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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환 사백의 미얀마 심층 여행기

시조시인 2019. 6. 30. 10:25

[독후감]

 

                                             이시환 사백의 미얀마 심층 여행기

                                                   ‘꽃잎이 너무 붉어 나는 슬프다

 

                                                            김 재 황

 

 

  2019625. 그날은 국가무형문화재 석전대제 기획행사로 시민과 함께하는 석전이 거행되는 날이었는데, 우리는 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인사동 수도약국 앞에서 만났다. 오후 230. 행사가 3시에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 때에 나는 이시환 사백으로부터 이 여행기를 받았다. 나는 이 책을 소중히 간직하고 와서 그 다음날 아침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세 가지 큰 느낌을 가졌다.

  그 첫째로, 이 여행기를 읽으려면 반드시 사전지식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사전지식은 싯다르타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얀마의 관광 상품이란 게 거의가 불탑이나 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그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 다행히 나는 예전에 숫시인 싯다르타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이 책 속으로 빠져들기가 쉬울 것 같다.

  그 둘째는, 심층 여행을 하려면, 더욱이 미얀마와 같은 지역을 샅샅이 둘러보고 다니려면 무엇보다도 체력이 좋아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야 짜임새 있게 꼭 가보아야 할 곳을 빠트리지 않고 다닐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여행은 쉽게 기회를 얻기 어려우니 반드시 알찬 여행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여행 기간 동안 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여기에는 필수조건이 있다. 그 하나는, 현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을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먹성이 좋아야 한다.  여기에서 나는 안 되겠구나!’하고 손을 들고 만다. 꽤 오래 전의 일로, 나는 중국 시안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곳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굶다시피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그러니 무엇이 눈에 들어왔겠는가. 또 하나는, 아무 곳에서나 잠이 쉽게 들 수 있어야 한다. 누우면 잠들 수 있어야 그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혹시 누가 나에게 배낭여행을 함께 가자고 하더라도 정중히 사양하는 게 옳은 일이다. 폐를 끼치게 될 게 뻔하다.

  그 셋째는, 왜 이 책 제목이 하필이면 꽃잎이 너무 붉어 슬프다인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의 제목을 읽는 순간, 나는 1998년에 내가 펴낸 산문집 꽃은 예뻐서 슬프다를 떠올렸다. 이 책은 화초편화목편’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기 75종씩의 화초와 화목에 대한 단시조와 전설이 담겨져 있다. 나는 이 책의 원고를 탈고하고 나서 적당한 책의 제목을 얻지 못하고 한동안 고심하였다. 그러다가 꽃이 전설이 거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꽃의 예쁨과 슬픔을 섞어서 그 제목을 삼았다. 나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사백은 왜 이런 제목을 내세웠을까? 책을 읽어 나가는 내내, 이 의문이 나를 감쌌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후기(後記)에서 비로소 나는 이 해답을 얻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본문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미얀마 양곤으로 입국하기까지를 본다.

 

어쨌거나, 나는 좁은 침대에 누워 양곤 시내에서 할 일과 볼거리를 떠올려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일본의 한 젊은이가 들어와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곤히 떨어졌던 것이다. 우리가 잤던 좁은 방은 침대다 4개나 들어 있는 소위 토리토리였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렇듯 잘 잠들 수 있으니 이 여행은 훌륭하게 마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더욱 책의 내용에 흥미를 갖게 했으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고 했던가. 아무튼 여행 기간 동안 좋은 체력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잠이 최고다.

  ‘쉐다곤 파야에서 만난 붓다를 본다.

 

미얀마를 대표하는 상업도시 양곤! 양곤을 대표하는 제1불교사원 쉐다곤 파야! 쉐다곤 파야라 불리는 불탑과 부대시설들이 미얀마를 대표할 뿐 아니라 양곤의 상징물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적지 아니한 여행자들은 이 쉐다곤 파야부터 찾게 되고, 이 파야 하나를 보면 미얀마 내에 있는 수많은 파야를 다 본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는 내 사전지식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파야란 무슨 뜻인가? ‘쉐다곤 파야는 불교사원을 가리키는 말은 틀림없는데, 왜 사원에 파야라는 말을 붙이는가? 원래가 의심이 나면 참지 못하는 성미여서 나는 여러 문헌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간신히 그 실마리를 얻었다. ‘파야는 보통 ‘Phaya’라고 쓰지만 ‘Paya’라고도 쓰는데, 이는 노예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도 미얀마 지역에는 여러 왕국이 있어서 전쟁이 잦았던 것 같다. 그러니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사용한 게 아닌가 하는 짐작도 든다. 그래서 파야라는 말이 붙은 사원은 전부 노예로 잡혀 온 전쟁 포로들이 지었다고 한다. , ‘파야파고다’(Pagoda)를 의미한다고도 하는데, 이는 스투파(Stupa)에 어원을 둔 단어라고 한다. ‘스투파라는 말은, 원래에 부처의 사리를 넣기 위한 무덤을 말한다. 물론, ‘()도 이의 음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내친김에 양곤의 파야 뒤지기를 본다.

 

어떤 곳은 부처의 머리카락 사리를 모셨다고 자랑하고, 어떤 곳은 사리불과 목련존자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곳은 좌불이고, 어떤 곳은 와불이라고 자랑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곳은 불상을 옥으로 만들었다 자랑하며, 어떤 곳은 그것이 오래되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자랑하는 요소들도 가지각색이다.

 

  싯다르타가 살아나서 그곳에 간다면 그 모양을 보고 무엇이라고 할까? 자랑스러워할까? 천만에, 크게 화를 낼 것만 같다. 싯다르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깨달은 사람이다. 싯다르타는 임종을 눈앞에 두고 슬픔에 잠긴 아난다에게 또박또박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을 남겼다.

  “그만두어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탄식하지 마라. 내가 이미 모든 사랑하는 자, 그리고 좋아하는 자 등과 이별하고 헤어지게 된다.’라는 것을 일러두지 않았느냐? 무릇 생겨나서 존재하고 이루어지며 파괴되기 마련인 것들을 향해 그것이 무너지지 말기를 바라는 게 가능하겠는가? 그런 법은 없다. 아난다여! 그대는 오랜 동안 자비롭고 이로우며 안락하고 순수하며 한결같이 한량없는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로써, 정진을 계속하여 온 사람인 고타마를 보살펴 왔다. 아난다여, 그대는 좋은 일을 해주었다. 정진하여 수행하라. 머지않아 티끌 없는 사람이 되리라.”

  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파괴되고 만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무너지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런 법은 없다.’라고 분명히 말을 끝낸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무엇이고 진신사리가 무엇이란 말인가? 싯다르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아난다와 그곳에 온 벗들에게 마지막 힘을 다하여 말했다.

  “아난다여! 어쩌면 훗날 그대는, ‘가르침을 주신 나의 스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를 위해서 내가 말한 가르침과 내가 제정한 계율이 나의 사후에 너의 스승이 되리라. 그리고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겠습니다. 모든 다르마’(Dharma)는 지나가 버립니다. 게으르지 말고 수행을 완성하십시오.”

  이 한 마디가, 수행을 쉬지 않고 계속해 온 싯다르타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다. 수많은 성전들은 다만 손가락에 지나지 않고,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다만 청정행’(淸淨行)뿐이다. 깨끗한 길을 가는 것, ‘티끌 없는 사람이 되려면 그 길을 가야 한다.

  “‘믜약-문화유산지역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를 본다.

 

누구는 몽환적이라는 단어를 써서 이곳의 분위기를 표현했지만 내 눈에는 그저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살며 자신들 믿음의 한가운데에 부처님을 모시고 큰 욕심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시골 마을에 드리워진 여명임에 틀림없어 보이는데, 어디선가 닭이 울거나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어디선가 닭이 울거나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분위기!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내 몸에 전율이 온다.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인가. 일찍이 이런 형상화를 나타낸 분이 있다. 그는 바로 노자(老子)이다. 그분의 덕경(德經) 중 하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사민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 불상왕래’(使民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이는, ‘나라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새끼를 꼬아서 쓰게 한다. 그 음식이 달고, 그 옷이 아름다우며, 그 사는 것이 쉽고도 좋고, 오랫동안 해 와서 몸에 익은 일이 즐겁게 한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다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나라사람이 늙어서 죽음에 이르도록 서로 오가지 않는다.’

  이 사백이 그린 믜약-문화유산지역은, 노자가 그린 이 유토피아(Utopia)와 아주 닮았다. ‘몽환적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이상적이라는 단어로 보이니 내 눈에 이상이 있는 건가?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니, 큰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미얀마 불국토 건설에 일등공신이 된 신 아라한을 본다.

 

돌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신 아라한은, 타툰 태생의 승려로 1053년에 타툰에서 버간으로 와 버간 평원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았다. 이때 그의 나이는 20세 정도로 추정되며, 그는 이미 불고 삼장을 배우고 공부하여 아라한의 지위를 얻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깨달은 사람을 가리켜서 팔리어로 아르하트’(arhat 應供)라고 하며, 아르하트의 주격인 ‘arhan'을 음사(音寫)하여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했다고 본다. 이 뜻은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또는 끊어야 할 것을 다 끊고 닦아야 할 것을 다 닦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한다. 싯다르타가 수행의 길을 떠날 때, 그의 아버지인 숫도다나 왕은 아들을 보살피도록 샤카족의 젊은이들을 보냈는데, 그 중에 콘단야‘(Kondanna)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 사람은 싯다르타의 제자가 되었다. 마침내 그는 진리의 눈을 뜨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바람에 휩쓸려 올라가는

먼지 기둥을 바람이 잠재우듯

밝은 지혜로 볼 때

비로소 모든 탐욕은 고요해진다.

-테라가타 675

 

  이렇듯 콘단야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시를 읊자, 싯다르타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아주 기뻐했다.

  “아아, 콘단야가 깨달았구나! 아아, 콘단야가 깨달았구나!”

  그 후로부터 콘단야를 깨달은 콘단야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듯 깨달은 사람을 가리켜서 아라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겉이 아름답다고 그 속까지 아름답지는 않아를 본다.

 

많고 많은 사원들 가운데는 왕인 아버지(Alaungsithu)를 죽이고, 자신의 친 형과 처 가운데 한 사람과 처남과 자신의 아들조차 죽이고서 자신의 죄를 참회한답시고 사원을 건축하는데, 그 과정에서 벽돌과 벽돌 사이에 간격이 조밀하지 않으면 노동자의 팔을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잔인무도한 짓을 했다는 왕위 찬탈자, 나라투(Narathu)가 짓다가 만 사원도 있다.

 

  사원이나 성이나 권력다툼에는 다름이 없다. 싯다르타가 살아 있을 당시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마가다’(Magadha) 나라에서 모진 바람이 불었다. 싯다르타의 후원자인 빔비사라’(Bimbisara) 왕이 그 아들인 아자타삿투’((Ajatasattu)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겼다. 마침내 아자타삿투왕자는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높의 성의 감옥에 가두어 놓고 왕의 자리에 올랐다. 왕의 자리에 오른 아자타삿투빔비사라왕이 같혀 있는 감옥 근처에는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아자타삿투의 어린 아들이 병을 앓게 되었다.   ‘아자타삿투도 사람인지라, 아들을 걱정했다. 그때 옆에 있던 어머니 베데히’(Vedehi, 빔비사라 왕의 왕비)아자타삿투에게 조용히 말했다. “네 아버지 빔비사라왕께서도 네가 병을 앓을 때에 밤잠을 못 자고 너를 돌보아 주셨단다.” 그 말을 듣자, 아자타삿투는 크게 뉘우쳤다. 신하들로 하여금 곧 아버지를 모셔오도록 하였다. 한편, 빔비사라 왕은 감옥으로 오는 요란한 발소리를 듣고 이제는 나를 죽이러 오는구나.’라고 지레 겁을 먹고 숨이 막혀서 죽었다고 한다. 싯다르타가 72세 때의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냥쉐에서 23일 여행하기를 본다.

 

나는 먼저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역시 가격이 좀 비싼 흠이 있었지만 샨주에 왔으니 샨주의 전통적인 음식을 먹고 싶어 밥에 참치를 넣고 볶은 밥에 내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가는 수삼 같은 식물뿌리와 매운 고추와 여러 가지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이었다. 그런대로 먹을 만했고, 만족했다. 평생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어본다는 경험이 소중한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먹성인가. 이 사백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향신료라는 말에 나는 그만 자지러진다. 중국 시안에서의 그 굶음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이만한 먹성이 아니고서는 배낭여행을 어찌 꿈꾸랴! 그 생소한 음식을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며 맛있게 먹는 이 사백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싶다. 우리 동네에는 요즘에 베트남 음식점이 생겼다. 내걸린 메뉴를 보니 하나같이 생소한 것들뿐이다. 분명히 향신료가 들어갈 터이라, 먹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혹시 이 사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직접 본다면 한 번 시식해 볼 용기가 나지 않을까? 여행을 가장 잘하는 방법은 그 여행지의 음식을 즐기는 것, 이로 미루어 본다면 여행도 타고나야 즐길 수 있다.

  ‘인테인의 쉐인테인 파고다콤플렉스에서를 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부처의 위신력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자들이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서 이런 탑들을 세워 왔던 모양인데, 어쩌면 죽은 자의 명복을 빌거나 죽지 않았더라도 산 자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하기 위한 것들이 아니었나 싶었다. 특히,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올수록 낡고 무너지다 만 것들이 적잖이 산재되어 있는데, 나의 눈에는 자연환경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며, 언젠가는 정비되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싯다르타가 살아 있을 당시에도 돈 많은 후원자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 싯다르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임 장소인 바나’(vana)였다. 라자가하(Rajagaha)수닷타’(Sudatta)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코살라’(Kosala) 나라의 수도인 사밧티’(Savatthi)에 살고 있는 큰 상인이었다. 수닷타는 싯다르타의 가르침에 감동하여 싯다르타를 따르게 되었다. 수닷타는 사밧티의 교외로 싯다르타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머물 수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마땅한 곳의 땅 임자가 코살라나라의 둘째 왕자인 제타 쿠마라’(Jeta Kumara)였다. 그 땅을 팔라는 말에 그 왕자는 혼잣말로 숲에 황금을 깐다면 혹시 모르지라고 했다. 그 말을 수닷타가 들었다. 그 다음 날, 수닷타는 자기의 힘으로 모을 수 있는 황금을 모두 모아서 몇 대의 수레에 싣고 제타왕자의 숲으로 갔다. 그리고 일군들에게 황금을 그 동산에 깔도록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제타왕자가 달려와서 그 이유를 물었다. 싯다르타에 대한 모든 말을 들은 왕자는 크게 감동하여 그 숲을 그냥 내놓을 터이니 수닷타에게는 비하라’(Vihara)를 지으라고 말했다. 비하라는, 수행하는 장소에 세운 영구적인 건물이다.

  ‘내가 만난 붓다를 본다

 

순간, 나는 몸이 굳어져 버릴 정도로 놀랐다. 아니, 이분이 과거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수행자란도 된단 말인가!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야윈 두 팔을 붙잡고 고개를 들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생김새는 이곳 미안마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고, 얼굴이나 손발이 햇빛에 그을려 새까맣고, 걸친 옷도 누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과거의 석가모니 부처란 말인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그의 두 눈동자를 응시하려고 내가 눈을 크게 뜨는 순산, 내 앞에는 뿌연 안개만 드리워져 있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기원전 566년에 카필라’(Kapila) 나라의 숫도다나’(Suddodana) 왕과 마야’(Maya)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숫도깨끗한이라는 뜻이고 다나쌀밥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야왕비의 마야헛기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숫도다나 왕은 아들이 태어나자, 그 이름을 싯다르타’(Siddhartha)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목적을 성취한 사람이다. 그 당시에 인도에는 ’()이 있었다는데, 싯다르타의 성은 고타마’(Gautama)이다. ‘고타마훌륭한 소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싯다르타의 정확한 이름이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그런데 고타마라는 씨족은 샤카’(Sakya)라는 종족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샤카무니’(Sakya-muni)샤카 족의 성자라는 뜻이고, 중국에서 이를 음역하여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기술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이 사백이 그 싯다르타를 마하무니 파야’(Mahamuni Phaya)에서 만났다니, 이건 무슨 일인가? 나는 이를 동학의 기본 사상인 인내천’(人乃天)으로 풀고 싶다. 이 말이 가리키는 대로 사람이 곧 하느님이니, 불심 가득한 눈으로 보면 이 세상 어느 사람이나 싯다르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 베인 다리 위에서를 본다.

 

다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서 수없이 떠오르는 가사들은 높이높이 오르다가 무리지어 까만 새떼처럼 서쪽하늘로 멀어져 간다. 이런 모습은 분명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장관임에 틀림없었지만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우리가 꿈을 꾸고 있나?”, “이상한 일이다!”며 서로의 놀란 얼굴들을 확인하면서 불길한 생각마저 드는지 다들 서둘러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떤 신앙이든지, 성경이라면 선포양식을 따르게 된다. 이를 케리그마’(kerygma)라고 한다. 그 양식에는 반드시 신비성이 가미되는데, 불결이나 성경이 다르지 않다. 싯다르타에게는 뛰어난 두 제자가 있다. 그 한 사람은 사리풋타’(Sariputta)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목갈라나’(moggallana)였다. 싯다르타는 여러 사람 앞에서 사리풋타는 오른팔이며 목갈라나는 왼팔이라고 자랑하곤 했다. 특히 두 사람 중에서도 사리풋타를 더 아꼈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사리풋타를 불러서 그에게 맡기곤 하였다고 전한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목갈라나는 늘 정신적인 초능력(iddhi)를 내세우곤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싯다르타는 못마땅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듯싶다.

  ‘새를 파는 이는 누구이고 새를 사 풀어주는 이는 누구인가를 본다.

 

한 젊은이가 그물로 씌워진 반원통형 용기 속에 작은 새들을 넣어 가지고 와 로비처럼 꾸며진 통로 중앙에 놓고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한참을 쳐다보았는데 모자지간인지 어린이를 대동한 한 여인이 오더니 그 젊은이에게 돈을 주고 새 한 마리를 건네받는 게 아닌가. 새를 건네받은 여인은 한쪽으로 걸어가더니 손에 쥐어진 새를 공중으로 던지듯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우리 속담에 눈 감고 아웅 한다.’라는 말이 있다. 잡아다가 날려 보내면 병 주고 약 주는 게아닌가? 어느 날, 싯다르타가 여러 벗들과 사밧티 시내로 음식을 구하러 갈 때였다. 아이들이 냇물에서 물고기를 괴롭히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시시덕거리며 물고기를 괴롭히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다가가서 부드럽게 말했다. “예들아, 너희들은 괴로운 게 싫으냐? 너희들은 괴로운 게 무서우냐?” 그러자, 아이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 저희들은 괴로운 게 무섭습니다. , 저희들은 괴로운 게 아주 싫습니다.” 아무리 잡는 사람 다르고 놓아 주는 사람 다르더라도, 그 모두가 괴롭힘이다. 그 죄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착한 마음이 되레 화를 부르다를 본다.

 

한사코 안 받았다고 큰소리치는 할머니 앞에서 옥신각신하는데 곁에서 장사하는 젊은 남자가 할머니 서 있는 곳을 보더니 땅바닥에서 그 만 짯짜리 지폐를 주워 할머니에게 줬다. 그러면 그렇지 ---. 돈을 아니 주고 주었다고 할까?

 

  한때는 싯다르타 이랭이 다른 이들의 모함으로 고난을 받기도 했다. 그때 싯다르타는 침착하게 여러 벗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벗들이여, 우리를 비난하는 소리는 오래 가지 않을 겁니다. 이레만 지나면 저절로 사그라지게 됩니다. 벗들이여! 사람들이 그대들을 괴롭힐 때마다 다음과 같은 시를 그들에게 들려주도록 하십시오.”

 

거짓말하는 자는 어둠 속으로 떨어진다.

저지르고 난 후에

나는 저지르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자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쪽이든지 죽은 뒤에는 같은 쪽으로 향한다.

지금부터 어딘가에서

비열한 행위를 하는 자도 마찬가지이다.

-우다나

 

  남을 속이는 일은 이처럼 큰 벌을 받게 된다. 게다가 여행객을 속이는 행위는 제 눈을 제가 찌르는 바와 같다. 그 소문이 퍼지면 아무도 그곳에 가지 않게 된다. 그래도 좋다는 말인가?

  ‘맨발로 사원에 입장하는 것이 부처에 대한 예의라?’를 본다.

 

모든 여성들은 불상 앞에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곳까지만 접근할 수 있는데 이는 분명 성()을 차별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여기에는 부처 개인의 부정적인 여성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전의 문장 상에 나타난 부처는 여성에 대하여 집착과 번뇌가 많아 수행 정진에 어려움이 많다고 인식했으며, 실제로 여성을 제자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했고, 마지못해 받아들이고서도 남자와 다른 차별적이고 혹독한 계율을 주었다.

 

  기록을 보면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느 때 싯다르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아난다야, 만약에 여자가 출가하지 않았다면 바른 법이 천 년은 이어졌을 게다. 그러나 여자가 출가하게 됨으로써 바른 법은 오백 년밖에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 하면, 여자가 많고 넘자가 적은 집안에 도둑이 잘 드는 바와 같이, 여자의 출가로 해서 수행의 순결을 지키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큰 연못 둘레에 미리 둑을 쌓아서 물의 넘침을 막듯이, 나는 여자 수행자들에게 이 여덟 가지 조항을 두었다.”

  ‘마하 간다용 짜웅에서 공양 의식을 지켜보고를 본다.

 

시간이 되면 이 수도원 안에서 수행승들은 항아리 모양의 큼직한 바리때를 앞가슴에 품듯이 양손으로 들고 맨발로 걸어나와 배식장소로 이어지는 대로 위로 자연스럽게 열과 줄을 지어 걸어간다. 커다란 식당이 있는 옆 모퉁이에서 신자들이 밥과 반찬을 배식하는데 음식을 받기 위해서이다. 배식을 받은 수행승들은 지정된 식당 안으로 들어가 키가 낮은 식탁에 둘러앉아 단체로 식사를 한다.

 

  싯다르타가 출가할 당시, 인도의 풍습으로 수행자는 마을로 가서 밥을 구걸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마을 가까운 숲에서 수행을 하다가 밥 때가 되면(보통 10시경) 마을로 내려가서 탁발을 했다. ‘구걸’(求乞)이니 탁발’(托鉢)이니 하는 게 모두 밥을 얻어먹는 것을 말한다. 산스크리트 어와 팔리 어가 모두 다 같이, 탁발핀다파타’(pindapata)라고 한다. 그리고 이 걸식, 남에게 폐를 끼치기 위한 게 아니라, 그야말로 무소유의 실천을 위한 거였다. 물론, 탁발은 하루에 한 번뿐이고, 얻어 온 밥을 모두 모은 후에 몸이 아파서 못 나간 사람까지도 공평히 나누어 먹었다고 전한다

  후기인 눈을 뜨고 보니를 본다.

 

꽃잎이 너무 붉어

  나는 슬프다.

 

  저토록 절박하게

  살지 못함일까?

 

  네 간절함은 알겠다만

  나는 슬프다.

 

  내가 붉지 못함일까?

  네가 나를 닮았음일까?

 

  아, 이런 마음 때문에 이 여행기 제목을 이렇듯 슬프게 지었구나! 그토록 많은 성전과 불탑과 불상을 세워 놓고 거기에 매달려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 그들이 지닌 소망도 그 많은 사람들처럼 가지각색일 게다. 나는 겨우 간접체험을 이제 막 끝낸 처지이지만, 이 사백이 느낀 그 붉은 슬픔을 어찌 함께하지 못하겠는가. 나는 화답으로 단숨에 시조 한 수를 지었다.

 

  꽃잎이 붉은 것은 뜨겁다는 뜻일 테고

  꽃들이 예쁜 것은 밝은 꿈을 지녔기에,

  꽃처럼 살려는 우리 모진 비에 슬프다.

                    -김재황의 단수시조 슬픔



 

  그렇다면, 미얀마에는 어떻게 불교가 들어오게 되었을까? 우선, 아쇼카 왕 이후에 남인도와 스리랑카와 미얀마 등지에 전파된 대개 소승 유식파에 속하는 불교를 남방불교라고 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우리는 북방불교 쪽이다. 말하자면, 남방불교는 인도로부터 남쪽으로 전해진 불교이고, 북방불교는 실크로드를 거쳐(쿠마라지바와 삼장 법사) 주로 북쪽으로 전해진 불교이다. 이 둘의 주된 차이는, 북방불교가 대승불교를 전승하고 있는 데 비해, 남방불교는 상좌부(上座部)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좌부, 부처님이 입멸하신 지 100년쯤 지나서부터 시작된 불교 교단의 분열로 등장한 20개 부파 가운데 하나이다. 교학사상이나 수행의 전통 및 계율의 준수 등에 대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게 특징이라고 한다. , 한역된 아함경과 같은 수준의 초기경전인 ‘팔리어 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도 한다. 남방불교가 전래된 여러 나라에서는 자신들이 불교의 전통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엄격한 계율과 참된 수행을 중시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 시백께서 직접 두 발로 뛰면서 사진을 곁들이어 현재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었기 때문에 이제 조금은 그 실상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어찌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에, 보답의 뜻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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