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옛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벗을 삼는다
맹자는 이제 마음을 모두 비웠습니다. 바람처럼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을 겁니다. 그래서 오로지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그의 온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어느 하루는 제자인 ‘만장’(萬章)이 스승인 맹자에게 말했습니다.
“감히 벗 사귀는 도리를 여쭈어보겠습니다.”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나이 많은 것을 자랑삼아 내세우지 말고 지위 높은 것을 자랑삼아 내세우지 말며 형제의 힘까지도 자랑삼아 내세우지 말고 벗을 사귀어야 한다. 벗의 사귐은 그 사람의 베풂을 벗으로 삼는 것이기에 자랑삼아 내세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맹자는 예를 들어서 예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덧붙인 다음에,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귀한 이를 귀하게 여긴다.’라고 하며,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존경하는 것을 ‘어진 이를 우러러 높인다.’라고 한다. 그러니, 귀한 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과 어진 이를 높이는 것은 그 뜻이 마찬가지이다.”
[萬章問曰 ‘敢問友’ 孟子曰 ‘不挾長, 不挾貴, 不挾兄弟而友. 友也者, 友其德也, 不可以有挾也.’---孟子曰 ‘用下敬上 謂之貴貴. 用上敬下 謂之尊賢. 貴貴尊賢 其義一也(만장문왈 ‘감문우’ 맹자왈 ‘불협장, 불협귀, 불협형제이우. 우야자, 우기덕야, 불가이유협야.’---맹자왈 ‘용하경상 위지귀귀 용상경하 위지존현. 귀귀존현 기의일야’) 10-3]
앞의 ‘불협장 불협귀 불협형제이우’(不挾長, 不挾貴, 不挾兄弟而友)에서 ‘협’은 ‘남보다 나은 위치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을 이른답니다. 한 마디로 ‘잘난 체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리고 또 어느 때, 맹자는 제자 ‘만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 고을에서 착하다고 일컫는 선비라야 그 고을의 착한 선비들과 벗할 수 있고, 한 나라에서 착하다고 일컫는 선비라야 그 나라의 착한 선비들과 벗할 수 있다. 또 온 천하에서 착하다고 일컫는 선비라야 온 천하의 착한 선비들과 벗할 수 있다. 온 천하의 착한 선비들과 벗하고도 여전히 마음에 차지 않으면, 더 올라가서 옛사람들을 숭상하여 논한다. 그들의 시를 읽고 그들의 책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사람됨을 모른다고 해서야 되겠느냐? 그렇게 하여 그들의 시대도 논하게 되니, 이게 바로 ‘거슬러 올라가서 벗을 삼는다.’라는 말이다.”
[孟子謂萬章曰 ‘一鄕之善士 斯友一鄕之善士, 一國之善士 斯友一國之善士. 天下之善士 斯友天下之善士. 以友天下之善士爲未足 又尙論古之人. 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可乎? 是以論其世也 是尙友也.(맹자위만장왈 ’일향지선사 사우일향지선사, 일국지선사 사우일국지선사. 천하지선사 사우천하지선사. 이우천하지선사위미족 우상논고지인. 송기시, 독기서, 부지기인가호? 시이논기세야 시상우야) 10-8]
맹자는 여러 제자에게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옛날의 어진 왕들(先王)은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어서 또한 남에게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정치’를 하였다. 그러니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정치’를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기는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움직이기처럼 쉬운 일이다. ‘사람들이 모두 차마 남에게 어떠한 일을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말하는 까닭은 이러하다. 이제 사람들이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문득 보았다고 하면, 모두들 깜짝 놀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그 까닭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귐이 있어서도 아니고 동네 사람과 벗에게 칭찬받으려는 것도 아니며 구해 주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이를 미루어 보건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은 ‘인’(仁, 어짊)의 실마리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은 ‘의’(義, 옳음)의 실마리이다. 그리고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은 ‘예’(禮, 예절)의 실마리이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은 ‘지’(知, 앎)의 실마리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네 가지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두 팔과 두 다리를 지닌 바와 같다. 이러한 네 가지의 실마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착한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해치는 사람이다. 또 자기 임금이 착한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임금을 해치는 사람이다. 무릇 이러한 네 가지 실마리가 자기에게 있는 줄을 알고 그것을 크게 만들어 나가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물이 처음 솟아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참으로 그것을 크게 만들어 나간다면 모든 바다를 보전하기에도 넉넉하다. 그러나 참으로 그것을 크게 만들어 나가지 못한다면, 자기 부모를 섬기기에도 모자란다.”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可運於掌上.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乍見孺子 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由是觀之 無測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知之端也. 人之有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 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맹자왈 ‘인개유불인인지심. 선왕유불인인지심, 사유불인인지정의. 이불인인지심, 행불인인지정, 치천하가운이장상. 소이위인개유불인인지심자, 금인사견유자 장입어정 개유출척측은지심, 비소이납교어유자지부모야, 비소이요예어향붕우야, 비오기성이연야.. 유시관지 무측은지심 비인야, 무수오지심 비인야, 무사양지심 비인야, 무시비지심 비인야. 측은지심 인지단야. 수오지심 의지단야, 사양지심 예지단야, 시비지심 지지단야. 인지유사단야 유기유사체야. 유시사단이자위불능자, 자적자야. 위기군불능자 적기군자야. 범유사단어아자 지개확이충지의 약화지시연 천지시달. 구능충지 족이보사해, 구불충지 부족이사부모.’) 3-6]
어느 날, 제자인 ‘서자’(徐子, 서 선생님, 이름은 徐辟)가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공자(원문에서는 ‘중니’仲尼라고 되어 있다. 공자가 ‘둘째아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공자의 형은 ‘孟皮’인데 ‘백니’伯尼라고 불렀다.)께선 물을 자주 칭찬하여 ‘물이여! 물이여!’하셨는데, 물에서 무엇을 얻으신 겁니까?”
맹자가 대답했습니다.
“근원 깊은 샘물(원문은 ‘混混.’ 이 ‘혼혼’은 ‘물이 솟아나는 모양’)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졸졸 흐른다. 그리고 웅덩이(科)를 채운 뒤에도 더욱 앞으로 흘러나가서 마침내는 바다에 이른다. 근본이 있는 것은 이와 같으니, 이(爾, 이 뜻)를 얻으셨다. 진실로 근본이 없다면, 7월과 8월에 내리는 비가 한꺼번에 모여서 크고 작은 도랑(구회‘溝澮’- ‘구’는 ‘작은 도랑’이고 ‘회’는 ‘큰 도랑’)을 모두 채우더라도 마르기 시작하면 서서 기다리는 사이에 모두 말라 버린다. 그러므로 실제보다 지나치게 이름이 나는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
[徐子曰 ‘仲尼亟稱於水曰 <水哉! 水哉!> 何取於水也?’ 孟子曰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是之取爾. 苟爲無本, 七八月之間 雨集溝澮皆盈 其涸也 可立而待也, 故聲聞過情 君子恥之’(서자왈 ‘중니기칭어수왈 <수재! 수재!> 하취어수야?’ 맹자왈 ‘원천혼혼, 불사주야, 영과이후진, 방호사해. 유본자여시시지취이. 구위무본, 칠팔월지간우집, 구회개영,기확야, 가립이대야. 고성문과정, 군자치지’) 8-18]
맹자는 여러 제자에게 이런 말도 했습니다.
“받을 만도 하고 받지 않을 만도 한데 받으면 ‘렴’(廉, 맑음)을 다치게 된다. 그리고 주어야 할 만도 하고 주지 않아야 할 만도 한데 주게 되면 ‘혜’(惠, 슬기로움)를 다치게 된다. 또, 죽을 만도 하고 죽지 않을 만도 한데 죽으면 ‘용’(勇, 씩씩함)을 다치게 된다.”
[孟子曰 ‘可以取, 可以無取, 取, 傷廉. 可以與 可以無與 與 傷惠, 可以死 可以無死 死 傷勇’(맹자왈 ‘가이취, 가이무취, 취, 상렴. 가이여, 가이무여, 여, 상혜. 가이사, 가이무사, 사, 상용’) 8-23]
또 어느 날인가, 제자인 ‘만장’(萬章)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시에 ‘아내를 얻으려면 어떻게 하나? 반드시 어버이께 아뢰어야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을 옳다고 믿는다면, ‘순’(舜, 순 임금)처럼 해서는 안 되겠지요. ‘순’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장가든 까닭은 어째서입니까?”
여기에서 말한 ‘시’의 구절은 ‘시경’(詩經) 속의 국풍(國風)에 속하는 ‘남산편’(南山篇)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앞의 글에서 ‘불효’ 이야기를 전하면서 ‘순 임금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요 임금의 딸을 아내로 맞은 일’을 밝혔습니다. 기억이 나나요? 그렇습니다. 자손을 잇지 못하면 불효를 저지르는 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맹자가 어떻게 대답하였는지, 그 말이 자못 궁금합니다. 맹자는 ‘만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알렸다면 장가를 들 수 없었을 터이다. 남녀가 결혼하여 함께 사는 것은 사람의 윤리 가운데서도 가장 큰 일이다. 그런데 만약에 부모에게 알렸다가는 인간 윤리의 큰일을 그르치게 되고, 나아가서는 부모를 원망하게 될 판이었다. 그래서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제자인 ‘만장’(萬章)이 다시 스승인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순’(舜)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장가를 든 까닭은 제가 이미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堯) 임금이 ‘순’에게 딸을 시집보내면서도 ‘순’의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까닭은 무엇입니까?”(여기에서 ‘帝’는 ‘임금’이라는 말이지만 ‘舜’의 장인이 되는 ‘堯’ 임금을 가리킴.)
“요 임금도 또한 ‘순’의 부모에게 알렸다가는 딸을 ‘순’에게 시집보낼 수가 없을 것인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萬章問曰 ‘詩云 <娶妻如之何? 必告父母> 信斯言也. 宜莫如舜, 舜之不告而娶, 何也?’ 孟子曰 ‘告則不得娶. 男女居室 人之大倫也. 如告則廢人之大倫 以懟父母. 是以不告也.’ 萬章曰 ‘舜之不告而娶, 則吾旣得聞命矣. 帝之妻舜而不告, 何也?’ 曰 ‘帝亦知告焉則不得妻也.’(만장문왈 ‘시운 <취처여지하, 필고부모.> 신사언야, 의막여순, 순지불고이취, 하야?’ 맹자왈 ‘고즉부득취. 남녀거실, 인지대륜야. 여고즉폐인지대륜, 이대부모, 시이불고야.’ 만장왈 ‘순지불고이취, 즉오기득문명의. 제지처순이불고, 하야?’ 왈 ‘제역지고언즉부득처야.’) 9-2]
‘만장’이 다시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순’(舜)의 부모가 ‘순’에게 창고 지붕을 고치게 하고는 사다리를 치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고수’(瞽瞍)가 창고에다 불을 질렀습니다. 또, ‘순’에게 우물을 치게 하고는, ‘순’이 밖으로 나오려고 하니까 그대로 흙을 들이부었습니다. ‘순’의 이복동생인 ‘상’(象)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형인 도군(都君, 순의 이름)을 흙으로 덮어 죽인 꾀는, 모두 내 공적이다. 그러나 형이 가졌던 소와 양은 부모의 것으로 하고, 양식 창고도 부모의 것으로 하자. 방패와 창은 내 것으로 하고, 거문고와 붉은빛의 활도 내 것으로 하자. 두 형수(二嫂)는 내 잠자리를 받들게 하자.’ 그런데 ‘상’이 ‘순’의 집으로 찾아가자, ‘순’이 죽지 않고 평상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이 ‘형님 때문에 걱정하느라고 답답하던 참입니다.’(울도‘鬱陶’-생각이 깊어 울적함)라고 말하며 계면쩍어했습니다. 그러자 ‘순’이 ‘이 많은 신하를 너에게 다스리게 하려고 생각하던 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모르겠습니다만, ‘순’은 ‘상’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걸 몰랐을까요?”
“왜 몰랐겠느냐? ‘상’이 근심하면 자기도 근심하고, ‘상’이 기뻐하면 자기도 기뻐했다.”
‘만장’이 또다시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순’이 거짓으로 기뻐한 겁니까?”
“아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산 물고기를 정(鄭)나라 대부인 ‘자산’(子産)에게 보낸 적이 있다. 그러자 자산이 연못지기를 시켜서 그 물고기를 연못에다 기르라고 했다. 그러나 연못지기는 그 물고기를 삶아 먹고 돌아와서 ‘그 물고기를 연못에다 놓아주자 처음에는 빌빌거리더니 (어어언‘圉圉焉’-어릿어릿하여 힘을 못 쓰는 모양)잠시 뒤에는 펄떡거리며 꼬리를 치다가(양양언‘洋洋焉’-점점 힘차게 꼬리치는 모양) 유유히 가버렸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 말을 듣고 자산이 ‘제 살 곳을 만났구나, 제 살 곳을 만났어!’라고 하였다. 연못지기가 밖으로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고 하였는가? 내가 벌써 삶아 먹어 버렸는데, 제 살 곳을 만났구나, 제 살 곳을 만났어! 라고 하던데.’ 그러므로 군자는 이치에 맞는 방법으로 속일 수는 있어도, 이치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속일 수는 없다. ‘상’(象)이 형을 사랑하는 도리를 내세우고 왔으므로 ‘순’(舜)도 정말 믿고서 기뻐한 것이지, 어찌 거짓으로 그랬겠냐?”
[萬章曰 “父母使舜完廩, 捐階. 瞽瞍焚廩. 使浚井, 出, 從而揜之. 象曰 ‘謨蓋都君, 咸我績, 牛羊父母, 倉廩父母, 干戈朕, 琴朕, 弤朕, 二嫂使治朕棲’ 象往入舜宮, 舜在牀琴, 象曰 ‘鬱陶思君爾!’ 忸怩 舜曰 ‘惟玆臣庶 汝其于予治’ 不識. 舜不知象之將殺己與?” 曰 “奚而不知也? 象憂亦憂, 象喜亦喜” 曰 “然則舜僞喜者與?” 曰 “否. 昔者有饋生魚於鄭子産, 子産使校人畜之池. 校人烹之, 反命曰 ‘始舍之, 圉圉焉, 少則洋洋焉, 攸然而逝’ 子産曰 ‘得其所哉! 得其所哉!’ 校人出曰 ‘孰謂子産智? 予旣烹而食之, 曰 <得其所哉, 得其所哉!> 故君子可欺以其方 難罔以非其道, 彼以愛兄之道來, 故誠信而喜之 奚僞焉?”(만장왈 “부모사순완름, 연계, 고수분름. 사준정, 출, 종이엄지. 상왈 ‘모개도군, 함아적, 우양부모, 창름부모, 간과짐, 금짐, 지짐, 이수사치짐서’ 상왕입순궁, 순재상금, 상왈 ‘울도사군이!’ 육니, 순왈 ‘유자신서, 여기우여치’ 불식. 순부지상지장살기여?” 왈 “해이부지야? 상우역우, 상희역희” 왈 “연즉순위희자여?” 왈 “부. 석자유궤생어어정자산, 자산사교인축지지, 교인팽지, 반명왈 ‘시사지, 어어언, 소즉양양언, 유연이서.’ 자산왈 ‘득기소재! 득기소재!’ 교인출왈 ‘숙위자산지? 여기팽이식지, 왈 <득기소재! 득기소재!>’ 고군자가기이기방 난망이비기도. 피이애형지도래, 고성신이희지 해위언?”) 9-2]
맹자는 이 외에도 여러 제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폈습니다. 그중에서 맹자의 뜻을 가장 잘 나타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한번 볼까요?
맹자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성이 귀중하고, *사직(社稷,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 ‘국가’나 ‘조정’을 가리킴)이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볍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천자(天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제후(諸侯)가 되며,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大夫)가 될 수 있다.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어진 사람으로 바꾸어서 제후를 삼는다. 희생의 제물도 모두 마련되었고 제물로 올릴 곡식도 깨끗하게 마련되었으며 제사를 제때 지냈어도 가뭄이나 홍수가 생기면, 백성을 위해서 그 사직의 신을 치우고 다른 장소에다 새로 마련한다.”
[孟子曰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是故得乎丘民而爲天子, 得乎天子爲諸侯, 得乎諸侯爲大夫. 諸侯危社稷, 則變置. 犧牲旣成, 粢盛旣潔, 祭祀以時, 然而旱乾水溢, 則變置社稷(맹자왈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 시고득호구민이위천자, 득호천자위제후, 득호제후위대부. 제후위사직, 즉변치. 희생기성, 자성기결, 제사이시, 연이한건수일, 즉변치사직.) 14-14]
이는, 임금도 제대로 다스림을 못 펴면 바꿀 수 있고 종교도 도움이 안 되면 바꿀 수 있으나, 절대로 그 백성은 바꿀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후, 기원전 303년, 맹자가 70살 정도가 되었을 때, 제자 ‘만장’(萬章) 등의 제자들과 함께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을 정리했다고 하며, 공자의 사상을 서술하여 ‘맹자’ 7편을 지었다고 합니다.
맹자는 기원전 289년 1월 15일에 8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기록에는 64살에 숨을 거두었다고 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그리 별다른 의미가 없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이란, 얼마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공자를 ‘성인’(聖人)이라고 부릅니다. 그에 비하여 맹자는 ‘아성’(亞聖)이라고 부릅니다. 이 습관은 이미 조기(趙岐)의 ‘맹자제사’(孟子題辭)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공권력에 의해서 맹자에게 ‘아성’이란 칭호가 공인된 시기는 14세기의 원대(元代)였다고 합니다. 즉, 원(元)나라 문종(文宗) 때에 조정으로부터 맹자에게 ‘아성’이란 칭호가 정식으로 내려졌답니다.
아무튼 1084년인 송(宋)나라 신종(神宗)의 원풍(元豊) 7년, 맹자를 공자묘(孔子廟)에 합사(合祀)토록 결정되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맹자가 존숭 되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맹자의 여러 말 중에 ‘용상경하 위지존현’(用上敬下 謂之尊賢)이라는 구절이 가슴에 크게 메아리칩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 말은,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존경하는 것을 <어진 이를 우러러 높인다.>라고 한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튼 나이를 초월해서 벗을 사귀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게도, 나는 한 문인들의 모임에 즐겁게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임을 ‘상황문학문인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전국으로 문학기행을 다닙니다. 몇 해 전에는 부산 지역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철길로 부리나케 달려온 케이티엑스
이윽고 종착역에 사람들을 내려놓다
나와서 기지개 켜니 바닷바람 안기고.
사람들 말소리는 사투리라 정겨운데
반기는 동백나무 터질 듯이 부푼 망울
따뜻한 남쪽 지방이 바로 여기 아닌가.
모처럼 찾았으니 기념으로 삼으려고
함께 한 문우들이 모여 서서 사진 찍다.
우리는 그저 나그네 굳게 다문 입술들.
-졸시 ‘부산역에서’ 전문
어떤 벗을 사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진다고 여겨집니다. 공자는 안평중(晏平仲)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평중은 사람과 잘 사귀는구나. 오래될수록 공경하니.”
여기에서 ‘오래될수록 공경한다.’의 원문은 ‘구이경지’(久而敬之)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흉허물이 없는 친구’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사귀어서 가까운 친구일수록 대하는 몸가짐에 주의해야 합니다. 함부로 대하면 안 되지요. 그래야 그 우정이 오래갈 수 있습니다.
물론, 벗들 사이에서는 ‘절절시시’(切切偲偲)가 있어야 합니다. ‘절절’은 ‘정성을 다하여 권하는 모양’을 나타내고, ‘시시’는 ‘벗이나 동지끼리 서로 격려하며 착한 일 하기를 권장함’을 가리킵니다. 이 또한 공자의 말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가운데에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습니다.(글: 김 재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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