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85

제22장, 휘어지면 고스란하게 되고(역: 녹시 김 재 황)

길- 제22장 휘어지면 고스란하게 되고 휘어지면 고스란하게 되고 구부리면 바르게 된다. 우묵하면 고이게 되고 깨지면 새롭게 된다.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는 하나를 껴안아서 하늘 아래의 본보기로 삼는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니, 그 까닭에 밝다.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으니, 그 까닭에 빛난다.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니, 그 까닭에 ‘애쓴 보람’이 있다. 스스로 뽐내지 않으니, 그 까닭에 어른이다. 무릇 오직 다투지 않는다. 그 까닭에 하늘 아래 그와 함께하여 다툴 수가 없다. 예로부터 이른바 ‘휘어지면 고스란하게 되는 것’이 어찌 헛된 말이겠는가. 참으로 고스란하게 되는 것과 같이 되돌아가게 된다.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敝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抱一 爲天下式...

제21장, 크고 깊은 베풂의 모습은(역: 녹시 김 재 황)

길- 제21장 크고 깊은 베풂의 모습은 크고 깊은 베풂의 모습은 길만을 헤아리고 따를 뿐이다. 길이라는 것의 됨됨이는 어슴푸레하게 헤아리고 흐릿하게 헤아린다. 어슴푸레하고 흐릿하구나! 그 가운데에 일이 있다. 흐릿하고 어슴푸레하구나! 그 가운데에 생김새가 있다. 깊고 아득하구나! 그 가운데에 맑은 마음이 있다. 그 맑은 마음이 매우 참되어서 그 가운데에 믿음이 있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사라진 적이 없다. 이로써 모든 것의 처음을 살펴본다. 내가 어찌 모든 것의 맨 처음을 알겠는가. 이와 같기 때문이다. 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 恍兮惚兮! 其中有物. 惚兮恍兮! 其中有象.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古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공덕..

제20장, 쓸데없는 배움을 끊어 버리면(역: 녹시 김 재 황)

길- 제20장 쓸데없는 배움을 끊어 버리면 쓸데없는 배움을 끊어 버리면 근심이 없다. ‘예’와 ‘응’은 서로 떨어짐이 얼마나 되는가. ‘착함’과 ‘모짊’은 서로 떨어짐이 어떠한가. 다른 사람이 꺼리는 것을 꺼리지 않을 수 없으니 거칠어서 그 가운데가 아직 자라지 않았구나. 뭇사람이 기뻐하고 기뻐하여 소나 양의 고기가 그득한 잔칫상을 받는 것 같고, 봄날에 높이 지은 다락집을 오르는 것 같다. 나는 홀로 머무르는데 그 낌새가 아직 없어서 마치 갓난아기가 아직 웃지 않는 것 같으며, 나른하고 고달픈데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다. 뭇사람은 모두 남는 게 있는데 나만 홀로 모자란 것 같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인 양, 빙빙 돌고 도는구나. 예사로운 사람들은 밝고 밝지만 나만 홀로 어둡고 어둡다. 예사로운 ..

제19장, '거룩함'을 끊고 '슬기로움'을 버리면(역: 녹시 김 재 황)

길- 제19장 ‘거룩함’을 끊고 ‘슬기로움을’ 버리면 ‘거룩함’을 끊고 ‘슬기로움’을 버리면 나라 사람에게 ‘보탬이 됨’이 백 곱절이나 늘어나게 되고, ‘어짊’을 끊고 ‘의로움’을 버리면 나라 사람에게 ‘아들딸이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과 ‘어버이가 아들딸을 아껴 키우는 마음’이 다시 돌아오게 되며, ‘약삭빠름’을 끊고 ‘보탬이 됨’을 버리면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는 짓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게 된다. 이 세 가지는 헤아려 보건대 글이 모자란다. 그런 까닭에 딸린 곳을 있게 하니, ‘깨끗함’을 보고 ‘수수함’을 껴안아서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하고자 함’을 줄여야 한다.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此三者 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절성기지 민리백배 절인..

제18장, 큰 길이 무너지고 나서(역: 녹시 김 재 황)

길- 제18장 큰 길이 무너지고 나서 큰 길이 무너지고 나서 ‘어짊’이니 ‘옳음’이니 하는 것들이 있게 되었고, ‘꾀’라든가 ‘슬기로움’이 나와서 ‘큰 거짓’이 있게 되었다. 모든 피붙이가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게 되고 나서 ‘아들딸이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과 ‘어버이가 아들딸을 아껴 키우는 마음’이 있게 되었고, 나라가 어둡고 어지럽게 되고 나서 ‘한가운데로부터 우러나는 마음을 지닌, 참된 벼슬아치’가 있게 되었다.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대도폐 유인의 지혜출 유대위.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뜻 찾기] ‘대도폐’(大道廢)에서 ‘대도’를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길(道)’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저 ‘큰 길’이라고 풀었다. 그리고 ‘지혜출’(智慧..

제17장, 크게 위에 있는 것은(역: 녹시 김 재 황)

길- 제17장 크게 위에 있는 것은 크게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서 그게 있음을 알 뿐이고, 그다음은 가까이하여 그것을 기린다. 또 그다음은 그것을 꺼리고, 그다음은 그것을 업신여긴다. 믿음이 넉넉하지 못하게 되면 믿지 못함이 있다. 근심하여 그 말이 값지고, 일이 잘되어서 보람을 이루어도 나라 뭇사람은 모두 ‘내가 스스로 그러하다.’라고 한다. 太上 下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태상 하지유지 기차 친이예지. 기차 외지 기차 모지. 신부족언 유불신언. 유혜기귀언 공성사수 백성개위아자연) [뜻 찾기] ‘태상’(太上)은 ‘최상(最上), 즉 가장 높은 임금’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태상’은 ‘태고’(太古)로 풀이되기도 한다. 그..

제16장, 빔이 끝에 이르고(역: 녹시 김 재 황)

길- 제16장 빔이 끝에 이르고 빔이 끝에 이르고 도타운 고요함을 지키면 모든 것이 함께 일어난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그 돌아감을 본다. 무릇 싱싱하게 자란 것들이 각기 그 뿌리로 다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감을 ‘고요함’이라고 말하고, 이를 가리켜서 ‘이르는 대로 돌아감’이라고 일컫는다. ‘하라고 이르는 대로 돌아감’을 ‘떳떳하다’라고 말하고, ‘떳떳함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고 말한다. ‘떳떳함’을 알지 못하면 함부로 날뛰어서 ‘언짢음’을 짓는다. ‘떳떳함’을 아는 게 ‘꾸짖지 아니함’이고 ‘꾸짖지 아니함’이 곧 ‘사사롭지 않게 나누는 것’이며 ‘사사롭지 않게 나누는 것’은 곧 ‘으뜸’이고 ‘으뜸’은 곧 ‘하늘’이며 ‘하늘’은 곧 ‘길’이고 ‘길’은 곧 ‘오래감’이니, 몸이 다하도록 위태롭지 않다..

제15장, 예로부터 좋은 선비라고 하는 사람은(역: 녹시 김 재 황)

길- 제15장 예로부터 좋은 선비라고 하는 사람은 예로부터 좋은 선비라고 하는 사람은, 뚜렷하지 않고 야릇하며 거무레함을 꿰뚫기에 깊이를 알 수 없다. 무릇 오직 알 수 없다. 그 까닭에 모습을 억지로 그려 본다. 머뭇거림은 마치 겨울에 내를 건너는 것 같고, 망설임은 마치 이웃한 네 집이 볼까 보아서 두려워하는 것 같으며, 의젓함은 그게 마치 손님과 같고, 흩어짐은 마치 얼음이 조금 지나서 풀리는 것 같으며, 도타움은 그게 마치 수수함과 같고, 밝기는 그게 마치 골짜기 같으며, 섞이기는 그게 마치 흐린 것 같다. 누가 익숙하게 잘 ‘흐린 것을 고요히’ 하여 서서히 맑아지도록 할 수 있으며, 누가 익숙하게 잘 편안함 속에 이를 움직여서 서서히 태어나도록 할 수 있겠는가. 이 길을 지키는 사람은 ‘채우는 ..

제14장, 보려고 해도 안 보이니(역: 녹시 김 재 황)

길- 제14장 보려고 해도 안 보이니 보려고 해도 안 보이니, 이름을 ‘고르고 판판하다.’라고 말한다. 들으려고 해도 안 들리니, 이름을 ‘드물다.’라고 말한다. 잡으려고 해도 얻을 수 없으니, 이름을 ‘가늘다.’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는 ‘다다라서 따짐’이 옳지 않다. 그 까닭에 섞어서 하나로 삼는다. 그 위는 밝지 않고 그 아래는 어둡지 않으며 노끈 같고 노끈 같아서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돌아가니 이를 일컬어서 ‘모습 없는 모습’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생김새이니 이를 일컬어서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여 알 수가 없다.’라고 한다. 앞에서 마주 보아도 그 이마와 코를 볼 수 없고 뒤를 따라가면서 보아도 그 엉덩이를 볼 수 없다. 예전의 길을 붙잡아 지금의 있음을 다..

제13장, 귀염받음도 미움받음도 놀라는 듯이(역: 녹시 김 재 황)

길- 제13장 귀염받음도 미움받음도 놀라는 듯이 귀염받음도 미움받음도 놀라는 듯이 하고, 큰 근심을 몸과 같이 빼어나게 여긴다. 어찌하여 귀염받음도 미움받음도 놀라는 듯이 하라고 하는가? 귀여움은 아래를 잘되게 함이니 얻어도 놀라는 듯이 하고 잃어도 놀라는 듯이 한다. 이를, ‘귀염받음도 미움받음도 놀라는 듯이 한다.’라고 일컫는다. 어찌하여 큰 근심을 몸과 같이 빼어나게 여기라고 하는가? 나에게 큰 근심이 있음은 ‘나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까닭이다. 내 몸이 없음에 이르면 나에게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그 까닭에 몸을 빼어나게 여기듯 하늘 아래를 잘 되게 하면 하늘 아래를 부쳐도 옳을 것 같고, 몸을 아끼듯 하늘 아래를 잘 되게 하면 하늘 아래를 내맡겨도 옳을 것 같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