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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시조집 '연꽃 안으로'

시조시인 2020. 3. 3. 21:24

축! 윤성호 시조집 '연꽃 안으로' 상재


연꽃 안으로(시조사랑시인선 3)(양장본 HardCover)




(해설)

 

노을빛 그리움과 참다운 마음자리

- 윤성호 시인의 시조 세계

 

김 재 황

 

 

1. 들어가며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걸어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을 얼마나 성실하게 걸어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이 결정된다. 윤성호 시인은 고려대학교 농학과 출신으로 농학박사이며 농업과학기술원 농업연구관으로 정년퇴직했다. 퇴직하기 전인 1998년에 이미 시집 새들의 손님이 되어(1998)를 펴냈는데, 우직하고도 겸손하게 1999<시와 산문> 2회 추천으로 다시 시인 등단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또 2004<한국시조협회>의 신인 등단 공모에서 작품 금은화가 당선됨으로써 시조시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에 펴내는 이 시조집 연꽃 속으로는 윤성호 시조시인의 첫 시조집이다. 이 제목부터가 범상하지 않다. 멋진 형상화를 보여준다. 우선 형상이란 뜻부터 살펴본다. ‘시의 사전에는 그 뜻이 문자의 의미는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를 가리키지만, 형상화라는 경우 등의 예술상의 의미는 단순한 사물의 구체적인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상에 내포된 작자의 진실어린 표현을 가리킨다.”라고 되어 있다. 너무 어렵다. 다시 읽어 봐도 그 뜻이 확실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형상화,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어떤 일들을 목격하였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추상적인 생각 따위가 어떠한 방법이나 매체를 가지고 우리의 모든 감각을 통하여 인식할 수 있는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성싶다. 특히 문학에서는 어떤 감동의 단서를 각자의 어떤 생각에 따라 예술적으로 다시 창조하는 것을 가리키는 듯싶다.

아주 쉽게 말하면, ‘형상색깔이나 소리나 맛이나 냄새나 촉감 같은 감각으로 그려질 수 있는 어떤 모습을 가리키고, ‘형상화우리가 모든 감각기관을 통하여 어떤 느낌을 받았을 때, 그것을 그림을 그리듯 설명이 아닌 묘사로 나타내는 것을 이른다고 본다.

그러므로 제목 연꽃 속으로의 그 행위는 멋진 형상화이다. 그러면 연꽃은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그렇다. 바로 시집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시()들을 만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연꽃시집은유이다. 사전적 의미를 본다. ‘은유(隱喩, metaphor), 비유의 또 한 가지 방법인 직유와는 달리, 설명은 완전히 생략하고 비유할 목적을 숨기면서 표면에 직접 그 형상만을 꺼내어 독자의 상상력으로써 그 본질적인 상사성(相似性, similarity)을 알게 해 나간다.’라고 되어 있다.

논어(현문35)에는 자왈 기 불칭기력 칭기덕야’(子曰 驥 不稱其力 稱其德也)라는 글귀가 있다. 이는, ‘천리마는 그 힘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 그 베풂을 칭찬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나는 이를 시인 불칭기재 칭기기심’(詩人 不稱其才 稱其心也: 시인은 그 재주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칭찬하는 것이다)이라고 바꾸었으면 한다.

시조집에 들어 있는 작품을 본다.

 

    꽃술을 가릴 듯이

꽃잎이 나풀대면

 

멀리서 벌 나비가 이끌려 날아오니

 

누군들 꽃부리 속이

궁금하지 않을까.

               -작품 꽃의 구조전문

 

시집이 연꽃으로 변하여 꽃술을 가릴 듯 꽃잎이 나풀대면이 참으로 경이롭다. 시집은 그 표지를 모두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아름다운 연꽃으로 그 꽃잎을 나풀거리면 얼마나 큰 호기심을 일으킬까? 여기에서 벌과 나비는 독자이다. 윤성호 시인은 다시 한 번 누군들 꽃부리 속이 궁금하지 않을까.’라고 쐐기를 박는다.

 

 

2. 노을빛 그리움

 

 

이 시집에는 윤성호 시인의 그리움이 노을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 그 하나는 몇 해 전(2017)에 이 세상을 떠난 부인에 대한 그리움이요, 또 하나는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요, 다른 하나는 일찍 떠난 벗에 대한 그리움이다.

 

 

눈감아 재가 되니 감나무도 따르려네

옮겨 와 마흔두 해, 해거리로 풍성했지

그마저 몸을 버리니 온 뜨락이 텅 비네.

 

맛 좋은 감이라고 이웃에게 나누었지

올해도 열렸는가, 묻는 사람 있을 텐데

그 자리, 트인 하늘을 은목서가 가리네.

 

냉동실 묵은 곶감 만든 사람 그리워서

베어낸 자리에서 톱밥 날려 희끗희끗

세월이 삭정이 되는 그때까지 남을까.

                          -작품 고목 한 그루전문

 

 

첫 수의 첫 구절인 눈감아 재가 되니는 무슨 말일까. 나는 안다. 이 감나무는 윤성호 시인의 부인께서 생전에 끔찍이 아끼시던 나무였다. 그분이 세상을 떠나서 재가 되었으니, 말을 못하는 감나무라고 할지라도 어찌 따르려는 마음이 없겠는가. 중장을 보면, 손길 닿은 기간이 30년이나 되었고 그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해거리를 해가며 풍성하게 열매를 맺던 나무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나무마저 그 자리에 없다. 슬픔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둘째 수로 가면, 이웃들이 반기던 맛좋은 감이었다. 그 감을 나도 여러 번 선물로 받았다. 그러니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감이 선물로 오기를 바랄 터인데, 그걸 알 리 없는 은목서가 냉큼 빈자리를 차지하였다. 나 또한 가을이 되면 가지가 찢어질 정도로 감이 열리던 그 나무가 생각나곤 한다.

셋째 수로 가면, 역시 그 감나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윤성호 시인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분께서는 그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드시곤 했다. 겨울에 윤성호 시인의 사랑방에 들르게 되면 어김없이 맛좋은 곶감이 등장하곤 했다. 그 말랑말랑한 곶감의 맛이라니! 죽은 감나무를 베어 내니 그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데, ‘세월이 삭정이 되는 그때까지 남을까.’하는 아쉬움이 크게 자리한다.

이어서 몇 작품을 더 살펴보기로 한다.

 

 

아내가 끼던 장갑

눈물보다 따뜻하다

 

몹시도 추운 날엔

그 장갑을 내가 낀다

 

너른 길

건너갈 때는

잡은 손이 그립다.

    -작품 따뜻한 손전문

 

 

나는, 함께 지내던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이 생전에 쓰던 물건은 태워버리는 걸로 알고 있다. 듣기에는, 떠난 사람이 저승에서 사용하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윤성호 시인은, 잘 보관해 두었을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자신이 사용하고 있나 보다. 그 애틋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왜 안 그렇겠는가. 내가 방문할 때마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생전에 너른 길 건널 때 손잡던 모습이 그려진다.

 

묘지로 가는 길가

억새 홰기 푹신하다

 

솜바지 솜저고리

생각나는 석양 무렵

 

햇볕이 굽어 도는지

힐끔힐끔 돌아본다.

        -작품 십일월전문

 

 

, 윤성호 시인의 부인께서 타계하신 때가 11월이었지. 그때가 바로 감이 익을 때이기도 한데, 지금은 묘지에서 길고긴 잠이 들어 계시는구나. 묘지로 가는 길에는 억새 홰기가 많이 있는가 보다. 평소에 나는 이 풀들을 만나면 푹신하다는 느낌이 들기는커녕 왠지 쓸쓸하기만 했다. 그런데 윤성호 시인은, 아마도 그 길을 지켜주고 있음이 고마워서인지, 푹신한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그래도 석양은 왠지 을씨년스러워서 솜바지와 솜저고리가 생각나는가 보다. 하기는,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에 가난한 집 아이들은 겨울에 솜 대신 억새풀을 넣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이 작품 외에도 홍매화’ ‘따끈한 바람손을 놓치고‘ ’봄비에 젖어등이 슬픔을 함께한다.

 

 

하루에 두 번 오는

장터 가는 버스에는

 

오고 가는 사람 없어

빈집 담이 주저앉네

 

옛길을 잃은 사람은

새로 난 길 디뎠네.

    -작품 고향 동네전문

 

 

윤성호 시인의 고향은 상주군 청리면 청상리로 기억한다. 지금도 그 곳은 하루에 두 번밖에 버스가 오지 않는가? ‘오고 가는 사람이 없고 빈집까지 있는가? 담이 주저앉을 지경이라니, 윤성호 시인의 가슴도 허전할 것만 같다. 그래도 옛길은 잃었지만, 새로 난 길은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시조는, 초장이 흐름‘()이요, 중장이 굽이‘(), 종장의 첫 구가 마디‘(), 종장의 둘째 구는 풀림‘()이다. 그래서 시조 작품은 종장에 무게가 실린다. 이 작품은 내용적으로도 종장에 무게가 실려서 완전하다.

 

 

늦가을 갑장산에 눈길이 머물지만

어릴 적 오른 길이 발길을 막아선다

몸 비벼 오르려 하니 지팡이가 걸리네.

 

잎 떨린 가지 사이 두 능선이 뚜렷하다

가물 땐 허리 안개 걸리기를 기다렸고

가을엔 감나무 가지 늘어지기 바랐네.

 

갑장산 가로막아 답답한 세월 벗고

탁 트인 들판에서 농사를 지었어도

태어나 첫 하늘이야 저 산 위로 열렸지.

 

산 아래 사는 이는 모두가 갑장인가?

갑장산 그 이름에 서로가 동갑내기

세월을 아랑곳하여 젊어지는 산인걸.

                              -작품 갑장산전문

 

 

 

갑장산은 경북 상주시에 있는 산이다. 윤성호 시인의 고향인 청상리 마을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첫 수를 본다. 어릴 적에는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오르던 산이건만,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오른다. 둘째 수에서는 갑장산의 모습이 그려진다. 뚜렷한 두 능선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가물 때에 왜 허리 안개 둘리기를 기다렸을까? 아마도 감나무 가지 늘어짐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셋째 수로 와서 옛적에는 이 갑장산이 가로막아서 답답하였으나, 열린 하늘을 보며 태어나서 자랐음을 알게 한다. 넷째 수로 와서 그 이름을 풀어 본다. 그렇구나, 동갑내기 산! 세월을 마음에 두니 젊어진다. 여기에서 젊어진다.’는 활기를 띤다는 말일 것 같다. 문득 노자(老子) 도경(道經)의 제1장 첫 구절이 생각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이는, ‘길을 길이라고 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다. 이름을 이름이라고 하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음은 하늘과 땅의 처음이요, 이름이 있음은 모든 것의 어머니이다.’라는 뜻이다. 이 시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갑장산을 몰랐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나니, 이 산이 내 가슴에 들어왔다.

 

 

어린 날 감싸 안고

숲에 든 가침박달

 

양지로 씨앗 던져

하얀 꽃 푸지지만,

 

그 봄날 가라앉듯이

자취뿐인 옛 마을.

   -작품 봄날이 가라앉듯이전문

 

 

이 단수시조의 첫 구를 보면 가침박달이 등장한다. 윤성호 시인의 고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라는 걸 알 수 있다. 놀랍게도 나도 이 나무를 안다. 왜냐하면, 윤성호 시인의 집 뜰에도 이 나무가 있다. 고향에서 가져다가 심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정말 푸지게 하얀 꽃이 핀다. 하지만 고향 옛 마을은 그 봄날 가라앉듯이 자취뿐이다. 시조는 종장에서도 첫 구에 무게가 실린다. , 단수시조의 흐름을 형상화하면, 도리깨질과 같다. 다시 말해서 도리깨를 손에 잡으면 그게 흐름’()이다. 그리고 그 도리깨를 높이 드는 게 굽이’()이다. , 도리깨 끝의 회초리를 돌리는 동작이 마디’()에 해당한다. 이를 제목으로 삼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초리를 땅으로 내려치는 게 풀림’()이다. 그 외에 나루터에서’ ‘덩굴손’ ‘슬픈 해거리’ ‘채송화등의 작품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내 편지 받았나요?

인도 여행 떠납시다

 

해마다 왔다 가는

묵밭 머리 봄볕처럼

 

녹슬어 새삼스러운

우편함을 만나네.

    -작품 우편함전문

 

 

이 단수시조 초장 첫 구에서 내 편지 받았나요?”는 누구에게 묻는 말인가? ‘인도 여행을 떠나자.’라고 하니, 이는, 분명 이성선 시인을 가킨다. 이성선 시인은, 타계하기 전에 윤성호 시인에게 인도 여행을 함께 가자고 제의한 적이 있다고 한다. 녹슨 우편함을 보니, 불현 듯이 이성선 시인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졌나 보다. ‘묵밭 머리 봄볕이라니! 중장이 더 감칠맛이 난다. 종장은 금상첨화이다. 녹슬면 보잘 것 없게 되기 마련인데, ‘녹슬어서 새삼스럽다고 말한다. ? 녹슬었기 때문에 먼 저승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게다.

윤성호 시인은 이 낡은 우편함을 보는 순간, ‘감정이입이 되었을 것 같다. ‘감정이입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9세기 후반의 독일 심리학파의 미학자인 립스와 포르케르트 등에 의해 제창된 미학상 원리의 하나이다. 인간이 대상에게 자기의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함으로써 미가 성립되고 예술이 예술로 된다는 입장에서 이 공감의 과정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미의 근원을 규명하려고 하였다. 시작에서는 미학적 견지에서가 아니라 무의식 중에 감정이입의 위치에 서서 작품이 성립되는 경우가 아주 많으며, 또한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잠자리 높이 날면 이 장마가 끝나는가?

개는 날 틈을 타서 무리 지어 날고 날아

보기는 어지러워도 소리 없어 민망해.

 

날개를 접지 못해 앉은 채로 날아간다

보아둔 보금자리, 바지랑대 아귀 믿고

늘어진 빨랫줄 위에 잠시 쉬어 날아라.

 

비 오면 사라지는 잠자리 떼 찾지 마라

날벌레 좇아가서 나무 아래 앉았다가

메밀 빛 왕눈이 영혼, 공중에서 만난다.

                             -작품 메밀잠자리전문

 

 

윤성호 시인은 다른 생각으로 이 작품을 지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이 시조를 읽으면서 이성선 시인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성선 시인의 생가가 있는 속초 근방 대성리의 메밀국수 맛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메밀잠자리가 무리를 지어서 날고 있으면 장마가 끝나고, 메밀국수 맛이 더욱 좋아진다. 잠자리가 하늘을 나며 날갯짓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다. 좀 쉬고 날라고 한다. 이성선 시인은 타계 전까지 몹시 바쁘게 지냈다. 너무 무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좀 쉬면서 일하라고 말리지 못한, 후회가 크다.

윤성호 시인도 그렇겠지만 나 또한 좋은 벗을 잃은 슬픔이 크다. 좋은 벗은 얻기 힘들다. 고전 맹자’(만장 장구 하8)를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맹자 위만장왈 일향지선사 사우일향지선사 일국지선사 사우일국지선사 천하지선사 사우천하지선사’(孟子 謂萬章曰 一鄕之善士 斯友一鄕之善士 一國之善士 斯友一國之善士 天下之善士 斯友天下之善士).이는, ‘한 고을에서 좋은 선비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라야 한 고을에서 좋은 선비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을 벗 삼고, 한 나라에서 좋은 선비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라야 한 나라의 좋은 선비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을 벗 삼으며 세상에서 좋은 선비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라야 세상의 좋은 선비라고 일컬어지는 선비를 벗 삼을 수 있다.’라는 뜻이다.

 

 

 

장맛비 갠 틈을 타

꿀벌들이 난다마는

젖어서 다문 꽃잎

반가워도 웃지 못해

윙윙 윙

날갯짓에도

비 피하니 무거워.

    -작품 쓸쓸한 성자전문

 

 

 

이 작품 제목을 쓸쓸한 성자라고 붙여 놓아서 나는 멋대로 내 느낌을 따른다. 정말이지, 어떤 시인은 자기 작품을 자기가 의도하여 쓴 대로 독자가 따라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온갖 과잉친절을 다하곤 한다. 그러나 시인이 동쪽을 바라보고 시를 썼어도 독자는 서쪽을 바라보며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시는 자유롭다. 시조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바쁜 그 벗이 장맛비를 피해서 찾아온다고 하여도 내 사정이 무거우면 만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에 그에게 무거운 일이 생기니 어쩌겠는가. 쓸쓸하다. 성자는 쉴 새가 없는가 보다.

이 단수시조는 기본적인 음수율을 잘 지키고 있다. 이를 음양으로 풀어 본다. 초장 각 소절의 음수율은 양 음 음 음이다. 음 쪽이다. 중장 각 소절의 음수율도 양 음 음 음이다. 이 또한 음 쪽이다. 그런데 종장 각 소절의 음수율은 양 양 음 양이다. 양 쪽이다. 시조에서는 초장과 중장의 무게를 종장 하나가 감당한다. 그러니 초장과 중장에서 음 쪽으로 기울었던 것을 양 쪽인 종장이 단번에 평행으로 바로잡는다. 이 변화가 멋진 음률을 이끌게 된다.

 

 

3. 참다운 마음자리

 

 

윤성호 시인은 산 같은 마음을 지녔다. 무거운 저녁놀이 걸려 있어도 묵묵히 잘 참는다. 짙은 안개가 끼어도 그렇다. 직장에 다닐 때에도, 주위에서 무어라고 하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할 일을 했다고 한다. 상사가 옳지 않을 하라고 할 때에는 눈도 깜짝이지 않고 할 수 없음을 말했다고 한다. 산 같은 참마음을 지니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리할 수가 없는 일이다.

 

 

키 작은 몸이지만 일어서고 볼 일이다

장마에 오고 가는 잿빛 구름 손길인 듯

금빛 꽃 치켜든 아침, 반짝 해를 잡았다네.

 

여럿이 옹기종기 한여름이 정다운데

얼굴을 내밀 거냐, 꼭대기를 다질 거냐

낮은 키 견주다 보니 솟은 산이 평평하다.

 

지난해 맺은 씨앗 땅속 얕게 잊었더니

일어선 초여름이 허리 펴는 앉은 자리

환해서 더욱 좋구나, 눈 홀리며 바라보네.

                       -작품 일어선 앉은뱅이꽃전문

 

 

윤성호 시인은 키가 좀 작은 편이다. 그렇기에 더 다부져 보인다. 첫 수를 보면 초장에 그 말이 나온다. 앉은뱅이꽃과 윤성호 시인이 겹쳐진다. 종장에는 드디어 금빛 아침에 반짝 해를 잡고 만다. 둘째 수에서는 한여름이다. 얼굴을 내밀려고 꼭대기를 다지려고 아우성이지만, 종장에는 도토리 키 재기가 되고 만다. 셋째 수로 간다. 지난해에 씨를 얕게 심어서 일어선 초여름이 허리를 펴는데, 종장에서는 환해서 좋다고한다. 물론, 씨는 너무 깊게 심어도 안 되고 너무 얕게 심어도 안 된다. 그게 어렵다.

 

잎몸은 몸체 되고 잎집은 돛대 되어

어린 날 시내 따라 흐르다가 마주친 배

물소리 바람 소리는 못 들었다 할밖에.

 

혼자서 기어갈 때 자갈밭이 뜨겁더니

둔치에 만나서는 키 재기로 쑥쑥 자라

이렇게 배로 접히니 시냇물도 유유해.

 

배 위에 실린 거야 없으면 더욱 좋지

그래도 출렁이다 뒤집히면 어떡하지?

하늘을 쏟아냈으니 물을 따라 흐르지.

                                   - 작품 갈잎 배전문

 

 

윤성호 시인도 이제 느긋함을 얻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갈잎가랑잎이나 떡갈잎을 가리키지만, 나는 갈댓잎을 떠올린다. 배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잎은 갈대의 잎인 것 같다. 그 배를 따라서 흐르다 보면 물소리나 바람 소리가 들릴 까닭이 없다. 이게 첫 수의 이야기이다. 둘째 수로 가면, 풀들도 자랄 때는 뜨거운 자갈에 델 것 같다. 그러나 좋은 자리를 만나면 쑥쑥 키가 자라서 배가 되어 유유히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이게 둘째 수이다. 갈잎 배에 무엇을 싣겠는가마는, 안 실으면 좋다고 한다. 왜 안 싣기를 바라는가? 그건 뒤집히게 될까 봐. 담긴 하늘을 쏟아내고 가볍게 물을 따라 흐른다. 이 느긋함을 나는 언제 즐기나?

 

 

사람이 내는 길은

부드럽게 굽어 벋고

 

산짐승 달린 길은

곧다지만 흔적 없네

 

숲길은 트지 않을 때

어디로나 통하지.

         -작품 수풀길전문

 

 

초장에서 사람이 내는 길은 부드럽다고 했다. 사람이 다니기 좋게 복개공사를 하기 때문일 거다. 중장에서 산짐승이 달린 길은 곧지만 흔적이 없다고 했다. 산짐승은 흔적 있는 길을 내면 안 된다. 목숨이 위태롭다. 그러나 숲길은 내지 않아야 통할 수 있다. 바람의 길이기 때문일까? ‘장자’(莊子) 5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수명어지 유송백독야재동하청청’(受命於地 唯松柏獨也在冬夏靑靑).이는, “땅에서 맡은 바를 받은 것에는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겨울이나 여름이나 푸르게 있다.”라는 뜻이다. 이 푸름이 어디로나 통하는 길이다.

 

 

백로로 내려앉아

황로로 떠난 둥지

 

낳아 둔 초록 알을

땡볕이 굴리더니

 

봄 꿈이 까맣게 익어

시린 눈에 안긴다.

     -작품 금은화전문

 

 

이 작품은 형상화가 잘 되어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새들이 내려앉고 떠남이 그렇다. 게다가 하얀 꽃과 노란 꽃을 백로와 황로로 했다. 이는 은유이다. 사실은 이렇다. 하얀 꽃은 가루받이가 안 이루어진 꽃이고, 가루받이가 이루어지면 하얀 꽃이 노랗게 바뀐다. 더 이상 가루받이가 필요 없으니, 곤충은 찾아오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게 노란 꽃이 지고 나면 초록 알인 초록 열매가 달려서 땡볕에 익는다. 이를 두고 닭이 알을 품듯이 굴린다.’라고 표현했다. 놀라운 발상이요 형상화이다. 그 열매가 익으면 까맣게 변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윤성호 시인은 눈이 시리다. 가슴에 아낌을 담으니 안길 수밖에 없다.

 

 

찬물을 길어 올려

더위 한잔 따르는가

 

따가운 햇볕 밀쳐

꽃잎 경계 사라져도

 

매달린 붉은 꽃 빛은

끓는 듯이 시원해.

- 작품 베고니아의 꿈전문

 

 

베고니아는 더위를 즐기는 것 같다. 초장은 뿌리에서 찬물을 빨아올린 다음에 더위를 따라주곤 한다. 그게 붉은 꽃이다. 중장은, 따가운 햇볕을 밀치고 꽃이 탐스럽게 피는데 꽃잎 경계가 없다. 종장은, 꽃잎 빛깔이 볼 만하니 끓는 듯싶어도 시원하다. 베고니아의 뜨거운 꽃을 아끼는 뜻이 담겼다. 그러나 이는 꽃의 경우이지, 사람은 불이 타는 욕망을 잠재워야 한다. 불교 초기 경전인 비나야 피티카에는 싯다르타의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수행자들이여!/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모든 게/ 불타고 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눈은 불타고 있다./ 눈의 대상과 식별작용의 부딪침은 불타고 있다./ 눈의 부딪침에 의해서 생겨난/ 즐거움이나 괴로움,/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감정 등의 느낌/ 이것도 불타고 있다./ 그 불이란 어떤 불인가?/ 탐욕의 불, 혐오의 불, 미혹의 불이다./ 그리고 태어남, 노쇠함, 죽음, 근심, 슬픔, 고통,/ 번뇌와 번민의 불에 의해서/ 뜨겁게 활활 타오르고 있다.’

 

 

조각나 모난 데를

부대끼며 깎아내고

 

한 손에 안겨 와서

옹기종기 담겼는데

 

두 손이 만지작거린

그 자국은 하늘 땅.

    - 작품 조약돌전문

 

 

비록 수동적이기는 해도 조약돌도 뜨겁다. 모난 곳이 둥그스름해지려면 얼마나 큰 부대낌이 있어야 하겠는가. 우리의 마음을 모난 돌멩이라고 하자. 얼마나 많고 큰 부대낌이 있어야 하겠는가. 초장에서 이런 역경을 내보인다. 결국, 그런 역경을 참고 견디면 매끈하게 되고 만다. 크기도 작아져서 한 손에 옹기종기 안긴다. 중장이 내보인 모습이다. 거기에서 윤성호 시인은 하늘과 땅의 손을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서 절차탁마’(切磋琢磨)를 떠올렸다. 이 말의 사전적 풀이는, ‘옥이나 돌이나 뼈나 뿔 등을 갈고 닦아서 빛을 낸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어디에서부터 생겼을까? 이는 시경(詩經) 속의 한 노래에서 유래되었다. , 위풍(衛風) 중의 기욱’(淇奧)이라는 노래가 그 원류이다. 그 일부를 본다. ‘첨피기욱 녹죽의의 유비군자 여절여차 여탁여마 슬혜한혜 혁혜훤혜 유비군자 종불가훤혜’(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咺兮 有匪君子 終不可諼兮). 이는 <저 기수의 물굽이를 바라보니/ 푸른 대나무 우거졌다./ 멋있는 나의 낭군‘/ 자르고 다듬은 듯/ 쪼고 간 듯/ 의젓하고 당당하며/ 빛나고 의젓하다./ 멋있는 나의 낭군‘/ 끝내 잊을 수 없다.>라는 뜻이다.

 

 

여물자 잠든 채로 흙을 찾아 떠돌다가

깨어나 싹을 틔워 알뿌리로 들썩들썩

꽃구름 둥실 뜨는 날 내 손끝이 잡혔네.

 

손과 손, 서로 만나 흙 이불을 씌웠더니

드러난 가랑이를 수줍은 듯 내리뻗고

빗물 길 새로 내고는 잎집으로 감싸네.

 

꽃향기 나는 데를 기를 쓰고 뒤적이니

그늘에 묻혔다가 웃음 찾은 꽃을 보내

눈엔 듯 잃은 등불을 포갠 채로 밝히네.

                   -작품 처음 만난 칸나꽃전문

 

 

이 연시조의 첫 수는, 이 칸나의 알뿌리를 처음 만나던 감동을 나타낸다. 손끝이 찾아낸 알뿌리! 그날은 꽃구름이 둥실 뜨는 날이었다. 둘째 수는, 아끼는 마음으로 도와주었더니 스스로 알아서 자리를 잡더라는 이야기이다. 드디어 셋째 수에서 묻혔다가 웃음 짓는 꽃을 보게 되었는데, ‘눈엔 듯 잃은 등불을 포갠 채로 밝힌다.’라고 했다. ‘잃은 등불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새로운 빛깔을 가리키는 것 같다. 말하자면 변이가 생겼다는 뜻일 것 같다. 그러니 윤성호 시인이 애지중지한다. 그 뿌리를 잘 싸서 모셔두었다고 한다.

생명의 이야기라면, 인도의 우파니샤드를 빼놓을 수 없다. ‘우파니샤드에서 우파’(upa)가까이라는 뜻이고, ‘’(ni)아래로라는 뜻이며, ‘샤드’(sad)앉는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파니샤드, 아무에게나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꼭 들려주어야 할 사람에게 은밀히전달하는 이야기이다. 우파니샤드에 들어 있는 시 한 편을 본다.

이것은 진리로다./ 잘 타오르는 아궁이에서 수천 개의 불꽃이 생겨나듯/ 그 불멸의 브라흐만에서/ 여러 종류의 생명체들이 생겨나며/ 다시 그 브라흐만 속으로 잠긴다.(문다까 우파니샤드). 여기에서 브라흐만, ‘세상 전체의 참모습이다.

 

 

향기가 하늘 널리 냄새 맞이 찾아간다

강남땅 호숫가가 그립기는 한 것인지

트이는 햇볕을 받아 맑게 피는 겨울꽃.

 

쌀쌀한 바람결에 출렁이는 금빛 그물

꼬이는 꿀벌들은 요리조리 피해 날고

향기가 가는 데 몰라 꽃을 가린 거미줄.

 

꽃잎이 떨어지면 땅바닥이 별 뜬 하늘

겨울 잎, 눈 지붕에 보금자리 아늑하여

참새가 겨울 나라고 횃대 되는 꽃가지.

                          -작품 은목서 나무전문

 

 

이 나무도 윤성호 시인이 괘나 아끼는 나무로 알고 있다. 얼마나 아끼는가? 자신의 몸처럼 아끼는 것 같다. 논어(위영공 23)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자공 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자왈 기서호. 기소물욕 물시어인’(子貢 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이는, <자공이 한 마디(글자)로써 죽을 때까지 지켜 행할 만한 말(글자)가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공자는 그것은 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라고 하셨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 네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잎에는 독과 쓴맛 꽃에는 벌과 나비

애벌레 거절하니 사람 눈길 다가오네

비린내 몰래 훔치는 의적 같은 풀인가.

                                - 작품 배초향전문

 

 

식물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잎에는 독을 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꽃에는 벌과 나비가 날아와야 하기 때문에 꿀을 준비한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향기로운 냄새까지 널리 풍긴다. 여기까지가 초장이다. 잎에 독이 있으니 애벌레는 다가오지 못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적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이다. 사람들은 풀에다가도 먹을 수만 있다면 ‘~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여기까지는 중장이다. 이제, 도리깨의 회초리를 돌려서 내려치는 종장이다. 어떻게 할까? 몰래 비린내를 훔친다. 이런! 파리가 안 덤빌지 모르겠다.

 

 

가지가 얽어매는

하늘에 귀 열리고

 

바람을 놓아주니

떨림은 뿌리까지

 

어둠에 벋은 길 따라

내처 걸어 솟는다.

         - 작품 겨울나무

 

 

추위를 벌거벗고 견디는 나무를 보면 꼿꼿한 선비의 기상을 보는 듯싶다. 초장에서 하늘에 귀가 열리고이며, 중장에서 떨림은 뿌리까지이고, 종장에서 어둠 길 따라 걸어 솟는다.’이다. 이 어찌 선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선비는 배고픔이나 추위나 어둠 등을 잘 견뎌야 한다. 호의호식할 생각이었으면 선비가 아니라 장사꾼을 선택했어야 한다.

논어(학이14)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자왈 군자 식무구포 거무구안 민어사이신어언 취유도이정언 가위호학야이’(子曰 君子 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이는, ‘군자가 음식에 배부름을 구하지 아니하며, 거처에 편안함을 구하지 아니하며, 일에 민첩하고 말에 삼가며, 길 있는 이에게 나아가 나를 바로잡으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할 만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거처에 편안함을 구하지 아니한다.’라는 뜻이 무엇인가. 추운 곳이라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말이다.

 

 

 

개구리 아래턱에 새 이빨이 돋는구나

무슨 말 참느라고 녹는 얼음 삼키는가

물 밖도 따뜻하다니 앞발 먼저 내놓자.

 

아무리 뛰어 봐도 산수유 꽃 너무 높아

넓적한 물갈퀴로 물살 힘껏 밀고 가서

맑은 물 고인 자리에 올챙이를 깨우자.

 

큰 울음 쏟으려면 봄 풍경을 익혀야지

버들이 늘어지면 그 향기는 어찌할까

깔리는 초록 꿈결을 가슴에다 두르자.

                            -작품 경칩 절기전문

 

 

그 추운 겨울을 참고 견디었으니 박수라도 쳐 주어야 하겠다. 첫 수를 본다. 경칩에는 개구리 아래턱에 새 이빨이 돋는데, 겨울 동안 참은 말은 무엇인가. 얼었던 말이 풀리면 시끄러워야 할 텐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장 차가운 곳이 발끝인데 그걸 먼저 내놓는다. 둘째 수를 본다. 경칩이 지나면 산수유도 꽃망울이 붉으니, 이제 올챙이를 깨울 때가 되었다. 셋째 수를 본다. 벌써 울 준비를 한다. 성급하게 버들 향기도 찾는다. 초록 숨결을 가슴에 두를 차례다.

이 시집에 실린 작품 중에는 절기라는 말이 붙은 게 많다. , 이 작품 외에도, ‘소한 절기’ ‘대한 절기’ ‘입춘 절기’ ‘우수 절기’ ‘망종 절기등이다. 사전에서 절기’(節氣), ‘한 해의 변화를 절로 나눈 것. ,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지구 공전의 궤도를 스물넷으로 등분한 각 구점(區點)을 태양이 통과하는 일시. 지구상의 기후는 이 절기 순서에 따라 변화를 반복함이라고 되어 있다. 윤성호 시인은 농업 기상에 관한 연구도 많이 했다. 그러니 그에 따른 느낌도 남다를 터이다. 이는 치곡한 결과로 나타났다고 본다. ‘중용’(23)을 보면 치곡’(致曲)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곡능유성 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유천하지성위능화’(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爲能化). 이는, <사소한 사물에까지 지극히 하면 그 모두에 참된 마음’()이 있게 된다. ‘참된 마음이 있게 되면 그 사물 안의 바른 이치가 구체적으로 ’()을 이루게 된다. ‘을 이루게 되면 그게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밖으로 드러나게 되면 밝아지게 된다. 밝아지게 되면 움직이게 된다. 움직이게 되면 바뀌게 된다. 바뀌게 되면 자라게 된다. 오직 하늘 아래의 지극한 참된 마음이어야 아주 잘 자랄 수 있다.>라는 뜻이다.

 

한나절 기운으로 벌여 놓은 씨름판에,

그넷줄 매인 가지 출렁거린 하늘 끝에,

떠돌던 푸른 구름이 머뭇머뭇 멀어져.

                                      -작품 단오전문

 

단오 때가 되면 절로 기운이 솟나 보다. 남자들은 씨름판을 열고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자랑한다. 아니, ‘누가 더 높게 뛰나내기를 한다. 그러나 선비는 스스로와 싸운다. 논어(팔일 7)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자왈 군자 무소쟁 필야사호. 읍양이승 하이음 기쟁야 군자.’(子曰 君子 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 君子). 이는, ‘군자는 다투는 일이 없다. 반드시 활 쏘는 일뿐이다. 두 손을 앞가슴에 올려서 절하고 난 다음에 오르며 내려와서 술 마시니, 그렇게 다투는 것이 군자이다.’라는 뜻이다.

 

 

 

5. 나가며

 

왜 시조를 짓는가? 그야 물론, 수신(修身)의 방편(方便)으로 하는 일이다. 독자야 적어도 좋고, 하기야 많으면 더욱 좋다. 이를테면 내 건강을 위해서 내가 자전거를 타든지 달리기를 하든지 하는 바와 같다. 앞으로 시조는, 이와 같이 마음의 건강을 위하여 모든 사람이 함께 하기를 바랄 뿐이다. 시심은 바로 어짊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책에서 어짊’()은 윤리적(倫理的)이라기보다 감성적(感性的)이고, 감성적이라기보다 심미적(審美的)이라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이를 한 마디로 줄여서 심미적 감수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은 어떠한 사물에서든지 아름다움을 크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더욱 쉽게 말하면, ‘감동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예술적 감성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시인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이 어짊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자의 뜻을 이어받은 맹자는, 어짊의 실마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옛날의 어진 왕들은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어서 또한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정치를 하였다. 그러니 차마 남에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정치를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기는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움직이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사람들이 모두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말하는 까닭은 이러하다. 이제 사람들이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문득 보았다고 하면, 모두들 깜짝 놀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그 까닭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귐이 있어서도 아니고 동네 사람과 벗들에게 칭찬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며 구해주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이를 미루어 보건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실마리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이 시조집의 작품들을 음미하며 읽는다면더욱더 새로운 감동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