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시어록

시인에게 시는 지팡이일 뿐

시조시인 2012. 2. 21. 11:12

시인(詩人)에게 시(詩)는 지팡이일 뿐이지 결코 길이 아니다.- 녹시

 

여러 시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시인들에게 시(詩)는, 삶의 길을 가는 데 의지하는 지팡이일 뿐이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방편'(方便)일 뿐이라는 뜻이다. 이를 인도의 말로 '우파야'(upaya)라고 하는데, 삶의 강을 건너가기 위한 '땟목'이라고 여기면 될 성싶다. 그러면 '시인의 길'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야,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싯다르타가 말하는 '청정행'(淸淨行)이다. 사람의 마음 밑바탕에는 그릇된 집착이 뒤엉켜서 인격을 만들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 집착이라는 더러움을 없애는 게 바로 '청정행'이라는 말이다.

밖에 나가 보면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우리집은 관악산 밑에 자리 잡고 있는데, 산을 오르는 사람들 중에는 늙지 않았어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힘든 길을 걸을 때, 지팡이는 분명히 의지가 된다. 걷는 데 도움을 주는 게 지팡이의 사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짚을 수 있도록 튼튼함을 지니면 된다. 그런데 만약에 지팡이를 지닌 사람들이 누가 더 좋은 지팡이를 지녔는가 경쟁을 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하지만 시인들 중에는 누가 더 좋은 작품을 썼는가를 자랑하려고 드는 사람이 더러 있다. 우습꽝스럽기 짝이 없는 짓이다.  정말이지, 시는 수준 미달만 아니라면 그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들녁으로 나가면 갖가지 꽃이 피어 있다. 그 꽃들의 아름다움에 누가 서열을 매길 수 있겠는가? 만약에 어느 덜 떨어진 사람이 서열을 매겼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 개인의 생각과 취향일 뿐이고 다른 사람의 수긍을 받지 못한다. 꽃은 제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정도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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