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78장, 물보다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다(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3. 10. 07:37

베풂- 제78장

물보다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다





 하늘 아래에 물보다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다. 굳고 단단한 것을 내달아 치는 데는 익숙하게 잘 이길 게 없다. 그로써 그것은 바꿀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여린 것은 단단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은 굳센 것을 이긴다. 하늘 아래 알지 못함이 없건만 익숙하게 잘 ‘마음먹은 대로 하여 나감’이 없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는 이른다. “나라의 부끄러움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켜서 ‘나라의 임자’라고 일컬으며, 나라의 좋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켜서 ‘하늘 아래의 왕’이라고 일컫는다.” 바른말은 맞서서 거스르는 것 같다.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是以聖人云 “受國之垢 是爲社稷主 受國不祥 是謂天下王.” 正言若反
(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막지능승 이기무이역지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막부지 막능행. 시이성인운 “수국지구 시위사직주 수국불상 시위천하왕.” 정언약반)


[뜻 찾기]
 ‘막유약어수’(莫柔若於水)의 ‘유약’은 이미 제76장에서 거론되었다. 그와 같이 여기에서도 ‘유약’을 ‘부드럽고 여리다.’라고 풀었다. 그리고 ‘이공견강자’(而攻堅强者)의 ‘견강’도 제76장에 나와 있다. 그와 같이 여기에서도 ‘견강’을 ‘굳고 단단하다.’라고 했다. 또, ‘이기무이역지’(以其無以易之)에서 ‘무이역지’는 ‘어느 것도 물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역’은 ‘바꾸다’ ‘교환하다’ ‘옮김’ ‘바뀌다’ ‘어기다’ ‘다르다’ ‘편안하다’ ‘평평하다’ ‘기쁘다’ ‘소홀하다’ ‘경시함’ ‘생략하다’ ‘다스리다’ ‘다스려짐’ 등의 뜻을 지닌다. 그런데 어느 문헌에는 ‘이기무이역지’가 ‘기무이역지’로 되어 있다. 이게 옳을 듯싶기도 하다.
 ‘수국지구’(受國之垢)에서 ‘구’는 ‘더러움과 욕되는 것’을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수국지구’는 ‘나라의 욕된 것이나 더러운 것을 맡아 다스림’의 의미라고 한다. ‘구’는 ‘때’ ‘때 묻다’ ‘더러움’ ‘먼지’ ‘수치’ ‘부끄러움’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부끄러움’을 골랐다. 그리고 ‘시위사직주’(是謂社稷主)에서 ‘사직’은 ‘나라’ 또는 ‘조정’을 일컫는 말로 알려져 있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사’는 ‘나라의 땅 신’이고 ‘직’은 ‘나라의 곡식 신’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주’는 ‘주인’이라는 뜻인데, 여기에서는 ‘임금’을 의미한다. 또, 정언약반(正言若反)은 ‘길(道)에 맞는 바른말은 세속적인 상식과는 반대되는 것 같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반’은 ‘돌이키다’ ‘되받다’ ‘되풀이하다’ ‘거듭하다’ ‘반대하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 ‘반대하다’를 골라서 ‘맞서서 거스르다’라고 풀었다.


[나무 찾기] 
 ‘약지승강 유지승강’(弱之勝强 柔之勝剛, 여린 것은 단단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은 굳센 것을 이긴다.)에서 나는 문득 ‘해당화’(Rosa rugosa)를 생각한다.

무에 그리 서운해서 많은 가시 보이는가.
바닷가 모래땅에 머리 풀고 나와 서서
저 멀리 수평선 너머 떠난 임을 그리는가.

아예 질끈 눈감으면 둥근 달이 떠오르나.
철썩철썩 바닷물에 마냥 젖어 부푸는데
참 붉게 여린 마음만 열매처럼 익는구나.
-졸시 ‘해당화’ 전문

 먼바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리운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 해당화는, 그 모습이 부드럽기 이를 데 없건만,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달려드는 바닷바람을 막아내는 강인함도 지니고 있다.
 해당화는, 중국 이름인 ‘海棠花’를 빌려서 쓴 이름이다. 바닷가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기에 ‘해’(海) 자가 붙었고 그 열매가 ‘아가위’를 닮았기에 ‘당’(棠) 자기 붙었다. 그래서 ‘바닷가의 아가위’라고도 한다. 내가 보기에도 두 나무의 열매는 아주 닮았다. ‘아가위’는 바로 ‘산사나무’(Crataegus pinnatifida)의 열매를 가리킨다. 물론, 해당화는 무엇보다도 꽃이 아름답다. 그래서 ‘화’(花) 자를 그 이름 끝에 붙였다.
 해당화와 가까운 이미지를 지닌 나무라면 ‘찔레’(R. multiflora)이다. 그 꽃의 아름다움이 닮았고 그 가지의 힘찬 뻗음이 닮았으며 온몸에 가시를 내밀고 있는 모습까지 아주 닮았다. 그래서인지, 해당화를 일명 ‘때찔레’라고도 부른다. 해당화는 가시에도 털을 달고 있다. 어쩌면 그리도 털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해당화의 꽃은 가지 끝에 달린다. 붉고 향기를 지닌다. 그래서 찔레나 해당화의 꽃잎을 원료로 해서 향수를 만든다고 한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