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지역 탐방기
김 재 황
날씨는 맑았다. 아침 9시, 우리는 해안 분지를 향해 차를 달렸다. 민통선 북방, 양구군 해안면에 위치한 해안 분지에는 북서쪽으로 가칠봉을 비롯해서 서쪽으로 대우산, 남서쪽으로 도솔산, 남쪽으로 대암산 등 해발 1000미터 이상의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차가 언덕을 오르는 동안, 아침 안개는 눈부시게 밝은 햇살에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가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안개 속에 잠겨 있던 숲이 조금씩 푸른 모습으로 떠올랐다. 차 소리에 놀라서인지 숲 속에서 장끼 한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아간다.
차가 해안 분지 안으로 들어서자, 일시에 너른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자그마치 남북으로 11.95킬로미터에 동서로는 6.6킬로미터이며, 총면적이 57.5제곱킬로미터나 되는, 해발 450미터에 위치한 분지다. 이 곳은 6.25 전쟁 때의 격전지로서, 그 생김새가 화채 그릇을 닮았기에 유엔군 병사들이 ‘펀치 볼’이라 불렀다고 한다. 차창을 통해 밖을 보니, 제법 큰 동네가 형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 곳은 광복 후부터 1953년까지는 북한 치하에 있었으나, 수복된 후 1956년에 150여 가구가 처음 들어왔고, 1972년에 다시 100여 가구가 들어와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분지는, 조선 중기까지 해안(海安)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이 곳에 뱀이 많이 들끓자, 뱀과 상극인 돼지의 뜻을 지닌 해안(亥安)으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고 전한다.
원래, 이 곳은 호수였다고 한다. 가칠봉 능선에서 뱃조각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고, 또 대암산 능선에서 다슬기껍데기를 발견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이 호수는 한동안 물이 괴어 있다가 산세가 낮은 동쪽 기슭이 터지면서 물이 흘러 나갔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 개구부(開口部)로는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여서 흐르고 있다. 이 물은 곧 서화천(瑞和川)을 이루다가 인제 북방의 다른 개울과 만나 소양호(昭陽湖)로 흘러든다.
해안 분지의 개천은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민물고기의 생태에 큰 관심을 가졌다. 실개천은 수정처럼 맑게 돌돌돌 흐르고 있었다. 실개천을 바라보노라니 벌거벗고 물장구 치며 놀던 고향의 개울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아래쪽에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으며, 물가에는 가지런히 머리를 빗은 듯한 수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나를 부르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 올 것 같았다. 그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민물고기는 쉬리, 돌고기, 참마자, 퉁가리, 배가사리, 참종개 등인데, 특히 배가사리와 참종개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취리, 퉁가리, 배가사리, 참종개는 우리 나라의 특산종이다.
학자들은 이 해안 분지의 생성에 대해서 두 가지 학설을 내세우고 있다.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0만여 년 전에 지름 188미터, 무게 2700만 톤 정도의 운석이 음속(音速)의 200배 속도로 떨어져서 이 분지가 이루어졌다는 학설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주위의 산줄기는 변성암의 일종인 편마암인 데 비해, 분지의 바닥은 비교적 풍화 침식이 잘 되는 화강암이어서, 이 두 종류의 암석이 적어도 2억 년 동안 차별적으로 침식되어 생겼다는 학설이다. 이 중에서 차별 침식으로 보는 학설이 더 지배적이다.
해안 분지를 떠나 두타연(頭陀淵)으로 향했다. 우리는 먼저, 군사 분계선 가까이로 차를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오면서 그 곳의 자연 상태를 관찰하기로 했다. 물기가 많은 낮은 지역에는 사초가 우거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딱총나무와 엄나무도 있었다. 언덕을 올라서니, 순결한 시골 처녀를 연상하게 하는 함박꽃이 함박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한다. 어긋맞게 난 잎은 길둥근 모양인데 막질(膜質)로 반질거리고, 아래쪽은 회록색을 띠고 있으며,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내외하듯 아래나 옆으로 비스듬하게 핀 꽃의 담홍색 수술이 흰 꽃잎과 조화를 이룬다. 함박꽃을 만나, 한동안 우리는 사진 찍기에 바빴다. 우리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정향나무, 고광나무, 고추나무를 만나는 기쁨도 맛보았다.
드디어 우리는 두타연 앞에 다다랐다. 두타연의 원래 이름은 드레못이다. 입구에서는 둥굴레의 단지 모양인 흰 꽃과 큰꽃으아리의 팔랑개비처럼 생긴 흰 꽃이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 눈앞에 펼쳐지는 신비스러운 선경(仙境)이여! 이 지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두타(頭陀)란, 범어(梵語)로 번뇌와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불도(佛道)를 닦는 수행을 말한다. 두타연은 둘레가 50미터, 수심이 7미터나 되는 곳으로, 거울처럼 맑게 고인 물에 우리의 온갖 마음이 그대로 비칠 것만 같다. 이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누구든 마음이 더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이 쏟아지는 위쪽으로 가 보았다. 하천 주변에는 숲이 울창하였다. 이런 울창한 숲은 여름에 수온의 상승을 막아 주기 때문에 냉수성 어종의 서식이 가능하다. 숲이 없으면, 찬물에 사는 민물고기가 한여름의 폭염을 견딜 수 없다. 그러므로 냉수성 물고기가 여름에는 수온이 낮은 하천의 최상류에서 서식하다가 겨울에는 소(沼)로 내려와 월동을 한다.
두타연은 열목어(熱目魚)의 최대 서식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우리는 두타연에서 서식하고 있는 열목어와 어름치를 확인하였다. 열목어는 몸이 납작하고 은빛 잔 비늘이 곱게 박혀 있었다. 황갈색 등과 은백색 배는 조화를 이루고, 검은 자줏빛 반점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어름치의 몸은 원통형에 가까우나, 뒷부분이 가늘어서 물을 차고 나가기에 적합한 모습이었다. 등은 암갈색이고, 배는 은백색이며, 지느러미에 멋진 줄무늬가 있어 어름치가 움직일 때마다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열목어와 어름치는 모두가 천연 기념물에 속한다. 어름치는 우리 나라의 특산종이다. 우리 나라에서 어름치가 멸종되면 지구상에서 이 물고기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열목어는 우리 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멸종될 우려가 높기 때문에 보호가 시급하다.
어느덧 오후 5시가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떠날 채비를 해야만 하였다. 민통선 북방 지역 안에서의 민간인 활동은 오후 6시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타연을 떠나려고 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백록색 보드라운 잎을 지닌 사초가 무리를 진 채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언제 이 곳에 다시 올 수 있을 것인지, 두타연을 떠나는 마음은 자못 아쉽기만 하였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 1995년에서 2000년까지 수록)
김 재 황
날씨는 맑았다. 아침 9시, 우리는 해안 분지를 향해 차를 달렸다. 민통선 북방, 양구군 해안면에 위치한 해안 분지에는 북서쪽으로 가칠봉을 비롯해서 서쪽으로 대우산, 남서쪽으로 도솔산, 남쪽으로 대암산 등 해발 1000미터 이상의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차가 언덕을 오르는 동안, 아침 안개는 눈부시게 밝은 햇살에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가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안개 속에 잠겨 있던 숲이 조금씩 푸른 모습으로 떠올랐다. 차 소리에 놀라서인지 숲 속에서 장끼 한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아간다.
차가 해안 분지 안으로 들어서자, 일시에 너른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자그마치 남북으로 11.95킬로미터에 동서로는 6.6킬로미터이며, 총면적이 57.5제곱킬로미터나 되는, 해발 450미터에 위치한 분지다. 이 곳은 6.25 전쟁 때의 격전지로서, 그 생김새가 화채 그릇을 닮았기에 유엔군 병사들이 ‘펀치 볼’이라 불렀다고 한다. 차창을 통해 밖을 보니, 제법 큰 동네가 형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 곳은 광복 후부터 1953년까지는 북한 치하에 있었으나, 수복된 후 1956년에 150여 가구가 처음 들어왔고, 1972년에 다시 100여 가구가 들어와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분지는, 조선 중기까지 해안(海安)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이 곳에 뱀이 많이 들끓자, 뱀과 상극인 돼지의 뜻을 지닌 해안(亥安)으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고 전한다.
원래, 이 곳은 호수였다고 한다. 가칠봉 능선에서 뱃조각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고, 또 대암산 능선에서 다슬기껍데기를 발견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이 호수는 한동안 물이 괴어 있다가 산세가 낮은 동쪽 기슭이 터지면서 물이 흘러 나갔다고 하는데, 지금도 이 개구부(開口部)로는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여서 흐르고 있다. 이 물은 곧 서화천(瑞和川)을 이루다가 인제 북방의 다른 개울과 만나 소양호(昭陽湖)로 흘러든다.
해안 분지의 개천은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민물고기의 생태에 큰 관심을 가졌다. 실개천은 수정처럼 맑게 돌돌돌 흐르고 있었다. 실개천을 바라보노라니 벌거벗고 물장구 치며 놀던 고향의 개울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아래쪽에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으며, 물가에는 가지런히 머리를 빗은 듯한 수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나를 부르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 올 것 같았다. 그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민물고기는 쉬리, 돌고기, 참마자, 퉁가리, 배가사리, 참종개 등인데, 특히 배가사리와 참종개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 취리, 퉁가리, 배가사리, 참종개는 우리 나라의 특산종이다.
학자들은 이 해안 분지의 생성에 대해서 두 가지 학설을 내세우고 있다. 하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0만여 년 전에 지름 188미터, 무게 2700만 톤 정도의 운석이 음속(音速)의 200배 속도로 떨어져서 이 분지가 이루어졌다는 학설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주위의 산줄기는 변성암의 일종인 편마암인 데 비해, 분지의 바닥은 비교적 풍화 침식이 잘 되는 화강암이어서, 이 두 종류의 암석이 적어도 2억 년 동안 차별적으로 침식되어 생겼다는 학설이다. 이 중에서 차별 침식으로 보는 학설이 더 지배적이다.
해안 분지를 떠나 두타연(頭陀淵)으로 향했다. 우리는 먼저, 군사 분계선 가까이로 차를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오면서 그 곳의 자연 상태를 관찰하기로 했다. 물기가 많은 낮은 지역에는 사초가 우거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딱총나무와 엄나무도 있었다. 언덕을 올라서니, 순결한 시골 처녀를 연상하게 하는 함박꽃이 함박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한다. 어긋맞게 난 잎은 길둥근 모양인데 막질(膜質)로 반질거리고, 아래쪽은 회록색을 띠고 있으며,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내외하듯 아래나 옆으로 비스듬하게 핀 꽃의 담홍색 수술이 흰 꽃잎과 조화를 이룬다. 함박꽃을 만나, 한동안 우리는 사진 찍기에 바빴다. 우리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정향나무, 고광나무, 고추나무를 만나는 기쁨도 맛보았다.
드디어 우리는 두타연 앞에 다다랐다. 두타연의 원래 이름은 드레못이다. 입구에서는 둥굴레의 단지 모양인 흰 꽃과 큰꽃으아리의 팔랑개비처럼 생긴 흰 꽃이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 눈앞에 펼쳐지는 신비스러운 선경(仙境)이여! 이 지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두타(頭陀)란, 범어(梵語)로 번뇌와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불도(佛道)를 닦는 수행을 말한다. 두타연은 둘레가 50미터, 수심이 7미터나 되는 곳으로, 거울처럼 맑게 고인 물에 우리의 온갖 마음이 그대로 비칠 것만 같다. 이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누구든 마음이 더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이 쏟아지는 위쪽으로 가 보았다. 하천 주변에는 숲이 울창하였다. 이런 울창한 숲은 여름에 수온의 상승을 막아 주기 때문에 냉수성 어종의 서식이 가능하다. 숲이 없으면, 찬물에 사는 민물고기가 한여름의 폭염을 견딜 수 없다. 그러므로 냉수성 물고기가 여름에는 수온이 낮은 하천의 최상류에서 서식하다가 겨울에는 소(沼)로 내려와 월동을 한다.
두타연은 열목어(熱目魚)의 최대 서식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우리는 두타연에서 서식하고 있는 열목어와 어름치를 확인하였다. 열목어는 몸이 납작하고 은빛 잔 비늘이 곱게 박혀 있었다. 황갈색 등과 은백색 배는 조화를 이루고, 검은 자줏빛 반점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어름치의 몸은 원통형에 가까우나, 뒷부분이 가늘어서 물을 차고 나가기에 적합한 모습이었다. 등은 암갈색이고, 배는 은백색이며, 지느러미에 멋진 줄무늬가 있어 어름치가 움직일 때마다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열목어와 어름치는 모두가 천연 기념물에 속한다. 어름치는 우리 나라의 특산종이다. 우리 나라에서 어름치가 멸종되면 지구상에서 이 물고기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열목어는 우리 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멸종될 우려가 높기 때문에 보호가 시급하다.
어느덧 오후 5시가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떠날 채비를 해야만 하였다. 민통선 북방 지역 안에서의 민간인 활동은 오후 6시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타연을 떠나려고 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백록색 보드라운 잎을 지닌 사초가 무리를 진 채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언제 이 곳에 다시 올 수 있을 것인지, 두타연을 떠나는 마음은 자못 아쉽기만 하였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 1995년에서 2000년까지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