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로써 시를 말하다
- 한국 시문학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김 재 황
(1)
누가 나에게 물었다. “왜 날마다 시조를 짓느냐?”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왜 당신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하루에 세 번씩이나 밥을 먹느냐?”
그렇다. 나는 수신의 방편(方便 upāya)으로 시조를 짓는다. 시인은 어엿한 선비이니 날마다 수신(修身)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수신을 게으르게 한다면 어찌 문인의 길을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겠는가. 사서삼경 중 대학에는 ‘자천자이지어서인 일시개이수신위본’(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하늘의 아들로부터 뭇 사람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다 함께 ‘몸 닦음’을 뿌리로 삼는다.”라는 뜻이다.
또 하나. 논어에 들어 있는 수많은 가르침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공자의 그 유명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이다. 이 말은 더 나아가서, 시인은 시인다워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인이 시인다워지려면 끊임없이 수신을 거듭해야 한다. 이게 바로 ‘어짊’(仁)에 머무르는 길이니 어찌 잠시라도 게으르게 할 수 있겠는가.
다시 또 하나. 수신의 방편이니, 시조는 참다워야 한다. 참되지 않고서는 수신이 될 수 없다. ‘참되다’라는 말은 ‘바르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논어(論語) 중에는 ‘할부정 불식’(割不正 不食)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이는 공자의 일상을 가리키는 말인데, ‘반듯하게 썰지 않았으면 먹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수신으로 이루어진 마음
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2)
어차피 시조는 정형시이기에 바른 정형을 내보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내 생각일 뿐이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시’라는 것은, 반드시 이렇게 써야 한다는 법도 없고, 반드시 이렇게 쓰지 말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
시조는 3장 6구 12음보(소절)로 되어 있다. 그 짜임이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와룡선생(臥龍先生)의 ‘팔진도(八陣圖)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아무것도 없이 다만 강변에 팔구십 돌무더기가 있을 뿐인데, 적장 육손이 들어섰다가 나오려고 할 때 돌연 일진광풍이 일어나면서 삽시간에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면서 하늘땅이 캄캄해졌다. 그는, 공명의 장인 ’황승언‘의 도움을 받아서 목숨을 간신히 보전하였다. 그 지방 사람의 말을 빌리면 그 내막이 다음과 같다.
“이곳은 어복포(魚腹浦)라는 곳인데 재갈공명이 서천(西川)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이곳에 와서 돌을 쌓음으로써 진(陣)을 친 곳이올시다. 그 후부터 항상 이상한 기운이 구름 피어오르듯 돌무더기 속에서 일어납니다.”
이렇듯 하찮은 돌무더기 몇 개도 이렇듯 조화를 부리는데, 하물며 시조의 3장 6구 12음보야 말로 얼마나 오묘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물론, 시조의 초장에는 ‘흐름’(流)이 있고 중장에는 굽이(曲)가 있으며 종장의 처음 음보에는 ‘마디’(節)가 있고, 종장의 끝 음보에는 ‘풀림’(解)이 있다. 이를 더 설명하자면, 우리가 활을 쏠 때에 사선에 들어서서 활을 들면 그게 ‘흐름’이다. 그리고 과녁을 향하여 활을 조준하면 그건 ‘굽이’이다. 그러고 나서 활시위를 당기면 그게 ‘마디’이고 당긴 활시위를 놓으면 그게 ‘풀림’이 된다. 또 하나. 우리가 도리깨질을 할 때, 도리깨를 잡으면 그게 ‘흐름’이고, 그 도리깨를 머리 위로 올리면 ‘굽이’이며, 도리깨의 휘추리를 휘두르면 그게 ‘마디’이고, 돌린 휘추리를 힘차게 내려치는 게 ‘풀림’이다.
지금은 현대시조의 시대이다. 더군다나 시조시인의 숫자가 1,000명을 넘고 있으니 이제야말로 정형 쪽으로 한 번 더 조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냇물이 흘러가면서 ‘흐름’과 ‘굽이’를 만나고 나중에는 ‘마디’를 만난다. 이 ‘마디’로 나는 폭포를 연상한다. 물이 힘차게 밑으로 쏟아질 때의 그 장관을 어찌 잊겠는가. 그때 비로소 무지개를 내보이게 된다. 그리고 폭포가 쏟아지고 나면 거기에 ‘풀림’의 깊은 소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정형에서 종장은 더욱 중요하다.
내 생각은 이렇다. 시조가 무지개를 내보이게 되려면 시조를 더욱 정형으로 조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강조하건대, 시조는 정형시이다. 듣는 시조가 아니라, 보는 시조로서의 정형을 내보여야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면 앞으로 시조의 자수 정형, 즉 음수율은 어떠해야 되는가. 나는 시조의 정형을 ‘초장과 중장의 각 구 음절을 3 4나 4 4로 하고, 종장 전체의 음절을 3 5 4 3이나 3 5 4 4인 상태로 해야 한다.’라고 보았다. 그리고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은, 초장과 중장은 3, 4, 4, 4이고 종장은 3, 5, 4, 3이라고 여긴다.
그러면 이상적 형의 각 음보(소절)에 대한 음양관계(陰陽關係)를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초장의 각 음보는 ‘양, 음, 음, 음’으로 되어 있다. 즉, 음 쪽으로 기우러져 있다. 그리고 중장 또한 각 음보가 ‘양, 음, 음, 음’이다. 초장과 같다. 알다시피 시조는 종장의 무게가 초장과 중장을 합친 것과 같다. 그런데 종장의 음보는 ‘양, 양, 음, 양’으로 되어 있다. 일대 반전이고 변화이다. 일진광풍이 일고 모래가 날리는 듯싶다. 이로써 시조는 평형을 유지하며 반듯하게 서게 된다. 우리는 이를 무시하지 못한다. 태극기를 보면 분명해진다.
무엇이든지 구태의연해서는 안 된다. 그 시대에 맞게 변모하여야 한다. 단언컨대 앞으로는 풀어 헤치는 시대가 아니라 더욱 조이는 시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
(3)
공자께서 시조에 대하여 아시게 되셨다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作不正 不讀(작부정 불독).” 이는, “반듯하게 짓지 않았으면 읽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 말씀을 듣는다면 어찌 등에 식은땀이 나지 않겠는가.
어릴 적에 놀던 생각이 난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도 변변치 못하여서 제기차기나 자치기나 구슬치기 등을 하고 놀았다. 그러나 놀이라면 무엇보다도 팽이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사촌형이 낫으로 깎아서 만들어준 팽이를 얼음판에서 돌리며 놀던 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팽이를 돌릴 때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비틀거리는 팽이를 채로 열심히 때려서 일단 일으켜 세우면 그 다음부터는 별로 힘이 안 든다. 채로 착착 감기게 때리면 때릴수록 팽이는 더욱 신나게 돌아가는데, 어느 순간에 움직이지 않는 듯이 선다. 이 때에는 이 세상마저 모두 멎고 고요함이 감돈다. 이를 가리켜서 우리는 ‘팽이가 섰다’라고 일컬었다. 팽이가 ‘서는 순간’의 그 아름다움을 우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그 나름으로 고유한 민족시(民族詩)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없다면 그게 무엇보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멋진 민족시를 지니고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시조’(時調)이다.
게다가 ‘시조’는 엄격한 절제를 지닌 정형시(定型詩)이다.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형시란 ‘전통적으로 시구(詩句)나 글자의 수와 배열의 순서 및 운율 등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시’를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정형시는 한시(漢詩)일 것 같은데, 한시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운 시기는 당나라 때로 이른바 당시(唐詩)이다. 당시들을 살펴보면 그 형(型)이 매우 엄격하게 짜여 있다. 이를 바꾸어 말한다면, 시에 있어서 그 엄격함이 정형시의 전성시대를 이룬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바야흐로 한류(韓流)가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 ‘한글’이 있다. 한글의 위대성을 알리는 방법이 많겠으나, 이를 문학작품, 특히 시(詩)로써 알리는 방법이 무엇보다 효과적이라고 여긴다. 그것도 자유시가 아니라, 민족시인 ‘시조’(時調)로 알린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니겠는가.
(단수 시조)
내 길 외 4수
김 재 황
아무리 좋은 길이 바로 옆에 있다 해도
어차피 한 길밖에 딛고 갈 수 없잖은가,
오로지 내가 고른 길 쉬지 않고 가겠네.
물총새가 되어
흐르는 물속으로 가는 눈길 쏟노라면
물길을 거슬러서 꼬리치는 바로 그것
살같이 내리꽂아서 단수 시조 잡는다.
시조 짓기
하얗게 밤 새워야 겨우 한 수 건지는데
마음에 쏙 드는 것 만나기는 별 따기지
못나도 날 꼭 닮아서 버릴 수가 없다네.
하나 둘 셋
날마다 남들처럼 꼭 챙겨서 세 끼 먹지
가난을 즐기니까 내 밥값은 시조 한 수
사느니 마음과 몸이 두 길 가지 않기를.
반구정 아니라도
강물이 길을 내고 갈매기가 노니는 곳
그런 곳 아니라도 시조 짓고 살아가면
바다가 그 앞에 와서 넘실넘실 춤춘다.
(연시조)
삵 외 4편
김 재 황
밤이면 살금살금 산과 들로 나서는 때
풀잎이 흔들려도 눈이 반짝 크게 되고
멋있는 노래 한 끈을 호기심에 찾는다.
하늘에 달이 뜨면 그림자를 낮게 끌고
그늘로 들어서는 갈색 바탕 검은 무늬
꼬리는 가락을 탄 듯 가로띠가 빛난다.
어디서 들려오나 맑게 열린 냇물 소리
작지만 세운 발톱 날카로운 어둠 아래
거슬러 물길 오르는 은빛 시조 움킨다.
시조 한 편
시절에 몸을 담고 노래하는 시조 한 편
바람이 부는 대로 갈꽃 숲이 열린 대로
긴 숨결 사려 모아서 가락 위에 싣는다.
배꽃이 피는 날엔 거나하게 대포 한 잔
추석에 달이 뜨면 넉넉하게 시조 한 편
선비가 가는 그 길에 알맞은 멋 보탠다.
아픔을 지닌 만큼 내 마음은 커질 테고
눈물이 흐른 만큼 네 세상은 맑을 테니
나와 너 흘러가도록 시조 한 편 펼친다.
폭포 아래에서
흐름을 밟고 가서 굽이 또한 거친 다음
툭 꺾인 물 마디가 쏟아지며 부서질 때
비로소 하늘 소리는 더운 피를 막 쏟네.
긴 솔이 홀로 서서 물바람을 가득 안고
입 시린 물방울에 일곱 꿈이 살짝 피면
목이 튼 우리 가락이 절로 외는 시조창.
마음껏 여는 귀엔 거친 맷돌 돌리는 듯
눈 뜨고 둘러보니 둥근 우레 울리는 듯
성내며 더 을러 봐도 어깨춤만 또 으쓱.
시조 수행
날마다 한 수씩은 꼭 지어야 개운한데
그 일감 변함없이 뜻 세움과 마찬가지
오늘도 딛는 걸음이 흔들리면 안 되니.
가슴을 확 비워야 대숲 또한 다가오고
흰 달빛 내리는데 둘러서는 언덕 솔숲
즐겁게 벗을 만나는 선비 길을 나서지.
하늘에 검은 구름 걱정하며 붓을 들면
온 얼룩 다 지우고 펼쳐지는 마음자리
그으니 강물이 되는 어짊이라 곧은 획.
백수 선생님을 그리며
처음 뵌 날이라면 사십 년이 더 지났지
광화문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초원 다방
나가면 늘 반겨 주신 선생님을 못 잊지.
엉성한 내 작품을 무릎 앞에 펼쳐 놔도
탓하지 않으시고 한 자 한 자 짚으셨지
참 크게 가르침 안고 외로운 길 걸었지.
올바른 은혜 보답 바른 시조 보이는 것
조이고 더 갈아서 고운 노래 만드는 일
그래야 선생님 얼굴 긴 꿈에서 또 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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