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아니 '멍쯔' 이야기

14. 왕이 음악을 좋아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글: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4. 3. 12:39

14. 왕이 음악을 좋아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



 제(齊) 나라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이웃 나라와 사귀는 데에도 방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오직 어진 자만이 큰 나라로써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슬기로운 자만이 작은 나라로써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큰 나라로써 작은 나라를 섬기는 이는 하늘의 뜻을 즐기는 이요, 작은 나라로써 큰 나라를 섬기는 이는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는 이입니다. 하늘의 뜻을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전하고,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 나라를 보전합니다.”

 [有, 惟仁者 爲能以大事小. 惟智者 爲能以小事大. 以大事小者 樂天者也, 以小事大者 畏天者也. 樂天者 保天下, 畏天者 保其國.(유, 유인자 위능이대사소. 유지자 위능이소사대. 이대사소자 낙천자야, 이소사대자 외천자야. 낙천자 보천하, 외천자 보기국). 2-3]

 “훌륭한 말씀입니다. 과인에게 병이 있으니(有疾), 과인은 용기를 좋아합니다.”
 “왕께서는 작은 용기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칼을 어루만지며 눈을 부릅뜨고 ‘네가 어찌 감히 나를 당해 내랴!’라고 한다면, 이는 *필부(匹夫)의 용기입니다. 겨우 한 사람이나 대적하는 자이니, 왕께서는 큰 용기를 지니십시오.”

 [王請無好小勇. 夫撫劒疾視曰 ‘彼惡敢當我哉?’ 此匹夫之勇, 敵一人者也, 王請大之.(왕청무호소용. 부무검질시왈 ‘피오감당아재?’ 차필부지용, 적일인자야, 왕청대지.) 1-3]
 
 하루는 선왕(宣王)이 맹자를 설궁(雪宮, 제나라 선왕의 여러 궁궐 중 하나)에서 만나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진 이도 또한 이런 즐거움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즐거움을 얻지 못할 때에는 그 윗사람을 비난합니다. 자기가 즐거움을 얻지 못하였다고 하여 윗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백성들의 윗사람이 되었는데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하지 않는 것도 또한 잘못입니다. 백성들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자는 백성들도 또한 그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며, 백성들의 걱정을 걱정하는 자는 백성들도 또한 그의 걱정을 함께 걱정하게 됩니다. 천하 백성들의 즐거움을 함께 즐기고 천하 백성의 걱정을 함께 걱정하면서도 ‘왕 노릇’을 하지 못하는 자는 아직껏 없었습니다.”

 [有, 人不得則非其上矣. 不得而非其上者, 非也. 爲民上而不與民同樂者, 亦非也. 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 樂以天下, 憂以天下, 然而不王者, 未之有也.(유, 인부득즉비기상의. 부득이비기상자, 비야. 위민상이불여민동락자, 역비야. 낙민지락자, 민역락기락, 우민지우자, 민역우기우. 낙이천하, 우이천하, 연이불왕자, 미지유야.) 2-4]

 어느 날, 맹자가 대부인 ‘지와’(蚳䵷)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영구’(靈丘)라는 지역의 읍장을 사양하고 형벌을 다스리는 ‘사사’(士師)가 되기를 자청한 것은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왕에게 ‘바른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사사’가 된 지 벌써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 ‘바른말’을 할 수 없던가요?”
 맹자의 말을 듣고, ‘지와’가 왕께 ‘바른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이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지와’는 벼슬을 내어놓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제(齊) 나라 사람들이 말했지요.
 “맹자가 지와에게 ‘바른말’을 하도록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맹자 자신의 경우라면 어떻게 했을는지 알 수 없구나.”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公都子)가 그 소문을 듣고 맹자에게 옮겼습니다. 맹자는 말했습니다.
 “내가 듣기로, 관리가 그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했다. 또, ‘바른말’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도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물러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관직도 없고 왕에게 ‘바른말’을 할 책임도 없는 몸이다. 그러니 내가 나아가고 물러나는 데에 어찌 여유작작하지 않겠는가?”

 [孟子謂蚳䵷曰 ‘子之辭靈丘而請士師, 似也, 爲其可以言也今旣數月矣 未可以言與?’ 蚳䵷諫於王而不用, 致爲臣而去. 齊人曰 ‘所以爲蚳䵷, 則善矣, 所以自爲, 則吾不知也’ 公都子以告, 曰 ‘吾聞之也, 有官守者, 不得其職則去, 有言責者, 不得其言則去. 我無官守, 我無言責也. 則吾進退 豈不綽綽然有餘裕哉?’(맹자위지와왈 ‘자지사영구이청사사, 사야, 위기가이언야, 금기수월의, 미가이언여?’ 지와간어왕이불용, 치위신이거. 제인왈 ‘소이위지와, 즉선의, 소이자위, 즉오부지야.’ 공도자이고, 왈 ‘오문지야, 유관수자, 부득기직즉거, 유언책자, 부득기언즉거. 아무관수, 아무언책야. 즉오진퇴 기부작작연유여유재?) 4-5]
                   
 ‘치위신이거’(致爲臣而去)에서 ‘치위신’은 ‘신하 노릇을 그만둠’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치’(致)는 ‘주다’ ‘드리다’ ‘전하다’ 등의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환’(返還)의 뜻이지요. 그런가 하면 ‘소이자위’(所以自爲)는 ‘맹자가 자신을 위해 도모하는 것’을 말한답니다. 다시 말해서 ‘맹자의 진언을 제나라 왕이 받아들이지 않는데도 마치 무슨 미련이 있는 것처럼 머물러 있는 것’을 두고 한 말이라는군요.
 
 기원전 318년, 맹자가 55살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맹자는 제(齊) 나라에서 지금의 장관격인 ‘경’(卿)이라는 벼슬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를 가리켜서 ‘객경’(客卿)이라고 했지요. ‘객경’이란, ‘다른 나라 사람으로 왕의 자문 등에 응하는 벼슬’이랍니다. 
 맹자가 선왕(宣王)을 만나서 이야기했습니다.
 “왕께서 예전에 ‘장포’(莊暴, 여기에서는 ‘莊氏’라고 함)라는 신하에게 ‘음악을 좋아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과인은 예전 왕들의 음악을 좋아하지는 못하고, 다만 세속적인 음악을 좋아할 뿐입니다.”
 “왕께서 음악을 매우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아마 잘 다스려질 겁니다. 지금의 음악은 옛날의 음악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씀을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음악을, 홀로 즐기는 것과 남들과 함께 즐기는 것 가운데, 어느 편이 더 즐겁겠습니까?”
 “홀로 즐기는 쪽이 남들과 함께 즐기는 것만 못하겠지요.”
 “적은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쪽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쪽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즐겁겠습니까?”
 “그거야, 많은 사람과 함께 즐기는 쪽이 더 즐겁겠지요.”
 “제가 왕께 음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왕께서 곡을 연주하시는데 백성들이 왕의 종소리와 북소리 및 피리 소리를 듣고서 모두들 머리를 짚고 콧등을 찡그리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임금께서 음악을 좋아하시는구나. 어째서 우리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시는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까지도 흩어져 버렸네!’라고 한다거나 이제 왕께서 사냥하시는데 백성들이 왕의 수레 소리와 말 우는 소리를 듣고 깃발의 멋진 깃털 장식들을 보며 모두들 머리를 짚고서 콧날을 찌푸리고는 서로 말하기를 ‘우리 임금은 사냥도 좋아하시는구나. 어째서 우리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시는가. 아비와 자식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까지도 흩어져 버렸네.’라고 한다면, 이는 다른 까닭이 있어서가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즐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왕이 여기서 곡을 연주한다고 할 때 백성들이 왕의 ‘종소리’ ‘북소리’ ‘생황 소리’ ‘퉁소 소리’ 등을 듣고는 모두 얼굴에 기쁜 빛을 띠고 서로가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은 아마 병환이 없으신 게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음악을 즐기실 수 있겠나.’라고 하거나 이제 왕이 여기서 사냥을 한다고 할 때 백성들이 왕의 수레와 말의 소리를 듣고 깃발의 멋진 깃털 장식을 보고는 모두 얼굴에 기쁜 빛을 띠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은 아마 병환이 없으신 게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냥하실 수 있겠나.’라고 한다면, 이는 다름이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즐기신 까닭입니다. 이제 왕께서 백성들과 함께 즐기신다면 천하에 ‘왕 노릇’을 하시게 될 겁니다.

 [臣請爲王言樂. 今王鼓樂於此, 百姓聞王鍾鼓之聲, 管籥之音, 擧疾首蹙頞而相告曰 ‘吾王之好鼓樂. 夫何使我至於此極也? 父子不相見 兄弟妻子離散!’ 今王田獵於此 百姓聞王車馬之音, 見羽旄之美, 擧疾首蹙頞而相告曰 ‘吾王之好田獵, 夫何使我至於此極也? 父子不相見, 兄弟妻子離散.’ 此無他, 不與民同樂也. 今王鼓樂於此, 百姓聞王鍾鼓之聲, 管籥之音,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鼓樂也.’ 今王田獵於此, 百姓聞王車馬之音, 見羽旄之美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田獵也.’ 此無他 與民同樂也. 今王與百姓同樂, 則王矣.(신청위왕언악. 금왕고악어차, 백성문왕종고지성, 관약지음, 거질수축알이상고왈 ‘오왕지호고악, 부하사아지어차극야? 부자불상견, 형제차지이산!’ 금왕전렵어차, 백성문왕거마지음, 견우모지미, 거칠수축알이상고왈 ‘오왕지호전렵, 부하사아지어차극야? 부자불상견, 형제처자이산.’ 차무타, 불여민동락야. 금왕고악어차, 백성문왕종고지성, 관약지음, 거흔흔연유희색이상고왈 ‘오왕서기무질병여! 하이능고악야.’ 금왕전렵어차, 백성문왕거마지음, 견우모지미 거흔흔연유희색이상고왈 ‘오왕서기무질병여! 하이능전렵야.’ 차무타 여민동락야. 금왕여백성동락, 즉왕의.) 2-1]

 어느 날, 맹자가 선왕(宣王)에게 말했습니다.
 “왕의 신하 가운데 자기의 처자를 자기 친구에게 맡겨 놓고 초(楚)나라에 가서 놀다 온 자가 있는데, 돌아와 보니 자기의 처자가 굶주리고 얼어 죽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王之臣 有託其妻子於其友而之楚遊者, 比其反也, 則凍餒其妻子, 則如之何?(왕지신 유탁기처자어기우이지초유자, 비기반야, 즉동뇌기처자, 즉여지하?) 2-6]

 “사귐을 끊어야지요.”
 “지금 만일 옥사장이 그의 부하 관원들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만두게 해야지요.”
 “그러면 나라 안이 잘 다스려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니, 참으로 난처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척 당황하였을 겁니다. 왕은 그저 좌우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면서 다른 말을 하였답니다.

 [曰 ‘士師 不能治士 則如之何?’ 王曰 ‘已之’ 曰 ‘四境之內 不治 則如之何?’ 王 顧左右而言他(왈 ‘사사 불능치사 즉여지하?’ 왕왈 ‘이지’ 왈 ‘사경지내 불치 즉여지하?’ 왕 고좌우이언타) 2-6]

 앞의 원문 중 ‘사사’(士師)는 ‘나라 전체의 옥송(獄訟)을 맡아보는 벼슬’을 말한답니다. 그 밑자리에 ‘수사’(遂士)와 ‘향사’(鄕士) 및 ‘현사’(縣士) 등이 있었답니다. 그들은 각기 자기가 맡은 지방의 ‘옥송’을 맡아보았답니다. 그리고 ‘사경지내’(四境之內)는 ‘사방 국경 안’을 이르기에 ‘그 나라 전체’를 뜻하는 말입니다.

 또 어느 날, 맹자가 선왕(宣王)에게 말했습니다.
 “이른바 역사가 오랜 나라라는 것은, 높고 큰 나무가 있는 걸 두고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집안 대대로 임금을 섬기어 그 나라와 운명을 함께 하는 신하들이 있는 걸 두고서 하는 말입니다. 지금 왕께는 친히 신임할 신하가 없습니다. 예전에 기용한 사람들이라도 오늘에 와서는 없애야 할 사람임을 모르십니다.”

 [所謂故國者, 非有喬木之謂也, 有世臣之謂也. 王無親臣矣. 昔者所進, 今日不知其亡也.(소위고국자, 비유교목지위야, 유세신지위야. 왕무친신의. 석자소진, 금일부지기망야.) 2-7]

 “어떻게 그가 재능이 없는 줄을 알아서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이 현명한 사람을 등용할 때는 부득이해서 등용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넘어서게 하고 가깝지 않은 사람이 가까운 사람을 넘어서게 하려면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하여도 아직 안 됩니다. 여러 대부들이 모두 현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아직 안 됩니다.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한 뒤에야 살펴보아서 그가 현명한 것을 안 뒤에 그를 쓰십시오.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안 된다.’라고 하여도 듣지 마시고, 여러 대부가 모두 ‘안 된다’라고 하여도 듣지 마십시오.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안 된다.’라고 한 뒤에라야 살펴보아서 참으로 안 될 듯싶은 점을 확인한 뒤에 그를 그만두게 하십시오.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죽여야 옳다.’라고 말해도 듣지 마시고, 여러 대부가 모두 ‘죽여야 옳다.’라고 말해도 듣지 마십시오.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죽여야 옳다’라고 말한 뒤에라야 살펴보아서 참으로 죽여야 하겠다고 확인하신 뒤에 죽이십시오. 그러면 ‘온 나라 백성이 그를 죽였다.’라고 할 터이니, 이렇게 된 뒤에라야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國君進賢 如不得已 將使卑踰尊, 䟽踰戚, 可不愼與? 左右皆曰賢 未可也. 諸大夫皆曰賢 未可也. 國人皆曰賢 然後察之 見賢焉 然後用之. 左右皆曰不可, 勿聽. 諸大夫皆曰不可, 勿聽. 國人皆曰不可, 然後察之, 見不可焉, 然後去之. 左右皆曰可殺, 勿聽. 諸大夫皆曰可殺, 勿聽. 國人皆曰可殺, 然後察之, 見可殺焉, 然後殺之. 故曰 ‘國人殺之也.’如此然後可以爲民父母..(국군진현 여부득이 장사비유존, 소유척, 가불신여? 좌우개왈현 미가야. 제대부개왈현 미가야. 국인개왈현 연후찰지 견현언 연후용지.좌우개왈불가, 물청. 제대부개왈불가, 물청. 국인개왈불가, 연후찰지, 견불가언, 연후거지. 좌우개왈가살, 물청. 제대부개왈가살, 물청. 국인개왈가살, 연후찰지, 견가살언, 연후살지. 고왈 ‘국인살지야.’여차연후가이위민부모.) 2-7]

 다시 또 어느 날, 맹자가 선왕(宣王)에게 말했습니다.
 “커다란 궁전을 지으시려면, 반드시 도목수에게 커다란 재목을 구해오라고 하실 테지요. 또 도목수가 큰 재목을 얻어 오면 왕께서 기뻐하시며 그 도목수가 제 구실을 다했다고 하실 테지요. 그러나 *장인(匠人, 보통 목수. 물건 만듦을 업으로 하는 이)이 그 재목을 쪼개서 작게 만들면 왕께서는 성을 내시며 제구실을 못 했다고 하실 터입니다. 무릇 사람들이 어렸을 때 배우는 까닭은 다 큰 뒤에 그것을 실행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께서 ‘잠시 네가 배운 것을 내버려 두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여기에 ‘다듬지 않은 옥돌’(璞玉)이 있으면, 그 무게가 1만 일(鎰, 앞에서 말했듯이, 1일은 무게로 24냥‘兩’쭝)이나 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옥을 다듬는 사람에게 맡기실 터이지요. 그런데도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선 ‘잠시 네가 배운 것을 내버려 두고 나를 따르라.’하시니, ‘옥을 잘 다듬는 달인에게 옥 다듬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爲巨室, 則必使工師求大木. 工師得大木, 則王喜, 以爲能勝其任也. 匠人斲而小之, 則王怒, 以爲不勝其任矣. 夫人幼而學之, 壯而欲行之, 王曰 ‘姑舍女所學而從我.’ 則何如? 今有璞玉於此, 雖萬鎰, 必使玉人彫琢之.至於治國家, 則曰 ‘姑舍女所學而從我.’ 則何以異於敎玉人彫琢玉哉?(위거실, 즉필사공사구대목. 공사득대목, 즉왕희, 이위능승기임야. 장인착이소지, 즉왕노, 이위불승기임의. 부인유이학지, 장이욕행지, 왕왈 ‘고사여소학이종아.’ 즉하여? 금유박옥어차, 수만일, 필사옥인조탁지.지어치국가, 즉왈 ‘고사여소학이종아.’ 즉하이이어교옥인조탁옥재?) 2-9]

 앞의 ‘공사득대목’(工師得大木)에서 ‘공사’는 ‘공장(工匠)의 우두머리’를 말한답니다. 그래서 나는 ‘도목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장인착이소지’(匠人斲而小之)에서 ‘장인’은 ‘보통 목수’를 이른답니다. 또, ‘금유박옥어차’(今有璞玉於此)에서 ‘박옥’은 ‘갈고 다듬지 않은, 땅에서 캐낸 대로의 옥’을 가리킨답니다.

  “음악을 홀로 즐기는 것과 남들과 함께 즐기는 것 가운데, 어느 편이 더 즐겁겠습니까?”(獨樂樂與人樂樂, 孰樂? 독악락여인악락, 숙락?)
 “홀로 즐기는 쪽이 남들과 함께 즐기는 것만 못하겠지요.”(不若與人 불약여인)
 맹자와 왕이 나누는 이 대화에서, 문득 집히는 일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 풍년이 들면 농부들이 모두 콧노래를 부릅니다. 농악 소리를 들으면 절로 어깨가 들썩거려집니다. 이는, 모두가 함께 즐겁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들판에서 듣는 소의 ‘워낭소리’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답습니다.

 울린다, 먼 산 너머 돌밭 가는 워낭소리
 꿈결인 양 복사꽃은 피었다가 바로 지고
 새벽에 산자락 타면 소 울음도 들린다.

 고향 녘 바라보면 그저 착한 그 눈망울
 흘러가는 구름 밖에 시린 마음 놓아 두고
 슬픈 듯 안쓰러운 듯 소의 눈이 젖는다.

 그린다, 멍에 하나 휜 하늘로 얹어 메고
 저 멀찍이 비탈길에 가시 숲이 우거져도
 묵묵히 수레를 끄는 황소 숨결 살린다.
                      -졸시 ‘워낭소리’

 소야말로 농부와 그 삶을 함께 걸어갑니다. 즐거울 때는 함께 웃고 슬플 때는 함께 웁니다. 그러니 그 모습도 퍽이나 닮았다고 여겨집니다. 더없이 순한 그 성품이 그렇다는 말이고, 묵묵히 일하는 그 모습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 소가 험한 길을 걸어가며 ‘목에 매단 워낭’을 ‘딸랑딸랑’ 흔듭니다. 그 소리가 들판 저 멀리까지 퍼져 나갑니다. 그 소리를 듣는 농부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피어납니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