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81장,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3. 11. 07:41

베풂- 제81장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
 착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착하지 못하다. 아는 사람은 배워서 익힘이 넓지 못하고 배워서 익힘이 넓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거룩한 이’는 쌓지 않는다. 이미 남을 도움으로써 제 스스로 더욱 있게 되고 이미 남에게 줌으로써 저 스스로 더욱 많게 된다.
 하늘의 길은 보탬이 되게 하고 깎임이 되게 하지 않으며, ‘거룩한 이’의 길은 돕기만 하고 다투지 않는다.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聖人不積 旣以爲人己愈有 旣以與人己愈多. 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
(신언불미 미언불신. 선자불변 변자불선 지자불박 박자부지. 성인부적 기이위인기유유 기이여인기유다. 천지도 이이불해 성인지도 위이부쟁)


[뜻 찾기]
 ‘신언불미’(信言不美)는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다.’라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믿을 만한 말은 좋게 들리지 않는다.’라는 풀이도 있다. 그리고 ‘미언불신’(美言不信)에서 ‘미언’은 바로 ‘감언’(甘言, 남의 마음에 들도록 꾸미는 말)을 이르는 성싶다.
 ‘선자불변’(善者不辯)에서 ‘변’은 일반적으로 ‘변론하다’라는 풀이를 택하고 있다. ‘변’은 ‘말 잘하다’ ‘판별하다’ ‘따지다’ ‘논란하다’ ‘다투다’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말 잘하다’를 골랐다.
 ‘성인부적’(聖人不積)에서 ‘부적’은 ‘자기에게 쌓아 두지 않는다.’라는 뜻인데, ‘거룩한 이(聖人)의 마음은 빈(虛) 것 같아서 아무것도 쌓아 둔 것이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여기에서의 ‘적’은 ‘재물을 축적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듯싶다. 그리고 ‘기이위인기유유’(旣以爲人己愈有)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남을 위하여 쓰면 자기 것도 더 많아진다.’라는 풀이가 많이 쓰인다.
 ‘이이불해’(利而不害)는 ‘세상의 일은 이(利)가 있으면 반드시 해(害)가 있는 것이지만, 하늘의 길(道)은 이가 되게 하지만 이해관계가 아닌 것으로 이가 되게 하므로 해가 따라올 까닭이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는, ‘오증’(吳證)‘이라는 사람의 설이다. 그리고 ‘위이부쟁’(爲而不爭)은, ‘무엇을 한다는 것은 다툼의 단서(端緖)가 된다. 그러나 거룩한 이가 무엇을 하는 것은 무위(無爲)로서 하므로 다툼이 일어날 수 없다.’라는 풀이가 통용된다. 이 또한, ‘오증’의 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여기에서의 ‘위’는 ‘한다’라는 뜻이지만 문맥으로 보아서 ‘위’를 ‘돕는다’라고 푸는 게 더욱 설득력이 있을 듯싶다.


[나무 찾기]
 ‘신언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 美言不信,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에서 나는 문득 ‘모과나무’(Chaenomeles sinensis)를 떠올린다. 

너는 민주주의를 신봉하였다.
나는 무심코 네 옆을 스쳐서 갔고
너는 길거리 좌판 위에서
자유롭게 뒹굴며 지내었다.
한 떼의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목청 높여 외칠 때도
너는 생긴 대로 그렇게 놓여 있었다.
나는 그러한 평화가 보기에 좋아서
걸음을 멈추고 손을 내밀었으며
너는 향기를 나에게 전하였다.
자유로운 모습과 평화로운 향기
나는 유심히 네 옆에 머물고
너는 몸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였다.
새콤하게 맛으로도 보여 주었다.
-졸시 ‘못생긴 모과’ 전문 

 ‘모과’는, 보기에 아름답지 않지만, 큰 믿음성을 지니고 있다. 귀한 약재로 쓰이며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고 있다. 게다가 ‘모과’는, 벌레 먹고 못생긴 것일수록 향기가 높다. 그 반면에, 잘생긴 것은 가치가 낮다. 
모과나무는 중국이 고향이다. 그렇기에,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즉, ‘모과나무’란, ‘모과가 달리는 나무’라는 뜻이다. ‘모과’는, 중국에서 ‘목과’(木瓜)라고 쓰는데, 우리는 ‘모과’라고 읽는다. 이는, ‘나무에 달리는 참외’라는 뜻이다.
 모과나무는 장미과에 딸린 갈잎 넓은잎중간키나무이다. 높이는 10미터에 이른다. 줄기의 몸 빛깔은 보랏빛을 띤 갈색으로 윤기가 난다. 나이가 들면 묵은 나무껍질이 봄마다 들떠서 비듬처럼 떨어진다. 그렇게 껍질이 떨어지고 나면 다시 푸른빛을 띠게 된다. 줄기에 녹갈색의 구름무늬가 보여서 무척이나 예술적이다. 잎은 어긋맞게 돋고 잎의 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규칙적으로 나 있다. 턱잎도 있지만 일찍 떨어져 버린다. 봄에 연붉은 다섯잎꽃이 가지에 하나씩 피며, 가을에 향기롭고 길둥근 열매가 노랗게 익는다. 목재는 단단하고 질이 좋다. 그래서 가구재로 많이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과수 또는 관상용으로 재식하고 있다. 이 나무는, 서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으나, 남쪽 지방에서는 더욱 많이 만날 수 있다. 대개는 마을의 공터에 심는다. 열매 속에 들어 있는 씨를 가을에 뿌려 놓으면 봄에 거의 싹이 튼다. 자람도 빠르다. 한명(漢名)으로는 ‘모과’ 외에도 ‘화리목’(花梨木) ‘화류목’(華榴木) ‘저목’(杼木) 등이 있다.
 모과는 우리를 네 번 놀라게 한다. 처음에는, 모과가 찌그러지고 울퉁불퉁하기에 보는 이마다 어쩌면 저리도 못생겼을까 하고 놀란다. 그렇지만 잘 익은 모과의 냄새를 맡아 보고는 그 향기로움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하여 먹어 보고는 몹시 시어서 다시 놀란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모과가 한방에서 매우 귀한 약재로 쓰인다는 사실에 또다시 놀라게 된다.
 모과는 익을 무렵에 따서 적당하게 썬 다음, 햇볕에 말린 후, 약재로 쓸 때는 다시 잘게 썬다. 모과에는 ‘타닌’(tannin)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그 밖에도 ‘사포닌’(saponin)과 ‘비타민C’ 및 ‘사과산’과 ‘구연산’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고 한다. ‘진해’ ‘거담’ ‘지사’ ‘진통’ 등의 효능이 있어서 ‘백일해’ ‘천식’ ‘기관지염’ ‘폐렴’ ‘늑막염’ ‘각기’ ‘설사’ ‘신경통’ ‘근육통’ ‘빈혈증’ 등에 쓰인다. 동의보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갑자기 토하고 설사를 하면서 배가 아픈 위장병에 좋으며 소화를 잘 시키고 설사 뒤에 오는 갈증을 멎게 한다. 또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다리와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것을 낫게 한다.’
 ‘모과차’도 즐겨 마시는데, 모과를 얇게 썰어서 설탕을 넣고 조려 두었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마신다. ‘모과주’는, 하룻밤쯤 그늘에 말려서 얇게 썰어 놓은 모과 1킬로그램과 설탕 200그램 정도를 섞은 후에 소주를 부어 두었다가 마시게 된다. 이 차와 술은 피로 해소에 좋다고 한다.
 모과를 ‘호성과’(護聖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유래는 이러하다.
 옛날에 한 성승(聖僧)이 길을 가다가 외나무다리를 건너가게 되었다. 그가 그 다리를 중간쯤 건넜을 때 앞을 보니 바로 거기에 커다란 구렁이가 외나무다리를 친친 감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앞으로 가자니 뱀이요, 물러서자니 시퍼런 물이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기에 그는 눈을 감고 발원(發願)했다. 
 “길을 가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자,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물가에서 다리 쪽으로 길게 가지를 뻗고 있던 커다란 모과나무로부터 잘 익은 모과 하나가 뚝 떨어져서 뱀의 머리를 힘껏 때렸다. 그 바람에 구렁이는 깜짝 놀라서 물로 떨어지게 되었고, 성승은 무사히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모과를 ‘호성과’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모과를 무척이나 사랑하였다. 그래서 모과에 대한 속담도 여럿 있다.
 예를 들면, ‘과물전(果物廛)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못난 것은 그가 속에 있는 단체의 여러 사람을 망신시키는 일만 저지른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겉보기에는 그렇지만 사실은 다르다는 것’을 누누나 다 안다. 그런가 하면, ‘모과나무 심은 심사(心思)’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심술궂고 성깔이 순수하지 못한 마음씨’를 이른다. 아마도 이는, ‘모과나무의 줄기가 뒤틀린 듯싶게 보인다.’라는 뜻이라고 여겨진다. 또, ‘시기는 모과 한 잔등(등)이라’라는 속담도 있다. 이는, ‘음식물의 맛이 매우 실 때 이르는 말’ 또는 ‘사람의 행동이 몹시 눈에 거슬릴 때’ 등에 이르는 말이다. 모과의 맛이 무척이나 시기 때문에 이런 속담이 생겼다.
 시경을 보면, ‘위(衛)나라’ 노래 중에 ‘모과’(木瓜)라는 게 나온다. 그 한 구절이 ‘투아이모과(投我以木瓜) 보지이경거(報之以瓊琚)’로 되어 있다. 이는, ‘나에게 모과를 던져 오기에 어여쁜 패옥으로 갚아 주었지.’라는 뜻이다. 이는,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과일과 패옥을 서로 던지고 받으며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노자가 살았던 당시에는, 프러포즈(propose)를 이런 식으로 했던 모양이다. 참으로 멋진 일이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