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동화3

시조시인 2005. 9. 12. 07:49
 

                                                 손자와 금어초

 

 

 김 재 황


  밝은 해가 떠올라서 거울처럼 맑은 호수를 비춥니다. 잔잔하게 이는 물살에 은빛 잔비늘이 박히고, 채 여미지 못한 산자락 하나가 물에 살며시 잠깁니다.

  “따라갈 테여요.”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의 옷자락을 잡고 떼를 씁니다. 전 같으면 ‘안 돼, 넌 아직 어리니까.’하고 뿌리쳤을 할아버지가, 그 날은 어쩐지 망설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마도 며칠 전에 손자가 혼자 놀다가 하마터면 불을 낼 뻔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 날, 할아버지가 조금만 더 늦게 집에 왔더라면,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이긴 해도, 모두가 한 줌의 재로 변했을 터이니까요.

  “그래 함께 가자. 오늘은 바람도 불지 않으니 괜찮을 거야.”

  꼬마는 좋아서 단박에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습니다. 그처럼 날마다 바라보기만 하던 배를 탈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할아버지는 고기잡이였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부터, 마을 앞 커다란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일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꼬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통 떠오르지 않습니다.  꼬마가 첫돌을 맞기도 전에, ‘장티푸스’라는 무서운 돌림병에 걸려서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조각배에 태우고는 힘껏 노를 젓기 시작했습니다. 삐드득 삐드득, 물 위를 재미있게 미끄러져 나가는 배 위에서 꼬마는 조그맣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자, 이쯤에서 낚시를 놓아 볼까?”

  할아버지는, 물고기가 많이 모이는 목을 골라서 배를 멈춘 다음, 낚싯바늘에 미끼를 꿰어 달고 줄을 멀리 던졌습니다. 물 위에 떴던 찌가 물살을 가르며 바로 섭니다.

  “움직이는지 잘 보거라.”

  할아버지가 이르는 말에 손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찌 끝을 뚫어질 듯이 바라봅니다. 하지만 찌는 좀처럼 움직일 줄을 모릅니다.

  꼬마는 차츰 졸음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가물거리고 하품이 쏟아졌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갑자기 찌가 크게 움직였습니다.

  “할아버지, 물고기가 왔어요.”

  손자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잽싸게 줄을 잡아챘습니다. 줄이 팽팽히 당겨지는 게 제법 묵직합니다. 할아버지가 낚싯줄을 감아 올리니, 놀랍게도 한 마리의 커다란 잉어가 낚싯바늘에 걸려서 올라왔습니다.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놈이면 저녁 찬거리는 넉넉하겠는걸.”

  할아버지가 잉어를 막 물고기바구니 속에 넣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손자가 보니까, 입을 오물거리는 물고기의 모습이 마치 ‘살려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꼬마는 불쌍하게 여겨져서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저것 보세요. 물고기가 살려 달라고 하네요.”

  할아버지도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물고기를 호수에 놓아주었습니다. 물고기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이 몇 번인가 꼬리를 치더니 멀리 사라졌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흰옷을 입은 아이가 꼬마의 꿈속에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내 목숨을 살려 줘서 정말 고맙다. 너를 만나러 갈 테니, 기다려 줘.”

  꼬마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꿈속의 아이를 마중하기 위해서 꼬마는 저녁마다 마을 앞의 느티나무 아래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아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꼬마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손자도 여럿 두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꿈속의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미 소리 요란한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마을 앞의 저쪽 밭두렁 가에서 누구인가가 그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니, 그것은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한 포기 아름다운 풀꽃이었습니다. 그런데 야릇하게도 그 꽃은 그가 어릴 적에 살려 준 잉어의 입을 닮았습니다. 게다가 더욱 놀랍게도, 그 꽃을 만지면 뻐끔거리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나를 해치지 마세요.’라고 하는 듯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살려 주어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듯도 합니다.  

  “왔구나 왔어.”

  그는 그 꽃이야말로 꿈속의 그 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 일을 귀여운 손자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하겠다고 부리나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동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시조3  (0) 2005.09.25
동시조2  (0) 2005.09.23
동시조1  (0) 2005.09.21
동화2  (0) 2005.08.31
동화1  (0) 2005.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