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아래에서/ 김 재 황 계곡 아래에서 김 재 황 구름 따라 산을 오르는데 누구인가 계곡 아래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기척이 집힌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숲을 들치고 보니 물푸레나무 그림자 하나가 고인 물속에 들어앉아 물장구를 치고 있다, 나뭇가지는 닿지도 않았는데 어찌나 물이 맑은지 바람 소리에도 파랗게 자지러진다. (2001년) 대표 시 2022.03.14
가벼운 편지/ 김 재 황 가벼운 편지 김 재 황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나무라고 어찌 안 그럴까, 푸른 가지를 들어 넓게 펼쳐진 가을하늘 위에 그리운 사연을 적는다, 어디에서나 쉽사리 읽을 수 있는 구름처럼 가벼운 편지. (2001년) 대표 시 2022.03.14
찬란한 소멸/ 김 재 황 찬란한 소멸 김 재 황 작은 잎으로 이 세상을 맑고 푸르게 만들더니 밝은 열매를 빚어 이 세상의 배고픔을 달래 놓고 마지막엔 그 몸까지 남김없이 내주고 가는 살신성인 그의 소멸이 오히려 찬란하다. (2001년) 대표 시 2022.03.13
기다리지 않고는/ 김 재 황 기다리지 않고는 김 재 황 욕심껏 아무 때든지 나무 위로 기어오르는 자가 있다, 그렇게 얻는 열매는 익지 않았으므로 먹을 수 없다, 씨가 여물지 않았으므로 애써 떠 보았자 보람이 없다, 때를 기다리지 않고는 새큼한 말의 진실도 알지 못한다. (2001년) 대표 시 2022.03.13
고요한 길/ 김 재 황 고요한 길 김 재 황 보이지 않는 길은 고요하다, 똑바로 뻗은 길이 소리 없이 하늘 위로 향한다, 눈감고 입 다물고 홀로 걸어가는 길 너무 적막하여 나무들도 푸른 속잎을 밟고 간다. (2001년) 대표 시 2022.03.13
몸은 하나다/ 김 재 황 몸은 하나다 김 재 황 큰바람이 달려왔다, 가야산 골짜기의 나무가 흔들리니 북한산 능선의 나무도 움직인다, 서로 다른 산에 자리를 잡았지만 역시 모든 나무는 그 몸이 하나다, 이름이야 어떠하든지 먼 곳까지 뿌리가 이어져 있으므로 나무들은 모두 같은 길을 걷는다. (2001년) 대표 시 2022.03.12
물빛 눈/ 김 재 황 물빛 눈 김 재 황 나무의 눈은 잎에 머문다, 바람에 흔들리는 많은 잎이 하늘을 보고 산을 보고 나를 본다, 나무와 눈길이 마주치자 단번에 내 몸이 젖는다, 하지만 나무의 눈은 너무 멀다, 그 안에 비치는 별빛들이 나를 바라보며 하얗게 웃는다. (2001년) 대표 시 2022.03.12
각시둥굴레/ 김 재 황 각시둥굴레 김 재 황 물든 아침놀 안에 땀방울이 달려 있다, 볼 붉은 수줍음 속에 서러움이 달려 있다, 흰 옷자락이 흔들리고 수줍음도 따라 흔들린다, 달빛 머금은 마음 하나 별빛 새기는 사랑 하나 자상으로 내려와서 수줍음 속에 떨고 있다. (1990년) 대표 시 2022.03.12
동자꽃/ 김 재 황 동자꽃 김 재 황 여름이 오면 아이들 웃음소리가 깊은 산 푸른 숲속에서 일어나 벌거벗고 화가 이중섭과 놀다가 그리움 물드는 가을이 되면 안녕, 안녕 손을 흔들며 돌아간다, 홍안의 그 천진함 등불같이 밝은 얼굴. (1990년) 대표 시 2022.03.11
능소화/ 김 재 황 능소화 김 재 황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기억하시기 위해서라도 누구에게나 이름이 필요했다, 너에게 이름이 없다면 누가 너를 불러 주랴, 네 이름에 사랑이 없다면 누가 너를 그리워하랴, 하늘을 찬양하는 꽃이여 너는 침묵하고 있으면서도 하늘의 넓은 가슴에 네 이름을 적고 있었구나. (1990년) 대표 시 2022.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