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고시조 감상 419

靑山도 절로절로/ 김인후

9. 靑山도 절로절로/ 김인후 [원본] 靑山도 절로절로 綠水도 절로절로 山 절로절로 水 절로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中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역본] 푸른 산도 생긴 대로 초록 물도 흐른 대로 산 저절로 물 저절로 산 물 새에 나 저절로 그 중에 스스로 자란 몸 늙는 것도 스스로. [감상] 김인후(金麟厚 1510~ 1560)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성리학 학자이다. 일찍이 김안국(金安國)의 문하(門下)에서 이퇴계(李退溪)와 동문수학한 바 있다. 본관은 울산(蔚山), 자(字)는 ‘후지’(厚之)이고 호(號)는 ‘하서’(河西) 또는 ‘담재’(湛齋)이다. 1540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를 시작으로 몇 관직을 역임한 후, 1544년에는 제술관(製述官)이 되었다..

올희 댤은 다리/ 김구

8. 올희 댤은 다리/ 김구 [원본] 올희 댤은 다리, 학긔다리 되도록애 거믄 가마괴, 해오라비 되도록애 享福無彊하샤 億萬歲를 누리소셔. [역본] 물오리 짧은 다리, 학의 다리 될 때까지 시꺼먼 까마귀가 해오라기 될 때까지 끝까지 크나큰 복을 오랜 세월 누리소서. [감상] 김구(金絿 1488~ 1534)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서예가로, 자(字)는 ‘대유’(大柔)이고 호(號)는 ‘자암’(自庵) 및 삼일재(三一齋)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인데, 1507년 생원과 진사 양쪽 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벼슬이 부제학(副提學)에 올랐으나 사화에 연루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글씨를 잘 썼는데 인수방(仁壽坊)에 살았으므로 그의 글씨체를 인수체(仁壽體)라고 불렀다. 을묘사화로 조광조 등과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가 중..

赤兎馬 살지게 먹여/ 남이

7. 赤兎馬 살지게 먹여/ 남이 [원본] 赤兎馬 살지게 먹여 豆滿江에 싯겨세고 龍泉劍 드는 칼을 선뜻 삐쳐 두러메고 丈夫의 立身揚名을 試驗할까 하노라. [역본] 적토마 잘 길러서 두만강에 씻겨 타고 용천검 드는 칼을 선뜻 빼어 둘러메고 대장부 세운 이름을 알아볼까 한다네. [감상] 남이(南怡 1441~ 1468)는 조선 초기 세조 때의 장수로 태종의 외손이다. 1460년 경진무거(庚辰武擧)에 급제하고 여러 무관직을 역임했으며 1466년 발영시(拔英試)에도 급제하였다고 한다.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에 참여하여 적개공신(敵愾功臣) 일등에 책봉되었으며 북벌 여진 토벌에 참여하여 군공을 받았고, 1468년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예종 즉위년에 대궐 야직 중에 한 말이 역모를 꾀한다는 유자광..

長白山에 旗를 꽂고/ 김종서

6. 長白山에 旗를 꽂고/ 김종서 [원본] 長白山에 旗를 꽂고 豆滿江에 말 싯기니 셕은 져 션븨야 우리 아니 사나희냐 엇더타 凌煙閣上에 뉘 얼골을 그릴고. [역본] 백두산에 깃발 꽂고 두만강에 말 씻기니 썩어빠진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이냐 아쉽다, 능연각 위에 누구 얼굴 걸릴까. [감상] 김종서(金宗瑞 1390~ 1453)는 조선 초기의 정치가이다. 본관은 순천(順天)인데, 자(字)는 ‘국경’(國卿)이고 호(號)는 ‘절재’(節齋)이며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1405년에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관직을 거치고 1433년 함길도관찰사로 파견되어 7~8 년 동안 국경 확장에 큰 공을 세웠다. 62세에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가 되어 ‘고려사(高麗史)’를 개찬 간행하였다. 학문과 지략에..

金生麗水라 한들/ 박팽년

5. 金生麗水라 한들/ 박팽년 [원본] 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金이 나며 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玉이 나랴 아모리 女必從夫라 한들 님마다 조츠랴. [역본] 금 얻는 물이라도 냇물마다 금이 나며 옥 캐는 산이라도 산이면 다 옥이 나랴, 아무리 따를 임이라도 모든 임을 따르랴. [감상] 박팽년(朴彭年 1417~ 1456)은 조선 전기의 문인으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순천(順天)인데, 자(字)는 ‘인수’(仁叟)이고 호(號)는 ‘취금헌’(醉琴軒)이다. 1434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1447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다시 급제하였는데, 집현전 학사와 우승지를 거쳐 충청도관찰사 및 형조참판 등을 역임했다고 한다. 특히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고, 세조 때 형조참판(刑曹參判)으로 있으면서 성삼..

首陽山 바라보며/ 성삼문

4. 首陽山 바라보며/ 성삼문 [원본] 首陽山 바라보며 夷齊를 恨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採薇도 하는것가 아모리 푸새엣거신들 긔 뉘따헤 낫더니. [역본] 수양산 바라보며 백이숙제 한탄한다, 굶주려 죽더라도 고사리는 왜 먹었나, 아무리 풀이긴 하나, 누구 땅에 낫더냐. [감상] 성삼문(成三問 1418~ 1456)은 조선전기의 문인으로 사육신(死六臣) 중의 한 사람이다. 자(字)는 ‘근보’(謹甫) 또는 ‘눌옹’(訥翁)이고 호(號)는 ‘매죽헌’(梅竹軒)이다. 일찍이 생원시와 식년시에 급제하였고, 1447년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453년 좌사간을 역임하고 1454년 집현전부제학 예조참의를 거친 후에 1455년 예방승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에 세조가 즉위하자, 단종 복위운동을 계획했던 그는 대역..

江湖에 봄이 드니/ 황희

3. 江湖에 봄이 드니/ 황희 [원본] 江湖에 봄이 드니 이몸이 일이 하다 나는 그믈 깁고 아해는 밧츨가니 뒷 뫼헤 엄긴 藥을 언제캐랴 하느니. [역본] 들녘에 봄이 오니 내가 할 일 아주 많다, 내 자신은 그물 깁고 집 아이는 밭을 가니 뒷산에 싹 긴 약초는 언제 캐게 될 것인가. [감상] 황희(黃喜 1363~ 1452)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字)는 ‘구부’(懼夫)이고 호(號)는 ‘방촌’(厖村)이라고 한다. 그는 고려 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관’이 되었으나, 고려가 망한 후에는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杜門洞)에 은둔했는데, 고려의 충신들의 권유로 조선 왕조로 나가게 되었다고 전한다. 세종이 가장 신임 하는 재상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18년 동안 영의정 자리에 있으면서 큰 업적을 남겼다. 관..

눈마자 휘어진 대를/ 원천석

2. 눈마자 휘어진 대를/ 원천석 [원본] 눈마자 휘어진 대를 뉘라셔 굽다탄고 구블 節이면 눈속에 프를소냐 아마도 歲寒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역본] 눈으로 휜 대나무 굽었단 말 누가 하나, 굽게 될 절개라면 눈 속에서 푸를 건가, 추위를 이길 그 뜻은 너뿐일 것 같구나. [감상] 원천석(元天錫)은 1330에 태어났고 떠난 해는 모른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친 학자이자 문인이다. 본관은 원주(原州)로, 자(字)는 ‘자정’(子正)이고 호(號)는 ‘운곡’(耘谷)이며, 문장과 학문이 뛰어났으나 벼슬자리에 한 번도 나가지 않고 고향에 묻혀 살았다. 치악산으로 들어가서 살았다고도 한다. 조선조 태종이 여러 번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태종이 즉위하고 나서야 백의(白衣)로 임금을 만났다고 한다. 야사(野史) 6..

한 손에 가시를 들고/ 우탁

1. 한 손에 가시를 들고/ 우탁 [원본] 한손에 가시를 들고 또 한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白髮 막대로 치랴터니 백발이 제 몬져 알고 즈럼길로 오더라. [역본]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찔러 막고 오는 흰 털 치려는데 흰 머리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는구나. [감상] 우탁(禹倬 1263~ 1342)은 고려 후기의 학자로, 자(字)는 ‘천장’(天章) 또는 ‘탁보’(卓甫)이고, 호(號)는 ‘백운’(白雲) ‘단암’(丹巖) ‘역동선생’(易東先生) 등이다. 1278년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었고, 그 후에 과거에 급제하여 영해사록(寧海司錄)이 되었는데 팔령신(八鈴神)에 매달리는 폐해가 심하여 신사를 철폐했다고 한다. 1308년 감찰규정이 되었고 낙향했다가 성균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