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 대하여/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눈물에 대하여 김 재 황 무언가 어둠 속에 깨어짐을 당할 때면 저문 숲에 홀로 서듯 빈 가슴이 시려 와서 서럽게 눈이 젖는다, 저 미운 것 가물대게. 어쩌다 발에 밟혀 깨달음을 얻을 때면 둥근 달이 환히 웃듯 절로 마음 둥둥 떠서 기쁘게 눈이 젖는다, 이 고운 것 출렁대게.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0
그게 바로 설움/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그게 바로 설움 김 재 황 허리 굽은 할머니가 횡단로를 건너는데 가운데 갔을 즈음 그만 신호 바뀌어서 그 자리 그대로 선 채, 어쩔 줄을 모르네. 운전자는 비키라고 얼굴 잔뜩 찌푸려도 몸이 말을 안 들으니 무슨 수가 있겠는가, 너도 곧 그렇게 되네, 나이 들면 마음뿐.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9
간이역/ 김 재 황 [서호나불갱이를 찾아서] 편 간이역 김 재 황 오가는 이들이야 그리 많지 않았으나 낯익은 얼굴들이 서로 만나 인사하는, 바람도 쉬었다 가며 돌아보는 간이역. 다정한 연인끼리 가슴 열고 기다리면 나누는 이야기야 절로 깨가 쏟아지고 열차만 홀로 숨차게 달려오는 간이역. 너무나 바쁘기에 구름 밟듯 살아가도 누구든 가슴에는 간이역이 하나 있다, 가을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반기는.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8
인제 만해마을에서 일박/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인제 만해마을에서 일박 김 재 황 새로운 바람으로 문이 열린 만해마을 저마다 꽃을 물고 백조들이 날아왔다, 문학의 높은 열기에 해는 너무 짧았느니. 지구가 넓다지만 우리 가슴 더욱 넓어 넓은 우주 그 중심에 별빛 가득 모았으니 흐르는 개울마저도 하늘 소리 머금었다. 가야 할 길은 멀고 밤은 아주 깊었는데 시심에 젖은 숨결 가지런히 눕고 나면 꿈결로 다가오는가, 그리운 임 푸른 말씀.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7
김장할 때 되었으니/ 김 재 황 [서호납즐갱이를 찾아서] 퍈 김장할 때 되었으니 김 재 황 입동이 코앞이라 김장할 때 다 되었고 ‘보태야지, 나도 힘을’ 소매 걷고 나서는데 올해는 좀더 맛있게 벌써 침이 넘어간다. 그 누가 말했는가, 여자가 할 일이라고 채썰기와 버무리기 모두 힘이 필요하니 서둘러 앞치마 걸고 내 일 찾아 앞장서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6
아버지 생각/ 김 재 황 [사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아버지 생각 김 재 황 지하시장 식당에서 저녁 먹는 그 자리로 젊은이 한 사람이 술 한 병을 들고 왔네, 물으니, 떠나신 부친 뵙고 싶은 그 마음에. 보아하니 내 아들과 같은 또래 젊은인데 그러냐고 대답하고 술 한 잔을 마시다가 나 또한, 아버지 생각 너무 짙어 눈물짓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5
딸과 아빠/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딸과 아빠 김 재 황 동무들과 놀고 있던 네 살배기 어린 딸이 나를 보자 달려와서 힘껏 내 손 붙잡으며 “애들아, 우리 아빠다!” 으쓱대며 말했네. 세상에 내세울 건 하나 없는 나였지만 딸에겐 이 아빠가 으뜸으로 보였을까 아주 먼, 일이긴 해도 어제인 듯 파랗다네. 지금도 그때 그 일 항상 품에 안고 살지 흔들리는 내 발걸음 보여 주지 않기 위해 떳떳이 멋진 아빠로 자식 앞에 서기 위해.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4
신용 카드/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신용 카드 김 재 황 누울 자리 살펴보고 다리 뻗고 누워야지 어른들의 그 염려가 너무나도 마땅하지 누가 날, 어떻게 믿고 돈을 마구 꿔 주겠나? ‘소’라도 외상이면 잡아먹는 사람 마음 주머니가 비었어도 뭐든 살 수 있는 유혹 그 덫에 한 번 걸리면 헤어나기 힘들지. 돈이란 돌고 돌아 돈이라고 한다지만 물처럼 쓰다 보면 빚더미에 앉게 되지 내 손에 있지 않은 건, 결코 내 돈 아니야.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3
상황/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상황 김 재 황 추위가 흘러드는 살기 힘든 산골짜기 겨우내 눈보라가 그리 씽씽 몰아쳐도 봄이면 참꽃나무에 붉은 꽃이 핍니다. 가슴에 안겨드는 불덩이를 재워 두고 무거운 기다림에 빈 바람을 머금지만 해마다 보신각에선 푸른 종이 웁니다. 강물을 따라가는 나의 지친 걸음걸이 어둠이 앞을 막고 자갈길은 끝없는데 지금은 까치고개로 하얀 달이 뜹니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2
번지 점프/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번지 점프 김 재 황 줄이야 튼튼하다, 겁낼 필요 하나 없다 네 쓸개를 믿어야만 할 수 있는 이 스포츠 몸뚱이 던짐으로써 짜릿함을 맛본다. 운명에 자기 발을 꽁꽁 묶은 저 사람들 사람들은 알고 있나, 고무줄에 맡긴 목숨 쾌락을 급히 좇으면 핑그르르 땅이 돈다. 저 아래 푸른 물이 가슴 열고 있더라도 감았다가 떠야 한다, 떨어지는 그 순간에 젊음만 자랑해 봤자 무슨 소용 있겠는가.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