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무궁화
김 재 황
나는 무궁화를 좋아합니다. 나는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國花)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피어난 그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새롭게 하루가 시작되는, 일출(日出)을 보는 듯싶은 느낌이 듭니다. 가슴이 밝아지면서 새로운 포부가 펼쳐집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단심(丹心)을 보이며 다가오는 그 모습에 나 또한 주먹을 불끈 쥐게 되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무궁화가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국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원래 우리 한반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땅에 우리 동이족의 일부가 들어와서 터를 잡게 되었지요. 그때 사람들이 빈손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을 테지요. 가장 중요한 말을 지니고 왔을 뿐만 아니라, 곡식이나 좋아하는 식물의 씨 등도 지니고 왔겠지요. 그래서 그 당시에 무궁화 씨를 가지고 와서 이 땅에 뿌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해서 소중히 지니고 온 나무라면 ‘나라의 꽃’으로 삼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무궁화에는 진딧물이 많이 끼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말을 들으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식물이 튼튼하면 스스로 해충을 물리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면역 기능을 식물도 지니고 있지요. 그러므로 기름진 땅에 심은 무궁화나무에는 진딧물이 덤벼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토양을 개선하고 합리적인 비료를 살포하면 진딧물은 얼마든지 퇴치할 수 있지요. 해충을 농약으로 퇴치한다는 생각은 근본적인 대책이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지요. 병은 몸을 튼튼히 해야 물리칠 수 있습니다.
무궁화의 학명(學名)은 ‘Hibiscus syriacus L.'입니다. 여기에서 ’Hibiscus'는 속명(屬名)이고 ‘syriacus'는 종소명(種小名)입니다. 그리고 맨 뒤의 대문자는 ’명명자(命名者)를 나타내지요. 이 속명을 찾아보면 ‘고대(古代) 라틴명’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욱 과(科)라고 합니다. 또, 종소명은 ‘시리아에서 온 꽃’이라는 뜻이랍니다. 일반적으로 무궁화는 원산지가 중국과 시리아 및 인도 등지로 알려져 있으나, 아주 오래 전에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이제는 토착화된 수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창복(李昌福) 선생님이 저술하신 '대한식물도감‘(大韓植物圖鑑)의 설명을 보겠습니다.
“평남 및 강원도 이남에서 재식하는 낙엽관목(落葉灌木: 갈잎 떨기나무)으로서 여러 품종이 있으며 높이가 3미터(간혹 4미터)에 달하고 어린 가지에 털이 많으나 점차 없어진다. 잎은 호생(互生: 어긋나기)하며 난형(卵形: 알꼴)이고 다소 3개로 갈라져서 첨두(尖頭: 잎의 꼭대기가 뾰족함)로 되며 넓은 예저(銳底: 잎의 아래가 직각보다 작은 각) 또는 원저(圓底: 잎의 아래가 둥글게 됨)이고 표면에 털이 없으며 기부(基部: 잎이 시작되는 부분)에 3개의 큰 맥(脈: 잎살 안에 분포되어 있는 관다발의 한 부분. 잎살을 버티고 수분과 양분의 통로가 됨. 나란히맥과 그물맥의 두 가지가 있음)이 있고 뒷면 맥 위에 털이 있으며 가장자리에 둔하거나 예리한 톱니ㅣ가 있고 엽병(葉柄: 잎자루)은 길이 5~ 15밀리미터이다. 꽃은 8~ 9월에 피며 1개씩 달리고 짧은 화경(花梗: 꽃자루)이 있으며 지름 6~ 10센티미터로서 보통 분홍색 내부(粉紅色 內部: 흰빛이 섞인 붉은 빛 안쪽 부분)에 짙은 홍색이 돈다. 꽃받침잎은 난상 피침형(卵狀 披針形: 알 모양의 바소꼴. 바소는 곪은 데를 침으로 양쪽 끝에 날카로운 날이 있음)이고 성모(星毛: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별 모양의 털)가 있으며 외부(外部: 꽃 바깥)에 꽃받침보다 짧은 선상(線狀: 줄 모양)의 외악(外萼: 꽃받침 바깥쪽에 포, 즉 꽃턱잎처럼 생긴 꽃받침이 달려 있는 모양) 꽃잎은 도란형(倒卵形: 알을 거꾸로 세운 꼴)이며 5개가 밑부분에서 서로 붙어 있고 많은 단체웅예(單體雄蕊: 한 꽃 중의 수술이 서로 붙어서 하나로 되어 있는 수술)가 있으며 암술대가 수술통 중앙부를 뚫고 나오며 암술머리가 5개이다. 열매는 긴 타원형(楕圓形: 긴둥근꼴)으로서 둔두(鈍頭: 그 끝이 뾰족하지 않고 뭉툭함)이고 5실(室: 칸)이며 포배개열(胞背開裂: 삭과 중에서 배봉선에 따라서 터지는 것. 背縫線- 나중에 씨앗이 될 부분을 감싸고 있는, 심피를 지나는 유관속의 선)되어 5개로 갈라지며 10월에 익고 종자(種子: 씨)는 편평ᄒᆞ며 긴 털이 있다. 꽃색에 따라 흰무궁화나 단심무궁화 등이 있고 꽃잎의 수에 따라 여러 품종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머리 아픈 공부를 했으니 이제는 머리를 식히기 위하여 시조 한 편을 음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궁화가 피어난다
김 재 황
동쪽에 자리 잡아 그 먼동을 닦은 마음
아픔을 죈 이마에는 이슬 같은 땀이 솟고
조금씩 손을 펼치어 새아침을 맞고 있다.
맨몸으로 다진 나날 이어지는 목숨의 끈
먼저 떠난 발자국을 다시 짚어 따라가면
점잖게 흰옷을 걸친 얼굴들도 눈을 뜬다.
때로는 젖은 바람 그 가슴에 손이 가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불빛 찾아 헤맨 역사
겨레의 더운 숨결이 꿈을 안고 피어난다.
(2005년)
조선조 제15대 광해주(光海主) 6년(1614년)에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이 지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보면 ‘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군자지국 지방천리 다목근화)란 문구가 나오는데 이로 말미암아 조선을 ‘근역’(槿域)이라고 일컫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목근’이나 ‘근’은 ‘무궁화나무’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國花)으로 정착된 것은 애국가 가사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들어감으로써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궁화는 별명을 많이 지닌 나무로 유명합니다.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은 여름에서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꽃이 피고 지기 때문에 얻은 이름입니다. 이 ‘무궁화’라는 이름을 맨 처음에 사용한 사람은 고려 때의 시인 이규보(李奎報)였다고 합니다.
또, 무궁화를 한자로는 ‘근’(槿)이라고 쓰는데 왜 하필이면 ‘나무 목’(木) 옆에 ‘오랑캐꽃 근’(菫)을 쓰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오랑캐꽃은 다른 이름으로 ‘씨름꽃’이라고도 하고 ‘제비꽃’이라도 부릅니다. 이 풀은 줄기는 없고 뿌리는 갈라졌으며 4~ 5월에 잎 사이로부터 11센티미터 가량의 기늘고 긴 꽃줄기가 여러 개 나와서 그 끝에 자줏빛의 다섯 잎의 꽃이 한 송이씩 핍니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꽃이 무궁화와 닮았다고 여기십니까? 꽃이 작아서 그렇지, 자꾸 보니까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부지런할 근’(勤)이 근면을 뜻하고 ‘삼갈 근’(謹)이 예절을 의미하며 ‘적을 근’(僅)이 검소를 가리키는 것이기에 우리니리 국민성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균’(朝菌)은 무궁화나무의 또 다른 별명입니다. 원래 이 조균은 풀밭에 나는 버섯의 이름인데, 단명하다는 공통적인 뜻에서 그 이름을 공유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렇듯 무궁화는 햇볕이 있을 때만 꽃이 피고 어둠이 내리면 꽃이 지기에 ‘일급’(日及)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라고 풀어서 부른 적도 있습니다. 즉, ‘하루살이 꽃’이란 말이 됩니다.
문일평(文一平)이 쓴 ‘화하만필’(花下漫筆)에 보면 무궁화에 대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꽃이 조개모락(朝開暮落)이라고 하나 그 실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요 시드는 것이니 조개모위(朝開暮萎)라고 함이 차라리 가할 것이며 따라서 낙화 없는 것이 이 꽃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거니와, 어쨌든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것은 영고무상(榮枯無常)한 인생의 원리를 보여 주는 동시에 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계속적으로 피는 것은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군자의 이상을 보여 주는 바다.”
어찌 생각하면 꽃이 동백꽃처럼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아서 구질구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때나 상황에 따라서는 끈질기게 참는 것이 미덕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옛말에 ‘세 번을 참으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순화’(舜華)나 ‘순영’(舜英)도 무궁화나무를 가리킵니다. 이는, 시경(詩經) 속의 국풍(國風) 중 정풍(鄭風)의 한 노래인 ‘유녀동거’(有女同車)에 그 근거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有女同車 顔如舜華 將翶將翔 佩玉瓊琚 彼美孟姜 洵美且都/ 有女同行 顔如舜英 將翶將翔 佩玉將將 彼美孟姜 德音不望(유녀동거 안여순화 장고장상 패옥경거 피미맹강 순미차도/ 유녀동행 안여순영 장고장상 패옥장장 피미맹강 덕음불망)
이는, ‘함께 수레를 탄 여인 있었는데, 얼굴이 무궁화와 같다네. 나아가서 돌다가 나아가서 머무르면, 늘어진 옥구슬들이 멋스러웠다네. 저 아름다운 강 씨네 맏딸은 참으로 아름답고 또한 멋지다네./ 함께 먼 길 가는 여인 있었는데, 얼굴이 무궁화와 같다네. 나아가서 돌다가 나아가서 머무르면, 늘어진 옥구슬들이 멋스러웠다네. 저 이름다운 강 씨네 맏딸이 사랑스런 말소리 잊을 수 없네.’라는 뜻입니다.
무궁화는 꽃의 빛깔에 다라 그 이름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단’(椴)이라고 하면 ‘흰 꽃을 피우는 무궁화’를 말하는 것이고, ‘친’(櫬)이라고 하면 ‘붉은 꽃이 달리는 무궁화’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무궁화나무에서는 꽃이 잠을 잘 수 없기에 ‘무숙화’(無宿花)라는 이름이이 붙었는가 하면, 아침에 아름다운 꽃이 핀다고 하여 ‘조화’(朝華)라고도 부른답니다. 또, ‘진찬화’(進饌花)는 옛날 궁중에서 잔치가 있을 때 신하들이 사모에 무궁화를 꽂는 풍습이 있었기에 생겨난 이름이고, ‘번리초’(藩籬草)는 생 울타리로 쓰였기에 얻은 또 다른 이름입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도 예쁠 수가 있을까?”
멀고 먼 옛날 중국에는, 한 번 얼굴을 보면 누구나 넋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얼굴뿐만 아니라, 글과 노래도 아주 잘 하였기에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게도 그녀의 님편은 장님이었는데, 그 여인은 그 남편을 끔찍이나 사랑하여 항상 바른 몸가짐을 지켰습니다.
“저런 미인이 장님의 아내가 되다니--.”
애석하게 생각한 것은 그 곳 성주였습니다. 성주는 그 여인을 은근히 유혹해 보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요. 어느 날, 참다못한 성주는 부하들로 하여금 성으로 잡아들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내 말만 듣는다면 평생 동안 호강시켜 주겠다.”
갖은 말로 여인을 꾀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눈과 입을 닫은 채로 목석처럼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성주는 마침내 그 여인의 목을 칼로 베려고 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여인이 눈을 뜨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소청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 원하는 게 무엇인가?”
“저를 죽이시고 난 뒤에 제 시체를 저희 집 마당에 묻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혹시나 마음을 돌이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였던 성주는 크게 실망을 하였지만, 그 부탁만은 들어 주었습니다.
여인의 시체를 묻은 마당에서는 한 그루의 나무가 돋아나서, 얼마 동안이 지나자 마치 장님인 남편을 보호하려는 듯이 집을 둘러싸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번리초’(藩籬草)라고 불렀습니다. 그게 바로 무궁화나무랍니다.
슬픈 전설이지만, 그 마음이 참으로 반듯합니다. 그 마음이 꽃으로 피어났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무궁화 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먼동을 비집고 떠오르는 일출(日出)의 찬란함이 있습니다. ‘해 뜨는 동방의 나라’를 상징함에 조금의 손색도 없습니다. 무궁화 꽃은 밝음을 추구할 뿐, 어둠을 외면합니다. 환한 것을 좋아하는 백의민족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무궁화나무는 식물학 상으로 변종이나 종은 없으나, 원예학 상으로는 꽃의 색깔이나 꽃잎의 형태 등에 따라 종류가 구분되기도 합니다. 꽃의 색깔은 백색이나 분홍 등도 있고 꽃의 형태는 크게 보아서 홑피기 종과 겹피기 종으로 나누어집니다.
무궁화나무는 약재로도 활용됩니다. 생약명으로 가지와 뿌리껍질은 ‘목근피’(木槿皮)리고 하며, 꽃은 ‘목근화’(木槿花)라고 합니다. 그리고 열매는 ‘조천자’(朝天子)라고 부릅니다. 가지와 뿌리는 4~ 6월경에 채취하여 잘게 썰어서 사용하고 꽃은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이나 덜 핀 꽃봉오리를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 다음에 그대로 씁니다. 한 해 이상 저장된 것은 쓰지 않고 되도록 신선한 것을 씁니다.
목근피는 해열과 해독 및 소종 등의 효능이 있는데 적용질환은 ‘기관지염’ ‘인후염’ ‘위장염’ ‘장출혈’ ‘지혈약’ ‘이질’ 등이라고 합니다. 목근화는 ‘급만성 대장염’ ‘이질’ ‘대하증’ 등을 다스려 주고 그 외는 ‘피부염’ ‘신경통’ ‘신경안정 치료약’ 등으로 쓰인답니다. 잎으로는 차(茶)를 만들어서 마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무궁화는 위쪽에 실한 가지가 많지만 아래나 옆에는 약한 가지가 많습니다. 그 때문에 위쪽 가지는 과감하게 솎아 주고 또 남아 있는 가지는 2~ 3마디 남기고 가지치기를 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울타리로 만들려면 봄에 일찍 가지를 잘라서 보기 흉하게 가지가 뻗는 것을 막아 주어야 합니다. 꽃은 새 가지에 달리기 때문에 전년도 생긴 가지에 2게의 눈만 남기는 강한 가지치기를 해도 여름이 되면 가지치기한 가지에서 60센티미터 정도의 새 가지가 돋아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무궁화나무는 자생력이 왕성해서 4~ 5월경에 전년도 가지를 15센티미터 정도 자른 후에 모래땅에 꽂으면 새로운 뿌리가 나오는데 그 후년 봄쯤이면 묘목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년에 꽃이 핍니다. 가지 자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지요. 옮겨심기를 한 후에는 가을에 뿌리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물주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궁화나무를 ‘이생’(易生)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잘 사는 나무가 틀림없습니다.
무궁화나무는 정원이나 공원 등 어디에나 심어도 좋고, 하나 또는 여럿을 모아 심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국화(국화)이니만큼 그냥 심어놓고 방치해 둘 바에는 차라리 심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추레한 무궁화나무를 보면 머음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무궁화가 등장하는 당시(唐詩)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당나라 시인인 ‘왕유’(王維)의 작품으로 제목은 ‘적우망천작’(積雨輞川作)입니다.
‘積雨空林煙火遲 蒸藜炊黍餉東菑 漠漠水田飛白鷺 陰陰夏木囀黃鸝/ 山中習靜觀朝槿 松下淸齋折露葵 野老與人爭席罷 海鷗何事更相疑’(적우공림연화지 증려취서향동치 막막수전비백로 음음하목전황리/ 산중습정관조근 송하청재절로규 야노여인쟁석파 해구하사갱상의).
이는, “장마에 빈 숲속이라 불에 익힌 음식 더딘데 명아주로 만든 국에 기장밥을 동쪽 일구는 밭으로 내가네. 넓디넓은 논에는 해오라기가 날고 어두침침한 여름 나무에는 꾀꼬리가 지저귄다./ 산 가운데에서 고요함을 익히며 아침 무궁화를 자세히 살피고 소나무 밑에서 삼가는 마음을 깨끗하게 이슬 머금은 아욱을 꺾는다. 사골 노인은 남과 자리다툼을 그만두었는데 바다 갈매기는 무슨 일로 다시 의심으로 보는가.”라는 뜻입니다.
이 시에서 눈여겨볼 게 있습니다. 둘째 수에서 첫째는 ‘조근’(朝槿)입니다. 이는 ‘무궁화’를 가리키는데, 나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단명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아침’이라는 단어를 넣었습니다. 이렇듯 보잘 것 없는 삶을 바라보며 ‘정관’(靜觀)을 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맨 끝의 ‘상의’(相疑)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상’(相)은 ‘서로’라는 뜻도 있고 ‘보다’라는 뜻도 있지요. 그래서 여러 사람이 ‘갈매기가 의심한다.’라고 풀이했으나, 나는 ‘서로 의심한다.’라고 풀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갈매기가 의심한다고 작가 자신도 의심하는 것’이니까요. 깃발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