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에 사는 동포와의 시조 국제교류/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3. 19. 18:21

                      중국에 사는 동포와의 시조 국제교류
                                                                         김 재 황

1. 들어가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 된다. 한국시조시인협회에서 원용문(지금은 원용우) 선배님이 회장 선거에 출마를 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동반 출마를 해야 하는 부회장의 한 사람으로 나를 지목하셨는데, 나는 개인사정으로 말미암아 고사를 했다. 물론, 원 선배님과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무엇보다 <월간문학>을 통하여 문단에 등단했다는 것을 비롯하여, 과거에 원 선배님께서 한국시조시인협회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으셨을 때 선거관리위원으로 함께 일을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평소에 내가 잘 따랐기에 잘 챙겨주시는 편이셨다. 
 나는 백의종군하였으나, 원 선배님께서는 아주 근소한 득표 차이로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 안타까웠다. 같이 뛰었던 모든 이들이 그러하였다. 그 인적 구성을 그대로 버리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단체 하나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게다가 명분도 있었다. 저편은 파격이 심한 작품을 쓰는 시조시인들이 많았으나, 이편은 거의가 정격을 지켜 나가려는 시조시인들이었다. 그래서 학국시조사랑운동본부가 발족되기에 이르렀다.  
 기구가 만들어지고, 나에게 국제교류연구소 초대소장 자리를 맡아 달라는 제의가 있었다. 몇 가지 집필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지만, 더 이상 고사하기가 어려워서 수락하였다. 직책을 맡았으니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2. 가까운 곳부터

하나, 중국과의 국제교류 실제

 세계 어느 나라와의 국제교류이든지 직접 외국 사람과 교류를 시작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점이 많다. 그렇기에 그 나라에 사는 우리 동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중국에는 우리 동포가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에게 시조의 맛과 멋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 일이 이루어진 후에 본토 중국인들과의 본격적인 교류가 진행되어야 한다.  

둘. 중국에 사는 동포와의 교류 시도

 그러나 나는 중국에 사는 동포가 시조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작품 경향은 어떠하고 작품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에 사는 동포 시인들의 시조작품집을 묶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곧바로 ‘연변 작가들과 왕래가 잦은 L사백’을 통하여 중국 현지에 사는 동포 문인과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1) C선생의 경우
 L사백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내 주었다.
 “현재 중국 측에서 원고를 선별해 보내주는 젊은 사람입니다. 상당히 까칠한 작가이지요. 이름은 'K.K'입니다. 이 친구에게 문의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시조를 창작하시는 분들이 있긴 한데 많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K.K작가에게 문의하시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K.K작가’의 이메일을 물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시조를 쓰고 있는 김재황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한국시조사랑운동본부’가 발족되었고 그 소속의 ‘국제교류연구소’를 제가 맡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선 먼저, 연변지역에 사시는 문인들의 시조를 모아서 내년쯤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볼까 합니다. 그러나 작품을 어떻게 모으고 그쪽 사정은 어떠한지 정보가 없기에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좋은 조언과 협조를 부탁하며 인사를 대신합니다.”

 내가 보낸 이 이메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K.K작가’의 답신이 곧 도착하였다.
 “안녕하세요. 지금 겨우 동시를 공부하고 있는 저로선 선생님의 문의사항에 변변한 답변을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쪽 원로시인 C선생님께 여쭤보고 나서 이렇게 답장을 드립니다. C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지금 연변 모 단체에서 시조집 출판을 준비 중인데, 오는 8월 즈음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혹 그 시조집 자료를 얻을 수 없을까 문의해 보셨다는데, 시조집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아직 공개하지 못한다고 하더랍니다. 해서 제가 선생님께서 따로 편집해 주실 수는 없느냐고 여쭤봤는데, ‘할 수는 있다. 근데 책 한 권 만든다는 게 시조 2~300수 정도의 분량이 되는 엄청난 작업인데, 소요되는 편집비용, 원고와 같은 비용은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 확답을 들은 후에 얘기하고 싶다.’라는 답장을 보내오셨습니다. 원하시는 답이 되었는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물론, 부탁할 때에는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게 마땅한 일이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도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고맙습니다. 연변 문인들의 작품을 100편쯤 모아서 시집 한 권을 만들어 볼까 하는데, 그쪽 사정을 모르니 도무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작품을 선별해 보내 주시면 여기에서 책을 만들 것이고, 원고료를 편당 어느 정도 드리면 되는지 알려주세요. 이곳의 실상과는 다를 테니까요.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이사회'의 결정을 보아야 합니다. 본의 아니게 번거로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또, 중간에서 ‘K.K작가’가 수고를 해주었다.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K.K작가’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 주었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C시인님께 원고료, 기타 비용에 대해 여쭤봤는데, 원고료 편당 2만 원(한화), 기타 (원고 수집. 타자. 통신비) 등 제반 비용 100만 원(한화)을 제시하셨습니다.
 원고는 11월까지 수집해서 보내드릴 수 있답니다. 저희 연변 문인들 작품에 애정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앞으로도 연락 주십시오. 큰 도움은 못 되더라도 능력껏 일조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연변 시인들의 시조작품집을 당장에 묶기는 어렵겠다고 여겼다. 그러나 언제인가는 연변 시인들의 작품을 묶어서 국내의 독자들에게 소개를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우선은 중국에 사는 동포 시인들과의 사귐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여겼다. 

(2) H선생의 경우
 이번에는 중국통인 K박사에게 중국에 사는 동포 시인들과의 연결을 부탁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내왔다.
 “주안에 평강을 기원합니다. 보내주신 메일을 잘 받아보았습니다. 제가 오는 17일부터 22일까지 중국 연변에 갑니다. 목적은 조선족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특별강의를 해주기 위함입니다. 저희와 교류하는 사람 가운데 연길에 사는 시조문학회 회장님을 잘 알고 있는데 이번에 가면 만나서 김재황 선생님을 소개하고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주선해 드리겠습니다. 당장 무슨 일부터 하는 것이 좋을지 중국동포들의 생각을 먼저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 연변지역에서 H선생과 만나게 되어 있으니 자세하게 들어보고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얼마 후에 K박사는 H선생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왔다. 인터넷을 통하여 나는 조심스럽게 내 뜻을 다음과 같이 H선생에게 전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시조사랑운동본부의 국제교류연구소 소장을 맡은 김재황 시조시인입니다. 우리의 '민족시'인 '시조'를 널리 알리는 일에 동참했으나, 국제교류에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앞길이 캄캄할 뿐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국외에 계신 동포들의 힘을 빌려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연변에 계신 분들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K박사님은 오래전부터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분이라 이 일을 의논드렸고, K박사님께서도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하셨지요. 그 결과로, 오늘 선생님의 이메일 주소를 저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선은 서로의 책들을 교환하여 그 감성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한 다음, 자금을 확보하여 연변 소학교 어린이들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보았으면 합니다. 선생님과의 만남을 좋은 인연으로 가꾸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로 H선생의 답장이 이메일로 도착했다. 
 “덕망 높으신 선생님을 알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K박사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연변문화발전추진회의 S시인님과 함께 토의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시조시인들과 어린이 시조사업을 위한 일에 함께 뜻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구체적인 일들은 이제 하나하나 무르익게 하면서 해야 하겠지요. 우선 연변문화발전추진회(사단법인) 아래에 시조사랑회가 있습니다. 옛날 박구하 시인님 생전에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번에 다시 정돈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그동안 이곳에서 많이 침체하게 된 시조사랑이 선생님을 만나서 더욱 불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이메일을 보고 우선 우리나라에서 중국 쪽으로 작품집을 보내야 하겠다고, 나는 마음먹었다. 그래서 H선생의 주소를 물은 후에, 부랴부랴 동시조집 10권을 포장하여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가장 저렴한 가격의 통로(8,900원)로 책을 부쳤다. 이는, 시험적인 발송이고 앞으로는 여러 시조시인의 작품과 문학지들을 보낼 생각으로 우송비를 절약해 보자는 뜻이 담겼다. 그러나 서너 달이 훌쩍 지났건만 아직도 책은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자주 이용하는 간이우체국에 문의해 보니, 싼 가격의 우송료로 보내면 책의 도착을 보장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그리고 며칠 지난 후에 이메일을 확인했더니, H선생을 소개한 K박사의 조언이 도착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예정대로 17일부터 중국 연변에 와서 계획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부탁하신 시조 관계를 이곳 분들과 심도 있게 의논했습니다. 계획하신 일이 아주 훌륭한 사업이며 중국동포작가들과 좋은 문학교류사업으로 생각된다며 제가 추천한 분이라면 적극 신뢰하고 함께 협력하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했습니다. 실무적인 일은 H선생님과 직접 연락을 통해 진행할 수 있도록 해놓았고 제가 중간에서 필요한 부분을 도와드리겠사오니 다른 걱정하지 마시고 이분들과 사업을 진행하시면 아주 안전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업의논은 H선생님과 직접 나누십시오.”
 
  그 얼마 후에, K 박사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다시 해주었다.
 “평강을 기원합니다. 저는 어제(22일) 연길을 떠나 밤 9시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김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을 연길에서 잘 받아보았습니다. 중국동포사회는 지금 정신적인 과도기를 겪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 대한 기대와 한국 사람에 대한 불신 및 애증이 아주 심각할 정도입니다. 문화교류와 동포를 위한 일을 한답시고 종교계 및 문화계 인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중국을 드나들면서 가능하지도 않은 무지개 빛깔의 꿈만 잔뜩 키워놓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며 모른 체하거나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하다 보니 그런 사람을 상대로 돈이라도 뜯어먹으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교포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중국동포들과의 합작이나 연합행사는 중국에서 같이 일해 줄 동반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고 맙니다. 중국의 문화계 인사들은 모두 현직국가공무원들입니다. 그리고 퇴직 후에 극히 일부가 사단법인을 만들어 자기들이 공무원으로 재직할 때에 해왔던 일들을 계속해서 해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국가적인 공인을 받지 않는 사람과는 어떤 일도 함께 해서는 안 됩니다. 덕망과 함께 능력을 모두 갖춘 사람은 아주 찾기 어렵습니다. 아마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듯 귀합니다. (중략) 모든 정보와 일에 대한 의논은 이 채널만 이용하시고 다른 사람과는 연결하지 않으시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이분들에게 김 선생님에 대한 말씀을 여러 차례에 걸쳐 잘 해두었습니다. 나를 대하듯이 하면 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기회를 만들어서 저와 함께 중국 현지를 다녀오시는 것이 백 번 말씀 드리는 것보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로써, 앞으로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 문인들과의 일은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았다고 생각된다. 이제 얼마간의 자금과 동지들만 얻게 된다면 용기 있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일의 준비단계이기 때문에 사람 이름을 이니셜로 했음) 
 그 후 2013년 1월 26일, 연변의 H 선생은 K 박사를 통해 나에게 중국조선족어린이시조집 2012 ‘내 마음 별 마음’을 1권 보내 주었다. 먼저 그곳의 어린이들이 이렇듯 시조를 지을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가졌다. 그런데 정격에서 다소 벗어난 작품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이는 시조를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시조의 정격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일 것 같다.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3. 나가며

 그러던 중에, 전부터 교류를 갖고 지내던 이병권 박사가 연변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로서는 큰 활로가 트인 바와 같았다. 나는 곧 연락을 드렸고 긍정적인 대답도 받았다. 그런데 국제교류연구소 소장의 내 임기가 거의 끝나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할 때보다는 물러설 때를 잘 골라야 한다. 이만큼 길을 터놓았으니 누구든지 내 후임으로 소장 직책을 맡게 되는 분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일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국제교류연구소 소장 자리를 물러난 후에 이병권 교수와의 의논이 잘 이루어져서 중국 현지를 방문하고 시조 백일장을 개최하여 입상자들에게 시상을 했으며, 앞으로 그곳 사람들과 돈독한 시조 사랑의 길을 함께할 것을 약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행이  우리나라에 초대되어 오기도 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내 후임의 국제교류연구소장 몫으로 남겨 놓는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일이 계속되어 나가려면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이왕 시작된 일이니, 책임을 맡는 이는 열과 성을 다하여 꾸준히 이 일을 계속해 주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문득 ‘논어’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子貢 曰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子曰 沽之哉沽之哉 我 待賈者也.’(자공 왈유미옥어사 온독이장저 구선가이고저. 자왈 고지재고지재 아 대가자야[자한12]). 이는,  <자공이 여쭈었다. “아름다운 옥이 여기 있다면 궤 속에 넣어서 감춰 두시겠습니까? 좋은 값을 놓는 이에게 파시겠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값을 놓는 이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조가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저 안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시조의 국제교류를 게으르게 해서야 되겠는가. 한시바삐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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