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고시조 감상 419

말하면 雜類라하고/ 주의식

19. 말하면 雜類라하고/ 주의식 [원본] 말하면 雜類라하고 말 않으면 어리다하네 貧寒을 남이 웃고 부귀를 새우는데 아마도 이 하늘아래 사롤 일이 어려왜라. [역본] 말하면 잡스럽다 말 않으면 어리석다 가난하면 남이 웃고 잘 산다면 시기하니 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어렵구나. [감상] 주의식(朱義植)은 조선 숙종과 영조 때의 시조작가이다. 출생한 해와 이 세상을 떠난 해는 알려지지 않았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字)는 ‘도원’(道源)이며 호(號)는 ‘남곡’(南谷)이라고 한다.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칠원현감(漆原縣監)을 지냈다고 하는데, 노래를 짓고 부르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어서 명가(名歌)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그의 사위 김삼현(金三賢)과 더불어 자연에 묻혀 살았다. 몸을 공검하게 했고..

잔들고 혼자 안자/ 윤선도

18. 잔들고 혼자 안자/ 윤선도 [원본] 잔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러하랴 말삼도 우음도 아녀도 몯내 됴하하노라. [역본] 잔 들고 홀로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리운 임 온다한들 반가움이 이러할까 없어도 말씀과 웃음, 나는 못내 좋구나. [감상] 윤선도(尹善道 1587~ 1671)는 조선시대의 중기와 후기의 문신이자 작가 및 음악가인데, 자(字)는 ‘약이’(約而)이고 호(號)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이라고 한다. 시호는 충헌(忠憲). 1613년 진사시에 급제하였고, 1628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며 1634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다고 한다. 여러 관직을 거친 후, 보길도(甫吉島)에 은거하였고, 그 때 보길도를 배경으로 ‘..

사랑이 거즛말이/ 김상용

17. 사랑이 거즛말이/ 김상용 [원본] 사랑이 거즛말이 임 날 사랑 거즛말이 꿈에 와 뵌단말이 긔 더욱 거즛말이 날갓치 참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이리. [역본] 사랑은 거짓말이, 임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보인단 말, 그게 더욱 거짓말이 나처럼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만날까. [감상] 김상용(金尙容 1561~ 1637)은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이다. 자(字)는 ‘경택’(景擇)이고 호(號)는 ‘선원’(仙源) 또는 ‘풍계’(楓溪) 및 ‘계옹’(溪翁)이라고 한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590년(선조 13년)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春秋館) 검열(儉閱) 등을 시작으로 판서 등을 역임하고, 1632년 우의정(右議政)에 발탁되었으나 늙었다고 사퇴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 강화도에 원손을 수행하여 ..

同氣로 셋몸되야 / 박인로

16. 同氣로 셋몸되야 / 박인로 [원본] 同氣로 셋몸되야 한몸가치 지내다가 두 아은 어디거셔 돌아올 줄 모르는고 날마다 夕陽門外에 한숨계워 하노라. [역본] 한 부모 세 형제가 한 몸처럼 지내다가 두 아우는 어디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가, 날마다 해질 무렵엔 문 밖에서 한숨짓네. [감상] 박인로(朴仁老 1561~ 1642)는 조선 중기의 가사문학의 대가이자 무인이다. 자(字)는 ‘덕옹’(德翁)이고 호(號)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이다. 임진왜란 때 성윤문(成允文) 막하로 들어가서 해상에서 공을 여러 번 세웠다. 그 후 39세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나포만호(羅浦萬戶)를 지내기도 했다. 45세 때 통주사(統舟師)로 부임하여 무인다운 ‘선상탄’(船上嘆)을 지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시풍’(..

노래 삼긴 사람/ 신흠

15. 노래 삼긴 사람/ 신흠 [원본]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닐러 다 못 닐러 불러나 풀돗던고 眞實로 풀릴거시면 나도 불러 보리라. [역본] 노래를 지은 이는 걱정 근심 많겠구나, 이르고 다 못 일러 노래 불러 풀었던가, 정말로 그렇다 하면 나도 한번 부르리. [감상] 신흠(申欽 1566~1628)은 조선 중기의 문인인데, 본관은 평산(平山), 자(字)는 ‘경숙’(敬叔)이고 호(號)는 ‘상촌’(象村) ‘현헌’(玄軒) ‘방옹’(放翁) 등이다. 선조 18년에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의 즉위와 함께 이조판서 겸 홍문관의 대제학에 중용되었고,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1627년에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좌의정으로 세자를 ..

쓴나믈 데온 물이/ 정철

14. 쓴나믈 데온 물이/ 정철 [원본] 쓴나믈 데온 물이 고기도곤 마시 이셰 草屋 조븐 줄이 긔 더욱 내分이라 다만당 님 그린 타스로 시름계워 하노라. [역본] 쓴 나물 데운 물이 고기보다 맛있구나, 초가집 좁은 것이 더욱 그게 내 분수라 오로지 임 그리움에 시름겨울 뿐이네. [감상] 정철(鄭澈 1536~ 1593)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며 문신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字)는 ‘계함’(季涵)이고 호(號)는 ‘송강’(松江) 또는 ‘칩암거사’(蟄菴居士)이며 시호는 문청(文靑)이다. 중종 31년 한양에서 출생했다. 1561년에 진사시에 1등을 하고 이듬해에는 문과 별시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여러 관직을 지내고, 45세 때에 강원도관찰사가 되었을 때 가사문학의 대가로서의 기질을 발휘했다고 한다..

北天이 맑다커늘/ 임제

13. 北天이 맑다커늘/ 임제 [원본] 北天이 맑다커늘 雨裝업시 길을 나니 山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마자시니 얼어 잘까 하노라. [역본] 북쪽하늘 맑다기에 비옷 없이 길 떠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또 들에는 찬비 오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춥게 잘 것 같구나. [감상] 임제(林悌 1549~ 1587)는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자(字)는 ‘자순’(子順)이고 ‘호’(號)는 ‘백호’(白湖) ‘풍강’(楓江) ‘소치’(嘯癡) ‘벽산’(碧山) ‘겸재’(謙齋) 등으로 불렀다. 본관은 나주(羅州)라고 한다. 1577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살이도 하였으나, 즉 선조 때에 등재(등재)하여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벼슬에는 뜻이 없어서 명상대천(名山大川)을 두루 찾아다니며 멋지게 ..

바람은 절로 맑고/ 권호문

396. 바람은 절로 맑고/ 권호문 [원본] 바람은 절로 맑고 달은 절로 밝다 竹庭松楹애 一點塵도 업스니 一長琴 萬軸書 더욱 蕭灑하다. [역본] 바람은 그리 맑고 달도 또한 그리 밝다 대숲과 솔의 기둥 한 티끌도 안 지니니 보이는 가야금과 책 속되지가 않구나. [감상] 권호문(權好文 1532~ 1587)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이황의 외종손으로 그 문하(門下)에서 글을 배웠다. 자(字)는 ‘장중’(章仲)이고 호(號)는 ‘송암’(松巖)이다. 156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청성산(靑城山) 아래에 ‘무민재’(無悶齋)를 짓고 은거했으며, 이황(李滉)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동문들은 그의 학행을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훗날, 내시교관(內侍敎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관물당(觀物..

三冬에 뵈옷 닙고 / 조식

11. 三冬에 뵈옷 닙고 / 조식 [원본] 三冬에 뵈옷 닙고 岩穴에 눈비 마자 구름 낀 볏 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西山에 해 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역본] 겨울에 베옷 입고 바위굴에 눈비 맞아 구름 낀 햇볕조차 쪼인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가 진다니 눈물겨워 한다네. [감상] 조식(曺植 1501~ 1572)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건중’(健中)이고 호(號)는 ‘남명’(南冥)이다. 22세 때에 진사과와 문과 초시에 합격했으나 회시에 실패하고, 37세 되던 해에 모친의 권유로 과거에 응시했다가 낙방하여 과거를 포기한 후에 처사로서 본격적인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대사간’(大司諫)에 추증되고 1615년에는 영의정으로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風霜이 섯거친 날에 / 송순

10. 風霜이 섯거친 날에 / 송순 [원본] 風霜이 섯거친 날에 갓픠온 黃菊花를 金盆에 가득다마 玉堂에 보내오니 桃李야 곳이온양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역본] 바람서리 치는 날에 방금 피운 노란 국화 좋은 분에 가득 담아 홍문관에 보내시니 봄꽃아 꽃인 척 마라 임금님 뜻 알겠구나. [감상] 송순(宋純 1493~ 1583)은 조선 시대 명종 때의 문신이다. 본관은 신평(新平), 자(字)는 ‘수초’(遂初) 또는 ‘성지’(誠之)이고 호(號)는 ‘면앙정’(俛仰亭) 또는 ‘기촌’(企村)이다. 시호(諡號)는 ‘숙정’(肅正)이다. 1519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벼슬이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는데, 말년에는 담양(潭陽)에 은거하여 ‘면앙정’(俛仰亭)이란 정자를 짓고 책을 읽으며 지냈다. 퇴계(退溪)의 선배이고 농암(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