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징검다리 김 재 황 밤길을 흐르다가 시린 내와 마주친다, 달빛이 닿을 때면 번득이는 비늘 물결 어디에 한 징검다리 놓여 있지 않을까. 눈감고 일어서서 마음 귀를 활짝 펴니 바닥이 얕을수록 여울 소리 더욱 큰데 가슴속 깊은 곳으로 오는 길이 보인다. 냇물을 건너려면 바지 끝을 걷고 나서 이왕에 발 젖으니 징검돌을 놓아야 해, 다음에 오는 이들은 발이 젖지 않도록.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4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김 재 황 어딘가로 떠난 것은 그리움을 남기는데 먼 소식 기다리며 빈 가슴이 시린 호수 지금껏 물 위에 뜨는, 한 이름이 있습니다. 척 보면 생김새는 아주 닮은 각시붕어 작은 입과 좀 큰 눈이 외로움을 지니지만 꿈결에 만나 본 이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해서 도움 준 건 조개였고 있는 듯이 없는 듯이 마음 풀고 살던 그곳 하늘이 깨졌습니다, 둑을 허문 것뿐인데-. 이제는 바람결에 물어봐야 할 겁니다, 산 너머 저 하늘가 출렁이는 물빛 나라 거기서 못 보았나요? ‘한국특산, 이 물고기.’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3
부력/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부력 김 재 황 세상을 비관하고 술만 자꾸 들이켜던 그 사내가 마침내는 강에 목숨 던졌는데 눈감고 가만 있으니 몸이 절로 뜨더란다. 이후 그는 작심하고 그물질로 살아가며 때때로 물에 떠서 긴 명상을 즐긴단다, 마음을 그리 비우면 연꽃 또한 피어날까.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2
도반 길/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도반 길 김 재 황 서둘러 아침 일찍 버스를 타는 날엔 내 옆에 앉는 이가 연꽃보다 아름답다, 누군지 잠깐이라도 맺게 되는 그 인연. 편하게 머물도록 옆자리를 넓혀 주고 마음이 쓰일까 봐, 짐짓 먼 곳 살피지만 아직도 짚지 못하는 ‘아득하다, 도반 길.’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1
눈물에 대하여/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눈물에 대하여 김 재 황 무언가 어둠 속에 깨어짐을 당할 때면 저문 숲에 홀로 서듯 빈 가슴이 시려 와서 서럽게 눈이 젖는다, 저 미운 것 가물대게. 어쩌다 발에 밟혀 깨달음을 얻을 때면 둥근 달이 환히 웃듯 절로 마음 둥둥 떠서 기쁘게 눈이 젖는다, 이 고운 것 출렁대게.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20
그게 바로 설움/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그게 바로 설움 김 재 황 허리 굽은 할머니가 횡단로를 건너는데 가운데 갔을 즈음 그만 신호 바뀌어서 그 자리 그대로 선 채, 어쩔 줄을 모르네. 운전자는 비키라고 얼굴 잔뜩 찌푸려도 몸이 말을 안 들으니 무슨 수가 있겠는가, 너도 곧 그렇게 되네, 나이 들면 마음뿐.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9
간이역/ 김 재 황 [서호나불갱이를 찾아서] 편 간이역 김 재 황 오가는 이들이야 그리 많지 않았으나 낯익은 얼굴들이 서로 만나 인사하는, 바람도 쉬었다 가며 돌아보는 간이역. 다정한 연인끼리 가슴 열고 기다리면 나누는 이야기야 절로 깨가 쏟아지고 열차만 홀로 숨차게 달려오는 간이역. 너무나 바쁘기에 구름 밟듯 살아가도 누구든 가슴에는 간이역이 하나 있다, 가을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반기는.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8
인제 만해마을에서 일박/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인제 만해마을에서 일박 김 재 황 새로운 바람으로 문이 열린 만해마을 저마다 꽃을 물고 백조들이 날아왔다, 문학의 높은 열기에 해는 너무 짧았느니. 지구가 넓다지만 우리 가슴 더욱 넓어 넓은 우주 그 중심에 별빛 가득 모았으니 흐르는 개울마저도 하늘 소리 머금었다. 가야 할 길은 멀고 밤은 아주 깊었는데 시심에 젖은 숨결 가지런히 눕고 나면 꿈결로 다가오는가, 그리운 임 푸른 말씀.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7
김장할 때 되었으니/ 김 재 황 [서호납즐갱이를 찾아서] 퍈 김장할 때 되었으니 김 재 황 입동이 코앞이라 김장할 때 다 되었고 ‘보태야지, 나도 힘을’ 소매 걷고 나서는데 올해는 좀더 맛있게 벌써 침이 넘어간다. 그 누가 말했는가, 여자가 할 일이라고 채썰기와 버무리기 모두 힘이 필요하니 서둘러 앞치마 걸고 내 일 찾아 앞장서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6
아버지 생각/ 김 재 황 [사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아버지 생각 김 재 황 지하시장 식당에서 저녁 먹는 그 자리로 젊은이 한 사람이 술 한 병을 들고 왔네, 물으니, 떠나신 부친 뵙고 싶은 그 마음에. 보아하니 내 아들과 같은 또래 젊은인데 그러냐고 대답하고 술 한 잔을 마시다가 나 또한, 아버지 생각 너무 짙어 눈물짓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