은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밤새도록 달과 놀고 나면 약모밀에게도 얼룩이 묻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 대접의 맑은 떠 가지고 가서 그 얼굴을 닦아 줍니다. 그러면 약모밀의 얼굴에서는 환한 미소가 피어납니다. ‘인’한 그 풀에게 내 마음을 주는 그 순간, 그 대접 속에 달이 갇힙니다. 그리고 그 달이 그 안에서 ‘먹붕어’처럼 펄떡펄떡 뜁니다.
 ‘인’을 지닌 풀과 가까이하면 나도 조금은 ‘인’해진다는 사실을 이제 알겠습니다. 또 ‘인’하다는 것은, 그저 ‘마음속’에 두는 게 아니라, ‘펄떡펄떡’ 행위로 나타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하다는 데에는 말이 그리 필요하지 않습니다. 말은 무겁고 적을수록 마음으로 안기에 좋습니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