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고층 아파트 김 재 황 나라 땅 좁으니까 위로 자꾸 올리는가, 덩달아 집값 또한 치솟기만 하는 현실 난 그저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리 땅과 멀어진 걸, 집이라고 할 수 있나 생긴 건 벌집인데 우린 벌이 될 수 없고 그 자리 너무 높으니 원앙 꿈도 못 꾸겠지. 땅 냄새 맡아야만 사는 힘을 얻을 텐데 하늘과 가깝다고 별을 따게 되진 않지 집이란 낮게 지어야 달빛 가득 고여 든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31
선풍기를 보며/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선풍기를 보며 김 재 황 명성을 자랑하던 좋은 시절 이제 갔다, 산들바람 불어오니 어디 둘까 짐이 되고 광이나, 아니 벽장에 정해지는 네 자리.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야 숨죽이고 기다리면 다시 기회 얻을 테니 아무리 어둡더라도 두 눈 뜨고 참아야 해. 발버둥을 치다가는 버림받게 되고 만다, 남은 날엔 고장 나도 달래 가며 살아가라! 게다가 바람피운 너, 살얼음판 설 수밖에.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30
늘 참선하다/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늘 참선하다 김 재 황 내 몸은 가부좌로 눈과 입을 닫아걸고 수선스런 내 마음도 화두에다 묶어놓고 갈 길을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그 뜻이 간절하면 하늘 문도 열리는데 불현듯 그 갈 길이 멀리 뵈는 바로 그때 그래 난, 벌떡 일어나 훌훌 털고 걷겠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9
금동반가사유상/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금동반가사유상 김 재 황 왜 우리는 태어나서 늙고 앓고 숨지는가, 큰 나무 밑에 앉아 하늘 높이 굴린 생각 앉음새 반쯤 푼 채로 나를 불러 세운다. 은밀하게 도드라진 맨 가슴에 이는 숨결 큰 깨달음 얻었어도 짐짓 기쁨 숨겨놓고 세상의 온갖 하소연 홀로 듣고 있구나. 너무 깊이 빠져들면 착한 일이 힘들다고 손가락을 볼에 대고 몸짓으로 빚은 말씀 여기서 이제 만나네, 그 마지막 가르침을.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8
대구 팔공산 석굴암 앞에서/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대구 팔공산 석굴암 앞에서 김 재 황 바람은 살금살금 산등성을 올라가고 물소리 웅얼웅얼 골을 타고 내리는데 바위벽 좁은 공간에 세 석불이 머문다. 서둘러 천릿길을 셋이 걷는 중이라도 멀찍이 합장하면 꿈과 같은 천년세월 마음 산 넓게 비우니 먼 정토가 환하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6
삼천포 대방진의 아침/ 김 재 황 [사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삼천포 대방진의 아침 김 재 황 무엇을 숨기느라 짙은 안개 둘렀는가, 고요 속 지난 일이 아직 눈을 빛내는데 갈매기 서둘러 날며 잠을 톡톡 깨운다. 어둠은 걷혔으나 구름 잔뜩 안은 하늘 숨을 죽인 물빛 말들 비린 냄새 묻었어도 다시금 통통배 몇 척 옅은 꿈을 나른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5
징검다리/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징검다리 김 재 황 밤길을 흐르다가 시린 내와 마주친다, 달빛이 닿을 때면 번득이는 비늘 물결 어디에 한 징검다리 놓여 있지 않을까. 눈감고 일어서서 마음 귀를 활짝 펴니 바닥이 얕을수록 여울 소리 더욱 큰데 가슴속 깊은 곳으로 오는 길이 보인다. 냇물을 건너려면 바지 끝을 걷고 나서 이왕에 발 젖으니 징검돌을 놓아야 해, 다음에 오는 이들은 발이 젖지 않도록.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4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김 재 황 어딘가로 떠난 것은 그리움을 남기는데 먼 소식 기다리며 빈 가슴이 시린 호수 지금껏 물 위에 뜨는, 한 이름이 있습니다. 척 보면 생김새는 아주 닮은 각시붕어 작은 입과 좀 큰 눈이 외로움을 지니지만 꿈결에 만나 본 이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해서 도움 준 건 조개였고 있는 듯이 없는 듯이 마음 풀고 살던 그곳 하늘이 깨졌습니다, 둑을 허문 것뿐인데-. 이제는 바람결에 물어봐야 할 겁니다, 산 너머 저 하늘가 출렁이는 물빛 나라 거기서 못 보았나요? ‘한국특산, 이 물고기.’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3
부력/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부력 김 재 황 세상을 비관하고 술만 자꾸 들이켜던 그 사내가 마침내는 강에 목숨 던졌는데 눈감고 가만 있으니 몸이 절로 뜨더란다. 이후 그는 작심하고 그물질로 살아가며 때때로 물에 떠서 긴 명상을 즐긴단다, 마음을 그리 비우면 연꽃 또한 피어날까.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2
도반 길/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도반 길 김 재 황 서둘러 아침 일찍 버스를 타는 날엔 내 옆에 앉는 이가 연꽃보다 아름답다, 누군지 잠깐이라도 맺게 되는 그 인연. 편하게 머물도록 옆자리를 넓혀 주고 마음이 쓰일까 봐, 짐짓 먼 곳 살피지만 아직도 짚지 못하는 ‘아득하다, 도반 길.’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