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시조월평 2007년 2월)
당김과 울림, 그 아름다움
김 재 황
우리는 예로부터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이름이 높았다. 지금도 우리는 세계 올림픽 경기가 열릴 때마다 양궁 종목에서 메달을 휩쓴다. 이를 어찌 그냥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시위에 살을 메우고는 힘껏 당겼다가 숨을 멈추고 목표를 겨냥한 다음에 살짝 놓으면 살이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멋지게 날아가서 ‘딱-’하는 울림과 함께 과녁에 명중하여 그 깃을 부르르 떤다. 이는, 바로 우리의 ‘시조 가락’이기도 하다. 즉, 우리의 시조는 ‘당김’과 ‘놓음’과 ‘울림’과 ‘떨림’을 모두 그 안에 지니고 있다. 이렇듯 시조 한 수의 짧은 ‘3장6구’ 속에 오묘한 과정이 모두 담긴다. 눈치를 이미 채었겠지만, 시조의 본령은 단수에 있고, 여기에서 ‘言短意長’의 묘미가 살아난다. 그렇다고 연작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게 절대 아니다. 아무리 여러 수의 연작이라고 하더라도, 한 수 한 수를 그냥 별개의 작품으로 떼어놓고 읽으면 된다. 月刊文學 1월호에서 처음으로 눈에 띄는 작품을 본다.
마을 장닭 돌담 올라
한낮 빛가루 흩뿌리길
밭골 사부랑하여
나숭개 푸른향기이길
내 봄은
오늘도 기다리고 있는가
북위 35°20′
저 언저리
---최승범, ‘내 봄은 오늘도’ 둘째 수
이 작품에서는 초장 첫 구부터 ‘당김’의 긴장감을 준다. 이 때 특히 ‘돌담’을 눈여겨 두어야 한다. 중장에서 ‘느슨해진 밭고랑과 푸른 향기를 지닌 냉이’가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는 마침내 살이 과녁에 명쾌한 ‘울림’과 함께 명중한다. 종장의 첫 구인 ‘내 봄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가’가 바로 거기에 해당된다. 여기에서의 ‘내 봄’은, 예사로운 봄이 아니라, ‘우리나라 통일의 봄’이다. 왜냐고? 이미 초장에서 ‘돌담’으로 남북 분단의 암시를 해 놓았다. 게다가 종장 둘째 구에서 그 의미를 또다시 다진다. 북위 38°는 이른바 ‘삼팔선’이다. 해마다 봄은 남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울과 삼팔선을 지난 다음에 저 백두산 너머까지 북상한다. 그런데 ‘통일의 봄’은 아직도 ‘삼팔선’ 저 남쪽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서 잠깐 짚어 보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왜 하필이면 북위 35°20′인가’하는 문제이다. 답부터 말하면,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전남 법성포 근처에 있는 ‘갓봉’이 북위 35°20′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 ‘갓봉’은 6.25전쟁을 전후하여 사람들이 남몰래 남북을 오가던 통로였다고 한다. 그 다음의 상상은 독자들의 몫이다. 다른 시인의 작품을 본다.
몽고 반점 빛깔 닮은 푸르둥둥 황사내음
벌판은 지지겁지 한 데 모아 불태우고
마음의 추운 갈피에도 김이 솔솔 오른다.
---이상범, ‘흙내음’ 셋째 수
위의 작품은, 초장 첫 음절에 ‘몽고 반점’이 등장하여 ‘당김’의 긴장감을 준다. 그런데 그건 ‘황사내음’의 빛깔이다. 참으로 놀랍다. 순간적으로 시위에 살을 메우고 목표를 겨냥한 모습이다.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다. 중장으로 가면 더욱 놀라운 게 나타난다. ‘벌판’이 ‘지지겁지’(지저깨비)를 태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깎고 남은 잔조각들인가? 다시 초장의 ‘몽고 반점’으로 돌아가면 어렴풋이 우리의 먼 역사가 보이는 듯도 하다. 다시 원위치하여 종장을 보면, 우리의 역사는 추운 역사였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 때 ‘마음의 추운 갈피’가 ‘울림’을 준다. 하지만 그 역사의 지지겁지에 불을 붙이면 조금은 훈훈하여져서 추운 마음에서도 김이 솔솔 오르게 된다. 그 흔한 ‘흙내음’으로 이렇듯 ‘나라 사랑’과 ‘겨레 사랑’을 나타낸다는 게 어찌 쉬우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다른 시인의 작품을 또 본다.
봄소식 기다리듯 전화 오길 기다린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어쩌다 오게 되면
밥에서 나는 김처럼 모락모락 향기난다
---원용문, ‘이상한 전화기’ 첫째 수
초장을 읽다가 무릎을 친다. ‘봄이 오는 것’과 ‘전화가 오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이가 들 만큼 든 사람이라면 모두 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외로워지고, 그 ‘외로움’은 마음을 ‘추운 겨울’로 만든다는 것을. 그러다가 전화의 벨이 울리면, 어느 틈에 외로움이 활짝 걷히고 밝은 ‘봄’이 온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이미 초장에서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중장에서는 그저 살이 날아갈 뿐이다. 그런데 ‘딱-’하는 ‘울림’과 함께 살이 과녁에 꽂혔다. 종장에서 ‘봄소식’과 ‘밥의 김’이 포개지며, 눈앞에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그 향기는 ‘모락모락’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시인의 작품을 하나 더 본다.
보아도 둘러보아도
금세 지나간 여운일 뿐
時空의 숨바꼭질
흐르는 게 물뿐이랴
어, 어라
산너머 뜬구름
저노을녘 또 지나네,
---金錫喆, ‘흔적’ 전문
이 작품의 초장을 보면, 시의 제목이 ‘흔적’인데 ‘아무리 보아도 보이는 게 없다’고 한다. 그러나 느껴지는 ‘여운’은 있다. 그래서 ‘흔적’과 ‘여운’이 흥미롭게 짝을 이룬다. 이 또한, ‘당김’의 ‘긴장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중장을 보면, 이 작품이 우리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드러난다. ‘숨바꼭질’은 ‘세상의 일’이며 ‘흐르는 물’은 ‘빠른 세월’이다. 이 작품 역시 큰 ‘울림’은, 종장의 앞 구에 있다. ‘어, 어라’가, 바로 일발필중의 ‘的中語’이다. 여기에서 만약에 종장의 앞 구를 ‘산너머 높이 뜬 구름’이라고 했다면 얼마나 시시했겠는가? 사실 진리는 평범함 속에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못 보고 그냥 지나칠 뿐이다. 그런데 그렇듯 아주 평범한 ‘노을녘을 지나는 구름’을 보며 시의 화자는 ‘어, 어라’라고 탄성을 지른다. 거기에 ‘깨달음’이 있을 듯하다. 그 깨달음을 나름대로 짚어 본다. ‘노을을 지나는 뜬구름’이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우리도 무엇을 남기려는 마음을 버리고 ‘노을을 지나는 구름처럼’ 그저 아름답게 살다가 떠나면 된다는 뜻일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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