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조 1411

연시조 1편

[내 시링, 녹색 세상] 편 임진강에서 김 재 황 물바람은 울먹이며 강가에서 서성대고 머리 푼 갈대꽃이 혼이 나가 흔들려도 포성에 멍든 역사는 침묵 속에 떠간다. 서러운 빗줄기를 흩뿌려서 젓던 강물 말 잃은 얼굴들은 심연으로 잠기는데 세월은 회류의 꿈을 폭포처럼 쏟는다. 휘돌아 내린 굽이 가늘게 목이 죄어 흐르는 물길로는 풀지 못할 한이기에 나루터 빈 배 한 척만 가슴속이 썩는다. (2002년) (시작 노트) 고향 마을 바로 지척에 임진강이 흐르고 있다. 임진강은 북한지역인 강원도 법동군 용포리 두류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철원과 금화지역을 거친 다음, 남쪽으로 내달려서 경기도로 들어선다. 그리고는 한탄강과 만나서 정답게 손을 잡고 강화만을 지난 후에 바다로 돌아간다. 임진강의 총길이는 자그마치 254..

오늘의 시조 2022.09.22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추사 고택 김 재 황 간밤에 함박눈이 살금살금 내리더니 반듯한 마당에는 하얀 이불 덮이었다 임의 꿈 짐짓 일어나 하품하는 이른 아침. 세월을 따라가다 잠깐 쉬는 겨울바람 높직한 솟을대문 기왓장을 깔고 앉아 먼 하늘 뒹굴며 오는 임의 붓끝 바라본다. 반가운 손님 맞아 버선발로 달려 나온 그 마음 아른아른 격자창에 내비칠 듯 남향한 임의 사랑채에 옛 숨소리 가빠 온다. (2002년) (시작 노트) ‘추사고택’(秋史故宅)은,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다. 높지 않은 야산에 자리잡은 이 고택은, 전형적인 명문대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 추사고택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은 영조 대왕의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임금의 사위가 되었다. 그는 ..

오늘의 시조 2022.09.21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줄타기 김 재 황 안개 속을 헤엄친다, 지느러미 펄럭이며 드넓은 허공에서 바람 타고 앉았다가 높직이 몸을 솟구쳐 세상 밖을 엿본다. 가볍게 날아 봐도 날개 없는 겨드랑이 두견새 그 울음이 피를 흩듯 쏟아질 때 마지막 가난한 꿈을 불꽃 안에 던진다. 이미 길은 정했으니 걸음만 옮기면 될 뿐 긴 밤을 재우느라 이슬 먹은 외줄 위로 이제는 가락을 얹는다, 서러운 춤 보탠다. (2002년) (시작 노트) ‘줄타기’는 ‘줄광대’라고 하는 줄타기 연희자(演戱者)가 두어 길이의 높이로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삼현육각(三絃六角)의 반주에 맞추어서 재담이나 소리도 하고 춤도 추어 가며 갖가지 재주를 부리는 놀이이다. 몇 년 전, 나는 이 ‘줄타기’하는 모습을 용인의 민속촌에서 본 적이 있다. ..

오늘의 시조 2022.09.20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여창 가곡을 들으며 김 재 황 강물과 벗이 되어 한바탕을 이루는 소리 오늘은 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와서 듣네 옛 시절 감아 둔 사연 풀어내는 그 소리. 거문고와 가야금에 양금 등은 어디 있나, 오래도록 숨결 맞춘 악사들을 거느리고 나를 듯 한복 차림에 앉은소리 날리는 임. 짐짓 길을 돌아가는 그 가락 따르다 못해 홀로 내달린 어둠길 잠시 잠깐 꾸벅이면 빈 가슴 시린 물소리가 내 어깨를 톡톡 치네. (2002년) (시작 노트) 1999년 11월 9일 오후 7시, 나는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여창 가곡’을 듣는 행운을 얻었다. 그날 그곳에서 ‘김영기 여창 가곡 발표회’가 열렸다. 그 당시 김영기 여류가객은 KBS 국악관현악단 부수석으로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음악에 있어서 ‘정가’(..

오늘의 시조 2022.09.20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봉덕사종 김 재 황 세상에 태어나서 녹만 슬며 지내다가 몸뚱이를 불에 던져 용광로 속 끓던 쇳물 번뇌도 함께 녹아서 구름무늬 이루었다. 종대를 의지하면 침묵은 더욱 무겁다, 잠든 혼을 깨우려는 당목의 옹골찬 뼈대 여명에 명치를 치면 저 하늘도 쩡쩡 운다. 흐르는 긴 세월에 정한이야 깊고 시려 슬픔 띄운 강 한 자락 감싸 안은 선정이여 불현듯 깨달음 얻어 그 물소리 놓고 간다. (2002년) (시작 노트) 봉덕사종(奉德寺鐘)은, 통일신라 시대인 771년에 만든 동종(銅鐘)으로 국보 제29호이며,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높이 333㎝에 입지름 227㎝이다. 일명 ‘에밀레종’이라고 한다. 이 종은 원래 경주 ‘봉덕사’에 있었으나, 1460년(세조6년)에 영..

오늘의 시조 2022.09.19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똬리 김 재 황 결마다 더운 숨결 고운 사연 담겼느니 목숨을 이어 가듯 잘게 쪼개 엮은 왕골 물동이 쓸린 자리가 빛깔 잃고 부서진다. 정화수 가득 채워 철철 넘치던 인정미 오로지 인내하는 미덕 하나 입에 물면 정수리 눌린 아픔도 손때 묻어 윤이 난다. 샘처럼 머리 드는 수줍음도 함께 이고 물 긷는 저 아낙네 낡고 삭아 덧댄 일상 몸뚱이 젖은 민속만 시름 끌며 멀어진다. (2002년) (시작 노트) ‘똬리’란, 물건을 일 때 머리 위에 얹고 짐을 괴는 고리 모양의 물건을 말한다. 이 똬리를, 나는 어릴 적에 많이 보았다. 특히, 시골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동이에 담아 이고 오솔길을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똬리를 묶은 끈을 길게 늘여 입에 살짝 물..

오늘의 시조 2022.09.19

연시조 1편

봉산탈춤 김 재 황 욕망을 터는 갈기 즐긴 권위 삼킨 포효 대금 해금 슬피 울고 북 장구 가슴을 치는 단오절 사자춤으로 온 산천이 들썩거려. 인습에 몸이 묶여 허세로나 사는 삶을 빗대어 놀리면서 어지럽게 맴돌아도 양반은 그저 웃는다, 말뚝이가 푸는 춤에. 주름진 입 언저리 작은 미소 붙여 두고 익살로 얽은 얼굴 큰 주먹코 내세우며 노승을 꾀어 흔드는 그 팔목중 풀린 사위. 취발이가 깨끼춤을 타령조로 몰고 나면 때 절은 소매 끝에 끌리는 굿거리장단 멀찍이 미얄의 혼이 엉덩춤을 두고 간다. (2002년) (시작 노트) 봉산(鳳山)탈춤의 전승지는 황해도의 봉산 구읍이다. 행정구역으로는 봉산군 동선면 길양리에 해당한다. 봉산탈춤은 주로 농민과 장터의 상인들을 상대로 한 놀이였다고 한다. 황해도 가면극은 크게 3..

오늘의 시조 2022.09.18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농악놀이 김 재 황 긴 상모 열두 발이 빈 하늘을 희롱한다, 막걸리 한 사발로 온 세상을 열어 놓고 농부들 어두운 가슴에 달로 뜨는 소고 소리. 매섭게 때린 매에 몸을 떠는 서러운 혼 가난을 깔고 앉은 다북쑥도 여위는데 징 소리 아련히 새겨 어깨춤만 휘청거린다. 종이꽃 빚어 달고 고개를 숙인 고깔들 날라리 긴 울음이 산자락을 잡고 돌면 갈증에 마른 믿음도 물빛 꿈을 풀어 뵌다. 언제나 한발 먼저 흘러서 가는 강물을 꽹과리 휘몰아서 즐겁게 만나는 오늘 고향에 세운 농기는 무명처럼 흔들거린다. (2002년) (시작 노트) ‘농악놀이’에서 ‘농악’(農樂)은, 농촌에서 명절이나 농사일 또는 공동작업 등을 할 때 연주되는 민속음악이다. 그리고 농악에 쓰이는 악기는 ‘꽹과리’ ‘징’ ‘..

오늘의 시조 2022.09.18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나전칠기 김 재 황 어둠이 곰삭으면 깊은 밤은 내려앉고 잠결에 부는 바람 아예 산은 물러앉고 윤택이 흐르는 숲에 눈을 뜨는 이 정적. 먹구름 헤집고서 잠시 뵈는 젖은 달빛 하얀 얼굴 감싸 안고 지난 밤은 서럽더니 이 아침 걸린 무지개 밝아 오는 내심이여. 시름을 풀어내는 물결 소리 듣고 서면 첫울음 첫 미소가 태초 품에 안겨들고 죽어서 사는 행자목 그 한목숨 태어난다. (2002년) (시작 노트) 나전칠기(螺鈿漆器)는 옻과 조개껍데기가 어울려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공예품을 가리킨다. 즉, ‘나전칠기’에서 ‘나전’은, 광채가 나는 작은 자개 조각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아 붙여서 꾸미는 공예기법을 말한다. ‘나전’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사용한다. 여기..

오늘의 시조 2022.09.17

연시조 1편

[내 사랑, 녹색 세상] 편 맷돌 김 재 황 어쩌다 그대 몸은 그렇듯이 얽었어도 끝까지 그 삶이야 동그란 사랑이었소 무겁게 가슴에 안은 원한조차 갈아 내는. 원래는 땅속에서 벌겋게 끓었을 텐데 그 정열 잠재우고 무언으로 머문 그대 누군가 다시 껴안고 긴긴 숨을 불어넣었소. 가만히 귀 기울이면 천둥소리 머금은 듯 세상에 전하는 말 연거푸 외고 있건만 우리는 알지 못했소, 돌아가는 어지러움에. (2002년) (시작 노트) 몇 년 전, 어느 민속품 수집가의 집에 초대받아서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그 집의 마당에 디딤돌로 깔린 많은 맷돌을 보고 놀랐다. ‘맷돌이 이제는 이렇게도 쓰이는구나.’라는 생각에, 긍정적이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맷돌은 여성들이 주로 다루었다. 맷돌의 역할..

오늘의 시조 202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