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시인을 스승으로 삼다
김 재 황
바야흐로 대학 입시철이 되었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학교 성적에 맞는 학교로 가라고 권하셨으나, 나는 우겨서 고려대학교에 입시원서를 냈다. 남들이 모르게 공부한 실력을 나는 믿었다. 배재고등학교 동창 4명이 함께 ‘농학과’에 응시했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학교성적이 우수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절반이 탈락되었다. 나와 다른 한 명만이 합격되었다. 자랑스럽게 내 아명인 ‘김만웅’이 1961년도 고려대학교 입학자 명단에 끼어 있었다.
모두 알다시피,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그게 바로 전통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행사 때면 으레 막걸리가 통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청계천변의 막걸리 집을 수시로 찾았다. 한 번은 친구 아버지의 환갑잔치가 있었다. 그 때 가까운 몇 친구가 잔칫집으로 몰려가서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셨다. 그런데 한 친구가 너무 취하여 그 곳이 어디인지도 잊고 막걸리를 더 가져오라고 고함을 치는 바람에 우리는 스타일을 모두 구겼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술만 잘 마신 게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도서관으로 가면 늘 만원이었다. 나도 도서관에서 문학이나 철학 및 역사학 등에 대한 수많은 책을 독파하였다. 특히, 나는 조지훈 선생님을 좋아하여 그분의 강의를 자주 도강하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 진로가 정하여진 듯싶다.
게다가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무엇보다도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또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거리로 나갔다. 권력자들은 경찰들을 앞세워서 최루탄을 쏘았다. 길거리는 온통 최루탄 연기가 가득하였다. 나는 다른 대학 학생들과 함께 ‘최루탄 문학회’를 조직하고 그 아픔을 작품으로 써서 전시회를 열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권력자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으니 조심하라고 귀띔했다.
나는 ‘농학도’임을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름방학 때면 농촌봉사를 떠났다. 고구마 밭의 풀도 매고 과수원 일도 도왔다. 땀을 흘리고 나서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의 맛을 그 무엇에 비기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직접 실천해 보는 즐거움도 적지 않았다. 나는 국문과를 택하지 않고 농학과를 택한 일을 참으로 다행하게 여겼다.
대학교 2학년 때에 군대에 징집되기에 앞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신체검사장에는 군의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피부과나’나 ‘외과’ 등의 팻말을 놓고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장정들이 그 앞으로 올 적마다 ‘이상 있는가?’하고 물었다. 나는 군대를 빨리 가려고 작정하였던 터라, 무조건 큰 소리로 ‘이상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한 군의관이 나를 바라보며 ‘어디에 이상이 없다는 건가?’하고 다시 물었다. 나는 그 앞의 팻말을 얼른 보았다. ‘내과’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예, 밥 잘 먹고 숨 잘 쉬고 똥 잘 쌉니다. 내과에 아무 이상 없습니다.”
내 말에 그 곳의 장정들이 모두 웃었다.
신체검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한 장정이 나에게 손을 내밀며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도 좋다고 하였는데, 그의 집과 우리 집이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우리는 고개를 넘어가고 넘어오며 하루가 멀게 만났다. 그는 재수생으로 서울대학교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럭비 선수로 활약하였을 정도로 활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운이 안 따랐는지, 대학을 포기하고 서울시 공무원이 되었으나 서른이 채 안 된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슬프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당시에 우리 집의 가세가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군대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온 후의 복학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병무청에 입영 연기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렇게 되어, 1965년 2월 28일, 고려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하고 ‘농학사’가 되었다. 아, 아버지께서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내 이름을 법의 절차를 거쳐서 고치셨다. 그렇기에 나는 고려대학교를 ‘김재황’이라는 이름으로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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