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시조 30편) 28. 묵혀 놓은 가을엽서 묵혀 놓은 가을엽서 김 재 황 하늘이 높아지니 물소리는 낮습니다. 지난 길이 멀어지면 귀도 멀게 된다지만 이 밤도 지친 발걸음 젖어 닿는 그대 기척. 붉게 타다 떨어지는, 꼭 단풍잎 아픔만큼 결코 떨어 낼 수 없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직껏 띄우지 못한 빛이 바랜 나의 소식. 고요를 깬 바람이 울고.. 시조 2008.11.25
(자선시조 30편) 27. 내 마음에 발을 치고 내 마음에 발을 치고 김 재 황 나서기 좋아하니 꽃을 못 피우는 걸까 오히려 숨었기에 저리 환한 제주한란 그 모습 닮아 보려고 내 마음에 발을 친다. 햇빛도 더욱 맑게 조금씩 걸러 담으면 일어서는 송림 사이 산바람은 다시 불고 물소리 안고 잠드는 원시의 숲이 열린다. 반그늘 딛고 사니 모든 일이 .. 시조 2008.11.24
(자선시조 30편) 26. 백송을 바라보며 백송을 바라보며 김 재 황 대세를 거슬러서 자각의 침 치켜들고 저물어 가는 세상 탄식하며 깨운 세월 이 시대 앓는 숨소리, 그대 만나 듣습니다. 켜켜이 떨어지는 일상의 편린을 모아 저승꽃 피워 내듯 몸 사르며 걸어온 길 그대가 남긴 발자취, 내가 지금 따릅니다. 뒤꼍의 외진 자리 이제 다시 찾아.. 시조 2008.11.23
(자선시조 30편) 25. 매창묘 앞에서 매창묘 앞에서 김 재 황 배꽃이 지는 날은 황톳길을 헤맸을까. 날리는 흙먼지 속에 임의 걸음 살려 내면 그 두 뺨 붉은 그대로 봉두메에 나와 설까. 달빛이 시린 날은 거문고를 안았으리. 다 해진 파도 소리 다시 가락에 얹힐 때 가냘픈 임의 손끝도 마음 줄을 퉁겼으리. 시조 2008.11.22
(자선시조 30편) 24. 히말라야를 오르며 히말라야를 오르며 김 재 황 너무나 숨차구나 홀로 오르는 발걸음 지나온 산길 위로 젖은 바람 깔리는데 그 높은 나의 봉우리 번쩍인다 빙설이---. 아무도 밟지 않은 순수의 자리를 골라 말없이 삶을 새긴 어느 설인의 발자국 아직껏 굽은 능선에 빈 고요로 남아 있다. 볼수록 아름다워라 멀리 펼친 산.. 시조 2008.11.21
(자선시조 30편) 23. 콩제비꽃 그 숨결이 콩제비꽃 그 숨결이 김 재 황 (1) 어디서 날아왔는지 작디작은 씨앗 하나 마당가 분(盆)에 내려서 작은 부리 내밀더니 여름내 깃을 다듬어 그 숨결이 뜨거웠다. (2) 가을도 기울었는데 엷디엷은 푸른 줄기 차마 그냥 둘 수 없어 방(房)안으로 옮겼더니 겨우내 빈 날갯짓에 내 귓전만 차가웠다. 시조 2008.11.20
(자선시조 30편) 22. 저 하늘을 바라보며 저 하늘을 바라보며 김 재 황 너무나 멀고 깊어 내가 닿을 수 있을까 그 빛깔 너무 맑아 나도 머물 수 있을까 가만히 바라다보면 왠지 자꾸 눈물 난다. 어둠이 깔릴 때면 더욱 감감한 속사정 저 별들 이야기도 깜박깜박 쏟아지고 공연히 그리운 얼굴만 더듬더듬 내려온다. 얼마나 넓은 강이 거기 흐르고.. 시조 2008.11.19
(자선시조 30편) 21. 고니 고 니 김 재 황 모여 앉기 좋은 자리 잘 마른 갈대숲 찾아 좋은 일 모두 비치는 물빛 가슴을 꿈꾸며 하얗게 짚어 나간 길, 또 한 차례 눈이 온다. 넓게 펼친 저 하늘에 그 가벼운 깃을 얹고 힘껏 뻗은 두 다리로 흰 구름을 밀어 낼 때 멀찍이 두고 온 호수 안고 웃는 임의 소식. 정성껏 지어야 한다, 밝은 .. 시조 2008.11.18
(자선시조 30편) 20. 진주 진 주 김 재 황 그저 한낱 구슬이면 무슨 가치 있겠냐만 눈 속에 든 티와 같이 참기 힘든 괴로움을 둥글게 빚어 놓았으니 어찌 보배 아니랴. 젊고 고운 여인네의 목걸이가 되었어도 사리처럼 뜨겁구나, 내 눈에는 그 모두가 우리도 쓰라림 감싸면 그리 곱게 빛날까. 바른 이치 간직한 듯 신비스런 광택.. 시조 2008.11.17
(자선시조 30편) 19. 셰르파가 되어 셰르파가 되어 김 재 황 얼마큼 끈을 조여야 옮기는 발이 편할까. 까만 눈동자들 모두 내 가슴에 품고 나서 가난을 앞장세우고 높은 산을 타야 하니. 등을 누르기만 하는 짐 덩이를 고쳐 메고 나른히 늘어지는 긴 능선을 접어 올리며 아직은 쉴 수 없는 걸음 돌아보지 않는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저 여.. 시조 2008.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