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시)
동 행
김 재 황
나는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갑니다. 바람을 데리고 산책을 나섭니다. 동네를 지나서 산자락을 밟으면 나무들이 나를 보고 손을 번쩍 들며 아는 체를 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일일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입니다. 바람도 살래살래 꼬리를 흔듭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인사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주고받는 미소가 눈부십니다. 나보다 한 발짝 늘 바람이 앞섭니다. 킁킁 냄새도 맡아 보고 잠시 서서 작은 소리에 귀를 쫑긋거립니다. 나는 그저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바람도 나처럼 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들꽃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나를 기다립니다.
작은 들꽃일수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마다 안고 있는 사연이 깊습니다. 나는 가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를 칩니다. 바람도 알겠다는 듯 강아지처럼 ‘멍멍’ 짖습니다. 나직하게 메아리가 우리 앞에 엎드립니다. 많은 들꽃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정작 새로 들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게 모두 내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들꽃은 결코 남이 아닙니다.
내가 바람과 함께 걷는 길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물소리 흐르는 오솔길입니다. 사뿐사뿐 걸어갑니다. 숲에서 산고양이 한 마리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바람은 한눈팔지 않고 나만 바르게 이끕니다. 종소리도 울리지 않았는데 벌써 하늘이 활짝 열립니다. 산 위로, 둥근 해가 뜹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발걸음이 모두 가볍습니다. 휘파람을 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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