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쿠러, 콩쯔 32

13. 백성이 흘러내리듯 하는 힘은 맞지 못한다(글: 김 재 황)

13. 백성이 흘러내리듯 하는 힘은 막지 못한다 기원전 319년, 위(魏) 나라 혜왕(惠王)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맹자가 54살 때의 일이었지요. 맹자가 혜왕의 아들인 ‘양양왕’(梁襄王, 이름은 赫)을 만나고 나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멀리서 바라보아도 임금 같지 않았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아도 두려워할 만한 데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졸연히 ‘천하가 장차 어떻게 될까요?’라고 묻기에 내가 ‘하나로 정해지겠습니다.’(定于一 정우일)라고 하였다. ‘누가 통일할까요?’ 묻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통일할 겁니다.’라고 하였다. ‘누가 그의 편을 들까요?’ 묻기에 내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하에 그의 편을 들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저 밭의 싹을 ..

씬쿠러, 콩쯔 2022.04.03

30. 태산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다/ 김 재 황

30 태산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다 공자의 나이가 70살이 되었습니다. 바로 기원전 482년이고 애공 13년이었지요. 공자는 그의 일생을 회상하며, ‘나이가 70살이 되니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의 원문은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종’(從)은 ‘멋대로 풀어놓는다.’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유’(踰)는 ‘넘다’ ‘이기다’ ‘뛰다’ ‘더욱’ ‘멀다’ ‘아득하다’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구’(矩)라는 글자입니다. 이 ‘구’는 원래 ‘곱자’를 가리킵니다. ‘곱자’는, 나무나 쇠로 만들었는데, 90도 각도로 된 ‘ㄱ’..

씬쿠러, 콩쯔 2022.02.05

29. 집으로 돌아가는 새는 쏘지 않는다/ 김 재 황

29 집으로 돌아가는 새는 쏘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공자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으므로, 지금쯤은 공자에 대한 이미지를 짚을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잊지 않으셨지요? 이는, 앞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섭공(葉公)이 자로에게 공자의 사람됨을 물었을 때, 자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공자는 이렇게 말했지요. “너는 왜 이렇게 말하지 못했는가. ‘그 사람됨이, 성이 났을 때는 밥 먹는 일도 잊고 즐거울 때는 모든 걱정을 잊어버리며 늙어 가는 것조차 모른다.’라고.” 이제 기억이 납니까? 이 말대로, 공자는 정열적인 사람입니다. 또 다른 뜻으로는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씬쿠러, 콩쯔 2022.02.05

28.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김 재 황

28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궁금증은 아무래도 죽음에 관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과연, 죽고 난 후에는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가? 천당이 있고 지옥도 있는가? 그리고 ‘귀신’이라는 게 정말 있는가? 또, 더 나아가서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는가?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하느님이 있다면, 정말로 그가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는가? 등등. 이런 여러 가지 의문은 언제나 사람들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공자는 이런 일들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었을까요? 공자는 제사를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자가 귀신을 중히 여긴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귀신에 대한 확신이 없이, ‘어찌 그리 번거로운 제..

씬쿠러, 콩쯔 2022.02.04

27.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게 없다/ 김 재 황

27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게 없다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온 후에 정치에 대한 꿈을 접고 오직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공자는 주로 ‘시’(詩)와 ‘서’(書)와 ‘예’(禮)와 ‘악’(樂)을 중심적인 교재로 삼아서 가르쳤는데, 제자가 3,000명에 이르렀고, 그 중 ‘육예’(六藝)에 통달한 제자만 하더라도 72명이나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육예’는 알지요? 즉, ‘예’(禮)와 ‘악’(樂)과 ‘사’(射)와 ‘어’(御)와 ‘수’(數)와 ‘서’(書)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는, 공자가 네 방면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했지요. 그것은 바로 ‘문’(文)과 ‘행’(行)과 ‘충’(忠)과 ‘신’(信)입니다. 그리고 4가지를 금지하도록 했..

씬쿠러, 콩쯔 2022.02.03

26. 곧고 올바른 사람을 위에 앉힌다/ 김 재 황

26 곧고 올바른 사람을 위에 앉힌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왔으나, 끝내 노나라는 공자를 등용하지 못하였으며, 공자 또한 관직을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공자는 마음을 비웠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공자에게 자문했던 듯싶습니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받은 의논은 ‘세’(稅)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그 의논을 하려고 공자를 찾은 사람은, 공자의 제자인 ‘염유’(冉有)였습니다. ‘염유’는 알고 있지요? 일명 ‘염구’(冉求)라고도 합니다. 그는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季康子) 밑에서 벼슬을 살고 있었지요. 계강자는, 공자를 내쫓은 계환자(季桓子)의 후계자입니다. “선생님, 여쭐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일인지, 말해 보아라.” “나라에서 거두어들이는 땅..

씬쿠러, 콩쯔 2022.02.03

25. 하루에 세 가지로 나를 돌아본다/ 김 재 황

25 하루에 세 가지로 나를 돌아본다 공자에게 많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논어’를 읽다가 보면, 그 수많은 제자 중에서 특별히 ‘유자’(有子)와 ‘증자’(曾子)라고 불리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더러는 이 두 사람이 ‘공자’나 ‘맹자’와 같은 반열에 드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의아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유자’나 ‘증자’는 그렇듯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그저 ‘유 선생님’이나 ‘증 선생님’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지요. 그런데 이 두 사람만 ‘논어’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가요? 이는, ‘논어’를 다룬 사람들이 특히 그 두 사람의 제자들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유자’는 ‘유약’(有若)이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자(字)는 ‘..

씬쿠러, 콩쯔 2022.02.02

24. 군자는 쓰임에 머물지 않는다/ 김 재 황

24 군자는 쓰임에 머물지 않는다 한 마디로 공자는 ‘군자’(君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 ‘군자’란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가 궁금해집니다. 공자는 말했습니다. “군자는 무게가 없으면 위엄이 없으니 배워도 견고하지 못하게 된다. 충과 신을 주로 할 것이며, 나만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이는, ‘군자’가 유의할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는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기도 합니다. 먼저, 군자는 위엄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유머’를 중시하는 시대라 그런지, 위엄을 갖춘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많이 배운 학자까지 그렇습니다. 또, 무엇보다 ‘군자’에겐 ‘충’(忠)과 ‘신’(信)이 중요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충’은 ‘마..

씬쿠러, 콩쯔 2022.02.02

23. 나무는 새를 골라서 깃들게 할 수 없다/ 김 재 황

23 나무는 새를 골라서 깃들게 할 수 없다 공자 일행은 ‘성보’ 땅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초(楚)나라 소왕(昭王)을 만났습니다. 소왕은 매우 기뻤습니다. 그래서 장차 ‘서사’(書社)의 땅 700리를 공자에게 내리려고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25가구(家)를 1리(里)로 하여 ‘리’(里)마다 ‘사’(社)를 만들었답니다. 그런데 그 ‘사인’(社人)들의 이름을 ‘사적부’(社籍簿)에 적었습니다. 이를 가리켜서 ‘서사’라고 불렀답니다. 공자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제야 드디어 가슴에 담긴 뜻을 펼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공자는 넘치는 기쁨을 가슴에 안고 제자들과 함께 ‘소왕’의 임시 거처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그러자 초나라의 재상인 ‘자서’(子西)가 소왕 앞으로 한 걸음 나왔습니다. ‘자서’는, 초나라..

씬쿠러, 콩쯔 2022.02.01

22. 들소도 아닌데 들판을 헤매다/ 김 재 황

22 들소도 아닌데 들판을 헤매다 공자가 ‘섭’에서 채(蔡)나라로 옮긴 지 3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오나라가 진(陳)나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진나라는 초(楚)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초나라는 모르는 체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진나라를 구하기 위해, 초나라는 ‘진보(陳父)라는 곳으로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때, 초나라 소왕(昭王)은 공자 일행이 진나라와 채나라 국경 지역에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즉시, 사람을 보내어서 공자를 자기 나라로 초청하려고 하였습니다. 공자도 싫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 부름에 응하여 소왕을 만나러 초나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진나라와 채나라의 대부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였습니다. “공자는 현인이다. 그가 하는 말은 제후들의 잘못과 ..

씬쿠러, 콩쯔 202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