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고시조 감상 419

山이 하 놉흐니/ 작가 미상

29. 山이 하 놉흐니/ 작가 미상 [원본] 山이 하 놉흐니 杜鵑이 나즤 울고 물이 하 맑그니 고기를 헤리로다 白雲이 내 벗이라 오락가락 하난고나. [역본] 저 산이 참 높으니 두견새가 낮에 울고 저 물이 참 맑으니 물고기를 셀 수 있네 흰구름 내 벗이기에 오락가락 노는구나. [감상] 이 작품은 고금가곡(古今歌曲)에 실려 있다. 이 작가야말로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자연이리라고 여겨진다. 초장을 보면, 산이 아주 높아서 두견새조차 밤에만 우는 게 아니라 낮에도 운다고 노래한다. 다시 말해서 낮은 산이라면 밤에만 우는 두견새가 아니겠는가. 이를 거꾸로 봐서 산이 얼마나 높기에 두견새가 낮에 울겠는가. 중장을 보면 이번에는 물이다. 물이 얼마나 맑기에 그 안에서 노는 물고기를 셀 수 있겠는가. 이는, 물이..

달이야 님 본다하니/ 작가 미상

28. 달이야 님 본다하니/ 작가 미상 [원본] 달이야 님 본다하니 님 보는 달 보려 하고 東窓을 반만 열고 月出을 기다리니 눈물이 비오듯 하니 달이조차 어두어라. [역본] 달이야 임 본다니 임 보는 달 보려 하고 동쪽 창을 반만 열고 달 뜨기를 기다리니 눈물이 비오듯하여 달이 따라 어둡구나. [감상] 이 작품의 출전은 고금가곡(古今歌曲) 및 근화악부(槿花樂府)이다. 내용으로 보아서 일반 서민인 듯싶다. ‘동창’이나 ‘월출’을 한자로 쓴 것으로 미루어서 서당 정도는 다닌 게 아닌가 본다. 초장을 보면, 달은 높이 떠서 이땅 어디든지 다 보는 처지니 네 임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내 임을 본 달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말이다. 그 간절함이 느껴진다. 중장으로 간다. 그레서 기다리는 곳이 동쪽 ..

雪月이 滿窓한데/ 작가 미상

27. 雪月이 滿窓한데/ 작가 미상 [원본] 雪月이 滿窓한데 바람아 부지마라 曳履聲 아닌 줄을 判然히 알것만은 그립고 아쉬온적이면 幸여 긘가 하노라. [역본] 눈 달빛이 창에 가득 바람이여 불지 마라 신을 끌며 오는 소리 아닌 줄을 확 알지만 그립고 아쉬웁기에 혹 임인가 여긴다. [감상] 이 작품은 한밤에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설월’이라든가 ‘예리성’ 또는 ‘판연’이라는 한문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작가가 ‘선비’일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어쩌면 세상에 그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에서 ‘설월’은 ‘눈 위에 비치는 달빛’을 가리킨다. 이를 나는 ‘눈 달빛’으로 나는 풀었다. ‘만창’은 ‘창문에 가득함’이다. 그래서 뚝 잘라서 ‘창에..

아희야 네 어듸 사노/ 작가 미상

26. 아희야 네 어듸 사노/ 작가 미상 [원본] 아희야 네 어듸 사노 내 말슴이요 강변 사오 강변서 무엇하노 고기 잡아 생애하오 네 생애 죰두 됴쿠나 나도 함꾀 (하리라.) [역본] 아이야 어디 사냐, 저는 바로 강변 살죠 경변서 무엇하냐, 고기 잡아 살고 있죠 네 생애 오죽 좋겠냐 나도 함께 살기를! [감상] 이 작품은 문답식으로 되어 있는 특징을 지닌다. 누군가가 묻는데, 어디 사냐고 묻는다. 아마도 묻는 이가 연장자 같은데, 자유롭게 행동하는 아랫사람에게 정감을 지니고 묻는 듯싶다. 아이는 자랑스럽게 강변에 산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그 나그네는 ‘강변에서 무엇을 생업으로 하며 사는가’를 묻는다. 아이는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살고 있다고 답변한다. 그 말을 듣고 나그네는 ‘죰두 좋구나’라고 말한다. ..

아바님 가노이다/ 작가 미상

25. 아바님 가노이다/ 작가 미상 [원본] 아바님 가노이다, 어마님 됴히 겨오 나라히 부르시니 이몸을 니젓내다 來年의 이 時節 오나도 기다리지 마라쇼서. [역본] 아버지 전 갑니다, 어머니 잘 계세요 나라에서 부르시니 이 몸 오직 따릅니다 해 가고 이때 되어도 기다리지 마세요. [감상] 이 작품은 내용으로 보아 농민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병졸로 징집되어 떠나기 때문이다. 선비라면 아마도 병졸은 아니었을 성싶다. ‘가노이다’는 평서형 종결어미이다. ‘갑니다.’라는 뜻이다. ‘됴히’는 ‘좋이’이고 ‘좋게’ 또는 ‘안녕히’라는 뜻인데 나는 ‘잘’이라고 했다. ‘겨오’는 ‘계십시오.’라는 뜻. ‘니젓내다’는 ‘잊었네다’인데, ‘단념하고 생각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오직 따릅니다.’라고 ..

莘野에 저 農夫야/ 조황

24. 莘野에 저 農夫야/ 조황 [원본] 莘野에 저 農夫야 天民先覺 네로구나 이 百姓 건지려니 三聘玉帛 마다하랴 아마도 그 몸의 出處는 저 하날이 시키니라. [역본] 긴 들에 저 농삿군아 깨달은 이 바로 너다 이 백성을 건지려니 세 번 간청 마다하랴 이미도 그 몸 나옴은 저 하늘이 시키는 것 [감상] 조황(趙榥 1803~?)은 조선 말기(순조, 헌종, 철종, 고종)의 학자이며 시조작가이다. 본관은 순창(淳昌), 자(字)는 ‘중화’(重華)이고 호(號)는 ‘삼죽’(三竹)이라고 한다. 이렇다고 할 집안이 아니었기에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고 오직 학문연구와 문학창작에 일생 동안 몰두하였다고 전한다. 시조집 삼죽사류(三竹詞流)가 전한다. 병이음, 인도행, 기구요, 주로원격양가, 훈민가 등으로 모두 111수의 시조..

뉘라셔 가마귀를/ 박효관

23. 뉘라셔 가마귀를/ 박효관 [원본] 뉘라셔 가마귀를 검고 凶타 하돗던고 反哺報恩이 긔 아니 아름다온가 사람이 져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역본] 그 누가 까마귀를 검고 흉한 새라 했나, 기른 은혜 갚는 것이 어찌 아니 예쁜 건가, 사람이 새만 못하니 그지없이 슬프다. [감상] 박효관(朴孝寬 1781~ 1880)은 조선의 가객이다. 자(字)는 ‘경화’(景華)이고 호(號)는 ‘운애’(雲崖)라고 한다. 1876년 제자이자 동료인 안민영(安玟英)과 함께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했다고 전한다. 이 가집은 당대 가곡계의 표본이었다고 한다. 까마귀는 겉으로 보아서 검기 때문에 좋지 않은 느낌이 있다. 그러나 효도를 하는 새라고 한다. 까마귀는 반포조(反哺鳥)라고 부르는데, ‘반포’란 어릴 때는 어미에게..

山家에 봄이 오니/ 이정보

22. 山家에 봄이 오니/ 이정보 [원본] 山家에 봄이 오니 自然이 일이 하다 앞내에 살도 매고 울밑에 외씨도 빟고 내일은 구름 걷거든 藥을 캐러 가리라. [역본] 산속 집에 봄이 오니 자연스레 일이 많다 앞의 내에 어살 놓고 울 밑에는 외씨 심고 내일은 구름 걷히면 약초 캐러 가겠다. [감상] 이정보(李鼎輔 1693~ 1766)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字)는 ‘사수’(士受)이고 호(號)는 ‘삼주’(三洲) 또는 ‘보객정’(報客亭)이라고 한다. 본관은 연안(延安)이라고 한다.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낸 이우신(李雨臣)의 아들이다. 1721년 진사과에 합격하고 1732년(영조 8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을 시작으로 몇 직책을 거치고 만년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이르렀다고..

草庵이 寂寞한대/ 김수장

21. 草庵이 寂寞한대/ 김수장 [원본] 草庵이 寂寞한대 벗업시 혼자 안자 平調 한 닙혜 白雲이 절로 돈다 어느 뉘 이 죠흔 뜻을 알니 잇다 하리오. [역본] 초가 암자 고요한데 벗이 없이 앉은 자리 낮은 노래 한 곡조에 흰 구름이 절로 돈다, 누군가 이 좋은 뜻을 알아줄 이 있을지. [감상] 김수장(金壽長)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이다. 1690년에 태어났고 죽은 해는 모른다. 자(字)는 ‘자평’(子平)이고 호(號)는 ‘십주’(十洲) 또는 ‘노가재’(老歌齎)라고 한다. 숙종 때 병조에서 서리(書吏)를 지냈다고도 한다. 김천택과 더불어 당대 시조 가단의 쌍벽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해동가요’(海東歌謠)를 편찬하였는데, 지작 시조를 117수나 수록했다. 그는 총 121수를 지었는데 평시조 82수에 엇시조..

田園에 나믄 興을/ 김천택

20. 田園에 나믄 興을/ 김천택 [원본] 田園에 나믄 興을 전나귀에 모도 싯고 溪山 니근 길로 興치며 도라와서 아희야 琴書를 다스려라 나믄 해를 보내리라. [역본] 시골에 남은 재미, 나귀 등에 모두 싣고 골짜기 아는 길로 기뻐하며 예 왔으니 챙겨라 거문고와 책, 남은 세월 보내게. [감상] 김천택(金天澤)은 시조작가 및 가인(歌人)으로 생몰년대가 밝혀져 있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자(字)는 ‘백함’(伯涵) 또는 ‘이숙’(履叔)이고 호(號)는 ‘남파’(南坡)라고 한다. 숙종 때에 포교를 지냈다고도 한다. 노래를 잘 하였으며 , 당대의 가객인 김수장(金壽長) 및 김성기(金聖器) 등과 사귐을 가져서 근세 시조사(時調史)의 황금시대를 구가하였다. “사람됨이 총명하고 유식하며 능히 을 알고 외워서 한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