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 30편) 13. 떡갈잎 그 손 떡갈잎 그 손 김 재 황 지니고 있는 손이 넓으면, 그 마음 또한 커다랗다고 하였던가. 남에게 베푸는 즐거움으로 그 빛깔은 마냥 푸르기만 하다. 생겨나서 단 하루도 쉴 틈이 없이 부지런히 일에만 매달렸으니 살결이야 당연히 거칠지 않겠느냐. 굵은 힘줄이 드러나 있어서 고단한 네 일상을 짐작하게 .. 시 2009.05.30
(다시 시 30편) 12. 흔들리지 않고는 흔들리지 않고는 김 재 황 흔들리기만 하는 풀들도 사실은 길을 가고 있다. 낮에는 노랗게 쓸린 햇빛의 길을 걷고 밤이면 하얗게 닦인 달빛의 ��을 걷는다. 걸어가며 허공에 찍어 놓은 안개 같은 발자국 함께 흔들리지 않고는 결코 딛을 수 없는 그 길. 시 2009.05.29
(다시 시 30편) 11. 먼 곳을 바라보며 먼 곳을 바라보며 김 재 황 길이 너무 머니, 먼 곳을 바라보며 외롭게 모두 걸음을 옮긴다. 달빛을 벗 삼아 밤에만 떠나는 길 긴 그림자가 내 뒤를 따르고, 조심스레 고요만 밟고 가는데 누웠던 들꽃들이 하얗게 잠을 깬다. 우리는 너무 힘든 길을 걷고 있다. 그것도 넓은 들길이 아니라 좁고 험한 산길.. 시 2009.05.28
(다시 시 30편) 10. 놓이는 이유 놓이는 이유 김 재 황 여린 마음을 지니고 달려가면 그 앞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일곱 빛깔의 층계를 딛고 오르면 하늘나라에 이를 수 있을까. 그분은 저 높은 허공 어디에 저리 고운 사다리를 숨겨 두셨는지, 무슨 일에 쓰시려고 커다란 꽃 사다리를 마련해 두셨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커다랗.. 시 2009.05.27
(다시 시 30편) 9. 가까이 가서 보니 가까이 가서 보니 김 재 황 좀 떨어져서 바라보았을 때는 그리 힘 있게 보이던 구릿대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그 몸 여기저기에 깊은 상처가 숨어 있네. 이 세상 어느 목숨인들 상처를 간직하지 않은 몸 있을까. 아픔을 숨기고 살 뿐이네. 그 슬픔도 잎집으로 감싸면 아름다운 무늬가 될지도 몰라. 시 2009.05.26
(다시 시 30편) 8. 모두 젖는다 모두 젖는다 김 재 황 어둠에 잠기면 남몰래 하늘을 바라보며 읊고 있는 나무의 시를 듣는다. 너무나 시리다. 물결은 흘러가고 물소리만 남은 시 가지를 딛고 내린 달빛이 그 위에 몸을 포개고 시가 닿는 자리는 모두 젖는다. 시 2009.05.25
(다시 시 30편) 7. 비워 놓은 까치집 비워 놓은 까치집 김 재 황 미루나무 꼭대기에 높이 지은 집 하나 지붕이 아예 없으니 오히려 맑고 밝은 달빛이 정답게 내려앉는다. 그분 쪽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앉으니 고운 손길이 바닥을 가볍게 쓰다듬는다. 한꺼번에 많은 비가 쏟아져도 그치면 보송보송 잘 마르는 자리 때로는 사나.. 시 2009.05.23
(다시 시 30편) 6. 클린 벤치 속에서 클린 벤치 속에서 김 재 황 바람이 걸러져서 불어오는 곳 그래서 무균상태인 곳 클린 벤치의 내부처럼 깨끗한 숲속 나는 이곳으로 시를 쓰려고 왔다. 순수 그대로 싹이 날 수 있도록 내 손도 소독하고 그저 가슴에 간직한 말을 살며시 꺼내면 된다. 시 2009.05.22
(다시 시 30편) 5. 기다리는 오두막집 기다리는 오두막집 김 재 황 날이 저물고 사방이 어두워졌으니 쉴 곳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간절하게 올리는 기도 속에서 어둠 저 편에 오솔길이 나타나고 그 끝에 작은 불빛 한 점이 반짝인다. 간 적 없었어도 작은 오두막집 지친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으리니, 낡은 쪽마루에 그분이 앉�� 계시리.. 시 2009.05.21
(다시 시 30편) 4. 잠든 얼굴 잠든 얼굴 김 재 황 달빛 아래 잠들어 있는 콩짜개난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눈시울이 젖어 있다. 너무 깊고 맑게 반짝이며 멀어지는 별빛들. 시 2009.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