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아니 '멍쯔' 이야기

15. 덕성이 속에 가득차면 '아름답다.'라고 한다(글: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4. 3. 18:53

15. 덕성이 속에 가득차면 ‘아름답다’라고 한다



 하루는 제(齊) 나라 사람인 ‘호생불해’(浩生不害, ‘불해’가 이름임)라는 사람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자인 ‘악정자’(樂正子)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착한 사람이고 미더운 사람이오.”
 “무엇을 ‘착하다’라고 하며, 무엇을 ‘미덥다’라고 합니까?”
 “하고자 함이 옳은 것을 ‘착하다’라고 하며, 착한 덕성을 자기 몸에 지니고 있으면 ‘미덥다’라고 하오. 착한 일을 힘써서 하여 그 덕성이 속에 가득 차면 ‘아름답다’라고 하며, 그 덕성이 가득 차서 밖으로 빛나면 ‘훌륭하다’라고 하오. 그 덕성이 훌륭해서 남을 느끼도록 하여 마음이 변하게 만들면 ‘거룩하다’라고 하며, 거룩해서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면 ‘신령하다’라고 하오. 악정자는 앞의 두 가지 덕성 가운데에 있고 나머지 네 가지 덕성 아래에 있소.”

 [浩生不害問曰 ‘樂正子何人也?’ 孟子曰 ‘善人也 信人也’ ‘何謂善? 何謂信?’ 曰 ‘可欲之謂善 有諸己之謂信 充實之謂美 充實而有光輝之謂大 大而化之之謂聖 聖而不可知之之謂神. 樂正子, 二之中四之下也.’(호생불해문왈 ‘악정자하인야?’ 맹자왈 ‘선인야, 신인야.’ ‘하위선? 하위신?’ 왈 ‘가욕지위선 유저기지위신 충실지위미 충실이유광휘지위대 대이화지지위성 성이불가지지지위신. 악정자, 이지중사지하.’) 14-25]

 어느 날, 제(齊) 나라 선왕(宣王)이 앉아 있을 때, 그 옆에 ‘순우곤’(淳于髡)이 모시고 있었답니다. ‘순우곤’이란 사람이 기억납니까? 앞에서 이야기했지요.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으로,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졌다면 손으로 직접 잡고 끌어내어도 됩니까?’라고 맹자에게 물었지요. 선왕이 그 순우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께서는 과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겠소?”
 “옛날 왕들은 좋아하는 것이 네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왕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세 가지밖에 안 되는군요!”

 [古者所好四, 而王所好三焉(고자소호사, 이왕소호삼언) 설원 249]

 “옛사람들이 좋아했던 것이 내가 좋아하는 바와 어떤 차이가 있소?”
 “옛사람들은 말을 좋아했는데 왕께서도 말을 좋아하십니다. 옛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좋아했는데, 왕께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또 옛사람들은 여자를 좋아했는데, 왕 역시 여자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선비를 좋아했는데, 왕께서는 선비를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古者好馬, 王亦好馬. 古者好味, 王亦好味. 古者好色, 王亦好色. 古者好士, 王獨不好士.(고자호마, 왕역호마. 고자호미, 왕역호미. 고자호색, 왕역호색. 고자호사, 왕독불호사.) 설원249]

 “나라에 선비가 없을 따름이지, 있다면 과인 역시 그들을 좋아했을 거요.”
 “옛날에는 ‘화류’(驊騮)나 ‘기기’(騏驥) 등의 ‘이름난 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물론 없습니다. 그런데도 임금께서는 없는 중에도 골라서 말을 좋아하고 계십니다. 또 옛날에는 표범이나 코끼리의 태(豹象之胎) 같은 요리 거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물론 없습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없는 중에서 구하여 맛을 즐기고 계십니다. 그런가 하면, 옛날에는 ‘모장’(毛廧)이나 ‘서시’(西施) 같은 예쁜 여인(天下之美人)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무리 속에 예쁜 여자를 골라서 즐기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왕께서는 반드시 ‘옛날의 성스러운 왕들을 모셨던 선비’(堯舜禹湯之士)를 기다린 다음에야 이들을 좋아하실 양이면 옛날의 성스러운 왕들을 모셨던 그런 선비 역시 왕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선왕은 아무런 말을 못 하였다고 합니다. 과연, 순우곤은 말을 아주 잘하는군요. 여기에서 ‘화류’나 ‘기기’는 ‘이름난 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모장’이나 ‘서시’는 ‘중국에서 손꼽는 미녀들의 이름’입니다.
 또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나라의 대부인 ‘공항자’(公行子)라는 사람이 아들의 상(喪)을 당했습니다. ‘우사’(右師)라는 벼슬을 지닌 ‘왕환’(王驩)이 조문하러 갔습니다. 그가 그 집 문안으로 들어서자, 어떤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그에게 말을 건넸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옆자리로 와서 말을 건넸습니다. 맹자도 조문을 가서 그 자리에 있었지요. 그러나 ‘왕환’에게는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환’이 불쾌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여러 군자가 모두 나에게 말을 건넸는데도, 오직 맹자만은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이는 나를 무시하는 짓이다.”

 [諸君子皆與驩言, 孟子獨不與驩言, 是簡驩也.(제군자개여환언, 맹자독불여환언, 시간환야) 8-27]

 맹자가 그 말을 전해 듣고 말했습니다.
 “예법에 이르길 ‘조정에선 윗사람의 자리를 지나가서 남과 이야기하지 말고, 층계를 넘어서 남과 절하지 마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예법을 지키려고 했는데 그(자오‘子敖’, 왕환의 자)는 내가 자기를 무시했다고 생각했다니, 이 또한 이상하지 아니한가?”

 [禮, 朝廷不歷位而相與言, 不踰階而相揖也. 我欲行禮, 子敖以我爲簡, 不亦異乎?(예, 조정부력위이상여언, 불유계이상읍야. 아욕행례, 자오이아위간, 불역이호?) 8-27]

 기원전 316년, 맹자가 57살이었을 때입니다. 등(滕) 나라의 문공(文公)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공은 맹자와 만난 적이 있지요. 그래서 맹자는 제(齊) 나라의 객경(客卿)으로 문공의 조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제 나라 선왕(宣王)이 ‘합읍의 대부’(蓋大夫)인 ‘왕환’(王驩)을 부사(副使)로 삼아서 함께 가게 했습니다. 왕환이 아침과 저녁으로 맹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제(齊) 나라에서 등(滕) 나라를 다녀오는 동안, 두 사람은 조문에 관한 일을 한 마디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손추(公孫丑)가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제 나라 객경의 지위가 낮은 게 아니고, 제 나라에서 등 나라를 다녀오는 길이 가까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선 돌아오기까지 조문의 사명에 관한 일을 왕환과 한 마디도 의논하지 않으셨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그 사람이 나서서 모두 처리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孟子爲卿於齊, 出弔於滕, 王使蓋大夫王驩爲輔行. 王驩朝暮見, 反齊滕之路, 未嘗與之言行事也. 公孫丑曰 ‘齊卿之位, 不爲小矣, 齊滕之路, 不爲近矣. 反之而未嘗與言行事, 何也?’ 曰 ‘夫旣或治之, 予何言哉?’(맹자위경어제, 출조어등, 왕사합대부왕환위보행. 왕환조모현, 반제등지로, 미상여지언행사야. 공손추왈 ‘제경지위, 불위소의, 제등지로, 불위근의. 반지이미상여언행사, 하야?’ 왈 ‘부기혹치지, 여하언재?’) 4-6]

 앞의 ‘맹자위경어제’(孟子爲卿於齊)에서 ‘경’은 다른 나라의 사람으로 자문 등에 응하는 ‘객경’(客卿)을 말합니다. 그리고 ‘출조어등’(出弔於滕)에서 등 나라의 ‘조문’은 ‘정공(定公)의 상(喪)’이라고도 하고 ‘문공(文公)의 상(喪)’이라고도 합니다. 나는 ‘문공’으로 보았지요. 

 그리고 그 얼마 후에 맹자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맹자는 제(齊) 나라에서 선조들의 산소가 있는 노(魯) 나라로 와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 다시 제(齊) 나라로 돌아가다가, ‘영읍’(嬴邑)이라는 땅에 머물렀지요. 그때, 제자인 ‘충우’(充虞)가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전날의 장사 때에는 선생님께서 제가 못난 줄을 모르시고 저에게 목수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때는 일이 급해서 제가 감히 여쭙지를 못했습니다. 이젠 말씀을 여쭈어보았으면 합니다. 관의 목재가 너무 좋았던 성싶습니다.”
 “옛날에는 관(棺)과 곽(槨)을 쓰는 데에 일정한 법도가 없었다. 그러다가 중고 시대부터 안쪽 관의 두께를 일곱 치로 정하고 바깥 곽도 거기에 맞게 하였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같이 했으니, 다만 겉모습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관과 곽을 만든 뒤에라야 어버이를 장사 지내는 자식의 마음이 흡족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할 수 없으면 마음으로 흡족할 수 없고, 그렇게 할 만큼의 돈이 없어도 마음으로 흡족할 수 없다. 그런데 법으로도 허용되었고 또 만들 만한 재력도 있으면, 옛사람들도 모두 훌륭하게 관과 곽을 만들었다. 나만 어찌 그렇게 하지 못하겠느냐? 또 시체가 완전히 흙으로 변할 때까지는 흙이 살에 닿지 않게 하는 것이 자식 된 자의 마음에도 좋지 않겠느냐? 내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군자는 천하의 재물을 아끼기 위해 자기 어버이의 장례를 인색하게 치르지는 않는다.’라고.”

 [充虞請曰 ‘前日不知虞之不肖, 使虞敦匠事, 嚴, 虞不敢請, 今願竊有請也, 木若以美然.’ 曰 ‘古者棺槨無道, 中古棺七寸, 槨稱之. .自天子達於庶人, 非直爲觀美也, 然後盡於人心. 不得 不可以爲悅, 無財 不可以爲悅, 得之爲有財 古之人皆用之 吾何爲獨不然? 且比化者 無使土親膚 於人心獨無恔乎? 吾聞之也, 君子, 不以天下儉其親’(충우청왈 ‘전일부지우지불초, 사우돈장사, 엄, 우불감청, 금원절유청야, 목약이미연.’ 왈 ‘고자관곽무도. 중고관칠촌, 곽칭지. 자천자달어서인, 비직위관미야, 연후진어인심. 부득 불가이위열, 무재 불가이위열 득지위유재 고지인개용지 오하위독불연? 차비화자 무사토친부 어인심독무효호? 오문지야, 군자, 불이천하검기친) 4-7]

 맹자가 제(齊) 나라의 ‘객경’으로 있을 때에 그의 어머니가 제 나라 땅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자신의 본국인 노(魯) 나라로 가서 장례를 모셨습니다. 맹자는, 추(鄒) 나라 태생이지만 그의 선조가 노(魯) 나라의 공족(公族, 공자 때에 삼환‘三桓’이라고 부르는 세 권력 대부 중 하나)인 맹손씨(孟孫氏)였답니다. 그래서 원문에서는 ‘자제장어노’(自齊葬於魯)라고 했습니다. 
 앞의 ‘중고관칠촌’(中古棺七寸)에서 ‘중고’는 ‘주(周) 나라 초기에 주공(周公)이 예법을 제정할 당시’를 이릅니다. 그리고 ‘곽칭지’(槨稱之)는, ‘바깥 관의 두께는 안쪽 관의 두께에 어울리게 한다는 뜻’이랍니다. 또, ‘차비화자’(且比化者)에서 ‘화자’는 ‘죽은 사람’ ‘변화하는 것’ ‘유형(有形)의 만물’ 등을 나타내고 ‘비’는 ‘위’(爲)의 뜻으로 풀어야 한답니다. 

 맹자가 제(齊) 나라로 왔을 때, ‘심동’(沈同)이라는 대신이 사사로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연(燕)나라를 쳐도 좋겠습니까?”
 “쳐도 좋습니다. 연(燕)나라 왕인 ‘자쾌’(子噲)가 연(燕) 나라의 국토를 자기 마음대로 남에게 넘겨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연(燕) 나라의 재상인 ‘자지’(子之)도 ‘자쾌’에게서 연(燕) 나라 국토를 함부로 받을 수 없는 법입니다. 여기에 한 벼슬아치가 있다고 칩시다. 당신이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왕의 허락도 없이 당신의 녹봉과 벼슬을 사적으로 그 사람에게 주고, 그 사람도 또한 왕의 허락 없이 사적으로 당신에게서 그것들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자쾌’가 ‘자지’에게 연 나라를 물려준 것도 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沈同以其私問曰 ‘燕可伐與?’ 孟子曰 ‘可. 子噲不得與人燕, 子之不得受燕於子噲. 有仕於此, 而子悅之, 不告於王而私與之吾子之菉爵, 夫士也亦無王命, 而私受之於子, 則可乎? 何以異於是(심동이기사문왈 ‘연가벌여?’ 맹자왈 ‘가. 자쾌부득여인연, 자지부득수연어자쾌. 유사어차, 이자열지, 불고어왕이사여지오자지록작, 부사야역무왕명, 이사수지어자, 즉가호? 하이이어시.’) 4-8]

 그런데 그 후에 제(齊) 나라 사람들이 연(燕) 나라를 쳤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맹자의 제자인 듯)이 맹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 나라에게 권하여 연나라를 치라고 하셨다는데, 그러신 적이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다. ‘심동’이 ‘연 나라를 쳐도 좋겠느냐?’라고 묻기에 ‘쳐도 좋다.’라고 대답한 것뿐이다. 그랬더니 그도 그렇게 여겨서 연 나라를 쳤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만약 나에게 ‘누가 연 나라를 칠 수 있는가?’라고 물었더라면, ‘하늘의 뜻을 받드는 자만이 칠 수가 있다.’라고 대답할 작정이었다. 만약 여기에 사람을 죽인 자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살인자를 죽여도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좋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사람이 다시 ‘누가 그 살인자를 죽여야 할까?’라고 묻는다면 ‘형벌의 집행을 맡은 관리만이 그 살인자를 죽일 수 있다,’라고 대답할 터이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연 나라처럼 무도한 제(齊) 나라가 연(燕) 나라를 치는 판에 내가 어떻게 연(燕) 나라를 치라고 권했겠는가?”

 [齊人伐燕. 或問曰 ‘勸齊伐燕, 有諸?’ 曰 ‘未也. 沈同問曰 <燕可伐與?> 吾應之曰 <可.> 彼然而伐之也. 彼如曰 <孰可以伐之?> 則將應之曰 <爲天吏, 則可以伐之.> 今有殺人者, 或問之曰 <人可殺與?> 則將應之曰 <可.> 彼如曰 <孰可以殺之?> 則將應之曰 <爲士師 則可以殺之.> 今以燕伐燕, 何爲勸之哉.‘(제인벌연. 혹문왈 ‘권제벌연, 유저?’ 왈 ‘미야. 심동문왈 <연가벌여?> 오응지왈 <가.> 피연이벌지야. 피여왈 <숙가이벌지?> 즉장응지왈 <위천리, 즉가이벌지.> 금유살인자, 혹문지왈 <인가살여?> 즉장응지왈 <가.> 피여왈 <숙가이살지?> 즉장응지왈 <위사사 즉가이살지.> 금이연벌연, 하위권지재.’) 4-8]

 제 나라가 연 나라를 쳐서 이겼을 때,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어떤 이는 과인더러 연 나라 땅을 빼앗지 말라고 하며, 어떤 이는 과인더러 연나라 땅을 빼앗으라고 합니다. 만 승의 우리 제 나라가 만승 의 연 나라를 50일 만에 쳐부수었으니(以萬乘之國 伐萬乘之國 五旬而擧之 이만승지국 벌만승지국 오순이거지), 사람의 힘으로는 이렇게까지 될 수 없었겠지요. 우리가 저 연 나라 땅을 빼앗지 않으면 반드시 하늘에서 재앙이 내릴 것 같습니다. 그러니 빼앗아 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빼앗아서 연 나라 백성들이 기뻐한다면 빼앗으십시오. 옛사람들 가운데 그렇게 한 사람이 ‘무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빼앗아서 연 나라 백성들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빼앗지 마십시오. 옛사람 가운데 그렇게 한 사람이 ‘문왕’이었습니다. 만 승의 나라로 만 승의 나라를 치는데, 밥 한 그릇과 물 한 그릇을 가지고 와서 왕의 군대를 환영한 까닭이 어찌 다른 데 있겠습니까? 물과 불의 재난을 피하려고 했던 일입니다. 만약에 물이 더욱 깊어지고 불이 더욱 뜨거워진다면 역시 다른 곳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齊人伐燕勝之. 宣王問曰 ‘或謂寡人勿取, 或謂寡人取之. 以萬乘之國 伐萬乘之國 五旬而擧之, 人力不至於此, 不取必有天殃. 取之何如?’ 孟子對曰 ‘取之而燕民悅, 則取之. 古之人有行之者 武王是也. 取之而燕民不悅 則勿取. 古之人有行之者, 文王是也. 以萬乘之國, 伐萬乘之國, 簞食壺漿以迎王師 豈有他哉? 避水火也. 如水益深, 如火益熱, 亦運而已矣’(제인벌연승지. 선왕문왈 ‘혹위과인물취, 혹위과인취지. 이만승지국 벌만승지국 오순이거지 인력부지어차, 불취필유천앙. 취지하여?’ 맹자대왈 ‘취지이연민열, 즉취지. 고지인유행지자 무왕시야. 취지이연민불열 즉물취. 고지인유행지자, 문왕시야. 이만승지국, 벌만승지국, 단사호장이영왕사 기유타재? 피수화야. 여수익심, 여화익열, 역운이이의) 2-10]

 앞의 ‘오순이거지’(五旬而擧之)에서 ‘오순’은 ‘50일’을 가리킵니다. 즉, ‘순’(旬)은, ‘십간(十干)을 한 바퀴 돈다.’라는 의미로 ‘열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단사호장’(簞食壺漿)에서 ‘단’은 ‘대그릇’을 말하고 ‘사’는 ‘밥’을 말하며 ‘호’는 ‘호리병’을 말합니다. 그리고 ‘장’은 ‘갖가지 마실 것’을 말합니다. 즉, ‘밥’은 ‘대바구니’에 담고 ‘마실 것’은 ‘호리병’에 넣습니다.
 
 그런데 연(燕) 나라 땅을 빼앗았습니다. 제후들이 장차 연(燕) 나라를 구하려고 했지요. 그러자 제(齊) 나라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제후 가운데 과인을 치려고 하는 자들이 많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왕께선 빨리 명령을 내리셔서 포로로 잡혀 온 늙은이와 아이들을 돌려보내시고, 귀중한 기물들을 옮겨 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연 나라 백성들과 의논하셔서 그 나라 임금을 세운 뒤에 철수하신다면, 제후들의 공격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齊人伐燕取之. 諸侯將謀救燕. 宣王曰 ‘諸侯多謀伐寡人者, 何以待之?’ 孟子對曰 ‘王速出令, 反其旄倪, 止其重器. 謀於燕衆, 置君而後去之, 則猶可及止也’(제인벌연취지. 제후장모구연. 선왕왈 ‘제후다모벌과인자, 하이대지?’ 맹자대왈 ‘왕속출령, 반기모예, 지기중기. 모어연중, 치군이후거지, 즉유가급지야’) 2-11]
 
 선왕(宣王)은 맹자의 말을 듣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결국 연(燕) 나라 사람들이 곧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선왕이 말했습니다.
 “맹자를 보기가 매우 부끄럽다.”
 그러자 진가(陳賈, 제 나라 대부)가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근심하실 게 없습니다. 왕께서는 스스로 주공(周公)에 비교해서 누가 더 지혜롭고 인자하다고 여기십니까?”
 왕이 말했습니다.
 “오! 그게 무슨 말이오?”
 “주공이 관숙(管叔)에게 은(殷) 나라를 감시하라고 하였는데, 관숙이 은 나라와 함께 반기를 들었습니다. 알고도 시켰다면 그는 인자하다고 할 수 없으며, 모르고 시켰다면 그는 지혜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자함과 지혜로움은 주공도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왕께서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제가 청하여 만나보고 해명하겠습니다.”
 진가가 맹자를 만나서 말했습니다.
 “주공은 어떤 분이십니까?”
 “옛날 성인이십니다.”
 “관숙에게 은나라를 감독하라고 시켰는데, 관숙이 은나라와 함께 반기를 들었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주공은 그가 반기를 들 줄 알고도 시켰습니까?”
 “몰랐습니다.”
 “그러면 성인도 허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주공은 동생이고 관숙은 형입니다. 그러니 주공의 허물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소? 그런데 옛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고쳤지만, 지금의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갑니다. 옛 군자는 그 허물이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서 백성들이 모두 그것을 보았고, 허물을 고치게 되면 백성들이 모두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군자는 그대로 밀고 나갈 뿐만 아니라 변명까지 합니다.”

 [燕人畔, 王曰 ‘吾甚慙於孟子.’ 陳賈曰 ‘王無患焉. 王自以爲與周公, 孰仁且智?’ 王曰 ‘惡! 是何言也?’ 曰 ‘周公使管叔監殷, 管叔以殷畔. 知而使之, 是不仁也. 不知而使之, 是不智也. 仁智, 周公未之盡也, 而況於王乎? 賈請見而解之.’ 見孟子間曰 ‘周公何人也?’ 曰 ‘古聖人也.’ 曰 ‘使管叔監殷, 管叔以殷畔也, 有諸?’ 曰 ‘然.’ 曰 ‘周公知其將畔而使之與?’ 曰 ‘不知也.’ ‘然則聖人且有過與?’ 曰 ‘周公弟也, 管叔兄也, 周公之過 不亦宜乎? 且古之君子, 過則改之, 今之君子, 過則順之. 古之君子, 其過也, 如日月之食, 民皆見之, 及其更也, 民皆仰之. 今之君子, 豈徒順之, 又從而爲之辭.’(연인반, 왕왈 ‘오심참어맹자.’ 진가왈 ‘왕무환언. 왕자이위여주공, 숙인차지?’ 왕왈 ‘오! 시하언야?’ 왈 ‘주공사관숙감은, 관숙이은반. 지이사지, 시불인야. 부지이사지, 시부지야. 인지, 주공미지진야, 이황어왕호? 가청견이해지.’ 견맹자간왈 ‘주공하인야?’ 왈 ‘고성인야.’ 왈 ‘사관숙감은, 관숙이은반야, 유저?’ 왈 ‘연.’ 왈 ‘주공지기장반이사지여?’ 왈 ‘부지야.’ ‘연즉성인차유과여?’ 왈 ‘주공제야, 관숙형야, 주공지과 불역의호? 차고지군자, 과즉개지, 금지군자, 과즉순지. 고지군자, 기과야, 여일월지식, 민개견지, 급기경야, 민개앙지. 금지군자, 기도순지, 우종이위지사.’) 4-9] 

 앞의 ‘연인반’(燕人畔)에서 ‘반’은 ‘반’(叛)과 같다고 합니다. 제(齊) 나라 선왕(宣王)이 연(燕) 나라를 차치하고 나서 2년 만에 연 나라 사람들이 공자(公子) ‘평’(平)을 옹립하고 제 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고지군자’(古之君子)는 은연중에 ‘주공’(周公)을 가리키고, ‘금지군자’(今之君子)는 은연중에 제 나라 ‘선왕’(宣王)을 가리킵니다.

 맹자는 말했습니다. <‘하고자 함이 옳은 것’을 ‘착하다’라고 하며, ‘착한 덕성을 자기 몸에 지닌 것’을 ‘미덥다’라고 하며. ‘착한 일을 힘써서 하여 그 덕성이 속에 가득 찬 것’을 ‘아름답다’라고 한다.>라고요. 그렇다면 ‘하고자 함이 옳은 것’은 과연 무엇을 가리킬까요?
 나는 이를 한 마디로 ‘베풂’(德)이라고 풀이합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보내는 미소’가 가장 큰 베풂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십시오, 갖가지 꽃들의 미소가 얼마나 이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지. 그 베풂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꽃들의 미소는 그 하고자 함이 옳으니 착하고, 꽃들은 그 착함을 몸에 지니고 있으니 미더우며, 그리고 ‘꽃들이 이처럼 아름다운 이유’는 그러한 미소로써 ‘그 착함이 몸에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제법 굵은 소나기가 후드득 쏟아진 다음
 실없는 실잠자리 맴을 돌다 떠난 자리
 그녀는 목을 늘이며 긴 하품을 입에 문다.

 넌지시 까만 눈이 물거울을 굽어보면
 꼭 닮은 또 한 얼굴이 마주 보며 미소 띤다,
 행여나 누가 볼세라 붉어지는 그 뺨들-.

 소매로 가릴수록 더욱 비린 그녀 살내
 철없는 철바람이 곁을 스치기만 해도
 ‘어머나!’ 소스라치며 그만 몸을 움츠린다.
                      -졸시 ‘연꽃 소묘’

 나는 꽃 중에서도 ‘연꽃’을 가장 좋아합니다. 물론, 아름다움이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베풂’ 또한 클 수밖에 없습니다. 넓은 못에 연꽃이 가득 피어나 있는 모습이야말로 절로 탄성을 지르게 만듭니다. 그 광경을 보는 사람까지 ‘착한 마음’을 지니게 만듭니다. 문득, 중국 북송 시대 유학자인 주돈이(周敦頤)의 애연설(愛蓮說)이 떠오릅니다. 
 “내가 오직 연(蓮)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 깨끗이 서 있는 품은, 멀리서 보되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고 한다.”
 구태여 주돈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연꽃 가운데에 서 있으면 저절로 착해지고 미더워지며 아름다워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들 그 베풂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겠지요.(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