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거리마다 난장판이 되다 (48) 사람들이 난폭해져서 부랑자들과 함께 난동을 부리자, 당황한 왕과 정부는 군인들에게 명령해서 그들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빵을 달라!” “왕을 잡아라!” “정부를 무너뜨려라!” 점점 거친 구호가 파리 시내의 이쪽저쪽에서 쉴 새 없이 계속 터져 나왔습니.. 봉쥬르, 나폴레옹 2008.10.12
(47) 가혹한 정치의 해독 (47)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가혹한 정치의 해독은 호랑이의 해독보다 사납다’라는 뜻입니다. 옛날, 중국의 춘추시대 말엽에 국가의 기강이 어지러워지자, 실력만 믿고 하극상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기강’(紀綱)은 ‘으뜸이 되는 중요한 규율과 질서’를 말하.. 봉쥬르, 나폴레옹 2008.10.11
(46) 피폐해진 프랑스 백성들 (46) 참으로 그 왕은 ‘혜이불비’라는 말도 듣지 못 했는가 봅니다. ‘혜이불비’(惠而不費)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하되, 돈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논어’(論語)에 있는 말입니다. 그 많은 세금을 바치는 사람은 주로 가난한 백성이었습니.. 봉쥬르, 나폴레옹 2008.10.10
(45) 나이가 스무 살이 되다 (45) 이 무렵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1779년의 일입니다. 나폴레옹의 나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 당시의 프랑스는, ‘루이16세’라고 하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세동조’라는 말이 있듯, 어느 시절 누구든지 권자에 앉으면 호사를 누리고 싶은가 봅니다. ‘.. 봉쥬르, 나폴레옹 2008.10.09
(44) 봉황의 큰 뜻을 참새가 알까? (44) 나폴레옹이 코르시카로 돌아오고 나서 집안 살림은 조금씩 나아져 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안정을 가질 만하니까, 엉뚱한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듣기 거북하게도, 코르시카에 가담항어가 나돌았습니다. ‘가담항어’(街談巷語)는 ‘길거리나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일컫습니다. ‘가담항의’(.. 봉쥬르, 나폴레옹 2008.10.08
(43) 땀을 흘리며 일하다 (43) 금의환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군복을 입고 씩씩하게 나타난 나폴레옹의 믿음직한 모습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은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옴’을 이르는 말입니다. 집에 돌아온 그 날부터 나폴레옹은 .. 봉쥬르, 나폴레옹 2008.10.07
(42) 군에서 휴가를 얻다 (42) 어느 날이었습니다. 코르시카에 있는 어머니에게서 나폴레옹에게로 한 통의 편지가 달려왔습니다. 그 편지인즉, 집안 살림이 몹시 어려우니 와서 좀 도와주면 좋겠다는 내용입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군인의 신분인 나폴레옹에게 그런 도움을 청했겠습니까? 여러분도 초미지급의 사정인 줄을 짐.. 봉쥬르, 나폴레옹 2008.10.06
(41) 우리를 아끼는 사관이다 (41) 처음에 병사들은, 장교지만 어린 나폴레옹을 얕잡아보고 자기들끼리 뇌까리곤 했습니다. ‘뇌까리다’는 ‘자꾸 되풀이 말한다.’는 뜻으로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마구 떠드는 것’을 말합니다. “어린애에게 명령을 받는 건 싫어.” “겨우 16살이니 무얼 알고 있겠어.”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봉쥬르, 나폴레옹 2008.10.05
(40) 소위로 포병대에 배치 받다 (40) 나폴레옹은 포병 소위가 되어서 바랑스의 포병대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포병대의 임무는 무척 고된 일이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저녁 8시까지 자그마치 16시간 동안이나 계속해서 전투연습을 했습니다. ‘자그마치’는 원래 ‘자그마하게’에서 나온 말입니다. ‘자그마하게 말하더라도’.. 봉쥬르, 나폴레옹 2008.10.04
(39) 시관학교를 졸업하다 (39) 나폴레옹은 어머니도 만나서 그 큰 슬픔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도 없었을 테지요. 그저 애만 끊어질 듯했을 겁니다. ‘애가 끊어질 듯하다.’는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애’는 ‘창자’를 가리키는 옛말입니다. 그러나 요즘.. 봉쥬르, 나폴레옹 2008.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