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의 노래/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국궁의 노래 김 재 황 살짝 몸을 틀고 서서 앞을 곧게 바라보고큰 숨 가득 모아 쉬며 뜻을 걸고 높이 든다.하늘 땅 너른 자리에 오직 내가 있을 뿐. 둥근 달을 겨냥하듯 줄을 힘껏 당겼다가텅 빈 마음 다시 씻고 손을 곱게 놓아준다,바람 꿈 모인 곳으로 날개 펴는 하늘 길. 이미 빛은 떠나가고 소리 겨우 남았으니두 눈 모두 감은 채로 다만 귀를 멀리 연다,산과 강 넘고 건너는 그 기다림 파랄 터.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02
커피에 대하여/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커피에 대하여 김 재 황 처음에 이 땅에서 즐긴 이는 고종 임금그때는 그 이름이 발음 따라 그저 ‘가비!’지금도 저문 빛깔에 무슨 음모 감춘 듯. 아침에 눈을 뜨면 무심결에 찾게 되고그 한 잔을 마셔야만 가슴속이 후련하니비로소 이게 독인 줄 밝고 희게 알겠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1.01
유묘도를 보며/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유묘도를 보며 김 재 황 따사로운 들판 위로 날아오는 벌 한 마리제 세상을 만났으니 두려울 게 있겠는가,누구든 가만 안 둔다, 내 앞길을 막는 자는. 잠을 쫓던 고양이가 그 꼴 아니 같잖겠나,두 귀 번쩍 세우고서 쪼끄만 놈 노려보는모든 게 멈춘 그 순간, 하늘 끝도 팽팽하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31
이어도를 보며/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이어도를 보며 김 재 황 꼬리로 물을 차고 물 밖으로 솟구치니넓게 펼친 지느러미 훨훨 나는 날개인데부릅뜬 그 두 눈알에 하늘빛이 하얗다. 저 아래 얕은 물로 몰려가는 물고기 떼물풀 잎이 흔들려도 소스라쳐 놀라는 듯한 자락 엷은 그늘에 그 숨결을 숨긴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30
지는 나뭇잎을 보며/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지는 나뭇잎을 보며 김 재 황 시린 바람 불어오니 하늘길이 바로 뵈고으스름한 달빛 아래 고향 집은 마냥 먼데뜨겁게 외마디 소리 머금은 듯 떨어진다. 이리저리 뒹굴면서 차마 멀리 못 떠나니여위어 간 마음 밖을 어느 누가 다독대나,함박눈 내린 뒤에야 잠은 한껏 깊어지리.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29
가재 이야기/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가재 이야기 김 재 황 앞으로만 꼭 가느냐? 나는 뒤로 잘 다닌다,굴속 깊이 머물러서 이 세상을 잊다 가도바윗돌 가볍게 지고 ‘단잠 잔다, 긴 밤 내내.’ 잘 숨어서 사는 나를 건드리진 제발 마라!두 눈 감은 듯싶지만, 집게발은 열려 있다,살가죽 꼬집혀 봤지, ‘왈칵 눈물 쏟고 만다.’ 그래 나는 깊은 산골 박혀 사는 촌놈이다,솔바람에 마음 닦고 물소리에 몸 씻으니부럽긴 뭐가 부럽나? ‘꽃도 핀다, 가슴 가득.’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28
추석날 아침/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추석날 아침 김 재 황 산책하러 나가면서 내가 날린 말이란 게놀지 않는 가게 있나 둘러보고 오겠노라,알아서 그걸 뭐하게? 마누라가 꼬집네. 나는 농담 못 하느냐? 큰소리를 뱉었지만내 마음에 찔리는 게 새파랗게 있긴 있지하기야 마누라 말로 ‘꽁생원’이 바로 나.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27
봉황로변 주말농장/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봉황로변 주말농장 김 재 황 산뜻한 잣나무가 꼿꼿하게 일어서고스밀 듯이 간질간질 골짜기를 흐르는 내깊숙이 벽돌집 한 채 한가롭게 잠긴다. 연못에는 아직 어린 버들치들 바삐 놀고살림살이 알 것 없이 졸고 있는 정자 하나바위에 벌렁 누운 채, 시를 외는 태양초여. 고구마 심었더니 산돼지가 맛을 보고말벌들이 제집 찾듯 드나들며 산다는데지내면 고운 잎처럼 단풍들 때 있겠다. (2011년 9월 2일) 오늘의 시조 2024.10.26
아느냐, 내 가슴에/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아느냐, 내 가슴에 김 재 황 아느냐, 내 가슴에 큰 바다가 있다는 걸그 물빛에 갈매기는 파도 따라 크게 울고섬 안에 서러운 둥지 곱게 틀며 산다는 걸. 아느냐, 내 가슴에 저녁놀이 물드는 걸그 핏빛에 수평선은 몸을 떨며 울음 쏟고섬 주위 둘리는 손길 찢긴 아픔 깊다는 걸.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25
수목원 길 거닐며/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수목원 길 거닐며 김 재 황 너털웃음 가득하게 피어 있는 나무 숲길누가 더 예쁠까요? 옆에 서서 사진 찍는가을에 가벼운 여인, 그 모습이 또 꽃이네. 산들바람 불어오니 푸른 소매 나부끼고구름바다 잡아끄는 시샘 또한 가득한데누구냐, 뾰로통한 게? 서녘 길의 저 풀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