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김 재 황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삶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정확히 말하면 ‘국민학교’였지만, 나는 지금의 ‘초등학교’란 말을 더 좋아한다. 내가 처음으로 입학한 학교는 서울의 창신초등학교였다. 그 얼마 후에 종암초등학교로 전학했고, 2학년이 되던 해에 6,25 전쟁을 만났다. 그날이 바로 1950년 6월 25일이었다.
물론, 나도 부모님을 따라 무작정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리고 잠깐씩 머물게 된 고장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서울로 돌아온 후, 그 동안 다녔던 초등학교를 꼽아 보니 8군데나 되었다.
그러니까,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이루어짐으로써 나는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서울의 흑석동에 자리 잡은 은로초등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그때가 거의 저문 5학년이었고, 1955년이 되던 해의 봄에 은로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렇듯 순탄하지 못한 초등학교 시절이었으나, 지금도 그 당시의 일들이 문득문득 눈앞에 떠오르곤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서울의 창신초등학교를 입학한 시절이다. 우리 집으로 가는 길가에 조그만 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곳으로 달려가곤 했다. 왜냐 하면, 그 냇물에 커다란 가재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놈을 또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놈만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개울로 달려가 보았으나 모두 허사였다. 하지만 나는 낙심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마침내 내 꿈은 이루어졌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냇물에서 멋지게 기어가고 있는 그놈을 보았다. 그리곤 얼마 후에 나는 종암동으로 이사를 갔다.
피난 때에 제주도의 제주시를 비롯하여 부산과 양산 및 마산, 그리고 장승포 등지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장승포초등학교를 다닐 때의 기억이 새롭다. 5학년이 막 되었을 때, 학교에서 점심으로 ‘끓인 우유죽’을 나누어 주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여름에 작은 섬으로 피서를 갔으며, 끔찍스럽게도 나는 큰 구렁이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던 일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뱀을 우습게 생각했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뱀을 제일 무서워했다. 내가 제일 만만하게 여긴 동물은 개구리였다. 그날, 나는 그 섬에서 큰 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놈을 잡겠다고 부리나케 쫓아갔다. 그놈은 팔짝팔짝 잘도 뛰었고, 나도 질세라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놈이 멀리 뛰어서 풀숲에 숨었다.
나는 ‘옳다구나.’하고 그 풀숲을 향하여 몸을 날렸다. 손에 뭉클한 게 잡혔다. ‘네가 뛰어야 벼룩’이라고 여기며 손을 올렸다. 앗, 이게 무엇인가? 손에 잡힌 건, 큰 구렁이였다. ‘에구머니!’ 나는 기급을 하여 펄쩍펄쩍 뛰었다.
내가 졸업한 은로초등학교도 잊을 수 없다. 나는 화가인 담임선생님을 좋아해서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그 덕분에, 내가 내 손을 보고 연필로 그린, 소위 ‘데생’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 후로 나는 화가가 되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때는 틈만 나면 한강으로 나가서 벌거벗고 수영을 하곤 했다. 제주도에 살았을 적에 이미 ‘헤엄치기’는 배워 놓았으므로 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수영이라고 하니까, 아무렇게나 물에 뜨는 정도였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잘 다듬어진 ‘평영’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수영선수가 되고자 했다. 그 꿈을 밀고 나갔더라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시절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귀하다. 순수하기도 하려니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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