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이 된 아들에게/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성년이 된 아들에게 김 재 황 아들아 이제 너는 어깨 넓은 강물이다,골이 깊은 땅을 딛고 달려갈 때 되었으니언제나 무거운 짐은 네가 먼저 지어라. 아들아 지금 너는 가슴 넓은 언덕이다,길게 뻗은 길을 따라 걸어갈 때 되었으니힘들면 그늘을 밟고 숨을 크게 쉬어라. 아들아 항상 너는 높고 푸른 하늘이다,풀과 나무 어린 만큼 껴안을 때 되었으니끝까지 크게 아끼며 이 세상을 살아라.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23
딸 생일에/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딸 생일에 김 재 황 귀한 딸 생일인데 마련할 것 뭐가 있나?나이 많이 먹었으나 나에게는 아이일 뿐무언가 기념될 물건 사 주는 게 좋겠네. 어떤 걸 좋아할까, 이리 생각 저리 생각비싸지는 않더라도 뜻 지닌 게 과연 무엇?모두가 마땅치 않아 케이크를 사 드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22
물소리와 놀다/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물소리와 놀다 김 재 황 (1)비 오니 냇물 따라 복사 꽃잎 동동 뜨고염불 외며 달려 나온 벌거숭이 저 동자승자기가 가물치인 양 물소리를 밟고 논다. (2)주르륵 빗길 내고 절로 솔솔 눈 감기면두루 책장 뒤적이며 온갖 법문 읽는 바람동자승 푸른 꿈결에 때까치를 타고 논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21
산문을 나설 때/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산문을 나설 때 김 재 황 송이로 동백꽃은 그냥 뚝뚝 떨어지고햇살이 날아와서 대웅전을 안고 돈다,화들짝 놀란 빛으로 일어서는 일주문. 두 손을 모았으나 화두 훌쩍 날아갔고저무는 처마 끝엔 봄 숨결이 떨리는데끝끝내 범종 소리가 잡고 놓지 않는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20
꽃 피우는 마술/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꽃 피우는 마술 김 재 황 잘게 찢은 신문지를 손에 넣고 비비니까작은 종이 조각조각 흰 눈발로 날리다가손 한 번 흔드는 순간, 붉은 꽃이 되었네. 내 눈에는 꽃 아니고 불새처럼 보이는데정녕 아직 살아 있는 가슴 아픈 사연인 듯푸드덕 날개 친 다음, 흰 울음을 쏟았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19
첫눈 오는 길/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첫눈 오는 길 김 재 황 축 처진 어깨에도, 열에 들뜬 이마에도목말라 물을 찾듯, 나비처럼 꽃을 찾듯살포시 손길 얹는다, 숨결 시린 마음 준다. 포근히 눈 내린다, 올해 들어 첫눈 온다,파랗게 젊었을 적, 눈과 함께 만난 그녀어디에 살고 있는지, 하얀 말들 그 길 위로.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18
날마다 나는/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날마다 나는 김 재 황 먼동이 트고 있는 숲에 숨은 길이거나땅거미가 내려앉는 공원 뒤뜰 오르막을몸보다 더욱더 힘껏 마음으로 걷는다. 반듯이 턱을 들고 언덕으로 눈길 주며가슴이야 넓고 깊게 큰 숨결로 가지런히꿈만큼 거칠 것 없는 바람 따라 걷는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17
신갈나무 아래/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신갈나무 아래 김 재 황 머리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일을 모두 잊고품에 잔뜩 안겨 있는 온갖 짐도 풀어 얹고그렇지, 나도 가볍게 나무처럼 머문다. 어린 새가 옆에 오면 바람 소리 함께 듣고풀꽃 하나 웃을 때면 물결 소리 위에 눕고아무렴, 나도 푸르게 나무처럼 꿈꾼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16
대학 동문 세 사람이/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대학 동문 세 사람이 김 재 황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말 어찌 없겠는가,가파르게 난 산길을 숨결 낮게 올라가서참나무 아늑한 숲에 자리 깔고 앉았네. 그냥 얼굴 보더라도 마냥 좋은 친구이니쌀막걸리 한 모금에 그 입담이 안주인데한여름 긴긴 하루가 물 흐르듯 지났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10.15
숲속에 앉아서/ 김 재 황 [워낭 소리] 편 숲속에 앉아서 김 재 황 안개는 놀러 가고 그늘만이 깔렸는데이따금 뻐꾸기는 울음 끌며 멀어지고살며시 가랑잎 하나, 내 어깨를 짚는다. 깊숙이 숨어들면 세상 밖이 환해지고조그만 벌레까지 남모르게 여는 하품세월도 고여 있는지, 꿈 자락이 젖는다. (2014년) 오늘의 시조 202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