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풂- 제80장
작은 나라에 나라 사람을 적게 한다
작은 나라에 나라 사람을 적게 한다. 많고 좋은 그릇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쓰지 않게 하고 나라 사람에게 죽음을 무겁게 여기도록 하여 멀리 옮겨 다니지 않게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 탈 일이 없고 비록 갑옷 입은 군사가 있더라도 그들이 떼를 지어 머무르는 일이 없게 한다.
나라 사람에게 다시 새끼를 꼬아서 쓰게 한다. 그 음식이 달고, 그 옷이 아름다우며, 그 사는 것이 쉽고도 좋고, 그 ‘오랫동안 해 와서 몸에 익은 일’이 즐겁게 한다.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다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나라 사람이 늙어서 죽음에 이르도록 서로 오가지 않게 된다.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陣之. 使民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사민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 불상왕래)
[뜻 찾기]
‘소국과민’(小國寡民)은, ‘작은 나라의 적은 국민’이라는 뜻인데, 노자가 바라는 이상향(理想鄕)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 귀에는, ‘나라가 크고 백성이 많다고 하여도, 나라가 작고 백성이 적은 듯이 다스려야 한다.’라는 말로 들린다. 그리고 ‘사유십백지기’(使有什佰之器)에서 ‘십백’은 ‘많은 수’를 표현한 말이다. 즉, ‘십’은 ‘열 배’이고 ‘백’은 ‘백 배’이다. 그런가 하면 ‘십백지기’를 ‘보통 사람의 백 배나 열 배의 재주를 가진 인재(人材)’ 또는 ‘뛰어난 무기’ 등으로 기술한 풀이도 있다. ‘기’는 ‘기물’(器物)을 뜻하는데, 여기에서는 ‘아름다운 기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 ‘사민중사’(使民重死)에서 ‘중사’는 ‘죽음을 중히 여김’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중히 여김’을 나타낸다고 한다.
‘수유주여’(雖有舟輿)에서 ‘주여’는 ‘배와 수레’를 뜻한다. 그런데 어느 기록에는 ‘주여’가 ‘주거’(舟車)로 되어 있기도 하다. ‘여’는 ‘수레’ ‘수레의 총칭’ ‘거상’(車箱) ‘싣다’ ‘메다’ ‘짊어짐’ ‘들다’ ‘마주 듦’ ‘땅’ ‘대지’ ‘많다’ ‘대중’ ‘시작’ ‘시축’ ‘가마’ 등의 여러 뜻을 지닌다.
‘사민부결승이용지’(使民復結繩而用之)에서 ‘결승’은 ‘노끈을 맺는다.’라는 뜻이니, ‘옛날 아직 글자가 없을 때 노끈을 맺어서 의사표시의 증적(證跡)을 삼았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말하자면 ‘화살을 꺾어서 맹세를 나타내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한다. 이는, 원시적인 소박한 생활을 의미한다고도 여겨진다.
‘불상왕래’(不相往來)는 ‘서로 오고 가지 않는 것’을 이른다. 여기에서는 ‘백성들이 이웃 나라에 욕구(欲求)하는 것이 없기에 오고 가는 일이 없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무 찾기]
‘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에 나라 사람은 적게 한다.)의 ‘소국’에서 나는 불현듯 ‘시로미’(Empetrum nigeum var. japonicum)를 떠올린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귀염둥이 막내 나무
높은 곳에 자리 잡고 봄이면 꽃도 피우네.
바랄 게 전혀 없으니 그 자리에 머물고.
-졸시 ‘시로미’ 전문
아주 높은 산의 위험한 산정 부근에서 자라는 고산식물 중 하나인 ‘시로미’는, 키가 겨우 10~2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나무이다. 그 분포가 그리 좁으니 ‘소국’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렇듯 드무니 ‘과민’이다. 시로미는 비록 꽃은 볼품없으나 여름에 까맣게 익은 열매는 산을 찾는 이들의 갈증을 덜어 준다.
시로미는, 처음에 그 이름이 ‘시러미’였다고 한다. ‘시러미’에서 ‘시러’는 ‘능히’라는 뜻이라는데, 아마도 ‘능히 갈증을 덜어 줄 수 있다.’라는 의미가 담겼을 성싶다. 그리고 ‘미’는 ‘맛’을 뜻하는데, 어쩌면 ‘그 열매의 맛이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아서 먹을 만하다.’라는 의미를 지녔을 듯싶기도 하다. 지금도 제주도 방언으로 ‘시러미’라고 부른다. 아무튼 그 ‘시러미’가 ‘시로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얼마 전, 나는 포천의 한 식물원에서 시로미를 만난 적이 있다. 시로미는 늘푸른잎떨기나무이다. 줄기는 땅으로 뻗는다. 마치 융단을 깐 것처럼 부드럽게 펼치어져 있다. 푹신푹신한 느낌을 준다. 잎은 선형(線形)이며, 그 가장자리가 뒤로 젖혀진다. 그러나 사실은 넓은 잎이지만, 돌돌 말려서 가는 모양을 보인다. 이는, 높은 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사막의 선인장처럼, 잎의 수분 발산을 최소로 줄이자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암수딴그루이다. 꽃은 5월부터 7월까지 잎의 겨드랑이에서 피는데, 자줏빛의 작은 ‘세잎꽃’이다. 수술대는 가늘고 길며 꽃밥은 홍색을 나타낸다.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열매는 장과(漿果)로 가을에 검게 익는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열매는 그대로 먹을 수 있고, 잼을 만들거나 술을 빚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불로불사’의 약효를 지닌다고 하여 이 열매를 아주 귀하게 여기기도 했다.
시로미는 높은 산에서 무리를 지어 자란다. 속세의 티끌이 묻지 않은 고고한 장소에서 세찬 바람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이 청초하고 고아하기만 하다. 그래서 관상용으로도 사랑받는다. 일명 ‘오이’(烏李, 까마귀의 자두)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암고란’(岩高蘭)이라고 부른단다. 또, 영명(英名)으로는 ‘Crowberry'라고 한다. 이 또한 ‘까마귀의 열매’라는 뜻이다. 한명(漢名)은 ‘오립’(烏立) 또는 ‘광아안’(光鴉眼)이다. 은행나무와 마찬가지로 1속 1과 식물이다. 이런 식물을 학술적으로 ‘모노 타입’(mono type)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 관모봉(冠帽峰)을 비롯하여 북부 고산지대와 한라산 개미목 이상의 높은 산지, 그리고 설령(雪嶺)과 남포태산(南胞胎山) 등지에서 자생하는 시로미를 만날 수 있다. 일본이나 유럽, 그리고 캘리포니아 등지에도 분포하고 있다.
또 하나의 작은 나무가 있다. 그 이름은 ‘자금우’(Ardisia japonica)이다. 그 이름이 특이하다.
자금우도 그 높이가 15~20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남부 지방에서 흔히 자라지만, 북부 지방에서도 간혹 만날 수 있다. 늘푸른잎 작은떨기나무이다. 땅속줄기 끝이 땅위로 올라와서 땅위줄기로 되고, 그 줄기는 비스듬히 자란다. 잎은 돌려나기 또는 마주나기를 보인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있다. 꽃은 6월에 피는데, 암수한꽃이다. 잎겨드랑이나 꽃턱잎겨드랑이에 달리며 밑으로 처진다. 꽃자루는 10밀리미터 이하이고 2~3개의 꽃이 달린다. 꽃부리는 수레바퀴 모양이며 백색이고 5개로 갈라진 조각은 그 머리가 뾰족하며 검은 점이 있다. 열매는 편구형(扁球形)으로 그 지름이 10밀리미터 정도이고 9월에 빨갛게 익는다. 참으로 이름답다. 이 열매는 다음 해에 꽃이 필 때도 달려 있다.
언제나 하늘 높이 내보이고 싶었느니
무논의 개구리처럼 울기만 하며 살아온
농민이 잘 살게 되면 깃에 달고 싶었느니.
그러나 한편으로 약이 되길 바랐느니
가뭄의 천수답같이 쩍쩍 갈라진 마음에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묘약이길 바랐느니.
-졸시 ‘자금우’ 전문
자금우는, 생약명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즉, 그 말린 뿌리가 보랏빛을 띠면서 금처럼 가치가 있다. 그 때문에 ‘소와 바꿀 만한 귀한 나무’라는 뜻으로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보랏빛을 띠는 금송아지’(紫金牛)라는 의미이니, 이 나무뿌리가 얼마나 값진 약재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자금우는, 우리나라의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및 충청남도의 깊은 산 숲속의 그늘 아래에 군락을 이루고, 경기도 해안에서도 야생으로 자란다. 그리고 중국과 대만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한명(漢名)은 ‘평지목’(平地木) ‘통선목’(通仙木) ‘소청수’(小靑樹) ‘천년왜’(千年矮) 등을 지닌다.
그런데 자금우보다도 더 작은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바로 ‘산호수’(A. pusilla)이다. 산호수는 자금우와 아주 가까운 나무이고 아주 닮았다. 내가 제주도에서 귤밭 농장을 경영할 때, 그 귤밭 귀퉁이에서도 많이 자라고 있었다. 산호수는 기껏해야 그 키가 8센티미터를 넘지 않는다. 자금우와 가장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잎의 가장자리에 생긴 톱니를 보면 된다. 자금우의 톱니는 잔 톱니지만, 산호수의 톱니는 드문드문 난 톱니이다. 산호수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표고 300미터 이하의 낮은 지대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고, 열매는 자금우처럼 동그랗고 빨갛지만, 그 수가 적어서 관상 가치는 조금 떨어질 듯싶다. 산호수는 일명 ‘설하홍’(雪下紅) 또는 ‘주옥만’(朱玉蔓)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중국 남부와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산호수는, ‘그 줄기가 산호(珊瑚)의 가시처럼 뻗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일부의 사람들은 ‘그 열매가 붉은 산호처럼 아름답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아무래도 앞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크다. 물론, 한명(漢名)은 ‘珊瑚樹’(산호수)라고 쓴다.(글: 김 재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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