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집처럼

시조시인 2005. 8. 30. 23:30
   너와집처럼

 

 

                           

                                       김 재 황

 

 

  달빛이 너무 밝아


  뒷산으로 시를 쓰려고 와서 앉았는데


  내 원고지 위에

  앞산 억새의 가늘고 긴 그림자가

  찾아와서 글씨를 쓰고


  좀처럼

  시는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깊은 숲 속에 자리잡고 앉은 너와집처럼.

   


 

(시작 노트)


 ‘너와집’이란 ‘너새집’의 변한 말이다. 그리고 ‘너새’는, 집을 이는 데에 기와처럼 쓰는 얇은 돌조각이나 나뭇조각을 말한다. 어쨌든 너와집은 도시에 지어진 집이 아니요, 깊은 산골에 지어진 집이다. 그래야 어울린다. 자연 속에서 조용하게 엎드려 있는 집. 달빛이 내려와서 지붕에 앉아 놀고, 바람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떠나는 곳. 이런 집이야말로, 시적(詩的)인 감성을 자아낸다. 시는 그리 호적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달빛이 밝은 날에는 잠들 수가 없다. 누구인가가 몹시 그립고, 그 그리움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어느 때는 그 얼굴이 정다운 친구이기도 하며, 또 다른 때는 젊었을 적에 남몰래 가슴을 태우던 짝사랑의 여인이기도 하다.  그분은 왜 우리에게 이런 애달픔을 갖게 하셨는가.

 시는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쓴다. ‘시’(詩)라도 쓰지 않고서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 시를 쓰려면 조용한 장소가 필요하다. 집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뿐이라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뒷산이라도 오르는 수밖에 없다. 일단 올라가서 자리를 잡으면, 그 안이 선방처럼 아늑해진다. 산에 오르면 가장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게 ‘억새’이다.  억새는 벼과의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만나면 첫인상이 그 이름에서 풍기듯 ‘억센 모습’이다. 만지면 손이 베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산에서 보는 것은 ‘참억새’이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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