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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호 에세이 '글 쏟아질라'

시조시인 2013. 7. 17. 12:24

 

 

(독후감)

 

                       이난호 에세이집 글 쏟아질라를 읽고

 

                                                                                                                       김 재 황

 

수필 '재복이'에서 가슴 뭉클함이 집힌다어릴 때의 기억이 불쑥 내 앞에 얼굴을 내민다중학교 2학년 땐가, 그 당시에 나보다는 몇 살 위인 여자 아이가 우리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는데 나는  그 아이 앞에서 공연히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일을 어머니에게 들키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편 한 펀 수필을 읽어 나가며 고개도 끄덕이며 가슴도 쓸어내리다가. 수필 '여름 동태'에 눈이 멎었다. 순간 머리가 핑 돈다. 나도 신혼 때가 있었다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녔기에, 처갓집에서는 선뜻 딸을 내주었다. 그런데 나는 결혼을 몇 달 앞두고 덜컥 사표를 냈다. 그리고 부모님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으니, 집 사람은 얼마나 앞이 캄캄했을까. 참다못하고 어느 날,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어쩌랴. 탈신지계. 나는 부모님 앞에서 '집사람이 양품점을 하겠다니 집을 나가겠다.' 선언하고 부모님에게서 무작정 탈출했다. 그리고 방 하나 딸린 점포를 구한 게, 서울 중곡동 외진 곳이었다. 뜻하지 않게 양품점 주인이 된 아내는 얼마나 황망했겠는가. 그래도 흉내는 내야 한다며 남대문에서 옷가지 등을 사다가 걸고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는 아무나 하나곧 가게 문은 닫게 되고, 물건은 거의 재고가 되었다. 그냥 주거로 삼고 살다가 연탄가스가 새는 바람에 어린 딸을 잃을 뻔했다.

 계속 수필들을 읽고, 2부로 넘어갔다. 그리고 수필 '아버지의 묵음'을 읽다가 잠시 내 아버지를 생각한다. 책방 점원이었던 아버지는 일본군에 징용되어 만주로 가셨는데 '일본인 고참'(지금으로 치면 '상병'이나 될라나)에게 시달림을 받다가 홧김에 하사관 후보 시험을 치르고 하사관(일본군에서는 '오장'이라고 불렀다던가)이 되었다는 것, 나는 이 이야기를 못 들은 걸로 하고 살았다. 이왕 만주로 갔으면 독립군이라도 되셨어야 옳았다고, 늘 머리를 흔들었다.

 수필은 점입가경으로 이어진다. 수필이라면 이쯤은 되어야지, 무릎을 친다. 수필 '118'이 내 소매를 잡는다. '너는 왜 장가 안 가니?' 어머니 성화에 나는 겨우 서른두 살이 거의 지나가는  '1016'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3부로 넘어갔다. , 수필 '빚물이 곡'! 이는 조금만 개작하면 훌륭한 한 편의 단편소설이 될 성싶다. 아니다, 지금 이 자체로도 멋진 소설이다. 감동에 가슴이 찌르르 한다. 그 다음의 수필 "하눌님, 하눌님"도 역시 그렇다

 수필 '목숨'을 대하니, 1950년이 떠오른다그 때, 나는 서울에 할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전쟁이 났다는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대문에 인공기가 붙었다. 그리고 1.4 후퇴 때는 피난을 떠났는데 피난 가는 행렬을 조준하여 비행기에서 집중사격을 가했다그래서 길거리에 시체가 즐비했다

 그리고 수필 '이응백 선생님을 추모함'을 읽다가 '노래방'에 갔다는 대목에서 '춤 대신 노래 백곡'이란 말소리를 다시 듣는다. 아무렴노래라면 얼마든지. 문득 두 손을 허리에 대고 마치 군가 부르듯 씩씩한 모습으로 가요를 부르는 저자를 본다. , "나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으며 비로소 저자의 고향이 '당진'임을 못 박는다당진이라면 지금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그 때문에 그곳 해수온도가 섭씨 2도 정도 높아졌다던가한 번 가서 낚시도 했는데 '우럭'이 잘 잡혔다.

 수필 '어정 7월 동동 8월 설렁--'에서 저자는 특유의 토속어에 달인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문인으로서 이보다 더 긍정적인 게 어디 또 있겠는가. 나도 그런 단어를 하나 찾아내어서 사용한 게 있는데, 그게 바로 '흐놀다'이다. '흐놀다'라는 단어는 타동사로 '몹시 그리워하다'  '동경(憧憬)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속도가 빨라진다. 4부로 넘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제목의 자리를 차지한 수필 '글 쏟아질라'가 나타난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만난 듯 단숨에 눈으로 글을 벌컥벌컥 마신다. , 시원하다!

속도가 붙으니 절로 책장이 넘겨진다. 일사천리로 5부로 넘어가고 마지막 수필까지 읽기를 마친다. 265쪽이다. 이로써 52편의 수필을 모두 읽었다.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계속 좋은 작품을 기대하며 문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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