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임금과 백성이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
맹자가 등(滕) 나라에 있을 때, 공도자(公都子)가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등(滕) 나라 임금의 아우인 ‘등갱’(滕更)이 선생님 밑에 와 있으니, 예로 대해 주실 만합니다. 그런데 그의 물음에 대답해 주지 않으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맹자가 말했습니다.
“귀한 신분을 내세우고 와서 묻는 사람이거나, 잘난 재간을 내세우고 와서 묻는 사람이거나, 나이가 많음을 내세우고 와서 묻는 사람이거나, 공훈을 내세우고 와서 묻는 사람이거나, 안면을 내세우고 와서 묻는 사람 등에게는 모두 대답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등갱’은 그 가운데 두 가지를 내세우고 왔다.”
[公都子曰 ‘滕更之在門也, 若在所禮, 而不答何也?’ 孟子曰 ‘挾貴而問 挾賢而問 挾長而問 挾有勳勞而問 挾故而問 皆所不答也. 滕更 有二焉’(공도자왈 ‘등갱지재문야, 약재소례, 이부답하야?’ 맹자왈 ‘협귀이문 협현이문 협장이문 협유훈로이문 협고이문 개소부답야. 등갱 유이언’) 13-43]
앞에서 ‘약재소례’(若在所禮)는, ‘예로 대해 주어야 할 것 같이 생각됨.’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맹자의 말 중에 ‘협귀이문’ ‘협현이문’ ‘협장이문’ ‘협유훈로이문’ ‘협고이문’ 등에서 ‘협’(挾)은 ‘마음속으로 유세 떠는 것’을 말합니다. 이 ‘협’은 ‘가지다’ ‘끼우다’ ‘믿다’ ‘믿고 뽐냄’ ‘끼워 넣다’ ‘품다’ 등의 뜻을 지닙니다. 나는 ‘믿고 뽐냄’을 골라서 ‘내세운다.’라고 풀었지요.
등갱(滕更)이 내세운 2가지란, ‘귀한 신분’과 ‘잘난 재간’이었습니다. 맹자는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겸손하고 사심이 없어야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를 일러서 ‘불설지교’(不屑之敎)라고 하는데, 이는 상대방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답니다. 여기에서 ‘불설’(不屑)이란, ‘우습게 여김으로써 마음에 안 둠’을 나타냅니다.
기원전 322년, 맹자는 51살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등(滕) 나라 ‘문공’(文公)이 물었습니다.
“제(齊) 나라 사람들이 ‘설’(薛) 땅에다가 성을 쌓으려고 하니, 나는 매우 걱정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습니다.
“옛날 주(周)나라 태왕(大王)이 ‘빈’(邠) 땅에 있을 때에 ‘북쪽 오랑캐’(狄人)가 쳐들어와서 그곳을 버리고 기산(岐山) 기슭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은, 태왕이 스스로 고른 게 아니라, 부득이하여 그리하였던 겁니다. 임금님께서도 참으로 착함(善)을 실행하시면, 후세의 자손 가운데 반드시 문왕(文王)이나 무왕(武王)과 같은 왕자가 생기게 됩니다. 군자가 ‘나라를 일으키고 전통(國統)을 세우면’, 후손들이 이를 계승할 수 있습니다. 성공으로 말한다면,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임금님께서 저 제(齊)나라를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힘써 착함(善)을 실행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滕文公問曰 ‘齊人將築薛, 吾甚恐, 如之何則可?’ 孟子對曰 ‘昔者大王居邠, 狄人侵之, 去之岐山之下居焉. 非擇而取之, 不得已也. 苟爲善, 後世子孫, 必有王者矣. 君子創業垂統, 爲可繼也. 若夫成功, 則天也. 君如彼何哉? 疆爲善而已矣.’(등문공문왈 ‘제인장축설, 오심공, 여지하즉가?’ 맹자대왈 ‘석자대왕거빈, 적인침지, 거지기산지하거언. 비택이취지, 부득이야. 구위선, 후세자손, 필유왕자의. 군자창업수통, 위가계야. 약부성공, 즉천야. 군여피하재? 강위선이이의.’) 2-14]
어느 날,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맹자에게 또 물었습니다.
“우리 등(滕) 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하여 큰 나라를 섬겨도 침입을 면할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습니다.
“옛날 태왕(大王)이 ‘빈’(邠) 땅에 살다가 ‘북쪽 오랑캐’(狄人)가 쳐들어오자, 가죽과 비단으로 그들을 섬겼지만, 침입을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말과 개를 바치며 섬겼지만, 침입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또 진주와 보옥을 바치며 섬겼지만, 침입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늙은 백성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북쪽 오랑캐가 바라는 것은 내 땅이요, 내가 들으니 군자는 사람을 기르는 땅 때문에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였소. 여러분들은 임금이 없다고 해서 무슨 근심이 있겠소? 내가 여기를 떠나겠소.’ 그리고는 ‘빈’(邠) 땅을 떠나 양산(梁山)을 넘어서 기산(岐山) 밑에다가 도읍을 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빈’(邠) 사람들 가운데 ‘이분은 어진 임금이다. 놓쳐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서 따라오는 사람들이 마치 장 보러 가는 사람들처럼(如歸市)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안 대대로 지켜 온 땅이니, 내가 혼자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죽음을 무릅쓰고 떠나지 않겠다.’라고도 했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고르십시오.”
[滕文公問曰 ‘滕小國也. 竭力以事大國, 則不得免焉, 如之何則可?’ 孟子對曰 ‘昔者大王居邠, 狄人侵之. 事之以皮幣, 不得免焉, 事之以犬馬, 不得免焉, 事之以珠玉, 不得免焉. 乃屬其耆老而告之曰 <狄人之所欲者, 吾土地也. 吾聞之也, 君子不以其所以養人者害人. 二三子何患乎無君? 我將去之.> 去邠, 踰梁山, 邑于岐山之下居焉. 邠人曰 <仁人也, 不可失也> 從之者如歸市. 或曰 <世守也, 非身之所能爲也, 効死勿去> 君請擇於斯二者.’(등문공문왈 ‘등소국야. 갈력이사대국, 즉부득면언, 여지하즉가?’ 맹자대왈 ‘석자대왕거빈, 적인침지. 사지이피폐, 부득면언, 사지이견마, 부득면언, 사지이주옥, 부득면언. 내속기기로이고지왈 <적인지소욕자, 오토지야. 오문지야, 군자불이기소이양인자해인. 이삼자하환호무군? 아장거지.> 거빈, 유양산, 읍우기산지하거언. 빈인왈 <인인야, 불가실야> 종지자여귀시. 혹왈 <세수야, 비신지소능위야, 효사물거> 군청택어사이자.’) 2-15]
앞의 ‘사지이피폐’(事之以皮幣)에서 ‘피폐’는 ‘가죽과 비단’을 말합니다. ‘피’(皮)는 ‘손으로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랍니다. 그리고 ‘폐’(幣)는 비단을 돈 대신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돈’을 뜻하기도 한답니다. 그런가 하면, ‘사지이주옥’(事之以珠玉)에서 ‘주옥’은 ‘진주와 보옥(보석)’을 가리킵니다. ‘주’는 ‘바다에서 나는 진주’요, ‘옥’은 ‘산에서 나는 보옥’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옥’이라고 하면 ‘아름답고 값진 물건의 비유’로 쓰입니다.
또, ‘내속기기로’(乃屬其耆老)에서 ‘속’(屬)은 ‘무리’라는 뜻으로 ‘모아놓음.’을 이르고, ‘기’(耆)는 ‘늙은이’ ‘늙다’ ‘어른’ ‘스승’ 등의 뜻을 지니는데 ‘예순 살’을 이르며, ‘로’(老)는 ‘머리카락이 길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일흔 살’의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맹자는 그렇게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말했으나, 그의 본마음은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지 않는 쪽을 권하고 있지요. 나라가 망하면 그 임금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이지, 등(滕) 나라는 맹자가 뜻을 펼치기에는 너무 작은 나라였습니다. 게다가 제(齊) 나라의 군사적 위협이 있자, 맹자는 등(滕) 나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320년, 맹자가 53살이 되었습니다. 마침 위(魏)나라 ‘혜왕’(惠王)이 현인들을 초빙한다는 말을 듣고, 맹자는 수십 대의 수레에 수백 명의 제자와 일꾼들을 거느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위(魏) 나라로 향했습니다. ‘위(魏) 나라 혜왕’을 흔히 ‘양(梁) 나라 혜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가 있지요. 당시 위(魏) 나라의 서울이 ‘대량’(大梁, 원래 안읍‘安邑’이 수도였으나, 진‘秦’ 나라의 압력을 피하여 ‘대량’으로 옮김)에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대량’은 지금의 ‘하남성 개봉’을 말합니다. 물론, 맹자는 ‘대량’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위(魏) 나라 혜왕을 만났습니다. 혜왕(惠王, 재위 기원전 370년~기원전 319년)이 맹자에게 물었지요.
“어른께서 천 리나 되는 길을 멀다 않고 찾아오셨으니, 또한 내 나라를 이롭게 하실 방법이 있으신지요?”
맹자가 대답했습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비와 서인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라고 합니다. 위와 아래가 서로 이익만 얻기를 생각한다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만 승의 병거를 낼 수 있는 ‘큰 나라’의 그 천자를 죽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천 승의 병거를 낼 수 있는 영지를 가진 그 나라의 신하입니다. 또 천 승의 병거를 낼 수 있는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백 승의 병거를 낼 수 있는 영지를 가진 그 나라 신하입니다. 만에서 천을 얻고 천에서 백을 얻는 게 많지 않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의’(義)를 뒤로 미루어 놓고 ‘이’(利)를 앞세운다면, 모두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어질면서도 그 어버이를 저버린 사람이 아직 없었고, 의로우면서도 그 임금을 뒷전으로 미루어 놓은 사람이 아직 없었습니다. 왕께서도 또한 ‘인’(仁)과 ‘의’(義)만을 말씀하실 것이지,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孟子見梁惠王, 王曰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 而國危矣. 萬乘之國, 弑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 弑其君者, 必百乘之家.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矣. 苟爲後義而先利, 不奪不饜.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 王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맹자견양혜왕, 왕왈 ‘수불원천리이래, 역장유이리오국호?’ 맹자대왈 ‘왕하필왈리? 역유인의이이의. 왕왈 <하이리오국?> 대부왈 <하이리오가?> 사서인왈 <하이리오신?> 상하교정리, 이국위의. 만승지국, 시기군자, 필천승지가. 천승지국, 시기군자, 필백승지가. 만취천언, 천취백언, 불위부다의. 구위후의이선리, 불탈불염. 미유인이유기친자야. 미유의이후기군자야. 왕역왈인의이이의, 하필왈리?’) 1-1]
앞의 ‘만승지국’(萬乘之國)에서 ‘승’은 ‘수레’나 ‘탈 것’ 등의 뜻을 지니는데 여기에서는 ‘군용의 병거(兵車, 전쟁에 쓰는 수레)’를 이릅니다. 그러므로 ‘만승지국’이라고 하면 ‘군용의 병거 1만 대를 낼 수 있는 나라’를 가리키지요. 1대의 병거에는 융마(戎馬, 군마) 4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갑사(甲士, 갑옷을 입은 병사) 세 사람이 탔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보졸(步卒) 72인이 따랐고, 그 밖에 짐 나르는 사람이 25인이나 되었답니다. 대략 1승에 도합 1백여 명이 딸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원래 ‘만승지국’이라고 하면 ‘천자의 영지’를 가리켰지요. 그런데 당시 제 나라나 초 나라 등이 만 승의 대군을 가지고 함부로 왕을 참칭했답니다.
어느 하루는, 맹자가 혜왕을 만나러 갔더니 혜왕이 못가에 서서 ‘크고 작은 기러기들과 고라니와 사슴들’(鴻鴈麋鹿 홍안미록)을 돌아보면서 말했습니다.
“어진 사람도 또한 이런 것들을 즐깁니까?”
맹자가 대답했습니다.
“어진 사람이 된 뒤에라야 그런 것을 즐깁니다. 어진 사람이 아니면, 비록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즐기지 못합니다. 백성이 더불어서 함께 죽기를 바란다면, 비록 대와 못과 새와 짐승이 있은들 어찌 혼자 즐길 수 있겠습니까?”
[‘賢者而後樂此 不賢者雖有此不樂也. 民欲與之偕亡 雖有臺池鳥獸 豈能獨樂哉?’(‘현자이후낙차 불현자수유차불락야. 민욕여지해망 수유대지조수 기능독락재?’) 1-2]
또 하루는 혜왕(惠王)이 이렇게 맹자에게 말했습니다.
“과인(寡人)은 나라에 마음을 다할 뿐입니다. 하내(河內, 지금의 하남성 황하 이북의 땅) 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곳 백성들을 하동(河東, 산서성 경계를 황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기 때문에 그 황하 동쪽의 땅을 이름) 지방으로 옮기고, 하동의 곡식을 하내로 옮깁니다.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들어도 또한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이웃 나라의 다스림을 살펴보면,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 백성이 더 줄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인의 백성이 더 늘지도 않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 河內凶, 則移其民於河東, 移其粟於河內. 河東凶亦然. 察隣國之政, 無如寡人之用心者, 隣國之民不加少, 寡人之民不加多, 何也?(과인지어국야, 진심언이의, 하내흉, 즉이기민어하동, 이기속어하내. 하동흉역연. 찰린국지정, 무여과인지용심자, 인국지민불가소, 과인지민불가다, 하야?) 1-3]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을 비유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王好戰 請以戰喩 왕호전 청이전유) 북을 둥둥 울리고 군대가 칼날을 서로 부딪치며 싸우다가 한쪽이 갑옷을 벗어 버리고 무기를 끌면서 달아났습니다. 어떤 자는 백 걸음을 달아나다가 멈추어 서고, 또 어떤 자는 쉰 걸음을 달아나다가 멈추었습니다. 이 때, 쉰 걸음을 달아난 자가 백 걸음을 달아난 자를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
[王好戰 請以戰喩 塡然鼓之 兵刃旣接 棄甲曳兵而走 或百步而後止 或五十步而後止 以五十步笑百步 則何如?(왕호전 청이전유 전연고지 병인기접 기갑예병이주 혹백보이후지 혹오십보이후지 이오십보소백보 즉하여?) 1-3]
앞의 원문에서 ‘보’(步)는 ‘오른쪽 발과 왼쪽 발을 번갈이 떼어 놓으며 걷는 것’을 뜻합니다. 1보는 주(周)나라 척도로 8척 또는 6척4촌 등 여러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6척을 1보로 쳤답니다. 중국 고대부터 한(漢) 나라 때까지의 온갖 이야기가 담겨 있는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는, ‘곡식 중에 기장을 표준으로 하되, 10속(粟)을 1푼(分)으로 하며 10푼을 1촌(寸)으로 하고 10촌을 1척(尺)으로 하며 10척을 1장(丈)으로 한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궐의’(闕疑), 즉 ‘괄호에 넣고’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혜왕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백 걸음을 다 달아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도 역시 달아난 겁니다.”
“왕께서 이런 이치를 아셨다면, 왕의 백성이 이웃 나라 백성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다 먹을 수가 없고,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나 연못에 넣지 않는다면 물고기와 자라를 다 먹을 수가 없습니다. 도끼를 가지고 제 계절에만 숲에 들어가게 하면 재목을 모두 쓸 수가 없을 겁니다. 곡식과 물고기를 다 먹을 수가 없고 재목을 다 쓸 수가 없다면, 백성들이 살아 있는 고기를 다 먹을 수가 없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섭섭함이 없을 겁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먹이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섭섭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왕의 길’의 첫걸음입니다.”
[‘不可. 直不百步耳 是亦走也’ ‘王如知此 則無望民之多於隣國也. 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 數罟不入洿池 魚鼈不可勝食也. 斧斤以時入山林 材木不可勝用也. 穀與魚鼈不可勝食 材木不可勝用 是使民養生喪死無憾也. 養生喪死無憾 王道之始也.’(‘불가. 직불백보이 시역주야’ ‘왕여지차 즉무망민지다어린국야. 불위농시 곡불가승식야 촉고불입오지 어별불가승식야. 부근이시입산림 재목불가승용야. 곡여어별불가승식 재목불가승용 시사민양생상사무감야. 양생상사무감 왕도지시야.’) 1-3]
또 어느 날입니다. 혜왕(惠王)이 가르침을 원한다고 하여, 맹자가 혜왕(惠王)에게 물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데,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이 다릅니까?”
“다를 게 없습니다.”
“칼로 죽이는 것과 다스림을 잘못하여 죽이는 것이 다릅니까?”
“다를 게 없습니다.”
“푸줏간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외양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도, 백성들에겐 굶주린 빛이 있고 들판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있습니다. 이는 짐승에게 사람을 잡아먹도록 하는 겁니다. 짐승끼리 서로 잡아먹어도 사람들은 이를 싫어합니다. 백성들의 부모가 되어 나라를 다스린다면서 짐승을 끌어다가 백성을 잡아먹게 하는 것을 벗어나게 못 한다면 어찌 백성들의 부모가 될 수 있겠습니까?”
[‘殺人, 以梃與刃, 有以異乎?’ ‘無以異也’ ‘以刃與政 有以異乎?’ ‘無以異也’ ‘庖有肥肉 廐有肥馬 民有飢色 野有餓莩 此率獸而食人也. 獸相食 且人惡之 爲民父母行政 不免於率獸而食人 惡在其爲民父母也.’(‘살인, 이정여인, 유이이호?’ ‘무이이야’ ‘이인여정 유이이호?’ ‘무이이야.’ ‘포유비육 구유비마 민유기색 야유아표 차솔수이식인야. 수상식 차인오지 위민부모행정 불면어솔수이식인 오재기위민부모야.’) 1-4]
앞의 ‘이정여인’(以挺與刃)에서 ‘여인’은 ‘인’ 자 앞에 ‘이’(以) 자가 생략되었답니다. 즉, ‘여이인’(與以刃)으로 보아야 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이인여정’(以刃與政)에서도 ‘정’ 자 앞에 ‘이’(以) 자가 생략되어 있답니다. 즉, ‘여이정’(與以政)으로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어느 날인가, 혜왕(惠王)이 맹자에게 말했습니다.
“진(晋, 이 나라가 나누어져서 ‘위魏 나라’ ‘조趙 나라’ ‘한韓 나라’가 됨) 나라가 천하에서 가장 강했던 것은 선생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과인(寡人)의 대에 이르러선 동쪽으로 제(齊) 나라에 패하여 맏아들이 죽었고, 서쪽으론 진(秦) 나라에게 칠백 리의 땅을 빼앗겼습니다. 남쪽으로는 초(楚) 나라에 굴욕을 당하여 과인은 이를 부끄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위하여 한 번 이 부끄러움을 씻어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사방 백 리의 땅에서도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 만약 백성들에게 어진 다스림을 베풀고 형벌을 가볍게 하며 세금을 줄이고 백성들에게 깊게 밭을 갈고 김을 매게 하며 젊은이들이 겨를을 얻어 효제충신의 덕을 닦아 집에 들어와선 부형을 섬기고 밖에 나가선 어른을 섬기게 한다면, 몽둥이만 들고서도 진나라나 초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들을 때려 부술 수가 있습니다. 저쪽 나라의 왕들이 자기네 백성들을 곤경에 빠뜨렸을 때 왕께서 가셔서 정벌하신다면 누가 왕께 맞서겠습니까? 그래서 ‘어진 이에겐 적이 없다.’라는 것이니, 왕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地方百里 而可以王. 王如施仁政於民 省刑罰 薄稅斂 深耕易耨 壯者以暇日 脩其孝悌忠信 入以事其父兄 出以事其長上 可使制綎 以撻秦楚之堅甲利兵矣. 彼奪其民時 使不得耕耨 以養其父母 父母凍餓 兄弟妻子離散 彼陷溺其民 王往而征之 夫誰與王敵? 故曰 仁者無敵 王請勿疑.(지방백리 이가이왕. 왕여시인정어민 생형벌 박세렴 심경이루 장자이가일 수기효제충신 입이사기부형 출이사기장상 가사제정 이달진초지견갑리병의. 피탈기민시 사부득경루 이양기부모 부모동아 형제처자이산 피함익기민 왕왕이정지 부수여왕적? 고왈 인자무적 왕청물의.) 1-5]
내가 52세가 되던 1992년, 나는 아주 뜻깊은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해 1월 25일에 ‘DMZ 및 인접 지역 생태계 학술조사위원회’가 발족하면서 내가 그 위원회의 ‘문학반장’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연생태조사를 목적으로 ‘철원 월정리와 대마리 지역’ ‘건봉산과 향로봉 지역’ ‘대암산과 두타연 및 가칠봉 지역’ ‘파평산과 임진강 및 사미천 지역’ ‘강화의 석모도와 대송도 및 주문도 지역’ ‘교동도 지역’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가슴의 한을 뱉듯 터져 나오는 물줄기
참 오래 숨 막히던 가지가지 그 사연들
힘차게 바위를 치며 폭포 타고 내려온다.
우리의 심성같이 고여서 맑은 물거울
열목어와 어름치가 꿈을 따라 꼬릴 치고
슬며시 옷도 안 벗고 산이 온통 잠긴다.
흰사초 일어서는 물가의 검은 비위틈
고인 약수 한 모금이 온갖 더위를 씻는데
저기 저 두타정 홀로 깊은 산골 지킨다.
-졸시 ‘양구 두타연에서’
그해에 문학지 ‘월간 에세이’로부터 ‘민통선 탐방기’를 6회에 걸쳐서 집필해 달라는 원고청탁이 있었습니다. 나는 기쁘게 그 청탁에 응하였고, 내가 찍은 사진들과 함께 그 기행문들이 성황리에 연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러 기행문 중 한 편(두타연 탐방의 기행문)이 1995년부터 2001년까지 6년 동안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민통선 지역 탐방기’라는 제목으로 실리게 되었습니다.
학술조사가 모두 끝나고 난 다음, 나는 그동안의 탐방에 따른 작품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다시 말해서 1993년 1월 10일, 나는 시집 ‘민통선이여, 그 살아 있는 자연이여’를 도서출판 ‘백상’에서 펴냈습니다. 책이 나오자, 곧 주간조선에서 ‘이 사람의 집념’ 난으로 책의 내용을 아름답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2월 21일에는 MBC 라디오의 ‘두고 온 산하’에 출연하여 차인태 아나운서와 대담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몇 해가 지난 1998년 5월, 민통선 지역 생태조사에 대한 ‘시뿐만 아니라 기행문 등’을 곁들여서 청소년용으로 만든, ‘민통선 지역 탐방기’가 도서출판 ‘서민사’를 통하여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해 12월에 환경부로부터 ‘1990년도 우수 환경 도서’에 선정되었습니다.(글: 김 재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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